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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03

    <803 – 뉴비 받아라(2)>

     

    재단공방전과 고블린월드 분교캠퍼스 설립이라는 커다란 이벤트가 지나가자 981기 학생들이 오래도록 외면했던 불편한 진실이 봄철 새싹처럼 꿈틀거리며 지면 위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학사일정 정상화.

    정상영업 합니다.

     

    강의 시작을 알리는 아카데미 공지였다.

     

    “진짜로? 우리가 막 그냥 어? 연합군에서 재단 사병들도 잡고, 어? 각국 해상스파이 군함도 잡고, 어? 나라를 위해서 그런 공훈도 세웠는데 일개 학생으로 돌아가야 해?”

    “솔직히 이 정도면 명예졸업 시켜줘라.”

    “공부하기 싫어싫어싫어 학점 모으기 싫어싫어싫어!”

    “등교 안 해!”

    “진짜 가기 싫다…”

     

    학생들은 학부와 출신 지역에 상관없이 모두가 같은 얼굴로 똑같은 시름이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그럴 만도 했다.

    연합군의 일원으로 인류를 위한 거대한 싸움에 참전해서 공훈을 세운 나.

    세계를 수호하는 연합군의 일원이었던 나.

    그런 내가 하루아침에 졸업과 학점에 허덕이며 공부와 과제에 치여 하루하루 피말리는 기프트 아카데미 학생으로 돌아가야 한다.

    들떴던 기분과 현실의 낙차가 롤러코스트나 스카이다이빙 못지않게 심했다.

     

    “아이 참, 티토! 학사일정도 시작되는데 또 방구석에서 미적거리고 있으면 어떡해?”

     

    티토소가 역시 그런 강의우울증에 시달리는 학생 중의 한 명이었다.

    기껏 열심히 키운 캐릭터가 <게으름>과 <강의울렁증>에 꼼짝 못 하는 모습을 보면 복장이 터지는 것이 당연지사!

    나는 침실에서 못 벗어나는 딸의 등짝을 때리는 엄마의 심정으로 티토소가의 등짝을 찰싹찰싹 때렸다.

     

    “으앙! 일어날 테니까 그만 때려!”

     

    강당으로 가는 길은 졸린 눈에 퀭한 눈, 우울한 눈을 한 학생들로 가득했다.

    981기만 그런 게 아니라 나랑 같이 3학년 강의 듣는 980기 선배들도, 휴학 때리고 돌아온 더 위 기수의 선배들도 죄다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교장님 보는데 긴장 좀 해!”

    “치. 그치만 의욕이 안 나는걸…. 즈앙도 그렇지 않아?”

    “딱히. 오히려 손이 근질거려.”

     

    즈앙은 주변의 다른 학생들을 의식해서 여우가면을 꾹 눌러쓴 채로 말했다.

     

    “이 이상 격차가 벌어지고 싶지는 않으니까.”

    “헤에. 즈앙은 기운이 넘치는구나!”

    “반대로 오크노디는 왜 그렇게까지 신이 난 거야?”

     

    하긴 나도 학생인데 혼자만 하이텐션이니 동기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만도 하겠구나.

     

    “그야 올해부터는 ‘학생회’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벨벳 선배가 권유했던 그 학생회?”

     

    즈앙이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

     

    “학생회 그거 거품 아니야? 이번 연합군도 981기가 주축이었지, 학생회가 한 건 딱히 없었잖아.”

    “헉. 즈앙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뭐를?”

    “각국의 기사단이니 마법병단이니 하는 전력들이 왜 그렇게 순순히 협력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전부 기프트 아카데미 졸업생들이 학생회에 호응해서 움직이고 목소리를 내어서 각국의 군부를 압박한 결과물이었어.”

    “…진짜로?”

    “응응. 진짜로.”

     

    학생회의 영향력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크게 발현된다.

    당장 세계 각지에서 가져오는 강의재료나 인적자원들이 행정교관들의 협조공문과 강제청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학생회는 아카데미의 물자나 지식 등을 졸업생이나 휴학생에게 내어주고, 그들은 학생회가 원하는 결과물을 위로 올려보낸다.

    민관협치의 정치처럼 국제 싱크탱크, 각 분야의 전문 스텝을 통해 정책을 입안하고 실현 시키는 것이 학생회의 임무였다.

     

    “근데 우린 왜 아무것도 몰랐어? 학생회장을 뽑는다는 말만 들렸지, 투표를 한 적도 없잖아.”

    “투표하기 전에 사고가 터져서 그래! 재단파파 때문에 다들 이래저래 바빴잖아?”

     

    물론 진짜 오크노디인 날 가짜 취급하고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며 사람 서럽게 만든 일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언젠가 복수할 테닷!

     

    “오크노디. 방금 굉장히 복수를 다짐하는 표정이네.”

    “헉. 티 났어?”

     

    아무튼 대강당에 모인 우리는 입학식 이래로 정말 오랜만에 전교생이 한자리에 모이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재단공방전을 통해 체급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 지젤과 암흑상단 소속 학생들은 981기의 실세로 급부상했다.

     

    “저기 봐. 저 키 큰 원숭이수인. 혁명군 대장군 손오천 맞지?”

    “이번 재단공방전에서도 엄청난 기백으로 재단측 고수의 공격타이밍을 빼앗아서 함포사격에 맞고 쓰러지게 만들었대.”

    “창 한 번 휘두르지도 않고 그런 활약을?”

     

    근엄한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지만 진땀을 흘리는 것이 빤히 느껴지는 손오천.

     

    “그러면 앞치마를 두르고 프라이팬에 중식칼을 든 저 여자도 유명인이야?”

    “혁명군 괴식숙수 이사벨. 저 여자는 뭘 했지?”

    “몰라. 아무튼 뭔가 했겠지.”

     

    마찬가지로 딱히 한 건 없지만 암흑상단의 임원급 강자로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이사벨.

     

    “저기 봐. 암흑상단의 비밀호위 여우가면 즈앙이야.”

    “비밀호위 맞아? 이름까지 다 알려졌는데?”

    “덤비면 어떻게 처맞았는지도 모르게 기절하거나 때려눕혀진대.”

    “과연, 그래서 비밀호위인가.”

    “면전에서 맞고도 이해할 수 없는 펀치를 구사할 수 있다면 비밀호위가 되는 건가! 격투가의 최상위클래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군.”

    “…”

     

    상급암살자에서 얼떨결에 격투가최상위 클래스로 전직 당한 비밀호위 즈앙.

     

    “즈앙. 비밀호위가 된 기분은 어때?”

    “시끄러. 빛의 운반자.”

    “으앙, 하지 마!”

    “빛의 성녀. 혁명군 성녀. 유일신의 강림체.”

    “으앙, 잘못했어!”

     

    괜히 장난 한번 걸었다가 배는 더 수치스러운 칭호들로 두들겨 맞은 티토소가가 합죽이가 되었다.

    다른 학생들도 그리 오래 수군거리지는 못했다.

    단상 위에 교장님이 댑따 큰 용대가리를 들이밀며 나타났기 때문이다.

     

    [핏덩이들아.]

     

    “…”

     

    [학사일정이 한동안 엉망이 되어서 한 학기를 날먹했다고 신들 났었냐?]

     

    대충 들어도 알 수 있다.

    드래곤 교장님이 못된 심보를 부리려고 하고 있음을.

     

    [학생회장 선출, 대운동회, 기말고사. 다 흐지부지 날먹할 수 있을 줄 알았지?]

     

    날먹할 수 없는 거야?!

    티토소가가 조명대 밝기 조절 기능이 고장 나서 강의실 착석금지를 당한 것처럼 충격에 휩싸였다.

     

    [그런 날먹은 없다 핏덩이들아]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날먹은 허락하지 않는다!!!]

     

    오늘 금 일만 톤을 내놓지 않으면 왕궁을 불태워버리겠다는 동화속 사악한 악룡처럼 선포하는 교장의 못된 심보에 한 4학년 선배가 엄청난 용기를 발휘해서 소리쳤다.

     

    “왜, 대체 왜 그렇게까지 못되게 구는 겁니까! 날먹 좀 할 수도 있잖아요. 교수님들도 교장님도 편하게 하면 좋잖아요!”

     

    [이유는 간단하다. 너희가 고생한다고 내가 힘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

     

    너무나도 상쾌할 정도로 쓰레기 같은 대답에 애써 용기를 발휘한 4학년 선배조차 말문이 막혔다.

     

    “이미 강의일정이 많이 어긋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육과정 정상화는 어떻게 진행하실 겁니까?”

     

    다음으로 질문에 나선 것은 벨벳 선배였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의자에 앉아서 편하게 질문하는 모습이 부러워서 나도 배낭배낭에서 냅다 개인의자를 꺼내 앉았다.

     

    [중간계의 시간으로는 아무리 보강을 쑤셔 넣어도 남은 일수로는 보강을 다 채울 수가 없지. 그러니 중간계 밖에서 강의를 진행한다.]

    “?!”

    [너희는 오늘부터 신나게 짼 강의일수를 모두 채울 때까지 정령계에서 강의를 듣는다는 말이다.]

     

    고학년들일수록 충격은 더 컸다.

    정령이 얼마나 성격이 개차반에 인간 알기를 우습게 아는 놈들인지 알기 때문이다.

    정령 하면 흔히 무슨 도롱뇽에 이파리 든 미니 티토소가 물인형 따위를 생각하기 쉬운데 우리 일백차원 정령들은 막대한 마나코스트가 기본이다.

    부족한 마나를 충족하는 대가로 매일 사람 한 명을 울려서 눈물을 바치거나 속에 천불이 터지도록 만들어서 개빡침의 불길을 바쳐야 한다.

    당연히 그딴 짓을 하고 다니면 주변에 완전 민폐가 오지기 때문에 반사회성 인격장애 하나쯤은 기본으로 달고 다니고, 현대사회에서 배척되어 점점 더 처지가 어렵고 힘들어진다.

     

    “그럼 교수님들은 다 정령계약자야? 학생들 천불 터지게 만들고 눈물도 흘리게 만들잖아.”

     

    티토소가의 의문대로 기프트 아카데미 교수들은 정령계약에 최적화된 인재들이다.

    애를 빡치거나 울게 만드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어른들인데 뭐가 힘들겠어?

     

    “실제로 정령계약 하신 분도 있어!”

    “누구?”

    “위어드 교수님?”

     

    주변에서 나와 티토소가의 잡담을 엿듣던 모두가 탄식을 금치 못했다.

    솔직히 그분 밑의 학생들만큼 불쌍한 학생은 기프트 아카데미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명쯤은 우리 교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야! 라고 외칠 법도 한데 모두가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는 점에서 위어드 교수의 인망을 알 수 있다.

     

    “그럼 잘 다녀와!”

    “응? 오크노디는 왜 안 가?”

     

    차원문을 향해 줄지어 들어가는 친구들을 배웅하는 내 모습에 티토소가가 어리둥절했다.

     

    “난 아카데미 남아서 강의 다 들었는데?”

    “아아앗?! 근데 나도 아카데미에 남았는데 왜 나만 강의를 못 들은 거야?!”

    “교수님들한테 강의 시켜달라고 안 졸랐으니깐?”

    “!!”

     

    보충 교육은 후환을 생각할 줄 모르는 뉴비들이나 듣는 법!

     

    “강의 자체가 휴강이라서 못 들은 강의는?”

    “포인트로 출석일수 살 건데?”

     

    즈앙은 차원문과 나를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다가 마법시계를 풀어 단말기에 댔다.

     

    삑.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즈앙?!”

    “정령계 특강은 좀 아닌 듯.”

     

    지젤 밑에서 열심히 모은 포인트로 정령계 특강을 합법적으로 째버린 즈앙!

    티토소가는 홀로 쓸쓸하게 조명대를 끌며 사다코 교수님의 특강을 들으러 차원문의 저편으로 떠날 뻔하다가 즈앙이 뒤늦게 대신 결제를 해줘서 살았다.

     

    “즈앙은 착하네! 그걸 대신 내주고.”

    “4단계 울음소리를 개발해서 돌아올까 무서웠어.”

    “…그런 억까패턴이!”

     

    하지만 진짜 억까패턴은 따로 있었다.

    사다코 교수님 강의 말고도 보충강의가 많았던 티토소가가 결국 다른 보충강의를 들으러 떠나야만 했던 것이다…

    즈앙도 사다코 교수님 강의면 모를까, 다른 강의까지 포인트를 빌려줄 마음은 없었는지 쿨하게 외면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가짜광기 – 재단공방전
    진짜광기 – 학사일정 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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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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