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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0

       ​

        시뻘건 불길이 나무 하나를 통째로 불태우고 있었다.

        ​

       그 불길 사이로 언데드가 걸어나오는 광경은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

        “제롤트는 어디에 있는가?”

        ​

        노르딘 백작의 물음에 옆을 지키던 기사가 씁쓸하게 웃었다.

        ​

        “아까 전부터 보이지 않습니다.”

        ​

        “….”

        ​

        “명예를 지킨 듯합니다.”

        ​

        명예를 지켰다는 말.

        ​

        애써 돌려 표현한 그 말의 뜻은 기사로서 생을 마감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

        노르딘 백작이 휘두르던 검을 멈추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

        백작의 작위를 가지게 되었을때부터 옆을 지켜 준 기사였다.

        ​

        기사 하인츠.

        ​

        그의 얼굴과 몸은 불길에 그슬려 화상자국이 가득했다.

        ​

        소중히 관리하던 수염이 불에 타 꼬부라졌고, 그 위의 얼굴은 반이 일그러져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

        몸은 어떻던가.

        ​

        검을 휘둘러야 할 두 팔중 하나가 이미 사라져 있었다.

        ​

        “못난 주군을 따르게 해 미안하군.”

        ​

        하인츠의 검이 오러를 머금고 스펙터를 베어냈다.

        ​

        선명하지 않은 오러였으나, 그의 주군을 지키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

        “사방에 불길이 가득합니다. 주군께서도 몸을 피하시지요.”

        ​

        그의 말대로 이곳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

       이곳은 산을 오르는 전력의 가장 뒤에 위치한 자리였다.

        ​

        병력들이 포위되지 않도록 노르딘 백작이 기사들을 이끌고 후미로 내려온 것이다.

        ​

        사전에 계획이 되지 않았던 일이다.

        ​

        하지만 전쟁이 어디 계획대로만 흘러가겠는가.

        ​

        “이곳에서 빠져나간다면 산 위의 병력들이 통째로 포위가 되어 버리네.”

        ​

        “….”

        ​

        “불이야 꺼질 테니, 퇴로는 확보해야 하지 않겠는가?”

        ​

        곧 엘프들이 올 것이다.

        ​

        이 길을 지켜내 엘프들에게 넘겨주는 것.

        ​

        그것이 노르딘 백작이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

        “주군께서 이곳을 이끄신 기사는 오십. 살린 병력은 수천입니다.”

        ​

        “죽기전에 공을 세우는군.”

        ​

        “주군의 공을 높이는데 한 손 보태겠습니다.”

        ​

        습관처럼 수염을 매만지려던 하인츠가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

        수염을 만질 팔이 없었기 때문이다.

        ​

        데스나이트 둘을 잡았으니, 팔이 아깝지는 않았다.

        ​

        노르딘 백작이 농담을 하며 하인츠를 나무랐다.

        ​

        “두 손을 다 보탰어야지. 무례하기 짝이 없군.”

        ​

        “허허, 팔 하나 없다고 무시하시는 겁니까?”

        ​

        피식 –

        ​

        죽기전에 나누는 대화 치고는 가벼웠다.

        ​

        서로가 마지막 순간에 충분한 벗이 되어 주리라.

        ​

        백작이 검을 고쳐 잡으며 물었다.

        ​

        “고통스럽지는 않은가?”

        ​

        대답은 간결하고 명확했다.

        ​

        “인내와 절제는 기사의 주요 덕목입니다.”

        ​

        “크게 배웠네.”

        ​

        백작의 뒤로 살아남은 기사들이 모여들었다.

        ​

        얼핏봐도 삼십이 넘어가는 인원.

        ​

        마법사의 도움 없이도 살아남은 그들은 정예중의 정예들이었다.

        ​

        하인츠와 기사들 사이에 눈빛이 오고 갔다.

        ​

        굳이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으리라.

        ​

        “주군이시여, 무례를 용서하소서.”

        ​

        “음?”

        ​

        하인츠의 손이 벼락 같이 노르딘 백작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

        퍼억 –

        ​

        풀썩.

        ​

        망설임이 없는 깔끔한 동작.

        ​

        반역에 해당하는 중죄 앞에서도 기사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

        “막내야.”

        ​

        “예! 단장님!”

        ​

        “주군을 모셔라.”

        ​

        막내라고 불린 기사가 노르딘 백작을 등에 업었다.

        ​

        “목숨을 바치겠나이다.”

        ​

        “나머지는 나를 따라 이곳을 지킨다!”

        ​

        쿵 –

        ​

        ***

        ​

        흠칫.

        ​

        “이게 도대체…”

        ​

        정신을 잃고 있던 병사가 깨어났다.

        ​

        벤시에 홀려 불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

        “어떻게…?”

        ​

        무언가를 쥐고 있는 손을 내려다본 병사는 깨달았다.

        ​

        크리스가 주었던 부적이 손에 쥐어져 있다는 것을.

        ​

        뒤따라 오던 동료가 구겨진 갑옷을 부여잡고 있었다.

        ​

        “자네도 살았는가?”

        ​

        그 병사 또한 전날 밤에 크리스에게 점사를 받았다.

        ​

        가슴이 꿰뚫려 죽을 수도 있으니 두꺼운 갑옷을 챙겨 입으라고.

        ​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를 모르겠군.”

        ​

        어린 시절 대륙전쟁을 경험해 본 노병이었다.

        ​

        처참하게 구부러진 흉갑.

        ​

        원래 입던 갑옷을 챙겨 입었다면 가슴이 꿰뚫려 즉사했으리라.

        ​

        신비한 경험은 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

        곳곳에서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다.

        ​

        “나는 이 친구랑 꼭 붙어 있으라더군.”

        ​

        “서로가 서로를 살렸네.”

        ​

       창술에 능한 병사들.

        ​

        서로가 서로에게 궁합이 좋았다.

        ​

        살아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었다.

        ​

        “폭발이 피해진다.”

        ​

        말도 안 되는 소리다.

        ​

        일개 병사가 어떻게 마법진이 일으키는 폭발을 피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

        이 병사는 전날에 크리스에게 이런 점사를 받았다.

        ​

        ‘충동적으로 나가기 전에 한번 망설이세요. 그것만 해도 운기가 완전히 바뀔거예요. 그것도 대운으로.’

        ​

        그 말대로였다.

        ​

        달려 나가기 전에 잠시간의 망설임.

        ​

        그가 가려고 했던 곳에는 여지없이 폭발이 일어났다.

        ​

        나중에는 그와 동행하며 몸을 보호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

        “손재수라고 했던가? 여분의 무기를 챙기라고 하시더군.”

        ​

        그 말을 따라 창과 더불어 작은 도끼를 가지고 올라왔다.

        ​

        놀랍게도 점괘는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

        연이은 공격에 창이 뚝 하고 부러졌던 것.

        ​

        도끼를 챙기지 않았다면 그때 죽었으리라.

        ​

        “오다가 들었네만, 높으신 분들도 상황이 비슷한 모양일세.”

        ​

        “저 친구는 다치기는 하는데 죽지는 않을 거라더니 딱 그대로야!”

        ​

        ***

        ​

        동쪽에서 올라가던 필라드 백작.

        ​

        그는 의외의 상황들에 당황하며 전진하는 중이었다.

        ​

        대부분의 영지는 병사들을 훈련시킨다.

        ​

        그중 필라드 백작령의 경우엔 훈련의 체계가 깊었다.

        ​

        병법에 능했던 그가 여러 가지 상황에 맞추어 훈련을 진행시킨 것이다.

        ​

        그런데 그것이 생전 와보지도 못한 산에서 척척 펼쳐지고 있었다.

        ​

        “주군! 오른쪽에 샛길이 있습니다! 약초꾼들이 사용하던 길인 것 같습니다.”

        ​

        “그곳으로 간다 하여도 병력이 많이 움직일 수 없지 않겠느냐?”

        ​

        “중간중간 나무들이 베어져 있습니다! 진형을 갖추며 올라가기 적합합니다!”

        ​

        산악전에 대비하는 훈련 또한 여러 번 있었다.

        ​

        신기한 것은 훈련장의 모습과 이곳의 모습이 흡사하다는 것.

        ​

        산세가 험악했지만 오히려 그들에게는 이점으로 작용했다.

        ​

        병사들이 익숙한 듯 자리를 찾아가는 것만 보아도 익히 짐작이 가능했다.

        ​

        “이대로라면 정상까지 금방 돌파할 수 있습니다!”

        ​

        “당장 병사들을 진군 시켜라!”

        ​

        언데드들과 싸우며 올라갈 방법들이 무수히 떠올랐다.

        ​

        이곳의 지형을 잘 활용하면 유리한 지점을 수도 없이 점할 수 있으리라.

        ​

        “여러 팔자들이 꼬인다고 했던가…”

        ​

        그것이 이런 결과로 나타날 줄이야.

        ​

        유리한 지점으로 진격하려던 백작의 머리로 음성이 스쳐 지나갔다.

        ​

        ‘네크로맨서의 마법을 조심하세요. 백작님은 언데드에게 낭패를 볼 수도 있겠어요.’

        ​

        흠칫.

        ​

        “병력을 정지시켜라! 저곳에 매복이 있을 수도 있다! 조금 더 돌아간다.”

        ​

        명령에 따라 기사와 병사들이 방향을 바꿨다.

        ​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은 닿지도 않을 방향으로.

        ​

        금세 이변이 일어났다.

        ​

        “저..전방에 네크로맨서와 언데드들이 다수 출현! 선두를 향해 방향을 돌렸습니다.”

        ​

        펼쳐 놓은 함정이 의미가 없어졌음을 알아챈 네크로맨서들이 작전을 변경한 듯싶었다.

        ​

        전력을 썩힐 바에야 선두로 합류하기를 택한 것이다.

        ​

        “….정말로 노르딘 백작이 선두에 섰으면 위험할 뻔했군.”

        ​

        반대쪽에 위치한 케베만 백작 또한 비슷한 상황을 맞딱드렸다.

        ​

        그는 솔직히 크리스의 점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

        그의 말처럼 왼쪽 팔에 부상을 입었던 것.

        ​

        “….듣도 보도 못한 일이로군.”

        ​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는 말.

        ​

        충동적인 행동을 하지 말라는 말.

        ​

        그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

        “주변 사람들을 모두 잃을 수도 있다고 했던가.”

        ​

        백작이 머리를 휘저으며 생각을 바꿨다.

        ​

        진군에 신중을 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

        “철저히 작전대로 움직인다. 알겠느냐?”

        ​

        “명을 받듭니다!”

        ​

        ***

        ​

        “영혼의 수급은 어찌 되었느냐?”

        ​

        “그…그것이”

        ​

        대답하는 네크로맨서가 말을 더듬었다.

        ​

        그것도 그럴 것이 예상보다 제물의 양이 현저히 부족했기 때문이다.

        ​

        이유는 명확했다.

        ​

        지금 공격해오는 저들이 생각보다 많이 죽지 않았다는 것.

        ​

        보고받은 네크로맨서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

        “네놈들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느냐?”

        ​

        원래 이곳에서 제물을 담당하던 네크로맨서도 할 말이 많았다.

        ​

        갑자기 교황이 성기사들을 이끌고 합류하는 것은 계획에 없던 일이 아닌가.

        ​

        거기다 저들의 전술과 전략조차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

        “저..저들이 알 수없는 방법으로 함정들을 피해가고 있습니다.”

        ​

        설치해 놓은 함정과 마법진들이 속속들이 파헤쳐 지고 있었다.

        ​

        병력을 포위하려는 작전마저도 어떻게 알았는지 연이어 피해가고 있었다.

        ​

        마치, 그들이 세운 계획을 전부 알고 있기라도 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

        “이대로라면 계획대로 진행이 되지 않는다.”

        ​

        “….”

        ​

        “모든 마법진들을 발동시켜 불을 질러라. 저들을 모두 죽여야 제물의 양이 맞을 것이다.”

        ​

        “예!”

        ​

        잠시 생각하던 네크로맨서가 입을 열었다.

        ​

        “수십 년전에도 이렇게 우리의 계획을 방해했었지.”

        ​

        클라우스와 아스테르의 이름을 가진 자들.

        ​

        사실상 그가 이곳에 온 이유가 그들 때문이었다.

        ​

        같이 오던 네크로맨서가 죽어 버렸지만, 여전히 기회는 남아 있었다.

        ​

        “6써클 이상의 네크로맨서는 앞으로 나서라. 그들을 각개 격파 할 것이다.”

        ​

        아무리 날고 기었던 그들이라지만 협공에는 어찌할 수 없을 터.

        ​

        이미 그에 대한 준비도 철저히 해 놓지 않았던가.

        ​

        하지만 그의 계획은 뒤이어 들려오는 말에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

        “그 두 사람이 철저하다 싶을 정도로 붙어 다니고 있습니다…!교황마저 그들과 같이 움직입니다!”

        ​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

        소드 마스터와 대마법사가 왜 붙어다닌다는 말인가.

        ​

        거기다 교황까지 같이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

        떨어져서 전투에 참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거늘.

        ​

        강자가 있는 곳에 다른 강자가 붙어 있는 것은 전력의 손실이었다.

        ​

        저들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인데.

        ​

        “그들을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

        ​

        어떻게든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될 일.

        ​

        움직이려던 그가 몸을 멈춰 세웠다.

        ​

        그의 눈에 이해가 되지 않는 광경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

        “하…하늘이….”

        ​

        구름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

        방금까지 맑았던 날씨가 변하고 있었다.

        ​

        연이어 보고가 들려왔다.

        ​

        “성기사들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

        이곳으로 오는 길은 이미 불로 막혀 있었다.

        ​

        도저히 지나올 수 없는 불길로.

        ​

        “맨몸으로 불길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얼른 다음 명령을!”

        ​

        “이익…! 신성력을 다 소모하면 별것 아닌 놈들이다! 그들만 따로 처리…”

        ​

        그의 말은 끊어지고 말았다.

        ​

        생각해 보지도 못한 일에.

        ​

        “에,엘프들이! 막아 놓은 길의 불이 꺼지고 있습니다…!”

        ​

        네크로맨서의 신경질적인 고함이 터져 나왔다.

        ​

        “이곳에 엘프들이 왜 나타난다는 말이냐!”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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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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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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