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1

        

        

       

       

        

       길가에 나뒹구는 돌멩이.

        

       D 클래스의 열등생, 에바 하일로버는 자신을 그렇게 칭해 왔다.

        

       마법적 재능은 제르베르 황국 내 평균 이상으로 뛰어난 편이지만.

        

       메르헨 아카데미에 몰려든 재능 있는 학생들에 비한다면 턱없이 미천한 수준이었으니.

        

       그렇기에 4성좌(星座) 중 붉은 코끼리 자리를 의미하는 ‘적상’의 정보 수집꾼으로 포섭됐던 때.

        

       에바는 자기가 가진 모든 걸 바치리라, 각오를 다졌던 것이었다. 그래야만 메르헨 아카데미에서 자기 가치를 증명해낼 수 있을 테니.

        

       그러나… 아무래도 자신은 실수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적은 마나 감지력을 지닌 에바라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아이작, 저 남자에게서 상상을 초월하는 마력이 범람하고 있다는 걸…!

        

        

       ─ ‘내 정보를 팔아넘긴 건 쉬이 넘어가기 힘들다, 에바.’

        

        

       아이작이 진중한 목소리로 읊조렸던 말이 떠오른다.

        

       대체 자신은 어떤 존재를 건드렸단 말인가. 어떤 존재의 심기를 거슬러 버렸단 말인가.

        

        

       ‘다시는 나대지 않고 조용히 살겠습니다….’

       

       

       몰아치는 공포와 허탈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적상을 위해 모든 걸 바치겠다던 에바의 각오는 무너진지 오래였고.

       

       이제는 그 무너진 각오의 부스러기마저도 조각조각 깨져 나가고 있었다.   

        

       

        

       * * *

        

        

        

       [어떻게 된 거냐? 까드득 어째서 마력이, 갑자기…?!]

        

        

       말록의 커다란 눈이 휘둥그레지며 한층 더 커졌다.

        

       놀랄 만했다. 질투의 말록이 얼마나 강하던, 내 마력은 놈보다 월등히 우월하니까.

        

       슬쩍 옆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안은 검날에 빛 마나를 모으고 있었다.

        

       그의 주위로 전개되는 순백의 법진. [빛의 사도]를 쓸 생각인가.

        

       본래 <메르헨의 마법 기사> 지옥 난이도에서 [빛의 사도]를 쓰는 건 고도의 컨트롤이 요구되었다.

        

       왜냐하면 스킬 발동에 걸리는 준비 시간이 길기 때문이었다. 아찔한 타이밍을 잘 계산할 줄 알아야 했으니.

       

       그만큼 성능 하나는 보장되는 스킬이기도 했다.

        

        

       ‘좋아.’

        

        

       <메르헨의 마법 기사> 「6막, 부유섬」 파트에서 [빛의 사도]는 필수적으로 쓰여야 할 스킬이다.

       

       이안이 부유섬의 중심부에서 [빛의 사도]를 써주지 않는다면, 나로선 도로시를 구해낼 방도가 없을 테니까.

       

       그러니 이 기회에 이안이 [빛의 사도]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암석 붕괴 (바위 속성, ★4)」 + 「흑암 (바위 속성, ★5)」 =

       

       「흑암 망치 (바위 속성)」

        

        

       쿠우우우우우!!

        

        

       말록이 전개한 마법진에서 커다란 검은 바위가 망치처럼 뻗어 나온다.

        

       [흑암 망치]. 그것은 나와 이안, 그리고 다른 학생들을 내려 찍으려 했다.

        

        

       ‘쉽게 안 당하지.’

        

        

       나는 검지를 위로 들어 올리며 원소 마법을 발동했다.

        

        

       「암벽 (바위 속성, ★4)」 + 「빙벽 (얼음 속성, ★4)」 =

       

       「화석빙 (바위+얼음 속성)」

        

        

       드드드드드득!!

        

       콰아아앙!!

        

        

       내 손가락 움직임을 따라, 색이 진한 얼음벽이 질투의 말록을 빙빙 두르듯 단숨에 솟아올랐다.

        

       핏줄처럼 연갈빛 바위 마나가 형형하게 흐르고 있는 두터운 얼음벽, [화석빙].

        

       현재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방어 마법 중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이었다.

        

       말록의 [흑암 망치]는 [화석빙]에 거세게 부딪쳤으나, 그 단단한 벽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까드득 제길!!]

        

        

       이내, 이안의 [빛의 사도] 시전 준비가 끝났다.

        

       말록의 [흑암 망치]를 막기 위해 전개했던 [화석빙]을 해제했다. 연푸른빛과 연갈빛으로 빛나는 가루들이 흩날린다.

        

       연이어, 나는 말록이 뭉그적거리고 있는 위치에 [화석빙]이 솟구치게 했다.

       

       

       쿠우우우우우우!

        

        

       [끄으으윽!]

        

        

       말록의 몸체가 [화석빙]에 떠밀려 위로 급부상하기 시작하고, 중간 지점에서 멈추었다.

       

       그 주위로 벽처럼 전개되는 [화석빙]. 이안이 있는 방향의 면만 일부러 비워두었다.

        

       자, 무대는 완벽하다.

        

       이안이 빛 마나가 스며있는 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그대로 검을 아래로 휘두르는 이안.

       

       순백의 검로가 허공에 새겨지고.

       

       검에서 일어난 새하얀 화염은 지면을 박차고서 질투의 말록을 향해 날아들었다.

        

        

       화아아아아아아!!

        

        

       이안의 검격에서 일어난 순백조(順白鳥)와 함께 법진에서 수십 발의 광선이 튀어 나간다.

       

       그 모든 공격이 일제히 말록을 덮쳐들었다.

        

        

       「빛의 사도 (빛 속성, ★5)」

        

       

       

    채애애애앵!!

       

       화르르르르르르!!!

        

        

       무지갯빛 광원이 크게 일며, 순백의 화염 폭풍이 질투의 말록을 감싸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빛의 사도]는 [화석빙]에 가로막혀 주위로 퍼져나가는 일 없이, 오로지 말록만을 화려하게 태워냈다.

       

       이를 악물고 고통을 견뎌내는 말록.

        

       이안과의 레벨 차이가 아무리 크다고 한들, 신성력은 명백한 마족의 약점.

       

       그리고 이안이 레벨 차이가 큰 마족들을 상대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무기이기도 했다. 필시 효과적일 터였다.

        

       무엇보다도, [빛의 사도]에는 아주 유용한 효과가 있었다.

        

        

       [까드득 끄으윽…. 마법이…!]

        

        

       [빛의 사도]의 화염이 사그라졌다.

        

       몸체 군데군데가 그을려진 채, 마법진을 제대로 발하지 못 하고 있는 질투의 말록.

        

       [빛의 사도]는 한동안 마족의 마력 흐름을 꼬이게 만든다.

       

       [암석 붕괴] 수준의 마법은 쓸 수 있겠지만.

       

       [암석 난무]처럼 마력 컨트롤을 크게 요하는 마법은 쓰기 어려울 것이다.

        

       그건 말록의 패턴 중 가장 위험한 스킬이다. 무차별적으로 바위를 솟구치게 만드는 대규모 마법이니까. 놈이 그 마법을 사용하면 피해자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암석 난무]를 발동하기 전에 말록을 무력화시키려면, 빛 속성 검기로 놈의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머리들 중 갑자기 빛나는 머리들만 골라 쳐 내야 하는데.

       

       

       ‘이안이 그런 걸 어떻게 해.’

       

       

       어쩔 수 없지, 뭐. 이렇게 내가 서포트해서 [빛의 사도]를 먹여주는 게 베스트 아니겠나.

       

       아무튼 잘 구경했다. [빛의 사도] 위력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나는 말록을 향해 걸어가며 [화석빙]을 해제했다. 말록의 몸을 받치고 있던 [화석빙]이 사라지니, 당장에 놈의 거체는 허공에 머무르는 형국이 됐다.

        

       말록이 중력을 받아 무대로 떨어지기 직전.

        

       놈의 거대한 두 눈이 내 쪽을 향했다.

        

        

       [ 질투의 말록 ]

       심리 : [ 당신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

        

        

       [까드득 까드득 어떻게 어떻게!!]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치는 말록.

        

        

       [까드득 분명 네놈의 마력은 까드득 고작 벌레 수준에 불과했을 텐데!!]

        

        

       화려한 조명이 내리쬐고 있는 무대 앞에 서서, 말록을 향해 오른팔을 뻗었다.

       

       오른손으로 얼음 마나와 바위 마나를 흘려보내자, 무대 위와 놈의 머리 위로 연푸른빛과 연갈빛이 조화를 이루는 커다란 마법진이 동시에 새겨졌다.

        

        

       “내가.”

        

        

       내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흘렀다.

        

        

       “너 같은 놈들 상대론 좀 깡패라.”

        

        

       그대로, 나는 오른손을 주먹 쥐며 마법을 발동했다.

        

        

       「토양침하 (바위 속성, ★6)」 + 「엄동의 파란 (얼음 속성, ★6) =

        

       「영구동토 (바위+얼음 속성)」

        

        

       드르르르르르!!!

        

       드드드드드드드드득!!!

        

        

       말록의 위아래로 펼쳐진 마법진이 차가운 바위와 흙더미를 토해내고, 강렬한 냉기를 쏟아냈다.

        

       무대 위로 살인적인 냉기를 머금은 바위가 빠르게 솟아오른다.

        

       말록의 몸체는 무대에서부터 솟구치는 바위에 맞닿자마자 급속도로 냉각되어 꽁꽁 얼어붙었고.

        

       위에서부터 쏟아지던 토양과 바위에 허무하게 내려찍혔다.

        

        

       쿠우우우우웅!!!

        

        

       두 개의 바위가 위아래로 맞붙으며 말록을 압착했다.

        

       말록의 몸체가 연푸른빛 토양 안, 빠져나올 수 없는 [영구동토] 안에 억눌려진 채 갇혀버리고만다.

        

        

       치이이이이이이!!

        

        

       두 바위는 말록을 집어삼키고서, 빙정과 함께 냉기를 증기처럼 방출했다.

        

        

       「암벽 (바위 속성, ★4)」 + 「흑암 (바위 속성, ★5)」 =

        

       「금강철괴 (바위 속성)」

        

        

       [영구동토]는 제 안에 갇힌 상대를 냉혹한 추위에 가둔 채 거세게 압사시키는 마법이다. 그러나 말록은 최대 출력으로 [금강철괴]를 써서 즉사를 면한 듯했다.

        

       아쉽게도, 소용없는 짓이었다.

        

        

       우드득.

        

        

       [영구동토]는 아무리 단단한 것이라도 지속해서 압착시켜간다. 그 압력을 말록의 [금강철괴] 따위로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놈의 [금강철괴]는 만신창이가 되었으리라.

        

       이윽고. 연푸른빛 냉기를 발산하는 바위, [영구동토]를 풀었다. [영구동토]는 연푸른빛과 연갈빛을 띠고 있는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보이기 시작한 건, 허무하게 부서져 있는 검은 바위.

        

       그 안에는 몸 군데군데가 짓뭉개지고, 얼어붙은 핏물로 그득한 말록의 처참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엉망으로 변해 버린 모습이었다.

        

        

       [까드…득….]

        

        

       중력을 받으며 떨어지기 시작한 질투의 말록.

        

       채 무대에 닿기도 전에, 그는 마지막 이갈이를 했다.

        

        

       [외롭…구나….]

        

        

       말록의 마지막 한 마디가 아련하게 흩어지고.

        

       그는 칙칙한 잿빛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날렸다.

        

        

       [축하합니다! [질투의 말록(Lv 160)]을 처치하고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Level Up!! Lv이 76으로 상승했습니다!]

       

       [스탯 8을 획득합니다!]

       

       [업적 [인간의 자격]을 달성했습니다! 보너스 스탯 10을 추가로 획득합니다!]

        

        

       고유 특성 [멸악자]가 풀리자마자 몸이 급격히 무거워지고 마력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천장과 벽면을 채우고 있던 검은 미로가 서서히 사그라져갔다. 곧 있으면 이곳에 있는 학생들은 환각에서 빠져나올 테고, 기억은 가공된 것으로 대체될 터였다.

        

       이안도 예외는 아니다.

        

       본래 스토리대로였다면 그는 도중에 환각을 날려 보내고 말록과 싸웠을 테지만.

       

       이번 싸움에서 그는 환각에 걸려 있는 채였으니. 녀석 또한 가공된 기억을 갖게 될 터였다.

       

       그것보다.

       

       

       툭, 툭.

       

       

       질투의 말록이 사라지고, 무대로 열쇠 하나가 떨어져 한번 튕겼다가 바닥에 안착했다.

       

       나는 무대 위로 올라가 그 열쇠를 집어 들었다. 낡은 은색 열쇠였다.

       

       

       [전리품 [의문의 지하실 열쇠]를 획득했습니다!]

       

       

       ‘이건 회수.’

       

       

       이걸 벌써 얻게 될 줄은 몰랐네….

       

       나는 ‘의문의 지하실 열쇠’를 주머니에 넣은 뒤, 무대에서 내려가 에바에게 잰걸음으로 다가갔다. 아까 딸꾹질 소리가 들렸던 구석 방향이었다.

        

        

       “에바.”

       “네, 네…?”

        

        

       [은신]을 풀고 내 부름에 응답하는 에바.

        

        

       [ 에바 하일로버 ]

       심리 : [ 당신에게 강한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

        

        

       “저, 저, 저, 지시 받은 대로… 했는데…!”

        

        

       그냥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 울먹이기 시작하는 에바.

        

       이미 내가 ‘검은 괴물’이라는 사실은 밝혔었다. 방금 전 내 마력을 느끼고 확신에 이르렀겠지.

        

       에바를 설득(협박)할 때, 미안한 얘기지만 그녀에게는 거대한 중압감을 안겨 주었다.

        

       나는 에바를 포함한 아카데미 사람들을 지켜낼 셈이고, 이를 위해선 정체가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고. 학사 귀에는 내 활약상이 최대한 덜 들어갈 수록 좋다고. 사정이 있으니까.

        

       아틀라홀에서 마족과 대립하게 된다면, 그날의 일은 모두 비밀로 해라. 네 선택이 많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에바는 겁쟁이에다가, 상식적이고 평범한 성격이라 말이 잘 통했다.

        

       이번에 쓸데없는 용기를 발휘해 내 정보를 팔아넘기긴 했어도, 지금 그녀에게는 후회와 공포가 충분히 새겨질 대로 새겨진 상태다. 지난 며칠간 [심리 간파]로 확인해온 사실이었다.

       

       후회와 공포로 똘똘 뭉친 녀석이 또 비슷한 짓거리를 해 먹지는 않으리라.

        

        

       “네가 본 모든 건 비밀로 해. 넌 오늘, 그냥 파티만 즐긴 거야.”

        

        

       에바는 덜덜 떨면서 고개만 격렬하게 끄덕였다.

        

       이미 저번에 끝난 얘기였기에 더 말을 이어갈 필요는 없었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광란의 연회]로 만들어진 공간이 완전히 사라지고.

        

       학생들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왔다. 전부 환각의 세계에서 빠져나온 것이었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감돌고 있을 때는, 나는 이미 아틀라홀에서 빠져나온 채였다.

        

        

       “…….”

        

        

       아틀라홀 문을 닫고 복도로 나서자마자 잠깐 정지했다.

        

       한껏 숨을 들이마신 뒤.

        

       아주아주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후아아아아….”

        

        

       뒤질 뻔했다….

        

       다짜고짜 질투의 말록이 나를 공격하려 들었으면 이미 나는 뒤져 있었겠지.

        

       오랜만에 천앙의 대마녀 만나서 인사 한번 나누고 저승길에 올랐을 터.

        

       잠깐 살아 있다는 기쁨을 누리며,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출입문 너머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평범한 대화 소리, 음악 소리. 사람들의 기억이 문제 없이 가공된 모양이었다.

        

       그제야 나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어서 약속을 잡아놨던 도로시가 보고 싶었다.

        

       오늘은, 조금 지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검성 님 후원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AWBDLH,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
Score 8.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the weakest character in my favorite game’s Hell Mode. I want to survive, but the way the main character is being controlled is atrocious. It can’t be helped. I have to stop the bad ending myself.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