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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0

        

         – 깡통아! 이 바보야!! 집에 얌전히 있으라니까 그런 데서 뭐해?! 너 설마 파이브 아이즈랑 마주쳤어? 또 박살 난 건 아니지?! –

         

         회선이 연결되자마자 건너편을 다그친다.

         

         뒷거리 한복판. 현지인이거나 용병처럼 특별한 볼일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일반적으로는 갈 일이 없어야 할 으슥한 장소.

         

         뜬금없이 그런 곳에 있다고 표시되는 깡통의 신호 수신기 덕분에 머리가 아주 화끈해졌다.

         더군다나 로잘린이 자신들 꽁무니에 전투 드로이드가 붙었다고 단언까지 했으니, 혼자 심심해서 산책을 나간 것도 분명 아니었다.

         

         ……아니, 생각할수록 웃기네. 얘는 진짜로 무슨 일에 휘말린 거야?

         

         – 집으로 가는 길이 예상보다 험난해서 잠시 헤맸습니다. 죄송합니다. –

         

         – …뭠마?! –

         

         뜻 모를 변명.

         이유는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들었지만, 휘말렸다기보단 제 발로 걸어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가설이 문득 떠올랐다. ……에이 설마.

         

         – 어쨌든! 무사한 거지? 심각한 상황도 아니고…? –

         

         – …살짝 긁혔을 뿐 무사합니다. 명령만 주신다면 대치를 포기하고 전장을 이탈하겠습니다. –

         

         – 하아아… 쓸데없이 걔들 자극하지 말고,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 알겠지? –

         

         일단 특필할 만한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멀쩡하다니 다행이고, 어지저찌나마 수습할 길이 있다니 더더욱 안심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명료하다.

         다른 게 아니라, 파이브 아이즈와 이쪽의 유일한 소통 창구가 되어버린 로잘린의 오해를 푸는 것.

         

         > 변명할 거리가 있다면 어디 떠들어 보시죠! 그쪽이 적이 아니라면, 이렇게 사사건건 저희를 방해할 구실이 없지 않나요!

         > ……글쎄. 음…. 기업이 챙겨주는 크레딧이라던가…?

         > 당신?! 그런 실력을 가지고도 겨우…!!

         

         보란듯이 사설 채널을 이용해 논담을 걸어오는 그녀에게 지극히 현실적인 대답을 들려주자 온갖 욕설이 날아들었다.

         

         어쩜 그리도 속물적이냐며 구두쇠. 그러면서 솜씨만은 짜증날 정도로 뛰어나다며 악몽(Nightmare).

         어느 편을 붙을지 눈치를 본다고 박쥐. 일하는 방식이 극악무도하다며 조크 바이러스(하드웨어가 아닌 사용자를 괴롭히는 타입의 바이러스).

         

         “…조금 지나쳤나?”

         

         마구잡이로 올라오는 그녀의 채팅 로그를 훌훌 넘기면서 입맛을 다셨다.

         반쯤은 농담삼아 두드린 핑계지만, 완전 엉뚱한 답안이라고 생각치는 않았다.

         

         왜 그 경찰서 앞 푸드 트럭 사장님도 말씀해주시지 않았는가?

         기업을 싫어하는 사람은 차고 넘쳐도, 기업 돈마저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턱 아래까지 차오른 생활고에 시달리는 불쌍한 소시민들에게 대의니 대업이니 떠들어봐야 크게 와닿지 않는 법.

         수많은 반기업 세력 중에서도 그걸 잘 아는 조직이 파이브 아이즈인 만큼 로잘린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잘 알아들었을 거라 믿는다.

         

         그러니… 무슨 기업과 한 배를 탄 악당이라는 건 터무니없는 과장이다.

         

         나라는 개인은 어디까지나 중립국…이 아니라 중립을 지향한다.

         선하다 악하다 구분 짓기도 어려운, 구질구질할 정도로 많은 세력과 집단이 공존하는 메트로폴리스에서 어느 곳에도 발이 묶이길 원하지 않는 회색분자.

         

         ……대신 주인공만은 기업 루트로 가서 그 엔딩에 도달하기를 바라고, 은근히 도울 의향이 있을 뿐이지. 그래야 나도 근처에서 맴돌며 거지같은 차원 균열 간섭기를 제작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고로 욕을 하려면 차라리 비겁자라고 부르는 게 맞으리라.

         이미 내 손은 이루기 어려운 꿈과 책임져야 할 인연들로 가득하니, 더 복잡한 문제에 휩쓸려 들어가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 그건 기업의 착취에 시달리는 덧없는 사람들이나 할 변명이지, 무지몽매한 시민들을 계몽해야 할 우리 같은 능력자들이 입에 담을 사유는 못 돼요! 미스 아나스타샤는 신념도 없나요?!

         > …무지몽매? 우리 같은? 신념…?

         

         서늘한 어감을 담은 단어들을 본 대로 따라 적었다. 방금 내가 읽은 게 맞는지 재차 확인하는 요식 행위에 건너편에 있는 로잘린은 정말 천진난만하게 답변해왔다.

         

         >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구시대 영웅의 격언이죠!

         > …이거 진짜 골치 아프네.

         

         원작 게임을 생각해, 마냥 착해 빠진 테러리스트나 반동 분자의 이미지를 겹쳐봤는데… 이런 식으로 그녀의 열정적인 반기업 활동의 원동력을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지독한 선민 의식이라는 형태로.

         

         22세기에서 잘 나가는 넷 해커가 가지는 위상을 고려하면 그 오만함도 마냥 틀린 건 아니었으나, 그것이 진정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라 믿는다면 교정이 좀 필요해 보였다.

         

         가까이 있었다면 꿀밤을 먹이고 엉덩이를 두들겨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해주고 싶었으나. 잘못된 믿음이 그 정도 체벌로 고쳐질 수 있었다면 세상에 악인은커녕 비행 청소년조차 없었을 것이다.

         

         > 머리 아플 게 뭐가 있나요? 지금이라도 신념을 가지고 올바른 편에 서시죠!

         > …….

         

         장래희망이야 각자의 선택이라 치더라도.

         잘못된 동기로 그 길을 고른 주제에 자신감만은 넘치는 철부지의 문장을 응시했다.

         

         신념이라…. 내가 그런 거창한, 내세울 만한 게 있던가? 그냥 하루하루 뼈빠지게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은데.

         

         ……아, 불바다가 된 연구소에서 빠져나오면서 한 가지 결심했던 건 있다.

         

         

         이 빌어처먹으리만치 멋지고 요망한 세계에서 빠져나가는데 언제가 기어이 실패하더라도 최대한 나답게 발버둥치다 가주겠다고.

         

        

         > 파이브 아이즈 소속 해커 씨. 혹시 우리 드로이드랑 눈싸움하는 무리에 너도 껴 있어?

         > 그야 물론 있지…?

         

         거기까지 읽은 나는 주저없이 채널을 빠져나왔다.

         손에서 놓은 지 한참 되었던 휴대폰 메신저를 갑자기 돌려받은 기분이라 재밌었지만, 역시 진솔한 감정이나 사상을 교류하기엔 어딘가 모자랐다.

         

         근래 들어서 워낙 극적인 상황을 많이 마주한 터라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고… 방구석 게이머에 불과했던 내가 맨투맨의 중요성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걸 수도 있겠다.

         

         – 깡통아. 네가 보는 시각 정보, 그대로 전송해줘. –

         

         – …화질이 충분히 좋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내가 멋대로 연결한다 한들, 케어봇에 탑재된 기능을 주인이 사용하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나.

         그는 흔쾌히. 센스 있다고 해야 할지… 여전히 익살맞다고 할지 모를 태도로 승낙해주었다.

         

         지이잉…!

         

         채팅방을 닫아 차분해졌던 시야를 실감나는 영상이 뒤덮는다.

         아니, 실례. 현장 특파원이 생생하게 전송해주는 화면인 만큼 실감나는 건 당연지사였다.

         

         좁은 골목은 전혀 모르는 얼굴들로 가득했다.

         그들의 소속이 소속이니, 추후에 다른 외형으로 성형수술을 받고 활동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지금 따져봐야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추측이었다.

         

         우선 ‘대치’하고 있다고 깡통이 순화해서 표현했던 현장 분위기는 내 생각보다도 더 살벌했다.

         

         여기저기서 번뜩이는 날붙이나, 번들거리는 둔기들은 패싸움 일보직전의 긴장감을 떠올리게 했고 벌어진 바닥이나 길게 파인 벽면은… 누가 무슨 짓거리를 벌였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나열하다 보니 페인트칠이 벗겨진 허름한 건물조차도 하나의 소품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기계는 어떻게 고쳐야 할까? 얘도 꿀밤을 먹여야 하나?

         때리면 뭐든 고쳐진다는 발상은 너무 야만적이지 않나?

         

         “여기들 계셨구만….”

         

         하지만 그런 풍경 속에서도 내 기억에 남은 프로필과 일치하는 인물은 단 둘.

         

         맨 앞에 나선. 곱슬거리는 머리가 인상적인 까무잡잡한 아랍계 남자, 아시프.

         그리고 황망한 표정으로 홀로 남겨진 채널을 새로고침하느라 바쁜 붉은 소녀, 로잘린.

         

         형용할 수 없는 포스가 넘치던, 포스 대신 귀여움이 넘치던 모두 파이브 아이즈 본부 소속 요원들이다.

         

         피차 좋은 말할거리도 없을 테니 이제 그만 엉망진창으로 꼬인 현 상황과 끈질긴 러브콜을 단호하게 끊어내도록 하자.

         

         “당장 돌아서서. 왔던 길로 얌전히 복귀하시면 저도 여러분의 작은 저항 활동을 더 방해하거나, 위치에 대해 상층부에 고자질하지도 않겠습니다. ……진짜 기업의 끄나풀에게선 절대 들을 수 없는 파격적인 양보랍니다?”

         

         “…건방지군.”

         “다른 조직 소속인가?”

         

         내가 떠드는 내용을 깡통이 그대로 송출하니, 일부 요원들이 으르렁거렸다.

         허나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외형마저 특정된 상태로 전면전을 벌일 계획이 아니라면 납득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 자기 객관화가 부족한 해커 아가씨는 이것만 말해 둘게. …차라리 악당이랑 손을 잡았으면 잡았지, 난 위선자랑은 일 안 해.”

         

         “?! 모욕이 지나쳐요!”

         

         알아, 그러니까 좀 충격 받더라도 자기자신을 돌아볼 기회로 삼고… 이제 그만 서로 갈 길 가자고.

         

         로잘린은 위선자라는 폭언까지 들을 줄은 몰랐는지 눈물을 글썽거렸지만, 이들을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는 아시프는 수상할 정도로 이득밖에 없는 내 배려를 곱씹어보고 있었다.

         

         고민 따위는 집어치우라는 의미로 화친의 악수라도 제의할까 싶어, 깡통에게 손이라도 내밀라고 할랬는데…. 화면 구석탱이에 비친 그의 손이 좀 어색했다.

         

         잠깐. 야 이거 뭐야. 니 손가락은 어디 갔어. 이게 살짝 긁힌 거냐? 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구라핑은 나빠요.

    컨디션 난조로 인한 역대급 지각…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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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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