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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07

        

         

       권력자의 일상은 바쁘다.

       단언컨대, 그것은 하층민과는 차이가 존재했다.

         

       하층민의 삶이 고단하다고 하였던가?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서 해가 지고 별이 뜨는 것을 보고 나서야 돌아오는 삶을 지낸다고 하였던가? 제대로 된 음식조차 먹지 못하여 배가 고프고 온몸이 쑤신다고 하였던가? 관절염이니 근육통이니 하는 온갖 고통에 끙끙 앓으면서 잠조차도 제대로 잘 수 없노라고 그렇게 불평하였던가?

         

       하지만 사람은 사람마다 각자의 고통을 가지고 있는 법.

       옛적부터 명확하게 구별되어있는 역할에 대한 구분이 있으니 사람의 일에 경중(輕重)이 있음은 명징(明徵)하였고, 이는 위에 선 자의 일이 아래의 사람보다 더 중하고 더 고통스러움을 말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빈자들은 위에 선 자가 산해진미를 먹는다고 부러워하지만, 어찌 그것을 먹는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들이 먹는 미주(美酒)는 그들의 노고에 대한 보상이고, 그들이 먹는 희귀한 음식은 그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위로나 다름이 없음이니. 아래에 있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하루하루 고통과 고난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이들이며, 이들은 그저 그들보다 무거운 일을 하고 있기에 더 무거운 보상을 받는 것일 뿐이다.

         

       벽돌을 나르는 사람보다 전기를 다루고, 기계를 다루는 이들이 더 많은 돈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 아무리 어리석고 배운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더 어려운 일을 하면 더 좋은 것을 받는다는 이치 정도는 알 수 있을 터이니, 권력자의 그것이 ‘당연한 보상’임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머리가 아프군.”

         

       보라.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찾아오는 이 고통을.

       어제 마신 마오타이주(茅臺酒) 때문인지 머리가 깨질 것만 같은 고통이 밀려온다. 알코올도수 53이라는 높은 수치는 술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이조차도 고꾸라뜨릴 힘이 있었다. 특히나 그것을 잔 단위가 아니라 병 단위로 먹었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과실주랑 같이 먹은 게 잘못이었나.”

         

       게다가 그 숙취를 더 괴롭게 만드는 것은 마오타이주와 같이 먹었던 과실주.

       도수는 기껏해야 5도에서 15도 정도 되는 그리 독하지 않은 술들이었지만, 쉽게 취하지 않는 대신에 취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숙취를 불러오는 과실주의 특성이 문제였다.

       그의 동료가 말하기를 숙취 중 제일 고통스러운 숙취는 와인을 먹고 취한 뒤의 숙취라 하였던가? 과연 그 말대로 머리를 망치로 두들기고 긴고아(緊箍兒)로 머리를 조여서 끔찍한 고통을 선사하는 것만 같았다.

         

       과연 제천대성(齊天大聖)도 삼장의 말을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겠지.

       주문을 외울 때마다 이런 고통이 찾아온다면 어찌 참을 수가 있었을까?

         

       그가 제천대성만큼이나 인내심이 강하기에 망정이지, 아마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어린애처럼 엉엉 울거나 바닥을 뒹굴면서 약을 가져오라고 소리소리 질렀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무리 하인이라고는 하나 체면이 상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 자명하였으니, 그것이 어디 권력자의 모범이라 할 수 있을까?

         

       체면.

       권력자이기에, 위에 서는 사람이기에, 아래에 있는 배운 것도 없고 머리도 좋지 않으며 그저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만으로 족해야 할 재주 없는 놈들의 위에 설 수밖에 없는 특별한 존재이기에.

       그렇기에 그는 항상 체면을 유지하고, 체통을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수많은 인민을 이끌고 영도하는 사람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온 그 샤오화단(小花旦)은 꽤 괜찮은 자질이 있었지.’

         

       권력자는 숙취에 고통받으면서도, 해야 할 일을 행했다.

       아무리 몸이 괴로워도 하층민들이 일하는 것처럼, 그는 아무리 숙취가 괴롭힌다고 할지라도 계속 생각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같은 붉은 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래에 있는 사람과 자신을 구분 짓는 가치였다.

         

       ‘그 여자에게는 노력인자가 있어. 인민의 억척스러움과는 확연히 다른, 노력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기질이. 거기다가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니, 얼핏 가련한 꽃처럼 보일지라도 폭풍에도 꺾이거나 뜯어지는 일 없이 천년만년 그 빛을 뽐낼 수 있지. 옛적이라면 영웅까지는 몰라도 호걸 정도는 되었을 인재야.’

         

       처음에는 그냥 중화의 돈이 탐나서, 인기를 위해서 들어온 사람인 줄 알았다.

       다른 연예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특이한 일은 아니다.

       넘치는 인구와 찬란한 부를 노리고 온 작자들은 어느 때나 있었고, 그들은 그 숨겨지지 않을 탐욕을 어떻게든 갈무리하고는 그저 입바른 소리 말 몇 마디 하고, 간단한 중국어로 인사나 하고, 그리고는 대단한 노력이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떠들고는 번 돈을 들고 제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 일상이었으니까 말이다.

         

       거기에는 그 어떠한 존중도 없고, 그저 천박함만이 있다.

       인민들의 사랑에 보답할 생각은 없이, 그저 그들을 돈통처럼 여기며 돈을 뜯어먹고는 가버리는 도둑과도 같은 행태. 그러한 염치없는 작자들을 어찌 ‘손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주인이 환대를 해준다면 감사히 여기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거늘.

       항상 그런 족속들은 제가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으스대고, 그리고는 주인이 화를 내거나 조금 불만을 표하기라도 한다면 감히 자신의 기분이 상했음을 주장하며 불평을 토해낸다. 진정 화를 내야 할 주인이 누구인지, 그들의 무례를 참아준 대인(大人)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권력자는 외국에서 그 어떤 유명한 사람이 와도, 중국에 있는 팬들을 만나기 위해서 방문했다고 하더라도 크게 존중해주지는 않았다. 그들의 천박함은 감히 그의 존중을 얻을 자격이 없었고, 인민의 사랑을 온전히 받기에는 너무나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이네라는 여자는 달랐다.

         

       사람의 자질은 위기에서 빛을 발하는 법.

         

       테러리스트가 자신이 있는 도시에 나타나고, 물이 오염되고, 심지어 반강제로 연금이 되었음에도 그녀는 당황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일인 당의 조치에 겸허히 따르고, 손님으로서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행했다.

       그뿐만 아니라 항상 감사할 줄 알았고, 자신이 손님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겸손하게 행동하였으며, 단 한 번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명성이니 하는 것들을 이용하려 들지 않았다.

         

       참으로 현명하지 않은가?

       대부분 사람이라면 이러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그녀는 명성을 사용하려 하거나, 외신에 접촉하려 들거나, 대사관에 연락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인내할 줄 알았고, 그 인내로 주인에게 호의를 샀다.

         

       ‘참으로 겸손하기까지 했으니…. 호걸이지.’

         

       게다가 흔히 보이는 연예인이라는 족속들이 보이는 오만과 자신감이 없는 것도 아주 좋았다.

       어려움을 딛고 빛을 보았다고 하던가?

       망자존대(妄自尊大)하는 이들이 많아 어지러움이 극에 달한 것이 이 세상인데, 그러한 와중에도 올바른 예를 아는 사람을 발견하였으니…. 참으로 반갑고도 대견할 수밖에 없다.

       다만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중화의 사람이 아니라 외국의 사람이라는 것이겠지만, 그것도 한국 출신이니 그럭저럭 감안할만하다.

         

       한국은 옛적부터 중국의 충실한 신하였다.

       작금에 이르러서는 조금 사이가 틀어진 듯하기는 하나, 그거야 미국이 수작을 부려서 그런 것. 장강의 물이 잠시 마른다고 할지라도 다시 차오르는 것처럼, 무언가 문제가 생긴다고 한들 고고한 역사의 흐름처럼 한국은 중국과 다시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게 되리라.

       그러한 점에서 생각해본다면 한국에서 건너온 호걸이 어찌 중국과 남남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번 일이 해결되면…. 조금 더 깊은 관계를 맺어봐도 괜찮겠어.’

         

       그래…. 깊은 관계.

       꽌시라는 의미로도, 그 이상으로도….

         

       권력자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언제나 그랬듯이, ‘바쁜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 말이다.

       다른 하층민과는 다르게 조금 더 중요한 일을 행하기 위해서….

         

       ‘음?’

         

       …일어나야 했다.

       평소처럼 몸을 일으키고, 침대 밖에 서야만 했는데.

         

       ‘…뭐지?’

         

       이상하다.

       다리가.

       다리가 움직여지지를 않는다.

         

       이게 무슨.

       무슨 일이지…?

         

       권력자는 순간 지금 일이 꿈이 아닌가, 혹은 술에 무슨 약 같은 게 타져 있어서 지금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했다. 하지만 이내 상체에서 느껴지는 감각들에 이것이 현실임을 깨닫고, 그런데도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도 않고 움직여지지도 않는 하반신의 존재를 깨닫고는.

         

       “아, 아니 지금…. 지금…!”

         

       자기 몸에 문제가 생겼음을 깨달았다.

         

       “이봐-! 거기 아무도 없나! 당장, 당장 나를 병원으로 데려가도록 해-!”

         

       권력자는 제 몸에 이상이 생겼음을 깨닫고는 사람들을 불러 병원으로 향한 뒤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뭐…? 척추 손상…? 발기부전…?!”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소리를 들었다.

         

         

         

         

        * * *

         

         

         

         

       말하기를 순장(殉葬)이라는 순(殉)하기를 택한 이들과 함께하는 장(葬)인지라. 따라 죽기를 각오한 이들과 함께하는 장이 어찌 그저 애도만이 있을 수 있겠느냐? 짐승조차도 제 어미나 자식이 죽으면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앉아 며칠을 통곡하며 슬퍼하기 마련이거늘, 왕과 함께 죽는 이들을 보는 자들의 마음속에 어찌 슬픔이 없을 수 있겠느냐?

       민심이 곧 천심이라 함이니 사람의 마음이 하늘에 닿으면 그것이 마침내 벌의 형태로 땅에 내려지기 마련이니, 나라 안의 모든 재앙이 왕의 부덕함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치이니라.

       왕의 부덕함이 땅에 닿으면 가물어 쩍쩍 갈라지고, 강이 메말라 그 바닥을 보이며, 황충이 들끓어 곡식을 죄다 갉아먹고, 짐승들이 굶어 죽어 씨가 마르니 고기와 가죽을 구할 길이 없게 된다. 누에들은 실을 뱉지 아니할 것이며 나무는 굶주린 자들에 의해 껍질이 벗겨져 숨만 간신히 붙을 것이요, 추위라도 가시기 위해 장작을 패느라 온 산이 벌거숭이가 되어 세상이 황무지처럼 되어가리라.

         

       이것이 바로 너희의 부덕함이다.

       감히 사람과 같이 묻히고, 그들을 죽어서도 부려 먹고자 한 너희의 부덕으로 발생한 일이다. 감히 하늘이 너희의 그러한 부덕함을 두고 볼 줄 알았느냐? 감히 너희가 하늘조차도 노할 일을 벌이고도 무사할 줄 알았다면 너희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가 아닐 수가 없으리라.

         

       그러니 너희에게 말하노니.

       순장의 금기를 범한 자 후손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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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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