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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00

    <800 – 교수들의 흑화를 막는 법(11)>

     

    기프트 아카데미 입학 이후.

    이슈타르는 많은 여정을 거치고 업적을 쌓았다.

    하지만 자신이 한 사건의 주축이 되어 단독으로 이를 해결했는가?

    그렇게 물으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만한 사건은 그리 많지 않았다.

    최고 업적으로 손꼽히는 금기황제 파케 히우그마그 토벌조차도 막타를 넣었을 뿐, 오크노디와 혁명군이 다 차린 밥상이 아니었는가.

    재단공방전에서는 재단의 기함에 침투하여 교수들도 쓰러뜨리고 오염된 세계수도 베며 나름의 활약을 했으나, 이사장의 엄청난 저력과 이를 토벌한 마왕노디의 성취에 빛바랜 느낌도 있었다.

     

    온전한 성과가 아닌 반쪽짜리 성과.

    항상 무언가가 부족한 결실.

     

    그렇기에 그 많은 사건을 거치면서도 이슈타르가 쌓은 용사로서의 경험치는 신이 부여한 성장의 그릇, 한계를 돌파하여 확장된 그릇을 가득 채우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그 그릇을 채운 이가 나타났다.

    고블린용사.

    고블린월드에서 탄생한 오크노디와 티토소가의 아이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

    <번제의 그릇>

    -효과 : 그릇이 가득 찰 때, 신에게 늘어난 경험치를 제물로 바친다.

    ━━━

     

    괴로움에 신음하며 몸을 비틀고 숨을 헐떡이는 용사.

    그녀의 체내에서 일어나는 격렬한 마나의 이동과 주인의 통제를 벗어나는 움직임이 먼발치의 용사에게도 또렷하게 느껴졌다.

    힘을 부여한 주체가 같은 유일신 <태양의 소페미아>이기 때문이다.

     

    숨을 쉴 때.

    검을 휘두를 때.

    마법을 선사할 때.

     

    생활, 수련, 전투.

    모든 과정에서 인지하고 연마했던 힘을 몰라볼 리가 없다.

    처음 소페미아에게 용사로 선택받은 이후로 단 한 시도 제 품에서 떼어놓은 적이 없는 힘이었으니까.

     

    그 힘이 속삭이고 있다.

    고블린용사에게 내어준 힘을.

    잠시나마 그녀의 것처럼 행세했던 힘을.

    이제는 다시 거두어갈 때가 되었음을.

    용사계약 당시에는 들은 적도 없는 이야기였다.

     

    “여신님…?”

    “이슈타르. 갑자기 왜 그래?”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낀 동기들과 파티원들이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지만 고블린용사의 체내마나와 공명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이슈타르의 시야와 감각을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이건 너무하잖아.”

     

    태양의 소페미아의 힘을 통해 동족의 복수를 꿈꿀 수 있었던 고블린 용사.

    찬란한 태양처럼 빛났던 힘이, 승리의 서사가, 경험치의 탑이 무너졌다.

    가득 찬 그릇이 강제로 뽑히고 태양의 곁으로 다시금 귀의한다.

     

    위대한 그분의 힘을 통해 그분의 곁에 서기에 부족함없는 용사가 되겠다는 감사의 마음도.

    그분의 뜻을 감히 헤아릴 수 있다고 믿었던 용사의 긍지와 자부심도.

    아직 끝마치지 못한 구원의 사명과 적들, 용사행의 의무도.

     

    [잘해주었다, 나의 아이야.]

    [힘냈구나.]

    [너는 태양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의지의 결정체였단다.]

     

    자애로운 목소리의 뒤에서 뻗어지는 의지를 불사르는 거대한 에너지의 앞에서 불타며 스러진다.

     

    “어째서, 어째서 내 힘을 거두어 가는 거야 고브!”

    “당신은 내게 복수의 소명을 다하라고 했잖아 고브!!”

    “아직 내 사명을 끝마치지 못했어… 이 땅에 진정한 평화를 불러오기까지 앞으로 고작 몇 걸음도 남지 않았어. 조금, 정말로 조금이란 말이야 고브!!!”

     

    마나하트라는 이름의 착각.

    허울의 베일을 벗어 던진 번제의 그릇.

    양손 가득 움켜쥔 신의 힘이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아이야, 너의 사명은 다하였음을 받아들이거라.]

    [신들의 대전이 다가오고 있으니, 너의 사명이 다하여 사라질 분노의 힘을 어찌 놓칠 수 있겠느냐.]

    [분노하거라.]

    [더욱 갈망하거라.]

    [너의 마지막 비탄과 눈물마저 내 태양을 보다 윤택하게 불사를 연료로 삼을지니, 일백차원의 질서는 네 희생으로 지켜지리라.]

     

    세계영역으로, 의지력으로 붙들던 힘이 태양의 신의 거대한 부름을 거역하지 못하고 솟구쳤다.

    하늘 높이 솟구치는 빛의 기둥과 함께 절규하며 빠르게 쇠약해지는 고블린용사.

    그녀의 추락과 동시에 이슈타르는 자신에게서 거두어졌던 힘이 빠르게 돌아오는 것을 감지했다.

     

    [신화적인 위업을 이룬 용사가 자신의 사명을 끝마쳤습니다.]

    [유일신 <태양의 소페미아>가 <용사고브>에게서 거두어 간 용사포인트의 일부를 당신에게 공급합니다.]

     

    이슈타르의 내면을 충만하게 채우는 힘.

    돌아온 전성기의 강함.

    그러나 기쁨은 존재하지 않았다.

     

    저런 것을 봐버렸다.

    신의 배신을 목도하였다.

    용사의 결말이 무엇인지 알아버렸다.

     

    비탄.

    절규.

    절망.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고블린 용사.

    용사고브의 소리로도 이어지지 못하는 추락과 상실의 고통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화려한 콘서트가 끝난 뒤, 조명이 꺼진 무대 아래에 덩그러니 남겨진 적막함과도 같은 무언가가.

    순진무구한 착각 속의 행복이 끝난 뒤에야 고개를 치켜드는 잔혹한 현실이라는 이름의 괴물이.

    몰락한 용사고브의 존재가.

     

    이슈타르의 가슴 속에는 박제된 동물처럼 가슴속 깊이 새겨졌다.

    신은 결국 신이었다.

    필멸자의 위에 선 채로 자신들의 섭리와 법칙을 강요하며 신앙을 대가로 인생을 징수하는 존재들.

    정령과는 다른.

    어쩌면 함께 할 수도 있다고 믿었던.

    그 모든 믿음과 기대를 궁극적으로 배신한 결말이 이것이었다.

     

    “고작 이런 거였어…? 신이란 게, 용사란 게,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한 거였어?”

     

    한 사람의 불행으로 만들어지는 거짓 구원.

    한 사람의 일생으로 완성되는 신의 수확제.

    알았더라면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진정으로 존중했다면 이런 식으로 배신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신은.

    유일신은.

    태양의 소페미아는.

     

    고블린월드를 위협하는 모든 침략자를 제거한다는 사명을 끝마치고 복수의 의지가 흐려지며 줄어들 힘을 경계하여 그릇이 차자마자 힘을 거두어갔다.

    그 행위에는 용사를 향한 어떠한 존중도, 잠깐의 유예도, 일말의 인간성과 자애로움도 존재하지 않았다.

    가식적인 미소 아래에 무자비한 수확과 징발, 배신과 절규, 몰락과 비탄만이 남았을 뿐.

     

    거짓이었다.

    전부 기만이었다.

    속임수에 불과하였다.

     

    배신감은 깊지만 막상 이 순간이 찾아오는 순간, 새록새록 떠오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작고 하찮은, 그러나 언제나 당차고 힘찬 아이.

    착하고도 나쁜, 친절하고도 무서운 아이.

    가끔은 사악하기도 하지만 재단에 영혼이 뜯겨진 부작용임을 이제는 아는 아이.

    오크노디.

    그녀가 언젠가 기숙사 던전의 심처 앞에서 이불을 깔고 뒹굴거리며 이슈타르의 곁에서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저기, 오크노디.

    -왜요?

    -작년부터 왜 자꾸 날 챙겨주는 거야?

     

    이슈타르가 오크노디를 어린이로 바라보고 있다면, 오크노디는 자신을 무엇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질문에 돌아온 충격적인 대답은 분명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용사니까요!

    -정말로?

    -당연히 용사로 바라보고 있죠!

    -너한테 용사란 어떤 존재인데?

    -대신 죽어주는 사람?

     

    다시 떠올려도 가슴이 섬뜩해지는 대답이다.

    물론, 해명은 있었다.

     

    -용사는 성녀의 지원이 없으면 암흑마나를 정화하지 못하고, 체내의 암흑마나의 폭주를 잠재우기 위해 조금씩 마나할당량이 늘어나죠.

     

    모포를 머리끝까지 끌어올리는 아이.

    모포를 눈높이까지 내리고 힐끔 훔쳐보는 아이.

    그런 아이가 예고한 ‘암흑마나피폭’에 의한 최후.

     

    -활동한계마나가 줄어들다 보면 신체의 변이를 각오하면서 단기접전으로 암흑마나의 오염을 각오하고 전투를 치르게 되고, 종래에는 너무 많은 암흑마나를 품어서 일상생활조차 힘겹거나 그마저도 불가능해지는 운명…

     

    암흑마나의 제어에 사용하는 마나가 점차 많아지며, 끝내는 활동한계마나가 소실되는 결과.

    그것이 유일한 이유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이상의 비밀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흑마나가 그렇게나 많은 오크노디다.

    마음만 먹으면 용사가 암흑마나에 피폭되고 변이를 일으켜도 오히려 제 뜻대로 다룰 수 있어서 역으로 좋아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런데도 훈련교관을 붙여주고 그녀를 신경 써준 이유는, 신에게 배신당하고 버림받을 결말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어중칠검 히스클리프를 소개받고 더 많은 훈련을 해왔지. 하지만 훈련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어. 결국 내가 용사로 머무르는 이상은…’

     

    언젠가, 유일신 태양의 소페미아가 변심하는 것만으로 간단히 사라질 수 있는 힘이니까.

    단순히 부여받은 힘의 소실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직접 쌓은 기능과 성취, 업적과 영혼의 격이 모조리 저 고고한 유일신에게 빼앗긴다.

    우주적 어둠의 앞에서는 용사라는 작은 태양의 빛 따위는 하등의 가치도 없으니까.

    신들의 대전에서는 오직 신의 힘만이 우선시되니까.

     

    ‘정말로, 대신 죽어주는 사람이네.’

     

    신의 힘은 여전히 함께 한다.

    하지만 오랜 신앙은 깨졌다.

    이슈타르는 용사의 길 너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용사의 정체성 하나만을 지닌 채, 용사라는 이유만으로 악업조차 개의치 않고 서서히 악의 구렁텅이에 발을 들이며, 적과 자신의 차이를 오직 신의 지지 하나로 판가름하게 되는 자.

    선황 혹은 마왕의 토벌과 동시에 신에게 버려진 자신의 인생에서 어떠한 삶의 가치도 찾아내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자.

    신의 힘이 없이도 다시금 우뚝 설 수 있는 자.

    <배드엔딩 – 신에게 버려진 자>를 맞이할 이슈타르가 자신의 점지된 운명으로부터 한 걸음 벗어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행복해질 수 있는 이슈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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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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