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0

       “회귀와 차원 이동…….”

         

       카자르의 말을 듣자 떠올랐다. 그동안 찢어지고 훼손된 필름의 영상처럼 나와 볼 수 없었던 기억의 노이즈가 사라지고, 음성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다시 돌려라.」

       「마녀의 노예가……」

       「영혼이 손상될 거야, 킬킬킬.」

       「찾았다.」

       「각인으로 명한다. 여기서 떠나렴.」

         

       “아…….”

         

       내가 우두커니 서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자 카자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기요?”

         

       눈앞에서 손까지 휘저으며 내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뭔가 걸리는 게 있으신 거죠?”

       “…….”

         

       내가 반응이 없자 카자르는 혼자 멋대로 추리에 들어갔다. 턱에 손을 짚고 눈썹을 좁히더니 눈을 얕게 뜨고 바닥을 응시했다.

         

       “회귀와 차원 이동이라, 대체 무슨 용도로 이런 기괴한 마법을 만들었는지 상상이 가지 않네요. 이 마법진을 어떻게 조합한 건지도 모르겠고요.”

         

       나도 지금 카자르의 말을 듣고 뭔가 깨달은 듯했지만, 이 이상으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마치 진실을 눈앞에 두고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무언가가 내 사고의 방향성을 막아내고 있다.

         

       “생각나는 거 없어요?”

       “있긴 한데…….”

       “그럼 말해봐요. 정보가 너무 적거든요.”

         

       나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알 것 같은데 정작 생각이 나지 않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거 있지 않나?

         

       지금 내 상황이 딱 그런 상황이다.

         

       “이게… 잘 모르겠다.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영화를 봤다. 내용도 알았다. 하지만 해설은 하지 못한다.

         

       책을 봤다. 내용을 기억하고 문장들을 생생히 기억한다. 하지만 독후감은 쓸 수 없다.

         

       해설하려고 하면, 독후감을 쓰려고 하면 머릿속이 백지가 되어버린다.

         

       “이걸,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일단 진정해봐요. 차분히 생각해보자고요.”

         

       그동안 프란체와 같이 있으면서 떠오른 장면들과 동기화가 심화하면서 들은 음성들이 조합은 되었다.

         

       하지만 이 이상으로 생각할 수가 없다.

         

       “답답하네.”

         

       카자르는 유리컵에 물 한잔을 담아 마법으로 차갑게 식히곤 내게 건넸다.

         

       “시원한 물 한잔하면서 천천히 생각해봐요.”

         

       물컵을 받아들고 벌컥벌컥 마시며 가슴을 차갑게 식혔다.

         

       “후우…….”

       “어때요, 조금 알 것 같아요?”

       “아니, 여전히 잘 모르겠어.”

         

       나는 고개를 휘젓곤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건 확실해. 이 마법을 만들어서 내게 새긴 건 초월 마법사야.”

         

       카자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초월 마법사요?”

       “그래. 계약이라는 말도 있었어.”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의 대가. 현대에 있던 내가 게임 속으로 들어와 진 바렌베르크를 대신하고 있는 것.

         

       회귀로 인한 영혼 손상. 차원 이동의 마법. 모든 게 맞아 떨어진다.

         

       “근데 아무리 초월 마법사라도 이런 마법은 불가능해요. 인과율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도 모자라 인간의 마법적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거든요.”

         

       카자르는 한 손으로 턱을 받쳐 들곤 말을 이었다.

         

       “시간과 공간. 그것도 차원에 간섭하는 마법은 신화 속의 드래곤도 하지 못하는 거예요.”

         

       이내 손가락까지 치켜들고 나를 쏘아봤다.

         

       “근데 그걸 초월 마법사가 했다? 말이 안 돼요. 드래곤의 왕이라면 가능하겠네요.”

         

       초월 마법사는 그럼 어떻게 한 것인가.

         

       그동안 동기화가 심화하면서 들려온 말을 조합해보면, 진은 계속해서 돌리라고 말했고, 그의 대가는 영혼의 손상이라고 했다.

         

       만약 그 초월 마법사 할멈이 진을 매개체로 삼아 마법을 쓴 거라면?

         

       “카자르,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뭔데요?”

         

       나는 카자르와 시선을 마주했다.

         

       “만약 나와 같은 초월자를 매개체로 삼는다면 초월 마법사가 시간과 차원을 간섭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까? 대가는 영혼이야.”

         

       내 말에 카자르의 눈이 번뜩였다.

         

       “…그걸 생각 못 했네요. 확실히 초월 마법사가 초월자의 강한 영혼을 매개체 삼아서 마법을 쓴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초월자의 힘이 거듭과 거듭을 반복해 증폭되니까요.”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진과 초월 마법사가 계약을 맺은 건 확실하며, 나는 그 마법의 대상이 되었다.

         

       최종 진 엔딩을 유일하게 클리어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일단 어떻게 들어온 건지는 알겠네.’

         

       하지만 알아낸 건 시발점뿐. 이후에 있는 과정과 결과는 여전히 베일에 싸인 채다.

         

       “마법진의 정체는 알았으니 넘어가고. 내가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이유도 알 수 있나?”

         

       카자르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사실 저도 좀 당혹스러워요. 그 마법진과 고통, 그리고 조건이 연관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달라서…….”

         

       동기화의 비밀은 알 수 없는 건가. 하긴, 이건 마법과는 거리가 좀 있다. 마치 게임 시스템 같지 않나.

         

       “그래도 이 정도 알았으니 다행이군.”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려던 그때. 카자르가 “잠시만요.”하고 내 손목을 잡았다.

         

       “뭔데?”

         

       내가 바라보자 카자르는 눈을 끔뻑이더니 고개를 휘저었다.

         

       “…아니에요.”

       “뭐야, 궁금하게.”

         

       그동안 내가 해왔던 사람 궁금하게 만드는 법을 당하면 이런 기분이었나? 뭔가 찝찝하군.

         

       “이제 가본다. 내 마법진 알아 보느라 고생했어.”

       “네. 별로 도움은 안 됐지만요…….”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짓곤 카자르의 집에서 나왔다.

       

       지금까지 프란체와 함께한 시간은 반년. 딱 반년만 더 버티자.

       

       1년이 채워진 시점이면 약속은 지켜질 거고, 나도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 테니까.

         

         

       * * *

         

         

       진이 나가고, 카자르는 유심히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새겨진 마법진과 그동안 보여준 모든 것들이 관계가 있는 건 확실해.”

         

       카자르는 고대 마법서와 자신이 그린 마법진을 번갈아 봤다. 그리고 진이 했던 말들을 조합해가며 추리를 시작했다.

         

       시간과 차원을 간섭하는 마법진을 몸에 새기고, 수상할 정도로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진.

         

       그리고 초월자와 초월 마법사의 관계.

         

       “…알겠다.”

         

       카자르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설마 그럴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다. 차원을 넘어온 것도 모자라 시간까지 넘나 들은 존재.

         

       ‘근데 여기에 모순이 있어.’

         

       시간과 차원을 넘나 들은 존재인데 영혼이 멀쩡하다. 아무리 역사상 최강이라고 불리는 초월자라도 너덜너덜해야 정상인데 말이다.

         

       ‘그리고 반응을 보니 기억도 불완전한 거 같고.’

         

       이는 카자르라는 마법사의 호기심을 극심하게 자극했다. 당장 그를 연구하고 새겨진 마법진의 조사와 여러 정보를 캐묻고 싶지만…….

         

       ‘불가능하겠지’

         

       미련이 남지 않았다곤 하지 못하겠지만, 카자르는 고개를 휘저었다. 저 초월자를 붙잡아 강제로 연구할 수도 없으니까.

         

       “…뭐, 이건 나만 아는 비밀로 해두고. 남은 룬 문자나 해독하자.”

         

       그렇게 고대 마법서의 해독을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카자르는 드디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진이 가져온 고대 마법서에 있는 마법들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영혼을 귀속시키는 마법부터 시작해 시간과 공간을 간섭하는 마법. 그리고 생명을 건드리는 마법과 인과율에 어긋나는 마법까지.

         

       이 세상에서 금기라고 불리는 마법들로 가득했다.

         

       “이걸 쓰는 건 미친 짓이겠지.”

         

       아무리 호기심과 학구열이 강한 마법사인 카자르라도 해도 될 일과 해선 안 될 일은 구분한다. 나중에 어떤 후환이 올 줄 알고 저런 마법을 사용하겠나?

         

       달칵. 카자르는 고대 마법서를 아무렇게나 책장에 넣어두고 미뤄뒀던 연구에 몰두했다.

         

       “…근데 저걸 공녀님이 볼 일은 없겠지?”

         

       프란체가 그렇게 찾고 있던 영혼 귀속의 마법이 담긴 마법서다. 저렇게 방치해두는 건 위험천만한 행동이지만…….

         

       ‘룬 문자로 되어있으니 못 읽을 거야.’

         

       카자르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 * *

         

         

       정보상 엑시드가 직접 운영하는 술집, 벨세르크.

         

       셀다스는 안쪽 방에서 값비싼 황금빛의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최근 데카르트 공녀와 같이 사업을 진행하며 굉장한 수익을 올렸고, 계약도 잘 마무리되었다.

         

       거기에 골치 아팠던 젠부코로스가 괴멸해 활동 범위를 늘릴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셀다스를 미소 짓도록 만들었다.

         

       “그 멍청한 공녀님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셀다스가 데카르트 공녀에게 진 바렌베르크가 노예로 들어온다는 소식을 준 건 단순히 변덕에 불과했다.

         

       항상 돈을 두둑이 챙겨주고 쓸모없는 정보들만 사 갔으니 제대로 된 정보도 한 번 준 것이다.

         

       그런데 그 작은 눈덩이가 거대한 이득을 가져왔다.

         

       “이 세상에서 될 놈은 된다니까.”

         

       셀다스는 피식 웃으며 술잔을 홀짝였다. 이대로만 가면 제국의 암흑가를 전부 지배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한창 미소를 짓고 있던 그때.

         

       “마스터.”

         

       엑시드의 간부가 찾아왔다.

         

       “무슨 일이지?”

         

       셀다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간부가 직접 찾아올 정도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좋은 소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하라의 ‘모옥’에서 간부 몇 명이 제국으로 밀입국했습니다.”

       “…여태껏 조용하던 모옥이 간부를 제국으로 밀입국시켰다고?”

       “그렇습니다. 정보를 추적하니 누군가 그들을 고용했습니다.”

         

       눈빛이 어두워진 셀다스.

         

       “그들을 고용할 정도면 보통 귀족은 아닐 테고. 대귀족이나 황족에 가깝겠군. 누군지는 정확히 알아냈나?”

         

       엑시드의 간부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그것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모옥의 정보 방어가 너무나도 견고한 탓에…….”

         

       셀다스는 “흐음.” 하면서 책상에 팔을 걸었다.

         

       “모옥이랑은 사이가 좋지 않은데.”

         

       사하라 국가의 ‘모옥’.

         

       대륙에 모여 있는 길드 중에서 무력이 가장 강한 길드는 ‘모옥’이다.

         

       오러를 깨우친 소드 마스터들이 널려있고 높은 위계의 마법사들이 즐비 해있다. 이 외에도 힘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전력들까지.

         

       거기에 모옥의 마스터는 초월자로 불리는 자.

         

       아무리 제국 최고의 암흑 길드인 엑시드라도 그들과의 접촉은 피하고 싶다.

         

       “걔들이 왜 제국으로 오는지 유추도 안 되는군.”

         

       셀다스는 눈을 얕게 떴다.

         

       “몇 명이 밀입국했지?”

       “일곱입니다.”

       “설마 칠성인가?”

       “맞습니다…….”

         

       일순 셀다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칠성이 다 같이 온다고?”

         

       칠성은 모옥의 핵심 전력이다. 각자가 초월자에 가까운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일곱 전체가 모이면 약소국가는 초토화된다.

         

       “일단 성녀와 황태자를 주시해.”

         

       엑시드의 간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녀와 황태자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런 시기에 모옥의 밀입국은 말이 안 돼.”

         

       지금 시기는 황태자와 성녀의 결혼식을 앞둔 시기.

         

       사하라의 모옥이 아무리 강력한 길드라고 해도 제국을 상대로 난장을 피울 만큼 멍청한 놈들은 아니다.

         

       분명 그 둘과 엮여있을 거다.

         

       “후우. 최근 일이 잘 풀리나 했더니만, 뜬금없이 모옥이 찾아오는군.”

         

       셀다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술잔을 들이켰다.

         

       “아무튼. 조사는 성녀와 황태자 위주로 하고, 모옥의 칠성이 움직이는 동선까지 전부 파악해.”

         

       엑시드의 간부는 “예, 알겠습니다.”라는 답만 남겨 두고 그림자가 되어 사라졌다.

         

       ‘이걸 그놈에게도 알려줘야겠지.’

         

       진 바렌베르크. 만약 불미스러운 일이 터지면 이놈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모옥과 엑시드는 예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말이다.

         

       ‘일단 전서구를 적는 게 좋겠군.’

         

       셀다스는 곧장 전서를 꺼내 펜을 끄적였다.

         

       【사하라의 모옥 길드의 칠성이 제국으로 밀입국했다. 수상한 냄새가 진동하니 경계를 최대로……】

         

       평소와는 다르게 꽤 긴 내용.

         

       그만큼 모옥이 온다는 건 큰일이었다.

         

       “쯧.”

         

       셀다스는 혀를 차곤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여기선 직접 나서는 수밖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이번 편은 공녀님이 나오지 않았네양…

    다음화 보기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