Switch Mode

EP.80

       “뭐야 너? 무슨 볼일 있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선배를 만나러 왔는데 지금은 자리에 없는 모양이네요.”

        “쯧, 네가 저 안에 들여다 놓은 여자는 언제까지 있을 거야?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잿가루를 한가득 묻혀 오는데 여간 청소하기 껄끄러운 게 아니라고.”

        “그 부분은 제가 주의를 주도록 하겠습니다.”

       

        토비는 엉망이 된 해주학파의 라운지를 청소하고 있었다.

        대학원생으로서 사실상 종신 계약을 마친 그였지만 지금껏 자주 마주친 적은 없었다.

        당연히 첫 번째 이유는 나나 토비나 라운지에 자주 가지 않기 때문.

        허나 내 입장에선 그가 제법 껄끄럽기도 했다.

       

        공역에서 니플헤이르를 습격한 무서운 열차 테러범이 아닌가.

        폭탄은커녕 모닥불의 불씨만 타닥여도 겁을 먹는 심약한 해주술사에겐 한 시도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

        물론 그를 속이고 붙잡아 정보부에 넘긴 건 나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재미, 아니 마탑의 평화를 위해서였다.

        심지어 그의 여동생을 두 번이나 구해주었으니 오히려 만날 때마다 감사를 받아도 모자랄 판이었다.

       

        살살이를 살릴 수 있다는 메릴린의 제안을 들은 순간 일 초도 고민하지 않고 그녀를 돕기로 결정했으니 말이다.

       

        밖에서는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일 초였다.

       

        “네 선배라면 그 저주술사 말이군. 나도 찾고 있었는데, 언제 보면 네가 대신 한마디 해. 자꾸 이상한 글귀 적어놓은 액자 벽에 붙여놓지 말라고.”

        “이건 이상한 글귀가 아니라 학파규칙입니다.”

        “개소리하네. 무슨 저주문 같은 거잖아.”

        “저주라뇨?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규칙인데요.”

       

        나는 토비가 떼어낸 현판에 적힌 글자를 힐끗 바라보았다.

        악질 범죄자에 프란츤가 프테라노돈인가 이름도 잘 기억 안 나는 소환학파 출신인 그에게는 너무 난해하겠지.

        ‘선배와단둘이술마신후손을잡고라운지에들어오면문을모두걸어잠그고동이틀때까지어떠한저항도하지말것’은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신입 해주술사에겐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었다.

       

        학파의 전통과 의지가 담긴 글귀가 한낱 청소부의 손에 버려지다니.

        메릴린의 마법에 의해 팔다리에 쥐가 난 아녜스마저 저릿한 손으로 땅을 칠 정도로 애석한 일이었다.

       

        “만나게 되면 말은 해보겠습니다.”

        “너는 무슨 용건이었는데?”

        “30층의 시련에 대한 조언을 구할 생각이었죠. 저는 그곳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어서요.”

       

        시련에 대한 정보는 위로 올라갈수록 극히 적어진다.

        이는 학파마다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정보를 제한하기 때문이었다.

        굉장히 일반적인 현상이며 나 또한 보다 위를 등반하고 있는 프리나가 있었기에 학파규칙에 따라 배나 만지면서 담소를 나눠볼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40층에 도전하느라 바쁜 모양입니다. 연락을 해도 받질 않더라고요.”

        “하여간 니들 둘은 매번 그 위치노트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게 열받아.”

       

        오만상을 찌푸린 토비는 바닥에 모아둔 쓰레기들을 쓰레받이로 옮기며 청소를 끝마쳤다.

        이대로 라운지를 떠나나 싶었는데,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그가 먼저 내게 제안했다.

       

        “내가 도와줘?”

        “당신이요?”

        “날 뭘로 보는 거야. 당연히 30층은 넘었다고.”

        “흠…….”

       

        시련에 도전하기 위해 선결되어야 하는 세 가지 종말에서 살아남는 조건은 이미 통과한 상태였다.

        극채색 입단 테스트를 위해 난파선을 탔었고, 이후에도 짬짬이 고행의 층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으니까.

        어차피 나랑 프리나 둘뿐인 좆소학파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은 받기 힘들 것 같은데 토비가 나서 준다면 당연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답례로 이 검과 트로피를 드리겠습니다. 나름 칠현자 둘이 치열하게 갖겠다고 싸우던 물건입니다.”

        “필요 없어 그딴 거.”

       

        자기 여동생조차 고속도로 휴게소에 두고 올 법한 사악한 테러범이기는 하지만.

       

       

       

        *

       

        “30층의 시련은 ‘세계선(世界線)’이야. 난이도 자체는 그리 높지 않고, 평범하게 등산하는 거나 다름없어.”

        “그럼 등산장비 정도만 챙기면 되나요?”

        “무슨 소릴, 다른 곳보다 더 철저히 준비해야 돼.”

       

        세계선은 안개가 가득 낀 거대한 산맥으로 한 번 입장하면 7일간 그곳에 머물러야 한다.

        도처에는 수많은 보물과 함께 각종 보상이 묻혀 있으며 발을 헛디뎌 실족하는 것을 제외하곤 어떠한 위협도 없다.

        이렇게 보면 고행의 층이라는 이름이 걸맞지 않겠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세계선에 발을 디딘 사람은 말 그대로 마탑 내에서 그 존재가 ‘없었던 것’으로 치부되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너 같은 놈을 도와주는 이유가 뭐겠냐?”

        “제가 해주학파이기 때문이군요.”

        “이 라운지도 네가 없으면 언제 폐쇄되어도 이상하지 않지. 그러니까 30층은 위험한 곳이야. 네가 아니라 네 주위 사람들에게.”

       

        그는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며 종이에 적은 체크리스트를 건네주었다.

        자리를 비워도 괜찮도록 신변을 정리하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토비의 설명을 듣고 나니 프리나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나마나 그녀는 프리패스로 통과했을 테니까.

       

        “30층을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오니까 작은 혼란까진 괜찮아.”

        “그건 다행이네요.”

        “우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위임할 사람을 전부 찾아놓도록 해. 대체자가 없으면 혼란이 커질 테니까.”

        “알겠습니다.”

       

        나는 지금 내가 마탑에서 하고 있는 일들을 하나씩 정리해 보았다.

        기숙사 사감에 비나의 수업 조교, 그리고 갤러리 주딱까지 굵직한 것들만 추려도 세 가지는 되었다.

        다행히 학기가 끝나 극마법 수업은 당분간 열리지 않으니 남은 둘을 먼저 해결하기로 했다.

        기숙사 사감 자리는 생활부에 이미 적임자가 있었다.

       

        창문을 닦던 스피카 관의 사감은 갑자기 찾아온 내 부탁을 듣고 탐탁지 않은 듯 혀를 찼다.

       

        “시련에 들어갈 예정이니까 저보고 메릴랜드 관까지 맡아달라고요?”

        “특별히 관리하실 필요는 없고 일주일 동안 이름만 올려주시면 됩니다. 아, 원탁회 참석은 부탁드려요.”

        “그건 어렵지 않지만…… 여기 적힌 것들은 다 뭡니까?”

       

        그는 내가 내민 쪽지를 읽고 어이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사감실 문을 열어놓고 탁자에 코코아 한 잔을 타 놓기, 얼음 정수기 코드 확인하기, 새벽에 여자 기숙사 벨튀하기 등 지금껏 하루도 빼놓지 않고 충실히 지켰던 루틴들이 적혀 있었다.

        토비의 조언에 따라 내가 사라질 때 일어날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었다.

       

        매우 못마땅해 보이는 그였지만 갤러리에서 주운 ‘초전도체은발미소녀님 비밀 화보집’을 받고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사감 업무를 짬 때리는 데 성공한 나는 다음으로 위치노트를 켜서 파딱들에게 공지를 남겼다.

       

        ====

        — 관리자 : 당분간 갤 관리 좀 빽쎄게 해주길 바람

        — 벽력뇌제霹靂雷帝 : 무슨 일이지?

        — 관리자 : 일주일간 자리 비울 예정, 갤러리에는 비밀로 하고 니네만 알고 있어

        — 당신께축복을 : 알겠어요 ㅠㅠ

        — 관리자 : 그리고 부엉이 넌 나한테 매일 탕수육 게임 한 거 메시지로 보내 놔

        — 관리자 : 나중에 다 확인할 거야, 부엉 말고 다른 말 쓴 거 세 번 이상 걸리면 종신파딱이야

        — 부엉부엉부엉이 : 그러니까 그게 뭔데!?

        — 관리자 : 1스택

        — 부엉부엉부엉이 : 부, 부엉……!

        ====

       

        그 후로도 나는 사라졌을 때의 빈자리를 최대한 메꾸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토비의 말로는 규칙적이고 사소한 행위에서 생겨난 공백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모르니 가능한 모든 부분을 대비해야 된다고 하였다.

       

        다른 건 다 괜챃았지만 117개의 부계정으로 일주일 동안 갤러리에 평균적으로 작성하는 글 4만 개를 미리 써놓는 게 가장 어려웠다.

        아직 생기지 않은 떡밥에 자연스럽게 합류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는 가히 미래를 예측하는 수준의 집중이 필요했다.

        아무리 나라도 그건 불가능했기에 꾸준글이나 컨셉글을 최대한 늘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비어있는 마지막 한 조각의 공백을 채워넣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후.

        토비에게 등산용 장비와 식량 등이 담긴 배낭을 건네받은 나는 메릴린과 함께 29층으로 향했다.

       

       

       

        *

       

        “얼굴이 왜 그래? 며칠 동안 무슨 일 있었어?”

        “좀 피곤해서요. 그보다 시련에는 한 번밖에 입장 못 하는데 들어가도 괜찮으신 건가요?”

        “넌 뭘 모르네. 마탑이 생겨날 당시 이런 바보 같은 시스템은 없었어.”

       

        메릴린은 팔짱을 끼더니 불만스런 시선으로 30층으로 가는 게이트를 노려보았다.

       

        “전부 그 짜증 나는 년이 만든 거지.”

        “누가요?”

        “누구겠어? 너희가 전지(全知)라며 떠받드는 비석을 이곳에 꽂은 마법사인 게 뻔하잖아.”

        “…….”

       

        말투만 보아도 메릴린이 탑주로 추정되는 마법사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칼레이도스 학파는 니플헤이르의 고고함도, 미티어의 불타는 정의감도 아닌 오로지 ‘전육전식’을 표방하는 전투적인 학파.

        힘뿐 아니라 지식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취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에 흩뿌려져 있던 신비를 모조리 이곳에 봉인해 놓았지. 친절하게 방지턱도 만들어놓고 목숨을 바쳐가며 올라가야 하는 탑을 마법 실력을 익히기 위한 학교처럼 바꿔 버린 거야.”

        “그렇군요. 하지만 당시 탑주가 가장 강했다면 그 사람 말대로 하는 게 칼레이도스 학파의 규칙에 순종하는 게 아닌가요?”

        “시, 시끄러!”

       

        찔렸는지 메릴린이 로브에 정전기를 뿌려댔다.

        그녀가 힘을 되찾기 위해서는 30층에 숨겨둔 물건이 필요해 아직 따끔한 수준이었다.

        곤두선 머리카락을 다시 눌러준 나는 품에서 미리 준비해둔 서류를 꺼내어 메릴린에게 건넸다.

        생활부에서 파견된 인원들이 어김없이 입구에 서서 도전하려는 이들의 신원을 체크 중이었다.

       

        성적과 위계를 확인하는 검문소였지만 평소와는 다른 게 놓여 있었다.

        세계선에 입장했을 때의 파장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마도구.

        화장대처럼 생긴 탁자에 도전자들이 앉을 때마다 앞에 있는 거울이 다소 생경한 풍경을 비추었다.

       

        “어디 보자…… 삼일 차까지는 별문제 없으시군요. 여기서 파티를 즐기시는 분들은 부모님이신가요?”

        “제 방이에요. 성적표를 들고 본가에 갔을 땐 항상 우울해하셨는데…….”

        “크흠, 화, 확인되셨습니다. 다음 분!”

        “…….”

       

        어깨를 축 늘어뜨린 불효자가 시련에 입장하자 우리 차례가 다가왔다.

        메릴린을 먼저 보낸 나는 허리에 찬 살살이를 툭 치며 중얼거렸다.

       

        어때, 이런 주인 또 없지?

       

        고작 검 하나를 고치기 위해 서류까지 위조하다니.

        보통 사람들 같으면 그냥 대장간에 팔아버렸을 거다.

       

        “흠, 메리리린님 맞으시죠?”

        “맞아.”

        “성적은 문제없으시고, 거울에도 특별히 이상은 없네요.”

        “잠시만, 칼레이도스 학파가 칼피스로 바뀌어 있는데?”

        “큰 문제는 아니잖아. 일주일 안에 나오시면 됩니다, 다음 분!”

       

        이미 오래전 사망했다고 알려진 마법사라 그런지 뚜렷한 변화는 없었다.

        학파 하나가 통째로 증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이름이 바뀌는 선에서 끝난 듯했다.

        혹시 갤러리가 사라지면 어쩌나 걱정했던 입장에서는 다행이었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테이블에 앉은 나는 자신있게 서류를 들이밀었다.

       

        “난파선과 성채, 그리고 묘지를 다녀오셨네요. 성적도 옛 저녁에 챙겨 놓으셨고…… 어디 한번 볼까요.”

       

        딸깍, 딸깍.

        생활부 직원이 손에 든 다이얼을 돌리자 내가 세계선에 입장한 후의 여파가 거울에 투영되었다.

        메릴랜드 관이 약간 더러워진 것을 제외하고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

        사감실, 해주학파의 라운지, 어둠의 숲과 구내식당까지 모두 정상이었다.

       

        “평소 친구가 적으셨나 봐요?”

        “…….”

        “유달리 깨끗하네. 작년쯤에 말 더듬으면서 온 마법사 기억나? 거의 그 사람 급인데.”

        “야, 실례잖아. 준비를 잘하셨다는 뜻입니다. 괘념치 마세요.”

       

        괘념게 들리는데.

        30층의 시련은 생각지 못하게 자신이 얼마나 주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존재인지 되짚어보게 만드는 측면이 있었다.

        물론 철저히 준비한 건 맞지만 이쯤 되니 살짝은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만약 내 부재를 누구도 그리워하지 않는다면 그건 나름대로 심술이 돋는 일이었다.

       

        “더 볼 필요도 없어 보이네요. 그냥 가시면 될 것 같…… 응.”

       

        그러나 1일차, 2일차…… 다이얼이 몇 차례 더 돌아가 6일차가 되었을 무렵.

        갑자기 뚝 하고 암전해버린 거울 속 풍경에 직원들이 말을 멈추었다.

       

        “뭔데? 고장 났어?”

        “아니, 정상적으로 작동하는데 안 보여.”

        “조도를 좀 올려 봐. 옆에 버튼 있잖아.”

        “잠깐만…… 됐다. 전지의 비석 앞이네. 그런데 시간이 밤이 아닌데…… 뭐지?”

       

        밝기를 조절함에 따라 드러난 마탑 1층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사람은 어디갔는지 온 데 간데 보이지 않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산산조각 나 있었다.

        특히 전지의 비석은 알 수 없는 마법에 의해 완전히 두동강 난 상태.

        뒤이어 지반이 쉴 새 없이 흔들리더니, 먼지 구름과 함께 모든 게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마탑이 망했네.

       

        “…….”

        “……저, 저 새끼 잡아!!!”

       

        두 사람이 달려드는 것을 피해 나는 잽싸게 30층으로 향하는 입구로 몸을 던졌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

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