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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1

    <81 – 조금 이상하게 들렸으려나>

     

    [은퇴한 전대용사 디스트로이어의 강의에서 트롤의 딜레마의 진짜 목적을 맞췄습니다.]

    [상황파악 경험치+15]

    [사고력 경험치+10]

    [의지력 경험치+5]

    [도전과제 달성보너스로 500포인트를 습득합니다.]

     

    이번 히든강의의 보수는 지난번보다는 적었다.

    솔직히 첫 강의가 더 어렵긴 했어!

     

    양 가죽을 벗겨다가 사람시체를 집어넣는 양치기.

    괴물트롤을 마약으로 조교해서 부려먹는 인간트롤.

    맥락은 비슷해도 난이도가 쉽다.

    인간에 대한 의심.

    불신이 첫 번째 강의에서 이미 심어졌거든.

    아예 의심하지 않았던 사람의 범행을 찾는 것보단 처음부터 의심하던 사람의 범행을 찾는 것이 훨씬 쉬운 게 당연하잖아?

     

    ‘그치만 뭔가 결이 다르네.’

     

    아카데미의 사건사고들이 ‘난이도’에서 비롯된다면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의 모험기담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과 ‘악의’에서 비롯된다.

    아카데미에도 악성향 캐릭터는 많지만 저렇게까지 사악한 사람은 정말 흔치 않다.

     

    ‘이번 회차의 디스트로이어 교수님은 대체 15년 전부터 어떤 모험을 해왔던 걸까?’

     

    조금 불안한 마음도 든다.

    만일 아카데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지 못하면 그때는 자신이 저런 험악한 세계로 나가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모험기담 두 개만 들어도 시골마을에 대한 로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귀농하러 내려가면 낯선 이방인은 마을 사람들한테 붙잡혀서 비료로 뿌려지는 건 아닐지 걱정해야 할 수준의 민도가 아닌가.

    마을사람만 조심해서 될 일이 아니다.

    지나가던 흑마법사한테 하루아침에 마을과 함께 풍비박살 날 수도 있다.

    쾌적한 이세계 생활을 위해서는 아카데미 졸업 이후에도 대도시의 가혹한 물가를 감당하며 평생 먹고 살 부와 명예, 권력을 축적해야 한다.

     

     

    * *

     

     

    ‘그러려면 부지런히 포인트를 모아야지.’

     

    그 결과가 교장의 강의실 안에서 보따리를 펼치고 늘어놓은 깃발들 되시겠다.

     

    “깃발 팔아요!”

     

    상급반 학생들은 울적한 얼굴로 깃발만 보며 연신 입맛만 다셨다.

     

    “미친. 이게 다 몇 개야?”

    “인생 혼자 사네.”

    “현타 오진다.”

     

    다들 와서 구경하는 건 좋은데.

    좀 사주지 않을래?

     

    “깃발 사세요!”

    “와. 자주색 깃발도 있었구나.”

    “깃발 사세요!”

    “하 진짜 갖고 싶다.”

    “깃발 사세요!”

    “오늘 점심에 나온 아코디언 삼겹살 맛있었지? 고기 한 덩어리에 10포인트나 주고 추가메뉴로 파는 건 괘씸했지만.”

     

    진짜 아무도 안 산다.

    서러워서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자 잡담을 하던 학생들이 당황해서 허둥거렸다.

     

    “앗, 오해하지 마. 놀리려고 그러는 거 아니니깐.”

    “근데 왜 아무도 안사요?”

    “우리가 포인트를 다 털려서 그래.”

    “네에? 아코디언 삼겹살이 그렇게 맛있었어요?”

    “맛있긴 했는데, 거기다가 다 쓴 건 아니야. 우리도 깃발 사는데 포인트를 썼거든.”

    “다른 분들은 그렇게 많은 깃발 없잖아요!”

    “있어, 한 명.”

     

    때마침 강의실에 들어오는 한 사람.

    얼굴에서 빛이 난다는 말이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구나 싶을 정도로 밝은 얼굴을 한 그의 정체는 보따리가 텅텅 빈 지젤이었다.

     

    “오크노디양. 조금 늦으셨군요.”

    “힝. 지젤 아저씨. 다들 포인트가 없대요. 깃발을 얼마나 팔았기에 이래요?”

    “완판 했습니다. 마지막 가짜깃발까지 알뜰살뜰하게 전부 털었죠.”

     

    이럴 줄 알았으면 지젤아저씨한테 남은 깃발 전부 팔걸!

    덕분에 팀 전체 깃발 개수가 엄청나게 늘었다.

     

    ===

    □오크노디 팀 – 합계 63개

    -오크노디 : 30개

    -지고쿠 : 14개

    -헤스티아 : 11개

    -롯토 : 8개

    ===

     

    그런데 이거, 상황이 아주 골 때리게 됐다.

    지젤이 풀어버린 가짜깃발.

    대체 몇 개를 팔아치웠는지 상급반 팀에 깃발 개수가 죄다 삼사십 개는 기본으로 깔고 들어간다.

     

    “우리 팀은 깃발 112개가 있다냐!”

    “후후. 해상강국 피렌체의 부유함을 얕보지 말아요. 저 아카디아가 이끄는 팀에 깃발 100개 매수하기는 별 것도 아니랍니다!”

    “제국의 부유함을 얕보지 마라. 우리 후라이드치킨 파벌은 무려 122개의 깃발을 확보했으니까!”

    “112개도 적은 것이었다냐?!”

     

    그렇다.

    전체적으로 깃발 개수가 늘어났다.

    거의 인플레이션 급으로.

     

    “뒷수습은 어쩌려고 이렇게 잔뜩 팔았어요?”

    “저야 사전에 고지한 확률대로 물건을 팔았을 뿐입니다만?”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지젤이 암상인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다른 팀들이 지닌 깃발 중에서 반 이상은 가짜.

    그중에 진짜 깃발만 모을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저기, 오크노디. 방금 깃발을 판다고 했었지?”

    “오? 사게요?”

    “가능하다면 3개만 사고 싶은데.”

    “그럼 개당 100포인트로 300포인…읍!”

    “이런. 오크노디양이 말실수를 했군요. 개당 1000포인트. 합계 3000포인트입니다.”

     

    옆에 있던 지젤이 입을 막고 터무니없는 숫자를 대신 불렀다.

    구매의사를 타진해왔던 학생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었다.

     

    “제가 거래하는 상대는 지젤 당신이 아니라 오크노디거든요? 멋대로 옆에서 끼어들어서 가격을 올리지 말라고요.”

    “바닐라양. 물건의 가치는 때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이쪽은 확률장난 없이 100% 확률로 확정 당첨인 깃발. 가치가 높아지는 건 당연하죠.”

    “편하게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주실래요? 그딴 설교 들을 이유도 없고. 애초에 당신이 오크노디의 뭔데 함부로 참견이죠?”

     

    그야 당연히 동료지!

    힘차게 대답하려던 내 입을 지젤이 또 다시 막았다.

     

    “오크노디양은 아직 마음이 약한 아이입니다. 상거래의 중요성을 100% 깨달았다고 자신하기 어렵죠. 저는 그녀의 조언자로서 이익을 볼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개당 1000포인트는 너무 크잖아.

    지젤이 포인트의 가치를 모를 사람도 아닌데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지?

     

    “천 포인트는 억지에요.”

    “그럼 아쉽게도 깃발의 주인은 없겠군요.”

    “큿…. 살게요. 삼천 포인트로 사면되잖아요!”

     

    그런데 이걸 사네?!

    깃발에 그렇게까지 큰 가치는 없는데!

     

    “훗. 오크노디양이라면 그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젤은 웃으며 말했다.

     

    “판매 전에 잠시 오크노디와 단 둘이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용건이 뭐인지는 몰라도 용건은 빨리 끝내줘요. 강의시간도 거의 다 되어 가는데 언제 교장님이 올지 모른다고요.”

     

    툴툴거리면서 순순히 기다려주는 바닐라.

    그녀와 약간의 거리를 벌린 채, 지젤은 조곤조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크노디양은 전에 말했죠? 깃발의 가치는 100포인트라고.”

    “넹.”

    “아마도 그건 깃발로 얻을 수 있는 이득과 깃발의 수량을 면밀히 검토하여 내린 가치일 겁니다. 실제로 깃발 한 개의 가치는 100포인트에 가깝겠죠.”

    “맞아요!”

    “그게 문제입니다. 오크노디양은 어째서인지 물건의 가치를 알고 있고 그것을 확신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야 지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았다.

     

    “남들은 얼마나 비싼 물건인지 모르니까 가격을 잔뜩 올려도 산다는 거군요!”

     

    깃발을 모아라.

    교장은 그렇게 말했을 뿐.

    깃발을 많이 모아서 얻을 보상이 무엇인지, 얼마나 귀한 보상인지.

    깃발을 덜 모아서 입을 페널티가 무엇인지, 얼마나 심각한 페널티인지.

    그런 정보는 아무것도 지니지 못했다.

    개당 100포인트의 실질가치와 달리.

    학생들 개개인이 지닌 상상력과 공포심에 따라 깃발의 가치는 천차만별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걸 감안해도 3000포인트는 너무 터무니없이 비싸지 않아요? 애초에 지젤아저씨 때문에 다들 깃발 개수가 엉망진창으로 늘어나기까지 했는데.”

    “3개라는 숫자는 누가 진짜 깃발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모르는 상황에서는 이상하게 들립니다만, 분명 바닐라양에게도 나름의 계산이 있을 겁니다.”

     

    바닐라양이 속한 팀은 제국상급반 내에서도 비주류이자 떨거지조로 치부되는 3황녀의 조.

     

    “야요이의 조인데요?”

    “…제국 3황녀를 이름으로 부르는 겁니까?”

    “뭐 어때요. 아카데미에선 동기인데.”

    “아무리 힘없는 황녀라도 용케 그럴 용기가 나시는군요. 가끔은 오크노디양의 담력이 부럽습니다.”

    “모험가의 야간행동 강의를 들으면 담력이 좋아질지도 모르는데. 같이 들어보실래요?”

    “구미는 당기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이미 듣고 싶은 강의는 모두 고른지라.”

     

    2황녀 매스각키가 추종자를 몰고 다니는 것과 달리, 3황녀 야요이는 따르는 사람도 친구도 바깥에서 지원하는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조에 속한 학생들도 변방 놈들과 손을 잡기 싫으니 마지못해 손을 들어주었을 뿐, 딱히 야요이의 인품이나 권력을 보고 따른 것은 아니라는 느낌.

    물론 이 캐릭터도 어엿한 플레이어블 캐릭터 중 한 명이며 <대기만성> 유형에 속해있다.

    당장은 힘겹지만 존버하면 언젠가는 떡상하는 기술주 내지 우량주, 라는 느낌의 후반 캐릭이다.

     

    ‘조별과제에서 이기자고 3000포인트를 부을 만큼 결속력이 높은 조는 아닐 텐데?’

     

    ===

    □야요이 팀 – 합계 69개

    □오크노디 팀 – 합계 63개

    □이슈타르 팀 – 합계 58개

    ===

     

    우리 팀의 깃발 3개가 이동해서 득을 볼 조를 굳이 따지자면 야요이 팀보다는 이슈타르 팀, 여자용사가 속한 팀에 가깝다.

    우리팀에서 깃발 3개가 줄어들면 60개, 저쪽 팀에서 깃발 3개가 늘어나면 61개.

    깃발순위가 역전되니까.

     

    “……?”

     

    근데 그거, 가짜깃발이 하나도 없을 때에나 성립되는 카운트잖아.

    우리 팀처럼 가짜깃발 없이도 그만한 수량을 모으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가?

     

    “오크노디. 빨리 결정해주지 않을래? 팔 거야, 말 거야? 3천 포인트나 준다고 했잖아. 미리 말해두지만 이 이상은 가격을 올려도 안 살 거니까!”

    “미안해요. 깃발은 팔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어째서?! 3천 포인트나 주고 사는데도?”

    “3천 포인트는 어떻게든 진짜 깃발을 확실하게 얻고 싶으니까 부른 수치겠죠? 제 팀이 아니면 어느 팀이든 가짜깃발을 사서 수치에 허수가 들어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알고 있으면 얼른 팔라고!”

    “그치만 바닐라는 자기 팀에 깃발을 쓰려고 산 게 아니라 용사한테 넘겨주려고 사는 거잖아요. 용사의 호의를 얻기 위해서.”

    “…!”

    “2등 팀한테 깃발이 들어가게 하고 싶진 않아요.”

     

    바닐라가 딸꾹질까지 하며 놀랐다.

     

    “어, 어, 어떻게. 어떻게 용사한테 깃발을 넘겨주려고 한 걸 알았어?”

    “바닐라씨가 듣는 강의는 전부 용사님이 듣는 강의랑 똑같잖아요.”

     

    981기 상급반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플레이어블 캐릭터.

    각 캐릭터에게는 아카데미에서의 목표가 있다.

    그중 바닐라의 목표는 용사의 단짝처럼 붙어 다니는 성녀 유피를 뛰어넘어서 용사와 가장 친밀한 베스트프렌드가 되기.

    얘가 어떤 캐릭터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행동원리로 움직이는지.

    그런 것쯤은 마음만 먹으면 전부 떠올릴 수 있다.

     

    “……오크노디양은 바닐라양이 듣는 강의가 용사와 모두 같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계셨습니까?”

    “음… 비밀이에요!”

     

    지젤의 눈에는 감탄과 의심의 빛이, 바닐라의 눈에는 공포와 경계의 빛이 어렸다.

    지금 발언, NPC들이 듣기에는 조금 이상하게 들렸으려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수상할 정도로 아는 것이 많은 오크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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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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