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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06

    <806 – 뉴비 받아라(5)>

     

    카이조스키 소장이 처음 기프트 아카데미에 발을 들일 적에는 악룡에게 소원을 빌어 나라 하나를 멸망시켰다는 끔찍한 죄책감과 전쟁을 포기하지 못하는 악의 왕국 밀레니엄을 없앰으로써 비극의 연쇄를 막아냈다는 성취감이 공존했다.

     

    “난 옳은 일을 했어.”

    “누군가 밀레니엄 왕국을 막지 않았으면 더 많은 사람이 죽었을 거야.”

    “놈들은 인공배양기술의 군사무기화를 꾀했다고. 전도유망한 젊은이들의 청춘을 바친 기술, 과학, 마도의 결정체가 짓밟혔을 거란 말이다!”

     

    카이조스키 소장의 열변을 듣는 조교들은 ‘아 그러시구나’, 하는 표정과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노망이 났나 같은 소릴 몇 번 하는 거야’ 따위의 지루함으로 가득했다.

    자신의 행위의 당위성을 찾지 않으면 죄책감을 이겨낼 수 없는 노인의 발악 따위, 젊은이들에게는 듣고 듣고 또 들은 지루한 소리일 뿐이었다.

     

    호문쿨루스 제조시설.

    이 시설의 소인들은 실험용으로 태어나 다양한 시험에 이용당하다가 죽는다.

     

    카이조스키 소장이 악룡과 계약을 맺어버린 그날부터 정해진 운명이다.

    태어나고, 실험당하고, 죽는다.

    멸망을 바란 대가로 오직 살해당하기 위해 태어나는 생명들을 만든다.

     

    물론 보람은 있을지도 모른다.

    전격마법이 인체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히는 최적의 술식과 강도를 연구하기 위해서.

    역으로 숨이 멎은 사람의 심장에 충격을 주어서 소생시키는 심장충격마법을 연구하기 위해서.

     

    살상용으로도, 비살상용으로도.

    호문쿨루스는 훌륭한 재료였다.

     

    “소장님. 교수님의 지시입니다. 이제 그만 호문쿨루스 윤리개정안을 통과시키라고 하십니다.”

    “절대로 안 되네!! 자네들에게는 양심도 없나? 오직 죽음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에게 감각을 더욱 활성화시키는 것은 더한 고통을 주는 잔인한 짓임을 어찌 모르는가!!”

    “하아, 그 가식 좀 집어치우시면 안 됩니까?”

    “뭐, 뭐라고?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이왕 말한 김에 확실히 말해두죠. 소장님이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건 알겠는데, 그건 소장님이 한 계약 아닙니까? 무슨 연구를 하던 본인이 감수하셔야죠.”

     

    조교의 폭언에 카이조스키 소장은 엄청난 분노에 휩싸였다.

     

    “폴. 에이미. 자네들도 제임스와 같은 생각인가?”

     

    제임스의 충격적인 발언에도 항상 따분한 얼굴로 카이조스키 소장의 말을 흘려듣던 두 학생이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파 교수의 아래에서 제국의 미래를 위해 아카데미만 금기기술을 연구할 수는 없다며 실험보조를 허가받은 조교들.

    장차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제국만의 금기연구소를 설립하거나 규제완화 이후에는 본격적인 호문쿨루스 양산에도 활약할 수 있는 생명마도공학의 선도자들.

    그런 젊은이들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죄책감은 당신의 것.

    우리가 함께 죄책감을 느낄 이유는 없다고.

    오히려 초조함마저도 보였다.

    이들은 보지 않았다.

    호문쿨루스가 받을 고통을.

    폐기처분으로 끝나는 그들의 비참한 현실을.

    다음 재료의 제작을 위해 재활용되는 참혹한 과정을.

    자신들의 성과를 더 내기 위해서.

    제국의 이익에 공헌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일신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

     

    “제임스. 폴. 에이미. 바쁜 젊은이들을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네. 전도유망한 젊은이들의 앞길을 막아서는 안 되겠지. 윤리개정안에는 더 이상 반대하지 않을 거라고 교수에게도 전해주게.”

     

    세 학생들의 눈에서 반항기와 적개심이 사라졌다.

     

    “고마워요, 소장님!”

    “민트초코 가문의 힘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만 하십시오. 저희 가문이 소장님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이번에 4학년들이 만든 초월각성의 비약을 마시면 일정 시간 동안 무작위 극의 하나를 각성한다는데 같이 마시러 가보실래요?”

     

    살갑게 대하는 조교들을 허허 웃는 얼굴로 대하는 카이조스키 소장.

    그의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어째서 족쇄가… 으윽.”

    “폴? 이거 뭐야? 우리 어디 있는 거야?”

    “분명 우린 호문쿨루스 윤리개정안 통과를 축하하는 축하연을… 소장님이 가져온 양주를 마시고… 양주? 그래, 양주. 그 양주를 마시고 기절했어!”

    “제임스, 폴! 도와줘!”

    “틀렸어. 우리도 묶였다고. 폴, 너 마나 움직여?”

    “틀렸어. 마나독이야. 전혀 움직이지 않아!”

     

    세 조교는 실험대 위에 족쇄에 묶인 채로 깨어났다.

    호문쿨루스 윤리개정안의 통과를 축하하기 위한 축하연은 카이조스키 소장의 복수를 위한 함정이었다.

     

    “소장님, 우리 말로 합시다.”

    “저희에게 털끝만큼이라도 손을 댔다간 가문의 어르신들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저희가 잘못했어요. 네? 제발 이거 풀어주세요.”

     

    팟. 팟. 팟.

    실험실에 조명이 들어왔다.

    세 사람을 등지고 선 카이조스키 소장의 뒤로 익숙한 마도장치들이 눈에 들어왔다.

     

    “소, 소장님. 그건 설마… <의식전이장치>입니까?”

    “지금 우리한테 뭘 하려는 겁니까!!”

    “엄마, 엄마아아!!”

     

    소장은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말했다.

     

    “자네들의 이야기는 이 늙은이에게 감동을 주었네. 인류의 미래를 위한 연구에 늙은이가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문제라면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 되지.”

    “그거 아는가? 실험체의 인권 따위는 개무시하는 조교들의 의식을 보관, 복제하여 호문쿨루스에게 삽입하면 이런 나라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네.”

    “유아수준의 호문쿨루스 지능도 급격히 상승시킬 수 있지. 보다 양질의 데이터도 뽑아낼 수 있고. 교수는 발작했지만 교장과 황제가 모두 이를 허락했으니, 귀족파가 일으킬 아카데미 내외의 소란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잠들 걸세.”

     

    단지, 그의 상냥함은 더 이상 고통받을 미성숙한 호문쿨루스의 자아들에게만 향했다.

    어렴풋한 의식으로 고통받고 비명을 지르며 엉엉 울고 몸부림치는 가엾은 것들 대신, 그것들을 빨리 죽지 않아서 퇴근을 못 한다고 투덜거리는 악마 같은 조교들이 대신 고통받는다.

    그런 현실을 향한 안도와 기쁨이었다.

     

    “잘 가게. 아니, 곧 보세. 호문쿨루스들의 실험구역에서.”

     

    조교들의 의식은 보관장치에 저장됐다.

    이제 호문쿨루스가 제작되는 과정에는 보관장치의 의식을 복제, 추출하여 호문쿨루스에 삽입하는 의식부여과정이 추가되었다.

    이름 없는 호문쿨루스들에게 이름이 생겼다.

    제임스1호.

    폴1호.

    에이미1호.

    마나연공법의 지식을 떠올리며 마나를 쌓고, 마나연단법의 지식을 떠올리며 신체를 강화하며 호문쿨루스의 수명도 늘어났다.

    호문쿨루스는 전처럼 너무 빠르게 죽지도 않았고, 더 강도 높은 실험도 견딜 수 있었다.

    덜컥 죽어버려도 상관없다.

    대신할 복제체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으니까.

     

    “소장, 자네도 인간종치고는 꽤 오래 살았군. 연구는 그만해도 좋네. 교장님께서 당신의 은퇴를 허락했네. 기프트 아일랜드를 벗어날 수는 없지만 교직원 생활구역에서 여생을 편히 즐기게.”

    “아니요. 저는 실험을 끝낼 수 없습니다. 누구도 다시는 저와 같은 죄악을, 저들과 같은 죄악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새로운 <윤리개정안>을 제출하고 종신근무를 이어나갈 겁니다.”

    “마, 맙소사… 미친 건가? 이런 끔찍한 개정안을…”

     

    소장은 의식전이장치에 자신의 영혼을 전이시켜 고통받아 마땅한 영혼만이 호문쿨루스의 육신에 영혼이 삽입되도록 감독, 전이를 허가하는 절차를 수행하도록 개정안을 제출했다.

    당연히 카이조스키는 차디찬 기계 속에 갇힌 채로 잔혹한 실험의 승인을 내리는 업무만을 반복해야 한다.

    앞으로 10년, 20년, 혹은 100년 이상까지도.

     

    “교수. 내가 떠나면 그 악마 같은 아이들의 영혼을 해방시킬 작정임을 내가 모를 줄 알았나?”

    “!!”

    “자네의 욕심이 제자들을 파멸시킨 걸세. 그리고 앞으로도 평생 구원받지 못하겠지. 이게 늙고 초라한, 죄책감과 아집만이 남은 늙은이가 할 수 있는 최후의 복수라네.”

     

    조교들의 배후에서 윤리개정안의 통과를 강요하며 압박했던 진정한 원수마저도 카이조스키의 육신을 초월하는 광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카이조스키는 교장의 허가를 얻었고, 의식전이장치를 자신의 새로운 육신으로 삼아 깃들었다.

     

    시간은 흘렀다.

    10년, 20년, 100년.

    나아가 500년을.

     

    500년을 되풀이한 복수.

    무엇을 위한 복수인지조차도 흐릿해지며 의식도 의지도 상실해 가는 나날.

    이제는 기계적인 반복이 되어버린 일상에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잠깐 호문쿨루스 제작설비랑 의식전이장치 좀 빌려도 될까요?”

     

    미래가 기대되는 올망졸망한 소녀와 그 손에 들린 소녀의 영혼이 깃든 불길한 모자, 눈앞에 존재함에도 어딘가 아득히 먼 곳에 있는 것처럼 흐릿한 집사복의 노인까지.

     

    “자네들은 누구인가…”

     

    한없이 수상한 삼인조의 필두 오크노디가 말했다.

     

    “언니 몸 만들어 주러 온 착한 아이요?”

    “그런가… 착한 아이에게는 상을 줘야겠지…”

     

    분위기만 보면 당장이라도 몸을 빼앗고 탈출할 사악한 악당처럼 들리는 소장이 순순히 장치를 가동하며 협력하였다.

    제임스. 폴. 에이미.

    그 밖의 몇 가지 이름들.

    카이조스키 소장이 영원한 형벌을 허락한 죄인들의 육신을 본뜬 소형 호문쿨루스들의 신체정보가 연동되는 계기판에 떠올랐다.

     

    “어떤 몸을 원하는가…”

     

    소장은 정말로 협력할 생각이 있었다.

    그가 벌을 준 이들은 모두 사악한 행보를 걸어온 악종들이었다.

    착한 아이를 괴롭힐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전부 별론데 커스터마이징하면 안 돼요? 젤 좋은 재료로다가!”

    “욕심이 과하구나…”

    “대신에 소원이 있으면 하나 들어드릴게요! 혹시 거기서 나오고 싶으세요?”

     

    그런데 이 아이, 그저 언니를 구하고 싶을뿐인 기특하기만 한 무능력한 아이가 아니었다.

     

    “저 이런 것도 할 수 있음!”

     

    핏빛 바이올린에 손가락을 쿡 찔러넣은 아이가 비명과 절규를 내지르는 영혼 하나를 바이올린 밖으로 끄집어냈다가 도로 집어넣었다.

     

    “만드는 김에 할아버지 몸도 만들어 드릴까요?”

     

    느껴지는 것은 순수한 호의.

    그러나 인간의 영혼을 유린하고 고통을 주는 것은 착한 아이가 아니다.

    어디를 어떻게 봐도 사악한 아이였다.

    제임스. 폴. 에이미.

    그 외의 모든 아이들을 합한 것보다도 더 사악할지도 모르는 아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넘나 무서운 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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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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