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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09

        

         

       남자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여자를 차에 태웠다.

       여자는 우아한 몸짓으로 뒷좌석에 앉아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운전기사를 마치 없는 사람인 것처럼 취급하면서, 자신을 따라서 옆에 탄 남자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달조차도 부러워할 그 아찔한 미소란.

       의자에 더 밀착하려 비비적대는 행동에서 느껴지는 아찔한 색기란…!

         

       얇은 옷에 감싸인 등이 폭신한 가죽 시트에 비벼지며 체향을 퍼뜨리고, 비비적대며 안으로 엉덩이를 밀어 넣으려 하는 것이 시선을 그쪽으로 자연히 가게 만든다. 그러고는 남자의 시선이 제 하체로 간 것을 눈치채기라도 하는 듯 다리를 슬쩍 들어 올리고서는 마치 꼬기라도 할 것처럼 움직였다가, 남자의 애간장을 태우기라도 하려는 듯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 모습이.

         

       아, 여우가 따로 없다.

       옛적 달기가 이러했을까.

       이러한 유혹에 패배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그렇게 남자는 홀린 듯 여자를 바라본다.

       여자는 그러한 남자의 모습이 기분이 좋다는 듯 마주하여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시선이 오가고, 침묵이 감돈다.

       이 차에는 오직 두 사람뿐인 것처럼, 그렇게 서로의 시선이 얽히고 얽힌다.

       그것은 너무나 감미로우면서도 탐미적이라서, 그러면서도 왠지 모르게 금기에 휩싸였을 때만 느낄법한 배덕적인 감각이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인지라. 그래서 차마 그 분위기에 저항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정신을 놓은 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더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남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 하나.

         

       그것은 이 상황에 대한 의문이 아닌, 마음속에 자리 잡은 자격지심(自激之心)에서 비롯된 하나의 의문이다.

         

       “이보시오. 내 먼저 말을 건 사람으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혹시 나를 아시오?”

         

       잘생긴 남자도 아니고, 몸이 좋은 것도 아니다.

       물론 그의 위치가 낮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드높은 위치에 있느냐 하면 그것 또한 아닌바.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의문이 하나가 드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여자를 만날 수 있겠는가 하는, 자격지심 가득한 의문이.

         

       그렇게 남자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질문을 던진다.

       혹여 제 가치를 깎아 먹을 수도 있는 치명적인 질문을.

       콩깍지가 쓰인 상대조차도 제정신을 차리게 만들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게 만드는, 이성을 꼬실 때는 해서는 안 되는 그러한 질문을 던지고 만 것이다….

         

       그렇기에 남자는 후회한다.

       질문을 던져놓고, 뒤늦게서야 후회한다.

       차라리 질문을 던지지 않았더라면, 분위기에 취하기라도 하였더라면 이 여자가 나를 냉혹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평가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약간의 의혹이 있더라도 이 여자를 안을 수만 있더라면 그의 일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지고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 자명하였을 터인데.

         

       마치 첫사랑을 하는 어린아이처럼, 어찌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하였는가….

         

       남자는 뒤늦은 후회를 담아 여자를 바라본다.

       그러고는 여자의 눈을 바라보며, 그 눈동자가 뜨거운 열망이 아닌 냉혹한 시선으로 바뀌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여자의 얼굴을, 여자의 입을 바라본다.

         

       그리고 여자의 앵두 같은 입술이 움직이고, 말을 내뱉는다.

         

       “후후. 그럴 리가요.”

         

       그것은 웃음.

       우스갯소리를 들은 사람이 내뱉는 전형적인 웃음소리다.

       거기에 즐거워서 참을 수 없다는 듯 손을 올리고 입을 가리며 쿡쿡 웃는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아, 저 입술을 가린 손이 나의 것이라면.

       저 입술의 감촉을 느낄 수만 있다면….

         

       “당신이 저를 보고 매력을 느낀 것처럼, 저 역시 당신을 보고 매력을 느꼈을 뿐이랍니다.”

         

       “매력, 을…?”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겠네요.”

         

       하아-

         

       사뿐히 내뱉어지는 뜨거운 숨결.

       마음속의 열기를 담은 것만 같은 달콤한 입김이 공기에 스며든다.

       왠지 모르게 그 숨결 하나만으로 공기가 뜨거워진 것만 같은 착각이 들고, 심장이 뛴다.

       아니, 공기가 뜨거워진 것이 아니다.

         

       남자의 마음이, 남자의 몸이 뜨거워진 것이다.

       마치, 제 열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소년처럼….

         

       “있잖아요.”

         

       하얀 피부의 팔이 움직이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남자의 손과 맞닿는다.

       그러고는 마치 자신을 알아달라는 듯 손톱을 세우지 않은 손가락으로 스윽, 자그마한 자극을 주며 긁고는.

         

       “이런 미녀가 유혹하는데, 자신이 없으신 건가요?”

         

       거부하기도 싫고, 거부할 수도 없는 말을 내뱉는 것이다….

         

       마치 도발이라도 하는 것처럼 색기를 한껏 뿜어내면서 하는 말.

       저런 말을 듣고도 거부한다면, 그게 과연 남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그것이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와중에 나타난 희망인데.

       그걸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느냐 이 말이다….

         

       “…내 나를 증명해 보이지.”

         

       그렇기에 남자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고는 그렇게 호걸 흉내를 내며 말을 하였다. 그러고는 운전기사가 이러한 일에 으레 쓰이는 별장에 차를 세우자, 자연스럽게 에스코트하듯 그녀를 차에서 끌어내고는 사이좋게 어깨를 맞댄 채 안으로 들어갔다.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어찌나 감미로운지.

       남자는 앞으로 찾아올 즐거운 시간을 상상하며, 그렇게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 * *

         

         

         

       달이 뜨는 까닭은 어둡기에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기에 해가 뜨면 붉어지는 얼굴로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려 얼른 사라지기 마련인즉, 아침이 오면 밤에 이루어진 역사는 그 흔적만 남아 추론할 수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추론이라는 것이 표본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쉬이 짐작할 수 있기 마련.

         

       “이번엔 또 누굴 만나고 왔는지.”

         

       그렇기에 집안에서 일찍 잠에서 깬 아내는 해가 뜨고서야 돌아온 남편을 타박한다.

       무관심에 가까운 반응으로 말이다.

         

       사랑이 있다면 분노하고 증오하기라도 하련만.

       대를 이을 아이를 하나 낳아놓고는 각방을 쓴 지가 어언 몇 년인지. 처음부터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사이인지라 사랑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고, 아이를 갖는 의무를 하고 나서는 짜기라도 한 듯 각자 숨겨두었던 애인을 데리고 살기 시작하며 명목상으로만 부부로 머물던 몸이었는지라.

         

       그렇기에 아내가 남편의 외도를 알면서도 보이는 반응은, 쇼윈도(Show Window) 부부 이상의 무언가가 될 수 없었다.

         

       “…그래.”

         

       봐라.

       남편 역시 평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이,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가.

       저 얼굴에 묻어있는 뻔뻔함, 미안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지.

       게다가 나이를 먹었는데도 성욕은 쉬이 죽지도 않는 것인지.

       그녀는 이미 몇 년 전에 모든 게 지겨워져서 애인도 다 정리하였는데, 남편이란 작자는 도대체 뭐가 그리 즐거운지 매일매일 술 냄새와 분 냄새를 풍기면서 들어온다….

         

       ‘그놈의 계집질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남편을 타박하듯 생각하였다가도, 그녀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한 줄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혹 자신이 즐기지 못한 것은 그저 옛 애인들에게 질렸을 뿐이며, 젊고 잘생긴 새로운 애인을 만들면 아침이 되어서야 기어들어 온 저 작자처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꾸욱 닫힌 침실의 문을 보자니 그 마음이 동하기도 하였다가도.

         

       “쯧.”

         

       마음이 드는 사람이 어디 있어야 말이지….

         

       그녀는 혀를 차고는 침실로 향했다.

       남편이 들어간 침실과는 다른, 오직 그녀만의 침실.

       각방을 쓴 이후로 그녀와 그녀의 애인만이 들어올 수 있었던 신성한 공간으로 말이다.

       그리곤 우아해 보이도록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는, 그대로 밖으로 나선다.

         

       물론 밖이라고 해봐야 호텔이다.

       물이 오염되어 도시 전체를 통제하고 있기에 길거리에 쉬이 돌아다닐 수가 없는 까닭이다.

       더럽고 못 배워먹은 농민공들이 밖에 가득한데, 그런 곳에 자신 같은 귀부인이 홀로 돌아다니면 위험한 것은 자명한 일일 터이니.

       그렇기에 그녀는 호텔의 카페에 들어가서 창밖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바깥을 구경할 뿐이다.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남자가 어디 없나 두리번두리번 눈을 굴리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간절함을 담았음에도 그녀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에 마치 그녀의 기분을 잡치기라도 하려는 듯, 악취를 풀풀 풍기는 이상한 남자 하나가 그녀에게 접근하며.

         

       “이봐, 이쁜이.”

         

       하,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닭살 돋는 말투로 말을 거는 것이 아닌가.

         

       “흐흐.”

         

       덥수룩하게 난 수염.

       얼굴 곳곳에 묻어있는 말라붙은 침 자국.

       대체 얼마나 씻지 않은 것인지 며칠 동안 겹겹이 쌓이고 쌓이며 만들어진 악취에 가까운 체향에, 몸에 걸치고 있는 비싸 보이는 옷마저도 허름하게 만들어 보이는 깡마른 몸까지. 거기에 실없이 흘리는 웃음은 또 어찌나 바보스러운지.

       모자란 바보가 추하게 늙으면 저렇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람 부르기 전에 가세요.”

         

       “아이고, 까칠하기는.”

         

       히히힛.

         

       노인은 침을 질질 흘리며 웃었다.

       그러고는 양손을 들어 올리곤 검지를 치켜올리며 여자를 가리키고는 마치 조롱이라도 하듯 우스꽝스러운 자세와 표정을 하고는, 즐거워서 어쩔 수가 없다는 듯 경망스러운 몸짓을 보이고는 카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숨을 들이켰다.

         

       “히히, 디저트도 없이 커피만 먹는 꼬라지하고는! 이거나 같이 먹으라고!”

         

       그리고는.

         

       “카악-! 퉤에!”

         

       “꺄악?!”

         

       그녀가 앉아있는 탁자 위에 누런 가래침을 툭 뱉고는 부리나케 어디론가 도망을 가는 것이 아닌가.

         

       여자는 이 갑작스러운 일에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노인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랬다가 제 탁자 위에서 존재감을 한껏 뽐내는 가래침을 보고는 역겹다는 듯 인상을 팍 찌푸리고는, 그대로 짐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갔다.

         

       “후우.”

         

       호텔에서 오래 있었던 까닭일까?

       날은 어둑어둑해져 있었고, 불이 꺼져있는 집안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또 계집질하는 모양이지.’

         

       쯧.

       누구는 맘에 드는 남자 하나 발견하지 못했거늘, 누구는 여자 하나 잘 골라서 푹 빠져있는 꼴 하고는….

         

       여자는 혀를 차면서 집안의 불을 켰다.

         

       “어머, 깜짝이야!”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집안의 불이 켜지자 보인 것은 거실 한쪽에 앉아있는 남편의 모습이었다.

         

       계집질을 하러 간 것도 아니고, 집에서 뭐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대체 집안의 불은 다 꺼놓고 왜 거실 구석진 곳에서 가만히 앉아있단 말인가?

         

       “인기척이나 좀 내지. 대체 이게 뭔 짓거리야?”

         

       그녀는 자신을 놀라게 한 남편에게 화를 냈다.

       하지만…남편은 그녀의 분노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맑고 투명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

         

       그러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데.

         

       “…응? 그림?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다고…. 손에 든 붓은 또 뭐고?”

         

       남자가 일어나자 족자 하나가 보인다.

       왠지 모르게 익숙해 보이는 여자가 그려진 족자가.

         

       “저거 나 아냐? 내 초상화를 왜…?”

         

       그녀는 남편이 자신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인상을 확 찌푸렸다.

       기분 나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경멸과 역겨움이 담긴 질문에도, 남편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아내에게 걸어갈 뿐이다.

         

       아, 명백히 이상한 모습이건만.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고, 알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녀는 제 남편의 이상함도 눈치채지 못한 채 접근을 허용해버렸고.

         

       “어…? 당신 가슴, 가슴이 왜 푹 꺼져있어? 구멍이라도 난…것…처럼…?”

         

       이상함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푸욱.

         

       “어…? 어….”

         

       …너무 늦어버렸다.

         

         

         

         

         

        * * *

         

         

         

       『 미색이 빼어나다고 한들 그 안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성현들께서는 미색을 탐하고 크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그 속을 살펴보기 위하여 노력하라 하였다.

       하지만 성현들이 그리도 말하고 경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빠져드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으니, 제 귀에 듣기 좋은 말만을 약인 줄 알고 정작 약이 되는 말은 망언으로 간주하여서 한 귀로 듣고 흘리는 까닭이다.

       그러하니 어리석은 이들을 먹잇감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이 들끓게 되는 것이며, 이들 중에 사람이 아닌 것들이 끼어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여 요괴 하나가 어리석은 이를 홀려서 잡아먹기 위하여 재주 한 가지를 익히기에 이르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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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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