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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0

       ……이런 말을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하늘, 소희, 수아는 모두 각각 그…… 미드 사이즈가 전부 다르다.

        

       원작에서도 정확한 설정은 없었고, 나도 당연히 세 친구의 사이즈를 정확하게 알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림판으로 그린 것일지언정 원작에서도 일러스트는 있었고, 그 일러스트가 나름대로 충실히 적용된 이 세상에서도 그 사실은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였다.

        

       그러니까…… 예사라를 포함한 히로인의 크기를 비교해보자면, 신소희 > 이수아 > 유하늘 > 예사라, 이런 순서였다.

        

       일단 게임의 주인공인 유하늘을 제외하자면, 까놓고 말해서 ‘크기별로 있습니다’라는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작은 히로인도, 큰 히로인도, 확실하게 큰 히로인도 있으니 취향대로 공략하라는 제작자의 배려일 것이다. 아마도.

        

       거기서 이수아는 ‘큰 히로인’이었다.

        

       키는 예사라와 같아서 유하늘보다 조금 작지만, 그 크기는 유하늘보다 확실하게 컸다. 귀엽고 확실하게 몸매 좋은 캐릭터가 이수아였다는 말이다.

        

       당연히, 그 이수아의 설정이 그대로 유지된듯한 수아도 마찬가지로…… 컸다.

        

       바로 옆에 있는 소희보다는 당연히 작았지만, 뭐랄까. 이수아는 소희와 키 차이가 확실하게 나는 편이었으니까. 비율적으로 보면 유독 그 부분이 강조되어 보였다.

        

       게다가…… 이렇게 말하면 조금 그렇지만, 소희의 맨가슴은 거의 매일 보는 것이 아니던가. 거기에 더해 본인의 털털한 성격과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붙여오는 버릇 때문에 조금 적응이 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수아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아니, 분위기가 문제가 아니라 평소에 볼 수가 없는 모습이다. 물론 소희가 저런 상태로 샤워실 밖으로 나오는 것을 봤으면 그건 그거대로 충격이긴 했겠지만.

        

       반창고는 떨어졌다. 타월 밑으로 쭉 시원하게 뻗은 허벅지에 쓸린 상처가 여전히 보였다. 왼팔에도 살짝 멍이 들어있었고, 이마에도 상처가 있었다. 하얀 편인 예사라보다도 더 하얀 피부였기에, 그 상처가 유난히 눈에 띄어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평소에는 양 갈래로 묶고 있던 천연 금발을 그대로 풀어두고 축축하게 젖은 채로 둔 그 모습은 아주 가련해 보였다. 피부가 하얀 탓에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더 확연하게 보였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황급하게 돌리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과감한 복장……이라고 할 것도 없는 것을 걸친 그 모습과 무지 불균형해 보였다.

        

       그렇다. 성적으로 몹시 그렇고 그래 보였다.

        

       ……그런데 저렇게 부끄러워하면서도 저런 복장으로 나온 이유가 대체 뭘까. 친구들이랑 같이 목욕탕에 가는 것과 비슷한 분위기인가?

        

       그런데 아무리 동성이라도 친구 집에서 씻고 저런 복장으로 나오지는 않을 것 같은데.

        

       내가 어떻게 생각하건, 수아는 자박자박 걸어 소희가 앉아있는 탁자 옆으로 갔다. 그리고 멍하니 자신을 올려다보는 소희와 한 번 눈을 마주친 후, 의자 하나를 집어 살짝 돌렸다.

        

       그리고 내 쪽으로 등을 돌리고 앉았다.

        

       보기 좋게 젖은 금발이 내 쪽을 향했다.

        

       “사, 사라야.”

        

       “으, 응!?”

        

       그때까지 나도 모르게 그 모습을 넋 놓고 보고 있던 내가 화들짝 놀라 대답하자, 수아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머리카락 좀 말려주면 안 될까?”

        

       아, 그런가.

        

       지난번에는 수아가 내 머리카락을 말려줬었다.

        

       “그, 그럼 내가—”

        

       소희가 그렇게 말하면서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지만,

        

       “싫어.”

        

       수아는 지금까지 그녀에게서 들어본 적 없는 단호한 목소리로 딱 잘라서 거절했다. 목소리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어투가 바뀐 거지. 평소처럼 나긋나긋하고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거기에 담긴 감정이 너무나 명확했다.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이—”

        

       소희가 조금 소심하게 반박을 해봤지만,

        

       “싫어.”

        

       수아의 확고한 감정은 변하지 않았다.

        

       “어, 어어. 그러냐…….”

        

       반쯤 몸을 일으키던 소희도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수아 쪽을 곁눈질하다가, 얼굴을 붉히고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둘이 싸웠나?

        

       아니, 생각해보면 내 기억만큼 친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수아, 소희와 친한 거지, 이 둘이 친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는 것이다. 셋이 있을 때는 편하고 즐겁게 얘기하다가, 중간의 친구 하나가 빠져버리면 순식간에 어색해져서 입을 다물어버리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아마 그런 경우인 것 같았다.

        

       하긴, 우리 넷이 같이 다니더라도, 세 소녀는 대부분의 대화를 나와 나누었지, 본인들끼리 수다를 떠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다소 어색한 사이라면, 머리카락 말려주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울 수는 있을 것이다.

        

       “사라야.”

        

       수아가 다시 한번 나를 불렀다. 고개를 내 쪽으로 살짝 돌리긴 했지만, 긴 머리카락에 가려서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어, 어어…….”

        

       나는 얼빠진 채 대답하고 몸을 일으켰다.

        

       헤어드라이어를 찾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평소에 내가 꺼내지 않으니까. 그래도 양혜인이 넣는 것을 몇 번은 봤기 때문에 아주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수아는 그때까지도 아무 말 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콘센트를 꽂고, 선을 길게 늘어뜨리며 수아의 뒤로 갔다.

        

       “그럼, 할게……?”

        

       “응…….”

        

       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아는 굳이 나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나는 수아의 어깨 너머를 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필이면 타월이 팽팽하게 수아의 몸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 위에서 보면 여러모로 굉장했기 때문이다. 나는 최대한 시선을 수아의 머리카락에 고정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젖은 머리카락이 착 달라붙은 수아의 등을 안 볼 수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팽팽하게 당겨진 타월에 가려진 등은, 교복 너머로 보았을 때보다 훨씬 가녀려 보였다. 수아는 교복을 조금 넉넉하게 입은 편이었는데, 이렇게 보니 나올 곳만 확실하게 나오고, 몸 자체는 마른 편이었다.

        

       나는 침을 삼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그래도 친구를 앞에 두고 그런 행동을 하면 엄청나게 쪽팔릴 것 같았다. 설령 헤어드라이어 소리에 묻힌다고 하더라도.

        

       평소에 양 갈래로 묶은 수아의 머리카락은 그렇게 길어 보이지 않았지만, 풀어두니 나의 머리카락보다도 더 길었다. 머리카락을 말리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이런 쪽으로는 손재주가 없기도 했다. 애초에 여자애 머리카락을 만져볼 일이 없었으니까. 평소에는 양혜인이 내 머리카락을 말려주기도 하고.

        

       남자였을 때 머리카락 말리는 건 그냥 헤어드라이어를 최대로 틀어놓고 대충 손으로 털면서 말렸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자애 머리카락을, 그것도 엄청나게 잘 관리된 것으로 되어 보이는 머리카락을 그런 식으로 말릴 수는 없었다.

        

       오늘 소희가 내 머리카락을 말려줄 때 양혜인이 옆에서 알려준 방법을 떠올렸다.

        

       바람은 약하게, 멀리서. 손으로는 부드럽게 쓸면서.

        

       그렇게 해보았지만, 머리숱이 많아서 그런지 그렇게 쉽게 마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빗으로 머리카락을 조금씩 쓸어내리며, 겉에서부터 조금씩 말려 내려간다.

        

       머리카락이 마르면 마를수록 내가 쓰는 것과 같은 샴푸 냄새가 났다.

        

       이름 모를 꽃향기였다.

        

       *

        

       한참을 집중하고 있어서 그런지, 수아의 머리카락을 다 말릴 때쯤에는 진이 빠질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숨을 살짝 내쉬면서 팔을 돌리고 있으려니, 수아가 고개를 휙 들었다.

        

       그리고 나를 올려다보며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마치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의 고양이처럼.

        

       “고마워, 사라야.”

        

       “으, 으응.”

        

       나는 얼른 시선을 회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아가 고개를 들어 머리를 치우자, 그 너머에 있던 그 부분이 엄청나게 잘 보였기 때문이다.

        

       “봐, 생각보다 어렵지?”

        

       오늘 처음 내 머리를 말려 본 소희가 잘난 척을 했다. 나는 그런 소희를 살짝 흘겨볼 뿐 굳이 대답하지는 않았다.

        

       “……너는 이제 그만 옷 좀 입고.”

        

       그리고 소희는 그대로 수아를 보면서 말했다. 묘하게 싸늘한 눈빛이었다. 뭐, 둘이 싸워야 할 이유가 없으니, 그냥 보기에 그렇게 보일 뿐일 거다. 나한테 쓰는 말투가 유독 친근해서 비교되어 그렇게 보이는 거겠지.

        

       그나저나, 아까 머리카락을 말려주겠다고 한 건 사심 때문이 아니었나? 레즈비언 캐릭터라면…… 음, 이것도 편견인가. 생각해보면 ‘if you wish’의 신소희는 캐릭터가 레즈비언이고 유하늘에게 매력을 느꼈을 뿐, 딱히 변태 캐릭터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종종 일본 만화에 나오는 잘생기거나 예쁜 동성을 보면 침을 질질 흘리는 스테레오타입의 개그 캐릭터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하긴, 공략 대상이 그런 캐릭터라면 그건 그거대로 조금 싫을 것 같다.

        

       그보다는 양아치 선배 캐릭터를 여성화 시켜놓은 것 같은 캐릭터였지. 주인공에게 일탈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끝까지 함께하면서 공부 같은 것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삶의 희망을 찾아주는 나름대로 주도적인 캐릭터.

        

       그런 멋진 캐릭터가 어째서 지금은 내 앞에서 메이드 복장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나는—”

        

       이수아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방문에서 삑삑삑삑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드륵, 하고 문이 열리고,

        

       “부탁하신 사이즈대로 구매해왔습니다.”

        

       양혜인이 그 문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손에는 종이봉투가 들려있었다. 내가 지난번에 하늘이와 갔던 곳과 같은 곳이었다.

        

       “…….”

        

       그리고 그제야, 나는 잊고 있던 사실을 기억해내고 경악했다.

        

       그렇다. 지금 당장 수아는 입을 속옷이 없었다. 아무래도 입고 왔던 속옷을 또 입는 것은 조금 그랬으니까.

        

       내 속옷을 빌려주기 전에 양혜인이 먼저 그것을 캐치하고 나갔으니, 당연히 지금 수아는,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그것도 아래위로. 전부.

        

       몸에 걸치고 있는 거라곤 목욕 타월 하나가 전부였다.

        

       목욕타월 너머로 보이는 그 확실한 입체감은…… 그러니까, 자연 그대로의 날것 그 자체였다는 말이다.

        

       “—입을 속옷이, 저기에 있는걸.”

        

       아무리 그래도 그걸 자기 입으로 말하는 것은 엄청나게 부끄러웠는지, 수아는 양혜인이 들고 있는 봉투를 가리키면서 그렇게 말했다.

        

       “…….”

        

       양혜인의 눈이, 나, 소희, 그리고 수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수아는 그제야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소희의 얼굴도, 아까보다 더 붉게 달아올랐다.

        

       아마 내 얼굴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옷을 입어주시겠습니까?”

        

       양혜인이 진지한 표정, 진지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종이봉투를 앞으로 내밀자, 수아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이고ㅠㅠ

    글을 올릴때 생각없이 클릭해서 예약 없이 그냥 올라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아예 이전화도 예약을 풀어버릴까 생각했는데, 이게 한번 예약이 걸리면 안 풀리는 모양이라 최신화를 삭제하고 다시 올렸습니다.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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