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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06

        

         

       “끌려간 망자에게 노잣돈이 무어 필요가 있겠습니까? 다만 그 길이 심심하고 이어질 고통이 괴로울 것이 자명한바 함께 명부에서 살아갈 이들을 보내옵나니 그들을 그 곁에 묻어 마땅히 벗으로 삼게 해주소서.”

         

       “벗으로 삼게 해주소서.”

         

       빈민들은 불길한 말과 함께 천천히 품 안에서 인형을 꺼내기 시작한다.

       그 인형들의 생김새는 제각각.

       그들은 사람 형태라는 것을 제외하면 그 어떠한 공통점도 찾아볼 수 없는 싸구려 인형들을 천천히 땅속에 묻혀있는 인형의 옆에 놓았고, 그러고는 다시 한번 절을 두 번 하고는 손으로 흙을 그러모아 그 위를 덮었다.

         

       “….”

         

       “….”

         

       “….”

         

       장례가 끝난 뒤 찾아오는 것은 침묵.

       천천히 타들어 가는 향은 어둠 속에 새빨간 점을 찍으면서 제 존재를 알리려 발악하지만, 피어나던 하얀 연기 한 줄기는 이제는 제 수명이 끝나간다는 것을 알리듯 점점 가늘어지다가 이윽고 하얀 재가 되어서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숨을 쉬는 작은 불꽃이 점멸하는 것은 회광반조(回光返照)를 의미하는 것인가.

         

       그렇게 향 하나에 하나의 장례가 끝났다.

         

       하지만 사람이 여럿이거늘 어찌 하나로 끝날 수 있겠는가?

       하나의 사람에 하나의 죽음만이 찾아오지는 아니하는 법이며, 죽음이 익숙해지기 전까지 그것은 무자비하게 칼질하여 사람을 외로움으로 몰아넣는 법. 하나의 사람에 하나의 외로움만이 자리잡을 일은 없는 법이다….

         

       “….”

         

       “….”

         

       “….”

         

       빈민들의 품에서 또 하나의 인형이 꺼내진다.

         

       그러고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핏물에 붓을 다시 한번 푹 담그고, 그 위에 또 다른 이름을 쓴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과는 완전한 타인의 이름.

       어쩌면 그들과 은원으로 얽혀있을지도 모르는 어떠한 사람의 이름.

         

       “염라께 고합니다. 고인께서는 모월 모일 자시 명부(名簿)에 기록된 대로 허락된 수명을 마치고 때가 되어 무상야(無常爷) 사필안(謝必安)과 무상야(無常爷) 범무구(范無救)를 뵈어 명부에 인도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향 하나가 또 타오르며 다시금 제사는 시작된다.

         

       …

       …

       …

         

       시간이 흘렀다.

         

       그릇에 담긴 피가 확 줄어들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김은 사라지고 싸늘하게 식어 굳어가는 핏물 한 줌이 남았다. 핏물에 담기기를 반복한 붓은 딱딱하게 굳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빈민들이 가져온 인형은 전부 땅속에 파묻혔다.

         

       사람의 이름이 쓰인 인형.

       그 옆에 묻힌 수많은 인형.

         

       봉분도 없이 파묻힌 인형들은 마치 제 무덤이 도굴당하는 것이 두려워 위치를 숨기고자 하였던 권력자의 능묘와 닮아있었고, 재물은 없으되 그 안에 순장으로 같이 파묻힌 인형들이 있으니 과연 하늘의 선택을 받지 아니하고서는 어찌 저런 무덤을 가질 수 있겠는가?

       감히 어떠한 자가 하늘의 선택을 받지 않고도 저리 많은 시종을 끌고 저승으로 가려고 하겠는가?

         

       이것은 제단이다.

       이것은 무덤이다.

         

       이것은 저주의 길을 닦기 위한 의식이다.

         

         

         

        * * *

         

         

         

       순장(殉葬)의 습속을 한 자는 멸문을 면치 못할 것이며, 사람과 함께 묻힌 자는 혼백마저 편치 못할 것이며, 인형(俑)을 만든 사람은 후손이 없으리라.

         

       공자왈(孔子曰) 시작용자 기무후호(始作俑者 其無後乎).

       공자께서 이르시기를 처음으로 사람 인형(俑)을 만든 사람은 후사가 없을 것이라 하였다.

         

       사람의 죽음은 필히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인데 어찌 그 죽음을 애도한답시고 산 사람들을 같이 파묻는 것이 올바른 습속이라 할 수 있겠는가? 궁녀와 궁인들을 겁박하여 목을 매어 죽게 만들고, 약을 먹여 잠재운 뒤 수은을 퍼부어 죽이고, 때로는 능묘에 속여 들여보낸 뒤 그곳에서 산채로 굶어 죽게 만들기도 하는 짓을 행하고 어찌 만세토록 무궁한 영광을 누리기를 바라겠느냐?

         

       함께 따라 죽은 이는 사후세계에서 그 주인을 갈기갈기 찢고 고문하기를 즐기며 영원토록 고통을 줄 것이요, 목을 매단 궁녀와 궁인들은 제 목에 휘감긴 무명천과 비단을 들고 제 주인의 목을 조르고 그 후손이 올 때마다 하나하나 매달 것이요, 몸에 수은이 주입되어 시체가 채 썩지도 않아 안심하고 안식을 취하지도 못하게 되어버린 자들은 망자가 되었음에도 그 원한을 잊지 아니하여 후세에도 그 후세에도 그 원한을 갚기 위하여 움직일 것인즉 능묘 주인의 가문은 멸문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아사(餓死)한 이들은 아귀가 되어 제 주인의 살점을 뜯어먹을 것이니, 백이 세상에 흩뿌려지는 것조차 아까워 그것을 남김없이 뜯어먹고는 혼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붙잡고는 억겁(億劫)의 시간 동안 뜯어먹히는 고통을 느끼게 할 것이다.

         

       사람 대신에 인형을 넣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다.

       이 흉험하고 흉참한 습속을 없애지는 못할망정 그저 완화를 시키며 후세에 언제든 부활할 수 있도록 여지를 줘놓고는 어찌 좋은 말을 듣기를 기대하겠느냐? 없앨 기회가 있음에도 그것을 뒤로 미루었으니, 후세에 그것이 부활한다고 하면 그것이 과연 누구의 탓이겠느냐?

       없애지는 못할망정 사람 대신에 인형(俑)을 빚어 제 무덤에 넣고는 그것의 시중을 받으며 편히 사후의 삶을 누리려 하였던 자, 죽어서도 권력을 놓지 못하려는 자, 죽어 땅속에 묻혔음에도 아직도 하늘의 선택과 가호를 받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음에 하늘이 과연 노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사람 인형(俑)을 만든 사람은 후사가 없으리라.

       사람 인형(俑)과 묻힌 사람은 후사가 없으리라.

       순장(殉葬)을 흉내라도 내려는 사람은 후사가 없으리라.

         

         

         

         

        * * *

         

         

         

         

       저주(咀呪)라는 것은 그 악명과는 다르게 참으로 까다롭기 짝이 없는 것이다.

       잘못된 방법이 범람하여 실제로 실행해도 효과가 없는 일은 부지기수요, 설령 실행한다고 할지라도 원한(怨恨)이나 인과가 없지 않은 한 큰 효율을 볼 수가 없으며, 실패해도 성공해도 어마어마한 대가를 내야만 한다.

         

       저주를 하려는 자는 무덤을 두 개를 파야 하는 법이라.

       그 대가의 크기도 어마어마하며, 실패한다면 저주한 이는 저주를 받아야 하는 이의 몫까지 받게 되니 과연 죽느니만 못한 고통을 겪는 일이 드물지 않다. 게다가 그러한 끔찍한 대가를 감수하고서라도 저주 의식을 행한다 할지라도, 외부의 요인에 의하여 얼마든지 그 위력이 경감되거나 방어할 수 있기도 하니.

       참으로 하자가 많은 힘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저주가 악명을 떨치는 것은, 그러한 단점을 감수하기만 한다면 절대로 손이 닿지 않을 존재에게도 닿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리라.

         

       일천(一千)의 사람을 호위로 둘러도 소용이 없고, 용의 비늘(龍鱗)로 갑옷을 만들어 입는다 한들 제 몸을 뚫을 수 있는 칼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어디에 있으랴? 심지어 앉은 자리가 높되 세상을 둘러볼 시야는 없고, 어둠을 두려워하고 무지를 경계하며 살아가는 권력자의 입장에서 보이지 않는 화살이란 그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그렇기에 권력자는 저주를 두려워하며 수많은 방법을 생각해내었다.

       주물을 몸에 두르고, 주변에 밀도 높은 에너지를 방벽처럼 두르기도 하고, 저주의 사념을 없애기 위해 온갖 민간신앙에 의존하기도 하고, 파사와 퇴마의 힘이 있는 재료로 만든 물건을 가까이하기도 하며, 명당에 거처를 만들어서 보호를 받고자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저주 의식이 실제로 행해지지 못하도록 정보를 통제하거나 허무맹랑한 정보를 풀어서 희석을 시키거나 오염시키기도 하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것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어지간한 폭정(暴政)에도 권력자가 멀쩡히 살아있는 것이 바로 그 산 증거라 하겠다.

         

       하지만 빗물이 새고 있는데 지붕을 고치려 들지 않는다면 그것이 제대로 해결된 것이겠는가?

       사람들에게 원한을 사지 않도록 행실을 똑바로 하지 않는 이상에야 수적천석(水滴穿石)이라는 말처럼 빗방울이 바위를 뚫듯 원한이 그 몸을 꿰뚫어버리게 되리라.

         

       말하였듯이 용의 비늘로 갑옷을 만들어도 저주의 칼날은 그것을 꿰뚫을 힘이 있다.

       그것이 아무리 단단하다 한들 원한으로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을 영원토록 막을 수 있겠느냐?

       그 부위에 따라, 비늘의 단단함에 따라, 원한의 크고 작음에 따라 그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것이 한없이 모이게 된다면 용의 비늘 갑옷이라 한들 꿰뚫지 못할 리가 있겠느냐?

         

       저주의 이치란 그런 것이다.

       한 방울의 물이 둑을 범람케 만드는 것처럼, 수없이 쌓인 원한이 어느 순간 터져 나오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하니 저주를 달게 받으라.

       원한으로 깎고 분노로 불을 피워낸 화전(火箭)을 겸허히 받으라.

         

       『 순장(殉葬)의 습속을 한 자는 멸문을 면치 못하리라. 』

         

       인형이란 사람의 형상을 흉내 낸 것이니 사람을 대신하지 못할 일이 어디에 있겠느냐?

         

       나무로 빚어 만든 목용(木俑)도, 진흙으로 만든 도용(陶俑)도, 흙으로 만든 토용(土俑)도.

       그 모든 것들이 사람을 대신한 것이니라.

       

       그러한 이치로 사람의 장례를 치를 적 파묻힌 이들이 모두 사람을 대신할 수 있음이니.

       핏물로 그 이름이 명부에 적힌 것과 같은 인형이 어찌 그 사람을 대신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 사람과 함께 파묻힌 이들이 어찌 순장에 파묻히는 사람을 대신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 사람과 함께 묻힌 자는 혼백마저 편치 못하리라. 』

         

       그러한 이치로 저주가 성립되게 되었음이니.

       원(怨)으로 길을 닦고 한(恨)으로 벼린 화살을 쏘아내노라.

         

       『 인형(俑)을 만든 사람은 후손이 없으리라. 』

         

       그것은 희끄무레하고 자욱하고 질척한 연기로 그려지는 길일 것이니.

       그것은 하늘을 가리는 먹구름과 같고, 땅에 번지는 땅거미와 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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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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