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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0

       

       

       

       

       

       80화. 검은 역병 ( 3 )

       

       

       

       

       

       한스의 불안감은 그저 기우였던 걸까. 야영지 안에 자리 잡은 마을 사람들은 놀라울 만큼 조용하게 지냈다.

       그들은 데이지가 지나가면 험악하게 노려보기는 했지만, 노려보는 것뿐이었다.

       

       

       ‘…기분 탓인가.’

       

       

       데이지는 자신을 죽일 듯 쳐다보는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이미 그런 시선에 익숙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도대체 저 작은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저렇게 악의를 담아 바라보는 것일까. 한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저기요.”

       

       “어이쿠 나으리. 쇤네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한스는 지나가는 마을 사람 한 명을 붙잡았다. 눈이 시뻘겋게 될 정도로 데이지를 쳐다보던 사람이다.

       우선 태연하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곳에서 얼마나 지내셨어요?”

       

       “저야 뭐, 아버지의 아버지부터 이 동네에서 살았습죠.”

       

       “그러면 거의 평생을 보내신 거네요?”

       

       “그렇습니다요.”

       

       “평생을 지낸 마을을 떠나서 야영지에서 지내시려니까 불편한 건 없으세요?”

       

       “아휴, 너무 신경을 써주셔서 오히려 저희가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스와 주민은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 농부였던 한스는 평범한 마을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차고 넘쳤다.

       시시콜콜한 주제로 잡담을 나누자, 상대방의 경계심이 점차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 정도 상대방의 경계심이 풀어진 것을 느끼자, 한스는 데이지에 관한 이야기를 넌지시 꺼냈다.

       

       

       “그, 뭐냐. 제가 전에 마을을 한번 둘러본 적 있거든요. 마을도 너무 좋고, 사람들도 다들 착해서 좋은 곳 같더라구요.”

       

       “아휴, 아닙니다요. 촌구석에 뭐 볼 게 있다구요.”

       

       “그런데, 그으 마을 변두리에 모녀끼리 지내는 집이 하나 있죠?”

       

       “아… 그 집이요?”

       

       

       데이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안색이 굳는 행인.

       

       

       “나으리, 혹시라도 그 집에서 뭘 잡수신 건 아니겠죠?”

       

       “왜요? 무슨 일 있나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행인은 한스에게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마치 무슨 큰 비밀이라도 말하는 모양새였다.

       

       

       “그 집에는, 남자를 잡아먹는 마녀들이 삽니다요.”

       

       “마녀… 요?”

       

       “예, 마녀요. 그 집에는 큰 마녀랑 작은 마녀가 삽니다요. 큰 마녀는 제 남편을 거미처럼 잡아먹었고, 작은 마녀는 제 어미에게 저주를 걸었지요.”

       

       “허…”

       

       

       한스는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이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잊은 걸까?

       데이지와 그녀의 어머니는 마녀가 아니다. 설령 마녀라면, 사도들의 눈에 띄지 않게 멀리 달아났을 것이다.

       

       한스의 한숨을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지, 신이 난 행인은 더욱 열정적으로 말을 뱉었다.

       

       

       “큰 마녀는 남편을 잡아먹고 난 후에 사악한 수법으로 술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요. 저희에게 술을 먹여서 제 남편처럼 잡아먹으려고 하는 모양인데, 어림도 없죠! 암! 저희 마을 사람들은 그런 방법에 넘어갈 만큼 순진하지 않습니다요.”

       

       “…”

       

       “작은 마녀는 그 성질이 얼마나 잔인한지, 제 어미에게 저주를 걸어서 시름시름 죽어가게 했지 뭡니까? 그러고서는 제 어미를 위하는 것처럼 밖으로는 일하러 다니는 꼴이라니… 표정 하나 안 바뀌는 걸 보면 제가 다 소름이 돋습니다요.”

       

       “허, 허허…”

       

       “그래서 저희들은 작은 마녀에게 절대로 멀쩡한 음식을 주지 않았습니다요.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나 던져줬지요. 그러면 제 성질이 나올 줄 알았는데 얼마나 영악한지, 그걸 받고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그 나이 또래의 아이 같지 뭡니까!”

       

       

       한스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무지에서 나온 실수일까, 아니면 닫힌 사회 특유의 배척성일까.

       

       어느 쪽이어도 상관없다. 한스는 자신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손톱이 손을 파고들어 붉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한스는 황급히 손으로 상처를 가렸다.

       

       

       “그리고 말입죠, 한번은 저희들이 마녀들의 집에… 어? 나으리, 어디 가십니까?”

       

       “급한 일이 생겨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이고, 예! 조심하십쇼!”

       

       

       한스는 황급히 뒤돌아섰다. 자랑스럽게 떠들고 있는 저 얼굴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휘두를 것 같았다.

       무작정 발 닿는 데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다.

       

       

       ‘데이지…!’

       

       

       데이지에게 가야 한다. 

       

       

       “어이, 한스… 뭐야,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로한이 한스를 향해 인사하다가, 한스의 표정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자신의 표정이 지금 어떻다는 걸까. 한스는 알 수 없었다.

       

       

       “데이지. 데이지는 어딨어?”

       

       “꼬맹이? 아마 저쪽 숲에 갔을걸? 요즘 숲에 자주 간다던데.”

       

       “그래? 알겠어. 이따 보자.”

       

       

       로한이 가르킨 숲을 향해 뛰어가는 한스. 뒤로 로한의 외침이 들려왔다.

       

       

       “어이! 무슨 일 있으면 말해! 혼자 끙끙 앓아도 너는 촌놈이어서 제대로 못 할테니까!”

       

       

       로한 나름의 걱정어린 말.

       한스는 그 말을 뒤로 하고, 숲을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당장 데이지의 얼굴을 봐야 할 것 같았다. 

       

       

       “후…”

       

       

       데이지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곳에 있었다. 바람에 맞춰 들꽃들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가벼운 꽃내음이 피어오르는 곳.

       한스가 데이지에게 꽃팔찌를 만들어준 곳이다.

       

       

       “아, 한스 님.”

       

       “…오빠라니까.”

       

       

       한스의 인기척을 느낀 데이지가 그를 돌아봤다. 양손에 걸려있는 꽃팔찌가 그에 맞춰 흔들렸다.

       갈색으로 살짝 말라가는 꽃팔찌와 싱그러운 푸른 빛이 감도는 꽃팔찌.

       

       

       “데이지,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어요. 그냥 여기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서요.”

       

       “그래?”

       

       

       한스의 걱정이 무색하게, 데이지는 평온한 기색이었다. 어쩐지 긴장이 탁 풀린 한스는 데이지의 옆에 풀썩 주저앉았다.

       데이지도 아무 말 없이 한스의 옆에 딱 붙어 앉았다. 그 거리가 가까워서 데이지가 한스에게 안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데이지, 너는…”

       

       “네?”

       

       “어쩌다 보니까 들었어. 마을에서 있었던 일들.”

       

       “아…”

       

       

       데이지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한스는 데이지가 오해할까 싶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물론 믿지 않아. 마녀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이렇게 착하고 귀여운 마녀가 어딨어.”

       

       “읏…”

       

       

       고개 숙인 데이지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한스는 그 모습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기분이 상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한스는 조심스럽게 데이지에게 물었다.

       

       

       “데이지, 너는 괜찮니?”

       

       

       작은 아이가 그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어떤 비난과 멸시를 받아왔고, 그 상처가 데이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지는 않았을까.

       한스는 그것이 걱정스러웠다. 

       데이지가 태연하게 말했다.

       

       

       “안 괜찮았어요.”

       

       “그래…?”

       

       

       역시나, 하면서 한스의 표정이 어두워질 때, 데이지가 덧붙였다.

       

       

       “그때는 많이 힘들고, 죽고 싶을 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이곳에서는 다들 저에게 잘해주시고, 착하세요. 엄마도 많이 나아지셨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데이지는 한스를 올려다봤다. 데이지의 망울진 눈동자가 한스를 똑바로 바라봤다.

       

       

       “한스 님이 계시니까, 저는 괜찮아요.”

       

       “…”

       

       “언제든지 저를 도와주겠다고, 구하러 와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솨아아ㅡ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며 들꽃을 흔들었다. 

       

       

       “그러니까. 저는 괜찮아요.”

       

       

       데이지는 한스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바람에 맞춰 이리저리 흔들리는 데이지의 머리칼.

       

       한스의 눈에 비친 데이지는 들꽃과도 같았다. 작고 약하지만, 강하고 억세게 땅에 뿌리박고 자란다.

       여리고 덧없다. 그렇기에 아름답고 강인하다.

       

       또래보다 어른스럽게 되어버린, 들꽃같은 소녀. 

       

       한스는 말문이 막혔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작은 소녀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강하고 의젓했으니.

       

       

       “이제 가요. 식사하셔야죠.”

       

       

       데이지는 한스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한스를 이끄는 작고 여린 손바닥. 한스는 자연스럽게 그 손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둘은 야영지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데이지, 근데 내가 언제라도 구하러 와준다는 말을 했던ㅡ”

       

       “했어요.”

       

       “아니, 언제라도 도와주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는 것 같은ㅡ”

       

       “했어요.”

       

       “…했구나.”

       

       “네, 했어요.”

       

       

       데이지는 팔목에 걸린 파릇한 꽃팔찌를 조심스럽게 매만지며 말했다.

       

       

       “분명히. 저한테 그렇게 약속했어요.”

       

       

       한스는 모르는, 소녀에게만 전달된 비밀스럽고 작은 약속이었다.

       

       

       

       

               *        *        *       *

       

       

       

       

       야영지의 일상은 잔잔한 연못의 수면과도 같았다.

       얇은 거울과도 같은 수면은 작은 돌멩이의 파문으로도 이리저리 흔들리며 깨지기 마련이니. 

       

       결국 약간의 충격과 사건으로도 일상의 평온은 깨지기 마련. 

       

       그리고 사건은 항상 예기치 못한 순간에 들이닥치는 법이다.

       

       

       땡ㅡ! 땡ㅡ! 땡ㅡ!

       

       – “적습!! 적습이다!!”

       

       

       야심한 밤, 야영지의 적막을 깨트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스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종소리는… 불침번이 울리는 종소리!

       

       

       “로한! 일어나!”

       

       

       정신 못 차리고 잠에 빠진 로한을 발로 차서 깨운 한스는 빠르게 갑옷을 입으며 무장을 갖췄다.

       야영지의 곳곳에서 횃불들이 어둠을 밝히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이들의 고함이 들려온다.

       

       

       – “1소대는 이쪽으로!”

       

       – “실제 상황이다! 정신 바짝 차려!”

       

       – “마을 사람들과 사제님들은 후방으로 모셔라! 빨리 움직여!”

       

       

       이번이 첫 실전이지만, 부대원들은 훈련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침착하게 움직였다.

       어느새 일어난 로한이 무장을 전부 갖춰 입었다.

       

       

       “한스, 이쪽으로 가자.”

       

       

       아직 훈련이 부족한 한스를 이끌어주는 로한. 

       그 뒤를 따라가자, 이제는 제법 익숙한 부대원들의 얼굴이 한스와 로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왜 이렇게 늦었어?”

       

       “털북숭이가 뻔하지 뭐. 자다가 늦었을 거야.”

       

       “뭐라는 거야 대머리가.”

       

       

       저들끼리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는 이들. 자세히 보니 미세하게 손이 떨리고 있었다.

       밑바닥 모험가로 지낼 때와는 규모가 다른 전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농담을 하며 저들끼리 긴장을 푸는 것이리라.

       

       

       ‘데이지는?’

       

       

       한스는 눈에 부릅 힘을 주고 사방을 둘러봤다. 저 멀리 짐을 싸 들고 피하는 마을 사람들이 보인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사람들. 그들 사이에는 데이지가 보이지 않았다.

       

       한스는 그의 등골을 적셔오는, 끈적하고 질척거리는 무언가를 느꼈다. 

       

       

       “로한.”

       

       “왜? 겁나? 오줌 쌀 거면 저쪽에서 싸고 와.”

       

       “그런 거 아니야. 데이지가 안 보여.”

       

       “뭐? 꼬맹이가?”

       

       

       한스의 말에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보는 로한. 이윽고 로한의 표정이 점차 굳어진다.

       애초에 데이지가 지내는 천막은 한스와 로한의 천막과 가깝다. 그런데도 보지 못했다는 것은…

       

       

       “느낌이 좋지 않아. 잠깐 가서 둘러보고 올게.”

       

       

       한스는 로한에게 말하고는 재빨리 땅을 박찼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쭉쭉 가까워지며 거리를 좁혔다.

       거리가 가까워지며 점차 사람들의 말이 들려왔다.

       

       

       – “어휴, 무서워라. 이게 웬 난리래요?”

       

       – “이게 전부 그 마녀들 때문이라니까! 진작 마을에서 내쫓았어야했어!”

       

       – “그래도 그 아비가 마을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데요…”

       

       – “그 좋은 사람을 잡아먹은 게 큰 마녀야! 불길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고! 애초에 마을에 들이지 말았어야 했어!”

       

       

       터무니없는 말들. 한스는 저도 모르게 이를 꽉 깨물었다. 

       

       

       –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이럴 줄 알고, 작은 마녀는 몰래 처리했습니다.”

       

       

       한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타고 흐르는 모든 피가 얼음이 된 것처럼 싸늘하게 식는다.

       

       

       – “아까 저녁에 마녀가 아끼는 팔찌를 몰래 산에다 버리고 왔지요. 헤헤. 이걸로 그 마녀는 짐승 밥이 되었을ㅡ”

       

       

        한스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ㅡ

       

       

       – “나중에 큰 마녀만ㅡ쿠얽?!”

       

       

       저 가증스러운 면상을 향해 있는 힘껏 휘둘렀다.

       

       이빨과 침, 피가 하늘을 수놓으며 흩날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나 어색한 부부에 대한 지적은 늘 감사합니다!!

    ㄴㅇ0ㅇㄱ!! 아닛 이게 무슨 일입니까!!!

    – ‘신선우’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마법소녀 데이지…!! 데이지는 애껴야합니다…!! 데이지 애껴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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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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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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