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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08

        

         

       척추손상.

       발기부전.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단어들이다.

       앞엣것은 ‘마비’라는 단어가 저절로 따라잡고, 발기부전이라는 단어는 ‘절망’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지 않은가.

         

       “내가…. 내가 고자라고? 의사 선생, 내가 지금 고자라 이 말이오?”

         

       “…아닙니다. 그게.”

         

       “잘 생각하고 말씀하시오. 내가 누군지 안다면, 3번은 생각하고 말하라고!”

         

       남자라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말에 권력자는 살기등등한 얼굴로 의사에게 엄포를 놓았다. 그딴 더러운 소리 지껄이지 말고 빨리 자신이 원하는 답을 내놓으라고 말이다.

         

       하지만 어디 생로병사가 사람의 마음대로 이루어질 수 있던가?

       한낱 의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을 행하는 것뿐이다. 제아무리 명의라고 한들 ‘신의 영역’이라 불리는 미답지를 개척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이번 일도 마찬가지일 뿐이었다….

         

       “정밀검사 결과 척추에 손상이 생긴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대단한 손상은 아닙니다. 간단한 시술로 회복할 수 있고, 재활도 그리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혹 치료 능력이 있는 능력자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사흘도 되지 않아서 손상이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런데?”

         

       “그런데…. 그. 흠. 후유증이….”

         

       “후유증! 후유증 뭐!”

         

       “후유증으로 발기부전이 생길 수도 있어서….”

         

       그 말을 들은 권력자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의사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곤 당장이라도 요절을 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너! 척추손상 별거 아니라면서! 근데 왜 후유증이 있어 이 새끼야!”

         

       아까까지 위태위태하지만 이어졌던 존대는 이제는 완전히 사라졌다.

       권력자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시정잡배들이 하는 말이나 다름없는 것이었고,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둘러도 이상하지 않을 터져 나오는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 활화산이 돌을 쏘아내는 것처럼, 남자의 입에서 침이 튀어 의사의 얼굴을 더럽히는 것만 보아도 권력자가 얼마나 이성을 잃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평소 ‘품위’를 입에 달고 다니던 사람의 모습으로는 보이지는 않았지만…어쩌겠는가.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위, 위원님.”

         

       “똑바로! 똑바로 말해! 여기 중국 최고의 병원인데, 후유증이 왜 생기냐고. 어? 지금 간단한 시술만으로 회복할 수 있다고 했는데 나를 우롱하기라도 하려는 거야? 지금 네 능력이 부족하다고 실토를 하는 거냐?! 어?!!!!”

         

       “그, 그게.”

         

       “말해! 말하라고!”

         

       의사는 남자가 흔들어대는 것을 막지 못한 채 그대로 앞뒤로 탈탈 털렸다.

       저항은 할 수 없었다. 말 한마디로 자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자가 그냥 멱살 잡고 분노 토해내는 것만으로도 ‘아, 다행이다.’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옳았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털렸을까.

       남자는 분노가 어느 정도 가라앉았는지 의사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그리곤 자세히 설명해보라는 듯 눈짓을 했다.

         

       “척추손상이 발생한 후 발기불능이 되는 것은 꽤 흔한 일입니다. 뇌가 성적 자극을 인지하면 신호를 보내서 음경해면체에 혈류를 보내서 발기시키는데, 척수는 이 신호가 가는 통로입니다. 그리고 이 통로가 손상되면 당연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 그런데 고칠 수 있다며?”

         

       “예. 발전한 현대의학은 어지간한 손상은 손쉽게 고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위원님의 손상 역시 마찬가지고요. 무엇 때문에 손상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시술 수준으로 끝나는 정도이니, 그리 심각하지 않은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 발기부전이라는 게, 단순히 통로의 문제만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의사는 집중하고 있는 권력자에게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발기부전은 기질성과 심인성으로 나뉩니다. 기질성은 당연히 앞서 말했던 신체의 손상에 의한 것이고, 심인성은 정신과 관련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육체는 고칠 수 있는데, 마음에 문제가 생긴다면 발기부전이 올 수 있다?”

         

       “예.”

         

       권력자는 의사의 말에 허,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의사 선생. 이 일이 아무리 충격적인 일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 내가 그깟 ‘정신적 충격’ 때문에 발기부전이 올 거로 생각한 거요? 이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 그렇게나 마음이 여릴 거라고 생각을 했다 이 말인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의사 된 입장에서 0%가 아닌 한 완전히 간과를 할 수 없기에….”

         

       “아아, 됐어 됐어. 무슨 말인지 알겠소. 의사 선생이 생각하기에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혹시나 해서 그런 말을 했다 이거구먼.”

         

       “…예.”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권력자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이해했다.

         

       문제가 안 생기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 있지만, 만약 문제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그의 분노를 한 몸에 받아야만 했을 테니 무서웠겠지. 특히 이야기만 들어도 이렇게 이성을 잃을 정도인데, 실제로 겪기라도 한다면 정말….

         

       ‘그리고 이번 시술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에게 각인을 시켜서 자기 능력을 조금 더 뽐내려는 것일 수도 있겠지. 나랑 인맥을 좀 쌓으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고.’

         

       거기에 얕은 생각이 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기회에 권력자와 선을 대보겠다는 얄팍한 술수가 훤히 읽히고 있다.

         

       “음. 그래요. 뭐, 시술. 합시다. 빠르게 해주시오.”

         

       남자는 빠르게 시술을 하겠다고 말하고는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하.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군. 아무리 얄팍한 속셈이 있어도 그렇지, 발기부전…. 심인성 발기부전이라니. 내가 그렇게 연약한 사람으로 보였다니, 참.’

         

       속으로 헛웃음을 터뜨리면서 말이다.

         

         

         

         

        * * *

         

         

         

       “…서지 않아.”

         

       시술은 빠르게,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의사가 말한 것처럼 발전한 현대의학은 ‘척추손상’이라는 얼핏 들으면 심각해 보이는 것을 수술도 없이 너무나 간단하게 회복시켜주었다.

         

       그래.

       시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척수도 완벽하게 회복되었다.

         

       완벽하게…말이다.

         

       “서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째서일까?

       어째서, 서지 않는 것일까?

         

       “어째서…. 서지 않는 거지…?”

         

       분명 시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을 터인데.

       멀쩡히 걸어 다닐 수 있고, 아무런 통증도 이상한 느낌도 없는데.

       그런데 대체 왜 서지 않는 것일까…?

         

       의사에게 그렇게 자신처럼 강인한 사람은 그런 심인성이니 뭐니 하는 정신의 문제가 찾아올 리 없다고, 척추나 잘 고치라고 그렇게 호탕하게 말을 했는데.

       대체 왜 서지를 않느냐 이 말이다.

         

       ‘척추, 문제없고. 척주관, 문제없고. 척수, 문제없고. 그런데 대체 왜?’

         

       물론 남자도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예전만큼의 위용은 보이진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거늘.

       그래도 꽤 활발하게 성생활을 해 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병원에 입원한 것을 기점으로 아예 서질 않았다.

       원래 그랬다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을 불러봐야겠군.’

         

       남자는 이 참담한 상황에 한숨을 쉬면서, 자신이 아는 무인 한 명을 불렀다.

         

       삼절의원(三絶醫員)이라는 별호를 가진 무인이었다.

         

       세 가지의 재주를 지녔다는 뜻의 삼절(三絶)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이 무인은 중의학(中医学), 기공 치료학, 무공에 정통했다. 또한 대대로 정치에 몸을 담은 집안의 사람이기도 해서, 여러 권력자와 두루두루 친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게다가 신의가 있어서 약속을 어기지 않으며, 입이 무거워서 가문의 어른이 물어본다고 할지라도 입을 꾹 닫기까지 하니. 이러한 일에는 최적의 인재인 셈이다.

         

       그렇게 남자는 삼절의원을 불러서 진맥을 받았다.

       삼절의원이라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흠. 큰 문제가 없는 듯합니다만….”

         

       “뭐요? 그럴 리가….”

         

       “적어도 제가 진맥하기에는 그렇습니다. 기혈이 좀 약한 듯 보이나 이는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증상이니 기를 보할 약재로 보약을 지어서 드시면 될 것 같고…. 간이 조금 좋지 않은 듯하니 고기를 줄이고 생선과 두부처럼 담백한 것을 드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기혈과 간….”

         

       “그리고 몸에서 수기(水氣)가 좀 적은 듯한데 이는 신장과 방광이 좋지 않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는 통풍에 걸리기 쉬우니, 이 역시 관련된 음식을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방광.

         

       남자는 멍하니 삼절의원의 말을 듣다가 한 단어를 듣자 퍼뜩 정신이 드는 것을 느꼈다.

         

       “잠깐. 뭐라고 했소. 방광?”

         

       “예. 아, 그렇군요. 확실히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습니다. 정(精)이란 수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 수기가 부족하여 불균형하였다면 그러한 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본디 사람의 몸은 음양오행의 이치를 담고 있어 균형을 이루려 하는데, 몸에 이상이 생기면 불균형이 찾아오기 마련이지요. 그러한 때에는 그것을 보충하면 이상이 사라지기 마련이니…. 수기를 보충할 수 있는 약재를 처방해드리겠습니다.”

         

       “그, 기공 치료는?”

         

       “얼마 전 척추손상을 입으셨다고 하셨지요? 회복된 지 얼마 안 됐다고 하였으니, 당장 기공 치료를 받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일을 하면 쉬어야 하듯이, 몸 역시 한 번 나은 뒤로는 괜찮아 보여도 휴식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기공 치료는 약간의 시일을 두고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그, 그렇소? 그럼 잘 부탁하오.”

         

       희망.

       희망이 보인다.

         

       남자는 삼절의원에게 받은 처방전에 적혀있는 약재들을 최상급으로 사들여 집안에 들이고, 보약 잘 달이기로 소문난 사람들을 데려와서 약을 만들었다.

         

       “크으. 쓰군.”

         

       맛은 어마어마하게 썼다.

       혹여 효과가 떨어지기라도 할까 두려워서 보약을 그나마 먹을만하게 만들어주는 감초도 추가해주지 말라고 말한 탓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남자는 그것을 마치 감로수라도 되는 것처럼 벌컥벌컥 들이켰다.

       어서 하루빨리 신호가 오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의 일념은…마침내 하늘에 닿았다.

         

       “…오.”

         

       하늘이 그를 안타깝게 여기사 신호를 준 것이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미인(美人).

       어두운 방 안에 한 줄기와 서광이 비치는 것처럼 그는 가슴이 뛰었고, 마치 혈기 왕성하던 10대라도 된 것처럼 그의 마음이 동하게 했다. 그리고 그 미인이 그의 뜨거운 시선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슬쩍 눈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온다.

         

       “…이보시오. 시간 있소?”

         

       목에서 나오는 것은 당당한 호걸의 것인가, 첫사랑을 앞에 둔 소년의 것인가?

       남자는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물론이에요.”

         

       여자는 그의 말에 미소를 짓고는 그의 옆에 서는데.

         

       토옥.

         

       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그의 손을 톡 쳤을 때의 그 느낌이란.

       선녀의 옷자락이 스치고 지나간들 이보다 간지럽지는 않으리라….

         

       요망한 여우라도 되는 양 애간장을 태우는 모습이라니.

         

       남자는 언제 자기 가슴이 이렇게 뛰었나 떠올리며, 기분 좋은 두근거림과 함께 여자를 자신의 차에 태웠다.

         

         

         

         

        * * *

         

         

         

         

       『 하늘의 이치는 선과 악에 보답함에 어긋남이 없건만, 어리석고 우둔한 자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하여 경고의 의미로 가죽 그림(畵皮)이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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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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