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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0

       

       

       “수사관님.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세요.”

       

       “···네?”

       

       

       몇 주 전, 친구분들과 함께 바다에 간다며 나를 호위로 데려가셨을 때.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아르테 님은 내게 출근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내 일 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걸까 싶어 당황했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라크네의 업무를 놓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아르테 님을 설득하려고 마음먹었었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약간 다른 이야기가 나왔었지만.

       

       

       “하지만, 저는 아직 아라크네를···!”

       

       “···아. 조직 말고, 협회 쪽이에요. 이미 연락은 해뒀어요.”

       

       “협회, 말씀이십니까?”

       

       “네, 협회. 다른 업무를 좀 하셔야 할 것 같아서요.”

       

       

       그녀가 싱긋 웃어 보였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머리카락과 밝은 웃음.

       

       그 나이대의 여자아이처럼 잔뜩 힘을 주어 꾸민 비키니.

       

       아무리 봐도 빌런들의 악몽이라고 불리는 아라크네의 수장으로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잠깐 얼이 빠져있었을 때, 그녀가 뭐라고 했더라.

       

       아, 맞아. 이렇게 말했지.

       

       학생들이 의욕을 가질 수 있게 해달라고.

       

       빌런들에게 마음이 꺾이지 않게 해달라고.

       

       

       “방학식 날, 여러분들은 수많은 빌런이 평화를 무너뜨리는 것을 직접 보았을 겁니다.”

       

       “···.”

       

       

       분명 조금 전까지 클레어에게도 들은 이야기다.

       

       하지만 학생들은 다시금 침묵했다.

       

       처음 겪는 실전이란 누구나 위험하고 충격적인 법.

       

       그렇기에 학생들은 최대한 준비를 하고 실전으로 보내진다.

       

       올해는 대비가 불가능했기에, 학생들은 푹 쉬었음에도 그 이야기만 나오면 절로 그때의 일이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뭐, 나에게는 좋은 일이지.

       

       학생 중에 빌런으로 타락하는 놈들도 많아서 골치였는데, 트라우마가 된다면 그런 숫자는 줄어들 테니까.

       

       새파랗게 어린놈들이 엄마를 부르짖으며 죽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감상.

       

       아카데미와 협회는 상당히 난감하다고 하던가.

       

       학생들이 영웅이 되기를 포기해버린다면 부족한 초인 사회의 인력난이 더욱 심해질 게 뻔했으니까.

       

       게다가 다친 교사들의 숫자도 상당하다.

       

       중상을 입어 몇 달 단위로 요양해야 하는 사람도 있는 마당에, 누군가를 가르칠 사람이 부족했다.

       

       

       “두려웠겠죠. 이해합니다. 처음 만난 빌런은 저도 두려웠습니다. 내가 저 사람을 이길 수 있을까. 진다면 어떻게 될까. ···하지만, 두려움 외에 다른 감정이 떠오르시지는 않으셨습니까?”

       

       

       그렇기에 협회와 아르테 님은 나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빌런들을 강하게 억제하고 있어 당장은 여유롭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같은 현재의 사회.

       

       한 명이라도 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사회의 암 덩어리를 도려낼 칼날이 필요했으니까.

       

       학생들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중간고사를 이런 식으로 치르는 것도 그 일환이었다.

       

       학생들의 트라우마가 더 자극될지도 모른다. 두려운 벽을 마주하고 주저앉아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내가 적임자였다. 아라크네가 적임자였다.

       

       빌런들을 증오하는 단체의 일원으로서 학생들을 일깨워 줄 수 있었으니까.

       

       그들의 트라우마를, 증오로 덧씌울 수 있었으니까.

       

       

       “아카데미 주변 상권의 민간인들 다수가 다치고, 사망한 사람마저 있었다더군요.”

       

       “···.”

       

       “저는 처음 빌런과 싸운 후, 여러분처럼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분노도 느꼈습니다.”

       

       

       몇몇 학생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가라앉는 게 보였다.

       

       가족일까? 아니면 친한 지인?

       

       모르겠다. 다만, 그들이 피해자와 알고 지내던 사이라는 것만은 유추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간단하다. 그 슬픔을 다른 감정으로 바꾸어주는 것 정도는 쉽지.

       

       

       “어째서 우리는 빌런에게 두려워해야 합니까? 두려워해야 하는 건 범죄를 저지른 놈들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빌런을 단죄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분노를 느끼지는 않았습니까?”

       

       “···너무 화나요. 어째서, 그런 놈들 탓에 아저씨가···!”

       

       “상가에 친절한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요즘 보이질 않아요.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의 얼굴에 좌절감과 슬픔이 맴돌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한 녀석들에게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하율, 너 이게 무슨···.”

       

       “그 슬픔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 감정을 일으킨 자들을 떠올려보십시오.”

       

       

       점차 아물기 시작하던 학생들이 가진 마음의 상처를 비집었다.

       

       시간이라는 약으로 점차 치유되던 상처를, 벌리고 찢어발겨 전시한다. 그리고 보여주자.

       

       자아, 저것이 네게 상처를 입힌 놈들이다. 단죄하라.

       

       그들은 너희보다 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우리가 있으니. 너희들은 더욱 강해질 거다.

       

       우리는 강한 너희들이 필요하다.

       

       

       “두려움을 느끼되, 분노하십시오. 그리고 그들에게 법의 철퇴를 내리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저는 그걸 도와주러 왔습니다.”

       

       

       당황하는 클레어의 모습을 곁눈질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싶겠지.

       

       살짝 미안함을 느꼈지만 멈출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앞으로 세상은 혼란스러워질 게 뻔했으니까.

       

       최전선에서 빌런과 마수에 맞서 싸울 학생들은 강하게 커야만 했다.

       

       나와 너처럼, 트라우마 따위에 짓눌려서는 안 돼.

       

       

       “다시 한번 인사드리겠습니다. 초능력 범죄수사관, 이하율입니다. 여러분께 범죄자의 제압, 수송, 간단한 법률 상식. 그리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전투의 기초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짝짝짝.

       

       감명 깊게 이야기를 들은 몇몇 학생이 박수를 치자, 분위기에 휩쓸린 다른 학생들도 같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좋아, 첫 단추는 잘 꿰맨 모양이군.

       

       트라우마를 꺼내고, 전시하고. 그리고 그 원인을 지목해 분노의 화살을 돌렸다.

       

       이제 분노가 꺼지지 않게끔 계속해서 장작을 넣어주기만 하면 끝.

       

       사람의 원동력은 감정이다. 격렬하고 강한 감정일수록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저 감정이 꺼지지 않게끔 잘 관리해준다면 협회에 도움이 되어주겠지.

       

       잘했다는 듯 싱긋 웃고 있는 아르테 님의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다.

       

       

       “이하율!”

       

       “아, 클레어. 오랜만이야.”

       

       “너, 너. 방금 도대체 뭘···!”

       

       

       클레어는 당황하면서도 나를 질책하려는 분위기였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하지. 그녀의 입장에서는 돌발행동인 셈이다. 협회가 시켰다고 해도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았다.

       

       클레어는 예전부터 답답하다고 느낄 정도로 정의로웠으니까.

       

       학생들을 이렇게 자극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을 게 뻔했다.

       

       

       “알아, 클레어. 이렇게 학생을 자극하면 어떻게 하냐는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알고 있으면서 한 거야?! 지금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알아. 잘 알지. 네가 이런 방식을 굉장히 싫어한다는 건 잘 알고 있어.”

       

       “저렇게 감정에만 휩쓸리다가 크게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감정에 휩쓸리는 게 꼭 나쁜 건가?”

       

       “뭐?”

       

       

       클레어가 멍하니 내게 되물었다. 내가 그녀에게 반발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나도 솔직히 말해서 놀랐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내가 클레어에게 말대꾸하다니. 몇 년 만이었더라.

       

       학생 때부터 우리는 셋이서 몰려다녔지.

       

       클레어와 나는 성향이 잘 맞지 않아 자주 싸우고는 했었다.

       

       정도를 추구하는 그녀와 무슨 일이든 대충 넘기려던 나는 잘 맞지 않았었다.

       

       언제나 그녀가 나를 질책하고, 나는 대충 넘기고. 그 사실에 화난 클레어가 다시금 나를 질책하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잔소리를, 더는 존재하지 않는 그녀가 웃으며 말렸더랬지.

       

       

       “하나를 죽인 범인을 만났어.”

       

       “뭐?! 그, 그게 무슨···! 그 녀석이 밖으로 나왔다고?! 지, 지금 어디에···!”

       

       “걱정하지 마. 이미 죽였으니까.”

       

       “?!”

       

       

       입 밖으로 내뱉자, 그때의 일이 생생히 떠오르는 것 같아 입가에 웃음이 맴돌았다.

       

       그 자식은 능력을 쓸 가치도 없었다.

       

       내 손으로, 직접. 그 목을 비틀어주었다.

       

       아아, 그 괴로워하는 모습이 얼마나 황홀하던지.

       

       

       “너, 너···! 네가 죽인 거야?! 그건···!”

       

       “빌런이라고? 아니, 달라. 그것과는 다르지.”

       

       “뭐가 달라!”

       

       “그건 복수, 아니. 단죄였어. 죗값을 치르지 않은 괘씸한 죄인에게 주어지는 정당한 형벌.”

       

       

       누군가가 말했던가.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복수의 연쇄를 끊기 위해서라면, 용서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복수는 달콤하지 않다, 라고.

       

       틀렸어.

       

       그렇게까지 행복했던 적은, 그녀가 죽은 이후로 처음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내 손으로 그 자식의 숨통을 끊어주던 그 순간은 평생 잊을 수 없겠지.

       

       

       “미안했어, 클레어. 네 몫도 남겨주고 싶었지만···. 목숨은 하나뿐이니까.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 아니겠어?”

       

       “너, 너···.”

       

       “너는 복수가 옳지 않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할 것 같긴 한데 말이야. 영웅은 모두 복수자인 거, 알아?”

       

       

       영웅들은 언제나 빌런들이 나타난 이후에야 나타난다.

       

       이건 수백 년 전부터 변하지 않는 사실.

       

       하지만 그렇기에 영웅은 언제나 복수한다.

       

       사회를 지키기 위해,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죄를 저지른 빌런들을 단죄하는 복수자. 그것이 영웅이니까.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과격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범죄자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 그야, 내 일이 늘어나잖아.”

       

       “이하율···. 너, 변했구나.”

       

       “그야 변하지, 클레어. 그로부터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데.”

       

       

       무슨 이야기를 해도 내가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것을 깨달은 듯, 복잡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향해 웃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 클레어. 네 제자들은 내가 꼭 강하게 만들어줄게.”

       

       

       우리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은, 최대한 적었으면 하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멋진 팬만화와 예쁜 팬아트를 받았습니다! 야호!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아틀리에와 공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다들 한번씩 봐주시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언제나 사랑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

    로우라가 님, 37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표지는···. 슬슬 하나 뽑아야 하나, 고민중이긴 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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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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