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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1

       ‘용케 그 고통을 견디셨네, 정말.’

         

       데릭은 직접 약을 다루며 느꼈었다.

       귀왕의 심장은 여느 약과도 격이 다른 독한 약성을 가지고 있음을 말이다.

       그냥 독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독으로 따지면 짐조(鴆鳥)의 독보다 독할 테지.’

         

       절독을 지녔다고 전해지는 전설상의 새 짐조.

         

       그 독은 해독하는 방법조차 없을 만큼 강력하고도 끔찍하다 전해지는 바였고, 원래 세상에선 마냥 역사서에서만 기록된 전설의 독이지만, 이 세상에는 실존하는 짐조가 있다.

       실제로 서식지가 어디인지도 알고 있고.

         

       허나 데릭은 서식지를 알지라도 감히 입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입수 난이도 ‘측정불능(Unknown).’

         

       입수하려다 십중팔구로 죽을 텐데, 어찌 입수할 수 있으랴.

         

       그리고 귀왕의 심장은 그런 짐조와 맞먹거나 그도 아니면 더욱 강력한 바.

       실상 저걸 그냥 먹는 건 안 될 말이었다.

       하여 최대한 약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섭취를 강구했는데, 그가 기절하자마자 기다리지도 않고 약을 먹으리라곤 꿈에도 상상치 못하였다.

         

       나름 기다려달란 어투로 말을 남겼음에도.

         

       …다만.

         

       ‘그래도, 견뎌냈다면 그것만으로 큰 의미가 있긴 하지….’

         

       데릭은 안다.

       측정불능 등급 비약을 편법 없이 온전히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새로운 특성이 생길 수 있음을.

         

       ‘그 악랄한 약성과 싸워 이긴 셈이야. 한두 시간 만에 약성을 모두 흡수한 게 그 증거고, 그렇다면 분명하다.’

         

       원래는 마취 물질을 비롯하여 좀 더 안전한 방식으로 섭취시킬 셈이었으나, 그는 어쩌다 보니 온몸 전체로 그 고통과 맞서 싸우며 기어이 약성을 흡수했다.

       이는 당당히 ‘업적’이라 주장해도 부족하지 않은 성과였다.

         

       ‘[인내하는 자]와, [광인], [고통을 즐기는 자]. 이중 하나의 특성은 무조건 생겼겠지?’

         

       ‘[독 내성] 레벨도 무조건 상승했을 테고….’

         

       ‘…그밖에 다른 특성의 레벨도 상승했을지도 몰라!’

         

       기대치가 너무 높은 게 아닌가 싶으나, 반대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비약의 고통’에서 생존한 것은 그 정도로 대단한 일임을.

         

       하여 데릭은 그의 성장 곡선이 얼마나 가파르게 수직상승 했을지 추측하며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기대감에 의한 전율이었다.

         

       ‘레, 레벨7 특성은 오르지 않았을 거야, 레벨8부터는 격이 다른 수준이니까…. 하지만 새로운 특성이 생기고, 다른 특성들 레벨이 오른 것만으로 엄청난 성과가 아닐 수 없어!’

         

       특성이 추가된다는 것은 단순히 스킬이 늘어난 것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그 사람이 가진 성장상승세, 그러니까 잠재력이 한없이 깊어졌다는 의미니 말이다.

       교관님 식으로 말하자면 지금 그는 [벌모세수]를 받은 것과 다름없는 바.

         

       “…잘만 하면 올해 안에 레벨8 도달할지도…….”

         

       [오러 유저]나 [마검의 사용자], 혹은 [흑왕의 계승자] 등.

         

       저러한 Lv.9·Lv.10에 이른 자들은 천외천의 괴물이며, 은거하듯 몸을 쉬이 움직이지 않기에 그저 산과 하늘 위에서 가만히 인세를 지켜만 보는 ‘신선(神仙)’ 같은 이들이라 칭할 수 있을 터.

       즉, 웬만한 상황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전략병기 같은 존재들이다.

         

       반대로 ‘Lv.8의 전사’부터는 가히 그런 괴물들과 달리 활발하게 인세를 활보하며 공포이자 힘의 상징으로 군림하는 산군(山君)과 같은 이들일지니…!

         

       ‘비록 그 강함이 절대적이진 않지만, 홀로 일천의 기사와 싸워 이길 자들이지.’

         

       일기당천.

       홀로 전장의 판도를 바꾸고, 패전마저 승전으로 뒤바꿀 어처구니없는 최상위권 영웅 클래스…!

         

       그렇게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리고 당장 전날 보았던 ‘약체화된 귀왕’이 레벨8이었고-.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레벨9나, 9.5였겠지만.’

         

       어쨌든 레벨8이라 한들, 놈이 동일선상 레벨 중 최상위권에 있는 놈이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여 기대가 되는 거다.

         

       하나의 레벨의 차는 절대적.

       한데도 그 레벨의 격차를 딛고 일어나 기어이 최상위권 Lv.8 보스 몬스터와 싸워 맞대응한 기사가 눈앞에 있지 않은가?

         

       ‘지금도 이 정돈데, 저 사람이 만약 진짜로 레벨8에 도달한다면…?’

         

       잘하면….

         

       ‘레벨9랑 막고라가…, PvP가 가능한 레벨8이 탄생할지도?’

         

       데릭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품으며 교관을 보았다.

       그가 과연 어느 정도로 성장할지 궁금하여.

         

       * * *

         

       ‘-가볍네?’

         

       몸이 가볍다.

       단순히 가벼운 게 아니라, 마치 어릴 적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가벼움이다.

         

       왜 그런 시절이 있지 않은가?

         

       몸이 너무 가벼워 달리고 또 달려도 무릎은 아프긴커녕 싱싱하기만 했던, 아무리 몸을 막 굴려도 다음 날이면 멀쩡하던 십대 시절이 말이다.

       지금의 몸 상태가 그러했다.

         

       후욱!

         

       이한은 가볍게 몸을 공중에다 띄우며 놀라고 말았다.

       가볍게 땅을 박찼을 뿐인데, 무려 50cm는 뛴 것 같다.

       전력으로 점프하면 대체 얼마나 높이 뛰어오를 수 있을까?

         

       사악!

         

       가볍게 내지른 발차기가 허공을 벤다.

       관용구가 아니라, 진정으로 공기를 가르며 칼이 허공을 그은 소리가 난 것이다.

         

       지금은 발로도 종이 정도는 가볍게 반으로 자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날카로움.

         

       원래는 그가 하지 못했던 재주였다.

         

       ‘내가 섬세한 쪽으론 재주가 영 부족했었는데….’

         

       재능의 얄팍함인지, 성향의 부족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섬세한 기술에는 영 자신이 없었다.

       워낙 기술을 감에만 의존하여 펼치는 경향이 있어 섬세하게…, 그러니까 이론적인 부분이 부족한지라 상당히 기술이 단순한 경향이 있는 거다.

         

       그러나 지금, 항상 부족했던 기술의 역량이 갑작스레 높아져 세밀하고도 정교한 동작이 가능해졌다.

       원래의 그라면 백 번 연습해서 한 번 꼴로 성공할 만한 기술을 단번에 습득한 격.

         

       ‘이야, 대체 뭐지?’

         

       제 몸에 일어난 현상을 정확히 설명하자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노인이 소년 시절로 회춘한 것마냥 가벼워진 몸.

       그냥 가벼운 수준이 아니라, 그냥 십대 시절 활력의 열 배는 더 될 법한 활력이 감도는 것이다.

       이건 뭐 부상 전에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는 몸 상태일 터.

         

       그리고 두 번째가 정교함.

       지금까진 몸을 쓸 때 그냥 무작정 썼다면, 지금은 정교함이란 게 생겼다.

       추측일 따름이지만, 몸이 잠재력이 높아지면서 섬세함 부분이 해결된 게 아닐까 싶었다.

         

       ‘몸이 지나치게 건강해지니까, 쓸데없이 머리를 쓰지 않게 된 셈인가?’

         

       원래 같았으면 무수한 시행착오와 이론을 정리하는 구슬땀 흘리는 과정이 있어야 했거늘, 지금은 건강했던 몸이 더 건강하고 힘이 넘치게 되니, 이론마저 무시한 기술의 섬세함을 가지게 되다니….

       행운이긴 한데, 어찌 된 게.

         

       ‘아, 이러면 안 되는데.’

         

       갈수록 무식함이 커지는 것 같았다.

         

       ‘…조졌네, 이거.’

         

       비약만 해도 괜히 혼자 쇼를 벌이다 골로 갈 뻔했지 않은가.

       이한은 앞으로 이런 경험은 사양이었고, 머리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더욱 좋아지며 앞으로 머리를 쓸 필요가 더 없어질 것 같으니, 원….

         

       “쩝, 지금부터 공부라도 좀 해야 하나?”

         

       책이라도 읽으면 지능지수가 좀 높아지지 않을까 고심한다.

         

       이한은 무식하다거나, 못 배워먹은 놈 소리를 듣기 싫었다.

         

       “어휴, 내 팔자야.”

         

       몸이 너무 좋아져도 문제라며 이한은 배부른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좋아져봤자….’

         

       ……써먹을 수도 없는데, 뭐.

         

       이한은 여전히 반응이 없는 분신을 확인하며 방금 전과 다른 서글픈 미소를 머금었다.

       아무리 귀왕이라도 저주로 인한 불치병은 고치지 못하는지….

         

       ‘스님도 이 정도로 잠잠하진 않겠다.’

         

       처연하기까지 한 울적함이 눈에 담겼다.

         

       * * *

         

       “…교, 교관님, 뭐가 달리진 게 느껴지세요?”

         

       한동안 가만히 저가 몸 상태를 확인하길 기다려주던 소년이 어떤 상태인지를 물었고, 이한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 말씀은?”

       “흐음, 구체적으로 말, 아니 보여주자면 이제-.”

         

       서걱.

         

       “이런 것도 가능할 정도로 좋아진 거지.”

         

       “……?”

         

       연금술사의 호기심일까, 그의 몸이 어떤 변화를 이루었는지 몹시 궁금해 하는 소심이었고, 이한은 예비 조교(?)의 희망을 기꺼이 들어주며 몸소 시범을 보였다.

         

       공방을 꾸미며 남은 자재로 추정되는 목재.

       그 목재 중 하나를 가볍게 자르는 것을 선보이니 녀석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목재를 자르는 것 정도야 어려울 건 아닌 일이긴 하지만….

         

       “지, 지금 손으로 그걸 베신 거예요?”

       “정확힌 엄지와 검지로 한 거지, 또 자른 것보단 움푹 파낸 거고. 왜 조각도로 나무 같은 거 파내잖아? 그런 원리지.”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되는 건데요?”

       “……잘?”

       “…….”

         

       놀리는 것 같지만, 이렇게 설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저 그동안 못 하던 미세한 동작과 컨트롤 등이 전보다 5배가량 더 예민했다는 말로 퉁 치는 게 설명 가능한 전부일 터.

         

       “그리고 이런 것도 되겠더라.”

         

       설명은 못 하지만 시범은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다는 듯 이한은 가볍게 주먹을 허공에 내질렀으나, 가볍게 내지른 것과 달리.

         

       파앙!

         

       “…??”

         

       그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소심이는 또 다시 멍을 때렸다.

         

       지금….

         

       “사, 삼십 보 밖의 물건을 타격한 거예요? …권력(拳力)만으로!?”

       “그렇지, 원래는 십 보 밖의 물건만 가격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삼십 보도 가능하겠더라.”

       “…그게 왜 되는데요?”

       “그러게 말이다.”

         

       백보신권.

       과거 불칸에서 처음 선보였을 때, 십 보 내외 물체만 가격할 수 있던 권법이었지만, 지금은 또 달랐다.

         

       삼십 보.

         

       이제 그는 삼십 보 밖의 물건도 타격할 수 있으며, 파괴하는 것도 가능했다.

       지금이야 망가질 물건이 많아 가볍게 휘둘러 그렇지, 제대로 휘두른다면 저 멀리서 그를 노리는 암살자조차 권경으로 쳐버릴 수 있을 터.

         

       그리고 백보신권만이 아니라 무수한 기술이 이처럼 상향됐으리라.

         

       ‘지금이라면 관일창도 연속 세 번은 가능할 것 같고, 매화검법도 연속 두 번은 펼칠 수 있을 것 같네.’

         

       기술의 섬세함이란 건 그런 거다.

       쓸데없는 힘을 흘리지 않게 되고, 힘을 효율적이며 영악하게 이용하는 게 가능해지는 거다.

       그러니 생각한다.

       지금의 몸 상태라면 귀왕과 단독으로 싸워볼 만하다고.

         

       전날처럼 남들의 도움이 없을지라도 말이다.

         

       ‘아이러니하네.’

         

       귀왕의 심장을 섭취하여, 귀왕과 맞먹게 되다니….

       아이러니하면서도 이게 바로 약육강식의 법칙이 아닐까 싶다.

         

       승자독식.

       승자가 모든 걸 가진다.

       살아만 있다면 그자가 곧 승자인 법.

         

       ‘강한 놈이 이기는 게 아니야. 마지막에 웃는 놈이 이기는 거지.’

         

       그리고 지금, 이한은 전날의 마물 토벌전에서 느꼈던 무력감을 완전히 떨쳐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놈은 죽었고, 자신의 양분이 되어 사라졌으니까.

         

       하여 이한은 만족스럽게 미소를 머금으며….

         

       “잘 봐라, 나도 될지는 모르겠는데, 한 번 시도만 해보는 거니까.”

       “예에?”

       “…되려나.”

         

       기쁨의 퍼포먼스 하나를 보여주었다.

         

       -탁.

         

       “…아, 되네, 이거.”

         

       “…….”

         

       “어떠냐? 나름 신기한 구경거리지, 흐흐.”

         

       “…….”

         

       …해맑은 그의 물음에도 차마 데릭은 대답하지 못하며 마냥 멍을 때렸다.

         

       아니, 지금 그가 본 게 현실인가 싶기도 했고.

         

       ‘허, 허공답보?!’

         

       이한, 그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계단 타듯이 오르는 것을 보며 데릭은 이번에야말로 혼이 빠졌다.

         

       이게 뭔….

         

       ‘혹시, 저분은 나랑 동향인이 아니라, 찐 무림인이 환생한 게 아닐까?’

         

       소림의 전직 방장이 아닐까 싶다.

         

       그편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 수 없어, 데릭은 잠시 넋이 나가고 말았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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