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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1

   ‘조이는 괜찮을까요?’

   <그럴 것이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아카데미의 던전으로 향하던 길에 조이를 만나 그녀와 함께 던전의 문 앞에 섰다.

   

   그 순간 조이가 넘어졌다.

   

   호흡이 가빴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죽고 싶지 않다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분명 눈이 떠져 있음에도 앞을 보지 못했다.

   

   주변에서 웅성이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자신의 세계에 갇혀버린 그녀는 현실과 격리되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녀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말을 하며 일어나려 했지만 팔과 다리의 힘이 풀려 다시금 넘어질 뿐이었다.

   

   난 그런 조이를 돕기 위해 손을 내밀었지만 그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내 손이 내밀어진 순간 조이가 움찔하고 떠는 게 보였으니까.

   

   <여아야. 그대의 잘못이 아니다.>

   

   할배는 한숨을 내쉬는 내게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도저히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결국에 조이의 사정도 모르고서 함께 던전에 가자 이야기를 하며 들떠 있었던 건 나이지 않은가.

   

   <흔한 일이다. 던전에서 사고를 겪고 나서 그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은. 던전을 공략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지나가야 할 과정에 가깝지. 그게 조금 더 빨리 찾아왔을 뿐이다.>

   

   나는 이런 일이 있다는 걸 몰랐다.

   

   게임 속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니까.

   

   그 어떤 위기가 닥치더라도.

   

   파티가 붕괴하더라도.

   

   게임 오버라는 글자와 함께 검은 창이 떠오르더라도.

   

   게임 속의 캐릭터는 캐릭터일 뿐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정신적인 고통 같은 건 호소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줄 따름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러니까 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기에 어찌하면 조이를 도와줄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를 악몽 속에서 구해줄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괜히 무언가 하려 하지 말거라.>

   ‘네?’

   

   이런 일에 익숙할 것 같은 할배에게 물었더니 할배는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을 내놓았다.

   

   <동정도. 위로도. 뭣도 하지 마라. 그냥 평소처럼 대해라.>

   ‘그렇지만.’

   <여아야. 네가 한 마디를 해주는 걸로 극복이 될 정도로 인간의 정신이 단순할 것 같으냐.>

   

   할배는 말했다.

   

   결국 자신을 괴롭히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스스로 그를 극복해야 한다고.

   

   아무리 바깥에서 좋은 소리를 해주고 배려를 해준다 하더라도 의미가 없다고.

   

   오히려 자신이 트라우마에 빠져 있음을 자각하게 만들 뿐이라고.

   

   그러니까 그냥 평소처럼 대하라고.

   

   <상대가 먼저 도와 달라 이야기하기 전엔 아무것도 하지 말거라.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이다.>

   ‘…네.’

   

   평소에는 진지한 체를 하면서도 쓰잘데기 없는 말을 내뱉는 할배이거늘.

   

   오늘 따라 이상할 정도로 그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그래서 난 그가 진지하게 조언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할아버지는 저렇게 고통 받는 사람을 많이 보셨나요?’

   <전장에서 살다보면 지겹도록 마주하게 되는 일이다.>

   ‘그 사람들은 다 괜찮아졌나요?’

   <물론. 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구나. 그렇지만 얼빵 영애는 괜찮을 것이다. 나름 굳은 심지를 지니고 있는데다 주변의 사랑을 받는 녀석이니까.>

   

   할배가 얼빵 영애라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하아. 진짜.

   

   오랜만에 감성적이었는데 신통을 다 깨버리시네.

   

   나를 걱정해서 저런 농담을 던진 것을 알았기에 난 할배에게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그 대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래. 괜찮을 거야.

   

   “아가씨.”

   

   그렇게 시간을 때우고 있자니 조이를 간호실에 데려다 준 칼이 다시 돌아왔다.

   

   ‘칼. 조이는 어때요?’

   “허접견. 얼빵 영애는 어때?”

   

   “괜찮으십니다. 안정 마법을 받은 덕분에 불안 증세도 사라지셨습니다. 양호실의 치료사가 이야기하길 조금 쉬면 괜찮아 질 거라더군요.”

   

   소울 아카데미의 양호실에 근무하는 이는 무척이나 실력이 좋은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괜찮아 질 거라 이야기를 했다면 안심해도 되겠지.

   

   다행이다. 진짜로 다행이야.

   

   “그리고 아가씨. 파트란 영애께서 다시 아가씨를 만나고 싶다 하십니다.”

   

   ‘저를요?’

   “날?”

   

   “예.”

   

   지금 다시 만나러 가도 괜찮은 걸까?

   

   조이 내가 손을 내미는 걸 보고 움찔했었잖아.

   

   괜히 지금 다시 날 보게 되면 또 겁에 질리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이 들어서 쉬이 일어서지 못하고 있으려니 할배가 한숨과 함께 이야기했다.

   

   <내가 무어라 했느냐.>

   

   괜히 배려하지 말라하셨죠.

   

   네. 방금 전에 들었지만 잊고 있었네요.

   

   나는 할배에게 알겠다 대답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호실로 향하는 도중에 나를 향하는 시선들이 오늘 따라 많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조이가 쓰러졌던 일이 학생들 사이에 퍼진 것 같았다.

   

   개 중에는 들으라는 것처럼 형식 상 입을 가린 채 소곤거리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 내용은 내가 조이를 괴롭혔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정신이 나간 사람이어도 대 파트란 가문의 영애를 괴롭히겠냐는 반론이 절로 튀어나왔지만 생각해보면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당장에 3왕자를 보고서 불쌍 왕자라는 말을 박아버린 게 나이지 않은가.

   

   아무리 미친 것 같은 일이어도 그 앞에 루시 알른이라는 단어가 달리면 말이 되는 것이다.

   

   아아. 역시 평판을 회복하는 건 포기하자.

   

   내가 아무리 발악을 해봐야 이미 기저에 깔린 게 최악인데 어쩌겠어.

   

   뭐어. 굳이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잖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나를 좋아해주면 충분한 걸.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하다는 건 이런 거 아니겠어?

   

   애써 태연한 체를 하며 앞으로 걷던 중에 한 여학생 무리가 나를 가로 막았다.

   

   그들의 얼굴은 익숙했다.

   

   게임 속의 주요한 NPC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 그냥 항상 조이 옆에 붙어 다니는 추종자들이다보니 자연스레 익숙해졌을 뿐이었다.

   

   날 선 인상의 영애 여럿이 앞을 가로막고 노려보니까 좀 무섭네.

   

   강한 마물을 상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압박감이야.

   

   악역 영애물에 흔히 나오는 괴롭힘이 이거지?

   

   이야. 이거 빡세다.

   

   세상물정 모르는 여주인공이었으면 숨이 턱하고 막혔겠는데?

   

   “알른 영애.”

   

   그 중에서 대표의 역할을 맡은 것처럼 보이는 이가 날 불렀다.

   

   단순히 이름을 불렀을 뿐이지만 그녀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거슬린다는 감정이 잔뜩 담긴 목소리를 듣는다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 어디에 가시는 거죠?”

   

   ‘양호실로 가는데요.’

   “알고 싶어? 난 말해주기 싫은데. 너 같은 좆밥의 질문에 대답해 주기 싫거든.”

   

   메스가키 스킬 탓에 쿡쿡 웃으며 대답을 해주었더니 나를 둘러싼 영애들에게서 웅성이는 소리가 나왔다.

   

   그 내용은 뻔했다.

   

   건방지다거나. 무례하다거나.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런 웅성임도 대표가 된 여자아이가 미간을 찌푸린 순간에 멈췄다.

   

   장악력이 좋네. 조이보다 더 악역영애 같은데?

   

   “무례하게 굴지마세요.”

   

   ‘어… 죄송합니다?’

   “뭐야? 화났어? 감정조절 못하는 허접 영애. 무례하지 말라면서 지가 무례한 멍청이.”

   

   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메스가키 스킬이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 앞에 선 영애의 얼굴이 점차 붉어져 간다.

   

   “당신이라는 인간은 사교계에 있을 적과 달라진 게 없으시군요.”

   

   증오를 씹어 조각내어 말에 담아낸 듯한 목소리.

   

   그를 들은 나는 이 영애와 루시의 악연이 그리 가볍지 아니함을 이해했다.

   

   그녀 또한 루시가 업보를 저질러 놓은 대상인 것이다.

   

   “알른 영애. 지금 양호실로 가시려는 거죠?”

   

   ‘네. 그런데요?’

   “뭐야. 알고 있었어? 그러면서 왜 물어 본거야? 치매? 건망증? 젊은데 뇌에 구멍이 난 거야?”

   

   “꺼지도록 하세요. 파트란 영애님을 괴롭힌 사람이 무슨 낮짝으로 그 분을 보러 가려는 거죠?”

   

   뭐야. 그 소문을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날 조이한테 못 가게 만들려는 거고?

   

   평판대로라면 지랄견이 따로 없는 나한테 굳이 시비를 걸면서 막는 걸 보면 조이가 소중하긴 한가보네.

   

   잘됐다. 지금 조이는 많이 힘들텐데 이런 친구라도 있어야지.

   

   물론 그건 그거고.

   

   ‘저 조이가 불러서 가는 건데요.’

   “좆밥 영애. 미안하지만 난 얼빵 영애가 불러서 가는 거거든? 그러니까 꺼질 쪽은 내가 아니라 너야. 알겠어? 허~접아?”

   

   조이가 만나러 와달라고 해서 가는 거니까 비켜줬으면 좋겠는데.

   

   너희들이 하는 불평이라면 나중에 지겹도록 들어줄 테니까 말이야.

   

   “당신이란 인간은 거짓말을 달고 사는 군요?”

   

   하지만 이 영애는 내 말을 조금도 믿어주지 않았다.

   

   하긴 이 사람이 소문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면 조이가 날 불렀단 말을 믿지 않겠지.

   

   그래도 조이가 말한 건 사실인데.

   

   어떻게 설득을 하면 좋으려나.

   

   “저어. 죄송합니다만. 파트란 영애께서 알른 영애를 보러 가려 한다는 것은.”

   

   나로썬 이 영애들을 설득할 수 없다 생각한 걸까.

   

   옆에 서 있던 칼이 목소리를 냈지만 영애의 눈에 새겨진 날카로움은 조금도 사그라들 기색이 없었다.

   

   “교수님. 학생들끼리 이야기하는 데에 끼어들지 말아주시겠어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내가 한 가지 착각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만약 이 사람이 조이를 정말로 아끼는 사람이었다면 칼의 말을 끊었을까?

   

   교수의 명함을 달고 있는.

   

   방금 전에 조이를 안고 양호실까지 데려다주었던 칼이 하는 말을 무시할까?

   

   최소한 듣는 척이라도 하겠지.

   

   하지만 이 영애는 칼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랬다.

   

   이 영애에게 그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심지어 조이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중요치 않았다.

   

   그녀는 단지 내가 조이를 만나러 간단 사실 자체가 고까울 뿐이었던 것이다.

   

   으음. 넌 딱히 조이의 친구 같은 게 아니구나?

   

   조이를 진정으로 신경써주는 사람도 아니야.

   

   그치?

   

   그럼 나도 널 배려할 이유가 없겠다.

   

   곤란해 하는 듯한 칼을 밀어내고서 앞으로 나왔다.

   

   그러자 이름 모를 영애의 시선이 나에게 꽂힌다.

   

   “뭐죠? 알른 영애? 할 말이라도.”

   

   난 거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할 이유가 없었다.

   

   조이를 위하는 체를 하며 분풀이를 하고 싶은 년에게 무슨 대답을 하겠는가.

   

   그 대신에 그 영애를 옆으로 밀어냈다.

   

   “꺄악?!”

   

   그리 강하게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애는 바닥에 추하게 널부러져 버렸다.

   

   왜 그러는 거야?

   

   나 그냥 살짝 툭하고 민 것 뿐이잖아.

   

   할리우드 액션이 너무 과하네.

   

   이 정도면 축구의 심판도 내가 아니라 너한테 옐로 카드를 주겠다.

   

   나는 억울했지만 다른 영애들에겐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방금 전 넘어졌던 영애 바로 옆에 서있던 여성이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 도대체 뭘 하는?!”

   “푸훗♡ 미안♡ 좆밥 영애가 허약♡하고 허접♡하고 쓰레기♡같은 구제불능의 머저리라는 걸 몰랐네♡”

   

   내가 웃으며 그리 이야기를 하자 다른 영애들이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덤빌거야?

   

   와봐. 쓰레기들아.

   

   다 같이 덤벼들어도 프레이 하나 쓰러트리지 못할 잡몹들이 날 이길 순 없겠지만 덤비겠다면 받아줄게.

   

   기 하나 죽지 않고 똑같이 노려봐 주었더니 영애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그럼 가볼게♡ 허접들?♡ 다음 번엔 주제를 파악해줬으면 좋겠네♡ 아♡ 그럴 머리가 있었으면 시비도 안 걸었으려나?♡”

   

   일부러 과장스럽게 웃으며 그 사이를 빠져나왔더니 영애들의 얼굴이 시뻘게지는 게 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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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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