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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01

    <801 – 교수들의 흑화를 막는 법(12)>

     

    유일신 태양의 소페미아가 고블린 용사의 힘을 갈취하고 떠나간 뒤.

    집사장은 크게 수가 줄어든 일백차원의 포식자들을 향해 맹공을 가했다.

    고블린 따위에게 동격의 강자가 살해당한 것도 모자라 집사장의 거센 반격과 태양의 소페미아의 등장까지 겪은 포식자들은 이미 사기가 바닥을 친 상황.

     

    [고블린 월드는 대체 무슨 마경이냐…]

    [인간들의 함정에 당했군.]

    [이 기술력… 인간들의 것과 비교하여 뒤처짐이 없다. 인류의 기습에 제대로 당했군.]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그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고블린 월드의 고블린은 더 이상 평범한 고블린이 아니다.

    녹색인간.

    사실상 크기만 다른 인간이나 다름없다.

    태양의 소페미아가 고블린을 자신의 용사로 선택하고 힘을 거두어 간 것은 결정타였다.

     

    [인간들과 고블린의 반목조차도 우리를 유인하기 위한 속임수였나?]

    [정말 대단한 함정이었군… 종의 90% 이상을 날려버리면서까지 설계한 함정이라니, 이건 당해주는 게 예의일 정도야…]

    [오늘의 패배와 굴욕은 잊지 않겠다.]

     

    포식자들은 집사장과 힘을 잃은 고블린 용사, 하늘 위의 가증스러운 태양을 노려보다가 각자의 차원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떠났다.

    외부의 위협이 사라지자 간신히 한숨 돌린 집사장이 힘을 잃은 고블린 용사에게 다가갔다.

     

    “용사여. 포식자들의 말이 사실인가?”

    “틀렸어… 난, 이제… 고브브…”

    “의사소통도 불가능할 정도인가. 꼴이 말이 아니군.”

     

    직전까지의 활약이 무색하게 신에게 버림받은 충격을 떨쳐내지 못하고 반쯤 폐인이 되어버린 것처럼 넋 놓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고블린 용사.

    그 비참한 몰골을 바라보며 집사장은 흔치 않게도 외계종에게 측은지심을 느꼈다.

     

    ‘식욕과 탐욕에 미치지 않은 고블린을 고블린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

     

    인간 중에도 욕망에 미친 족속들은 많다.

    그런 인간들을 두고 흔히 고블린 같은 인간이라고 욕한다면.

    반대로 인간 같은 고블린을 두고 인간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당장 차원의 침략자, 포식자들부터 그러지 않았나.

    그들은 고블린 용사를 명백히 ‘인간’으로 인지했다.

     

    “일어서라. 신의 힘이 없어도 너는 한 세계의 구원자다. 너 하나만을 바라보는 고블린이 아직도 남아있거늘, 네가 주저앉아서 어쩌겠다는 거냐.”

    “난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고브…”

    “못 봐주겠군.”

     

    집사장은 고블린 용사의 멱살을 붙잡아 강제로 들어 올렸다.

     

    “눈 똑바로 떠, 이 새끼야. 네 눈에는 너희 세계 개판 난 꼬라지가 보이지도 않냐?”

     

    용사, 집사장, 포식자.

    강대한 힘을 지닌 존재가 동시다발적으로 격돌하며 세계영역이 서로 충돌했다.

    한 세계에 십여 개가 넘는 섭리가 충돌했는데 그 여파가 온전할 리가 없다.

    벌어진 틈새.

    변형되는 대지.

    언데드가 창궐하는 데스필드에 버금가는 영역재해가 헤아리기도 무서울 정도로 가득하다.

    소위 말하는 ‘던전’이 무수히 늘어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던전의 개체수를 줄이고 나아가 던전을 지키고자 만들어지는 보스몬스터를 격퇴하여 핵을 파괴, 차원의 구멍을 닫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고블린월드의 말로는 침략자들이 남긴 차원의 틈새에 서서히 집어삼켜지며 끝내 테라포밍이 완료되는 피식자의 말로에 도달한다.

     

    “그깟 기능 좀 상실했다고 뭐가 어쨌다는 거냐. 네가 쌓아온 모든 게 전부 신이 준 거냐? 다크프린세스의 비밀병기라면 그 정도는 해줘야지. 한 번 걸었던 길 정도는 다시 걸어보란 말이다!”

    “괜한 참견… 당신도 침략자일 뿐인데…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끼는 거야 고브…?”

    “양심? 틀렸다. 내가 느끼는 건 책임감이다. 한 세계의 수호자라면 자신이 살려왔던 생명들의 믿음과 기대를 내팽개쳐서는 안 된다. 세계의 수호자이기에 네가 얻을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은 달게 받고 현실은 쓰니까 외면하다니. 그딴 형평 좋은 편식이나 어리광은 집어치우란 말이다!”

     

    집사장이 느끼는 분노는 고블린 용사만을 향한 분노가 아니었다.

    멋대로 책무를 벗어던지고 덜컥 죽어버린 이사장을 향한 묵은 감정이기도 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해져야지. 힘을 잃었으면 지혜를 쥐어 짜내서라도 다시 올라서야지! 인류의 어둠의 지배자는 그것을 해냈다. 수를 읽히고 꺾여도 몇 번이고 새로운 수를 모색하고 일어서며 다시금 싸웠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올라서서 내 구역만큼은 지킨다.

    이사장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지만 세계를 지키기 위한 독심만큼은 진짜였다.

     

    “멈춰! 당장 그녀를 놔줘!”

    “…용사? 소페미아도 참 너무하군. 인간 알기를 얼마나 우습게 알았으면 자신의 권속이 있는 곳에서 그딴 짓을 대놓고 저지른 건지.”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야.”

     

    힘을 잃은 타종족 용사에게 인간족 용사가 베푸는 호의라.

    동변상련의 정이라도 느꼈나?

    아니면 자신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돌보고 싶나?

    많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집사장은 그 모든 의문을 입 안으로 삼켰다.

    신비수집가의 안목을 배제하더라도 알 수 있다.

    용사를 자극하는 행위는 전쟁을 시작하자는 선포나 다름없음을.

     

    “다크프린세스에게는 이번에도 빚을 졌지. 오늘 일은 눈감아주겠지만… 중간계에서 다시 마주칠 때도 오늘처럼 좋게 넘어가리라 기대하지는 마라.”

     

    집사장에게는 자부심과 사명감이 있다.

    용사의 힘 따위가 없어도 중간계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의 자부심이.

    이사장의 뒤를 이어 세계의 음지에서 일백차원의 침공을 막아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갔나.”

     

    집사장이 떠나자, 용사는 내심 안도했다.

    수많은 신비를 다루며 포식자와도 대등한 결전을 벌이던 집사장의 강함은 먼발치에서도 감지될 정도로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단순한 신비의 강함만이 아니다.

    큰 사명을 짊어진 자 특유의 기백.

    용사의 기백에 버금가는 무언가가 그에게는 있었다.

    고블린 용사에게서는 더는 찾아볼 수 없는 무언가가.

     

    “고블린 용사. 너, 괜찮아?”

    “당신은… 그 기운은… 인간 용사냐 고브…?”

    “맞아.”

     

    고블린 용사의 얼굴에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의 감정이 떠올랐다.

     

    “우린 끝났어 고브. 신조차 우리 편이 아니라면 이 혹독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없어 고브…”

    “틀렸어. 인간은 신이 없어도 살아남을 수 있어.”

    “입에 발린 말은 아직 배신당하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말이야 고브…”

     

    고블린 용사의 상심은 이해한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신을 믿는 건 아니다.

     

    “증거가 있어. 너희 고블린과 우리 인간들이 신이 없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증거가.”

    “보여줘 고브.”

    “티토. 올라와. 인류말살포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아. 중계기도 위성도 전부 포식자들에게 파괴당했어.”

     

    잠시 후, 돌무더기가 들썩거리더니 태양을 연상토록 하는 눈부신 조명이 불쑥 튀어나왔다.

    깜짝 놀란 고블린 용사가 뒷걸음질을 치며 눈을 돌리니, 지면으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작고 소심하게 돌무더기를 파헤치고 올라온 그림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보더니, 고블린 용사를 발견하고는 와다다 달려왔다.

    고블린 용사가 기겁하고 뒷걸음질 쳤지만 눈부신 조명 탓에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느라 그만 그 자리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손으로 바닥을 짚고 엉덩이로 땅을 밀며 도망가던 고블린 용사는 자신을 와락 껴안는 작은 태양의 주인의 행동에 기겁했다.

     

    “이거 놔 고브!”

    “괜찮아. 엄마 왔어!”

    “인간이 어떻게 고블린의 엄마야 고브!”

     

    아등바등하며 티토소가의 품에서 벗어나려던 용사고브는 알 수 없는 안도감과 영혼의 충만감이 상처받은 자신의 영혼을 포근하게 감싸는 것을 느꼈다.

     

    “이런 건 이상해 고브. 분명 처음 보는 인간인데…”

    “처음이 아니야! 오크노디가 밤의 스승이 되었을 때, 가끔 나도 가르침을 주었다고?”

     

    티토소가는 자신이 한 일을 숨기거나 겸손을 떠는 성격이 아니었다.

    한껏 신이 나서 영혼도화지를 펼치고 이쁘고 귀여운 그림을 잔뜩 그리며 고블린 종족의 미래를 바꾸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임에도 용사고브는 그 말을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했다.

    고블린들의 영혼을 새로이 꽃피운 화가.

    어둠만이 가득했던 종족에 문명과 희망, 지성인으로서의 미래를 가져다준 은인 티토소가를 향한 본능적인 감사의 마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유일신이 네게 힘을 하사했다면 티토소가는 너희에게 미래를 선사했어. 짐승이나 다름없던 저열한 욕망을 벗어나 인간의 삶을 살 수 있게 허락해 준 그녀의 호의까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말할 작정이야?”

     

    용사고브의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그렇지 않아. 당신이 없었다면 우리는… 인간다운 삶은 꿈도 꿀 수 없었어 고브…!”

    “울지마 애기야! 이제 괜찮아!”

     

    이슈타르의 눈에는 큰 아기가 작은 아기를 돌보는 모습으로 보였지만, 티토소가의 상냥함은 고블린 용사에게 분명한 위로가 되었다.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며 진정이 된 고블린 용사에게 티토소가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같이 돌아가자!”

    “가다니, 어디를 말하는 거야 고브…?”

    “중간계!”

     

    이슈타르가 깜짝 놀랐다.

     

    “그래도 되는 거야? 우린 교수들을 데리러 온 거였잖아.”

    “정확히는 잘 꼬드겨서 데리고 오라고 했지! 계약서는 썼지만 교수님들이 진심으로 우리를 위해서 협력할 것 같지는 않잖아? 게다가 교수 일을 꼭 중간계 아카데미에서만 해야 하는 건 아니고!”

    “너 그럼 설마…”

     

    티토소가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기프트 아카데미 고블린월드 분교를 만들면 고블린월드의 교수가 될 수 있어!”

     

    1티어 고블린들은 용사고브와 함께 중간계로 돌아가고 교수님들은 남아서 열심히 고블린을 가르친다.

    차원문 생성이 가능하다는 부분에서 중간계 복귀의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교수들은 정말 이 악물고 자신들의 지식과 기술을 고블린들에게 아낌없이 전수하며 자신들의 협력의사가 얼마나 진지한지를 증명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중간계에 데려가 줄지도 모르니까!

    흑화하려는 기미만 보였다가는 평생 고블린월드의 원주민으로 전락할 처지이니 감히 못된 마음을 품을 수도 없는 기가 막힌 대처법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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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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