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0

        

         

       카운트다운(countdown)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 증거로 징조가 나타나고 있었다.

         

       끔찍한 폭풍우가 몰려오기 전 나무가 나뭇잎을 접고 몸을 움츠리듯이, 벌레들이 제각기 은신처에 몸을 파고들고 나뭇잎의 아래에 몸을 숨기며 제 몸의 안위를 챙기듯. 짝을 찾기를 바라며 소음을 내는 대신 숨을 죽이고 목숨을 구하려는 수많은 미물이 그러하듯, 그 징조라는 것은 사람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며 지나쳤던 것들.

       한낱 배경에 지나지 않는 것들.

       그 모든 것들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다.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암시하는 징조가 곳곳에 보였다.

         

       호텔의 공기가 가라앉았다.

       직원들이 앞다투어 휴가를 썼다.

       차가운 공기가 무거워졌다.

       싸늘한 느낌이 호텔에 감돌았다.

       호텔의 주변에서 맴돌던 해충(害蟲)과 해수(害獸)가 모두 모습을 감추었다.

       옥상에서 향냄새가 풍긴다.

       최상층에서 미약한 피비린내가 맡아진다.

       젊은 동양인이 묵고 있는 방에 치과 의사가 왕진 가방을 들고 들락날락한다.

       화장실에서 소음이 들린다.

       호텔의 창문 곳곳에 스크래치가 났다.

         

       하지만 이러한 징조는 알아보기란 너무 힘든 것인즉.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한다면 한없이 미신에 가까운 것이었으며,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면 종말 예언이나 다름이 없는 것으로 다가오는 것들이었다.

         

       그러니 앞으로 닥쳐올 일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이를 눈치채지 못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아악! 퓨마 커리안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못~가!”

       “비, 비켜! 비키라고요! 제 순위가 줄어들고 있잖아! 악! 꼴찌가 됐어!”

         

       호텔의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고 있는 원인은 평온하기 짝이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이아린과 엘라는 벽면을 가득 메운 커다란 TV의 앞에서 게임 패드를 들고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TV 안에서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카트를 타고 달리고 있었는데, 이아린의 것으로 추정되는 표범 캐릭터가 엘라의 캐릭터를 막아 그녀가 달리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일명 ‘막자’라고 불리는 비매너 행위였다.

         

       “이 트롤같으니-!”

         

       뒷목을 부여잡고 입에 거품을 물 행위를 당한 엘라는 결국 꼴찌를 하고 말았고, 꼴찌 표시가 뜨자마자 엘라는 격노하며 벌떡 일어나 이아린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엘라는 마녀였고, 이아린은 무인.

       어른이 어린아이를 제압하듯 엘라는 손쉽게 제압당했고, 이아린의 아래에 깔려서 아프다며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 항복! 항복이에요!”

         

       엘라는 뒤로 꺾인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고, 이아린은 실실 웃으며 봐준다는 듯 팔을 놔주었다. 간신히 구속에서 풀려난 그녀는 씩씩거리며 이아린을 노려보다가 빼액 소리 질렀다.

         

       “다른 거로 해요! 반칙 못 하는 거로!”

       “그래그래, 토끼야. 뭘 해도 내가 이기겠지만~”

         

       그렇게 둘은 패드를 조작해서 다른 게임을 찾기 시작했다.

         

       “권투 게임 어때?”

       “그건 당신이 너무 유리하잖아요! 이 퀴즈 게임으로 하죠!”

       “안 돼! 그건 네가 더 유리하잖아!”

       “그럼 뭘 어쩌자는 건가요! 아, 이걸로 할래요? 링…체커? 피트니스 어드벤처 장르? 모션 인식 센서로 자세의 정확도를 측정해 점수와 랭크를 판정한다는데요?”

       “그럼 그걸로 하자!”

         

       서로 다투면서도 꼭 붙어서 게임을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절친같이 보였다.

         

       이세린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악마에게 말했다.

         

       ‘둘이 되게 친해 보이네. 자체휴강하기를 잘했어.’

       [ 계약자야, 나의 계약자야. 그것은 자체휴강이 아니라 협박 휴강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니라. ]

         

       세 사람은 학생의 신분이었다.

       그리고 학생의 의무는 바로 수업을 듣는 것.

         

       그녀들이 위협을 피해 호텔 방에 틀어박혀 있다지만, 학교에 나가지 않으면 학생으로서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자명한 일.

       그렇기에 이세린은 직접 나서서 세 사람 모두를 공결처리가 되게 했다.

       

       그렇다.

       되게 만들었다.

         

       그레모리의 힘.

       비밀을 알아내는 힘으로 말이다.

         

       ‘즈, 증거를 가져오라고 한 사람이 잘못한 거야.’

         

       비밀을 알아내고 그것을 재료로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

       세간에서는 그것을 협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세린은 협박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행동이 옳았다며 악마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악마는 푸르릉 입술을 떨더니 그녀를 귀엽다는 듯 쳐다보았다.

         

       [ 하기야 그 교사가 불성실하기는 하였다. 그런 것들은 누군가 제 목줄을 쥐고 흔들며 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절대 제정신을 차리지 않으니, 네 행동에 관한 판단은 선악 개념으로 따지는 것보다는 효율적이냐 비효율적이냐를 따지는 것이 옳을 터. 그런 의미에서 계약자야. 수업 듣기도 귀찮은데 합법적으로 빼먹고 칭찬까지 들어서 기분이 좋아진 나의 계약자야. 네가 한 일은 더없이 효율적인 것이니라. ]

         

       악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하지만, 이라고 중얼거리며 말을 이었다.

         

       [ 선량한 이에게 그런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악한 행동인즉. 힘이라는 것은 있으면 휘두르고 싶고, 비밀이라는 것은 존재를 알면 살펴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지만 그것에 잡아먹히면 타락한 악인이요 사회에서 괴리된 범죄자가 탄생할 뿐이니. 나의 계약자야, 아직 채 자라지 않은 나의 계약자야. 너는 항상 그것을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것이다. ]

         

       진지하게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악마를 바라본 이세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 그, 그래서 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있잖아.’

       [ 그래. 알고 있다. 다만 명백히 범죄가 될 만한 것은 하지 않을 뿐, 그 경계를 걷고 있지 않으냐. 호기심을 채우겠다는 명분으로 말이다. ]

       ‘아, 알았어….’

         

       이세린은 악마의 충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악마의 의견을 동의하고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그것을 계속해서 듣는 것은 다른 문제인 법.

         

       이세린은 잔소리를 피해 꿈의 나라로 도피했던 이아린처럼, 잔소리를 피하고자 주제를 돌려버렸다.

         

       ‘그, 그나저나 저거 재밌어 보이네! 나도 해볼까!’

         

       그녀는 과장된 몸짓으로 TV 쪽을 쳐다보았다.

         

       [ …저게 말이냐? ]

         

       이세린이 주제를 돌리기 위해 선택한 곳에서는 힘이 남아돌아서 펄펄 뛰고 있는 사람 모양 짐승 한 마리와 실시간으로 시체가 되어가고 있는 나약한 인간이 있었다.

         

       「 One more—Thing-! 」

       “히-, 히-익. 살, 살려줘….”

       “토끼야! 이거 재밌지 않아? 응?”

         

       엘라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녀의 얇은 팔다리는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리고 있었고, 뜨거운 열기를 품은 숨이 비명과 함께 토해지고 있었다.

       TV에서는 제법 미형으로 그려진 근육질의 트레이너가 연신 스쿼트 자세를 하고 있었는데, 그 상쾌한 표정과 쓸데없이 밝은 목소리가 체력의 한계 때문에 쓰러진 엘라를 자극하고 있었다.

       그는 엘라 역시 같은 동작을 빨리하라는 듯 재촉하고 있었고, 그녀는 그 끔찍한 요청을 눈을 질끈 감은 채 외면하고 있었다.

         

       그리고 엘라의 옆에서 방방 뛰고 있는 이아린은 이제야 몸이 풀렸다는 듯 신나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으니.

         

       그 모습이 공원에서 가끔 보이는 쓸데없이 힘이 남아도는 대형견과 그 대형견에게 끌려다니며 산책을 당하는 주인과 닮아 있었다.

         

       “모, 못해. 날 죽여요….”

         

       바닥에 누운 채 허망하게 중얼거리는 엘라의 모습은 그야말로 시체(진) 그 자체.

       간신히 숨을 몰아쉬며 제 몸에 돌아다니는 근육의 힘을 간신히 쥐어짜서 말하는 그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동정심이 들게 했다.

         

       [ 멀리서 보면 희극이기는 하구나. 다만 저기에 참여하면 비극이 될 터인데, 정녕 저것이 재미있어 보이느냐 나의 계약자야. ]

         

       이세린은 낙타의 물음에 입을 닫았다.

       저것이 재미있다고 말하기에는 엘라와 이세린의 체력이 큰 차이가 없으니 비극이 될 것이 뻔했고, 재미없다고 말하기에는 잔소리를 또 들을 것만 같았기에.

         

       “야! 세린! 거기 침대에서 궁상떨고 있지 말고 이거같이 하자. 아니, 해라! 해!”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린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주인을 녹아웃 시킨 대형견이 그녀를 다음 희생양으로 지목했으니까.

         

       이아린은 펄쩍펄쩍 뛰며 순식간에 이세린의 앞까지 도달했고, 강제로 그녀의 팔을 붙잡고 TV 앞으로 끌고 갔다.

         

       “자, 잠깐. 나, 체력이.”

       “그래~ 이런 것도 해줘야 체력도 붙고! 운동해야 피부도 좋아지고! 봐. 그 뭐지, 독소 배출? 땀으로 독소도 배출해야 피부가 좋아지잖아. 봐! 엘라 피부가 광택이 나잖아!”

         

       광택이 나기는 했다.

       땀으로 코팅이 되다 못해 푹 젖었는데, 광택이 나지 않으면 그게 어디 사람인가.

       제주도에 우두커니 서 있는 돌하르방도 땀으로 저 정도 절여놨으면 분명 반짝반짝 빛날 것이다.

         

       「 어서 와! 새로운 모험 지망생은 언제나 환영이야! 」

       「 우리 같이 모험을 떠나보자! 」

       「 자! 모험 전에 우리 다 같이 외쳐볼까? 」

       「 머슬! 머슬! 머슬! 」

         

       하지만 힘이 없는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이세린은 강제로 그녀에게 붙들려 새로운 모험 지망생이 되었고, TV에서 보이는 트레이너가 지정하는 자세를 그대로 따라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제 그녀는 근육에 심각한 부하를 주고 다음 날 끔찍한 근육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며, 터질듯한 심장과 바닥을 흠뻑 적실 정도의 땀을 흘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구원이란 있는 것일까.

         

       「 모험을 떠나자! 자, 출 」

         

       바-아아알—-.

         

       파직-!

         

       트레이너가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그녀를 즐거운 육체 단련의 세계로 데려가려고 할 때, 정전이 일어났다.

         

       백열전구가 터지듯 커다란 소리와 함께 방 전체에 어둠이 내려앉은 것이다.

       형광등과 TV가 꺼지자 방 전체는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오직 형광물질로 만든 비상대피용 화살표만이 은은하게 빛을 발하며 어둠 속의 유일한 위안이 되어주고 있을 뿐이었다.

         

       “정전인가요?”

         

       엘라는 바닥에 누워 있다가 정전이 터지자 몸을 일으켰다.

         

       “이그니스 파투스(ignis fatuus)!”

         

       어둠 속에서 생활하는 것이 익숙했던 엘라는 자연스럽게 사역마를 불렀고, 그러자 하얀빛으로 이루어진 구체가 튀어나와 그녀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리고 불러줘서 고맙다는 듯 그녀의 뺨에 제 몸을 비비고는, 자신이 달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어두워진 방 안을 빛으로 밝혀주었다.

         

       “하아. 정전이라니. 여긴 대체 전력 관리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원.”

         

       그녀는 한숨을 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차라리 지역 전체가 그랬다면 짜증이라도 나지 않으련만.

       창밖은 정전이라는 것은 다른 나라 이야기라는 듯 밝게 빛을 발하고 있는 가정집의 불빛과 가로등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별처럼 빛나며 유리에 빛을 번지게 했으며, 창문의 커다란 유리가 일렁이며 빛을 반사하는 물결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어쩔 수 없지 뭐! 토끼야, 같이 자자!”

       “네?”

       “같이 자자니까?”

       “아니, 잠깐. 어감이 이상하잖아요! 당신 진짜 레즈에요?!”

         

       엘라가 아름다운 야경을 바라보고 있자, 이아린은 그녀의 뒤까지 다가와 그녀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는 그녀를 침대로 질질 끌고 갔다. 그리고 그녀는 힘이 없어서 그대로 끌려가면서도 이아린의 입에서 내뱉어지는 이상하게 느껴지는 표현에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고, 이아린은 그런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실실 웃었다.

         

       그리고 이세린은.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작은 소리를 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벌초 갔다왔습니다…ㅠㅠ
    몸이 쑤십니다…
    그래도 글은 올라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연재」이니까…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