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1

       ―으아아아!

       ―아아악!!

       

         

       이건, 이건 악몽이야. 그래. 꿈일 거야. 현실일 리가 없어. 빌어먹을. 이게 대체 무슨.

         

       조금 전만 해도 호기롭게 달려들던 한 이능 우월주의자가 엉금엉금 기어선 도망친다.

       딱히 다리에 부상을 입은 건 아니다. 그의 두 다리는 어디 긁힌 곳 하나 없이 멀쩡하다.

         

       하지만, 그런데도. 도저히 뛸 수가 없었다. 아니, 뛰는 건 고사하고 걸을 수조차 없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서있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냥 다리가 탁! 하고 풀려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살려줘! 살려줘!!”

       “괴물. 괴물! 으아아악!!”

       

         

       제국의 어느 누가 와도. 설령 그 검귀, 샤벨이 온다 해도 당당히 맞설 것 같던 동지들.

       본격적인 소탕 작전이 시작되었음에도 항복보다 항전을 택하며 담담히 최후를 택하겠다던 그들인데. 지금은 그들의 처참하기 짝이 없는 비명이 카타콤 내부를 가득 채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하지만, 더더욱 소름이 돋는 건 따로 있었다.

         

       

       ―쿵. 쿵. 쿵.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남자는 귀를 막고 싶은 걸 겨우 참아냈다. 지금은 바닥을 기어서 조금이라도 더 멀리 도망치는 게 중요했으니까.

         

       

       ‘여긴, 여긴 지옥이야. 도망쳐야 해. 도망쳐야만 해!’

       

         

       얼마 전만 해도 이곳을 자신들 최후의 거처이자 안식처라고 불렀다. 누구는 지하무덤이라며 조롱하곤 했지만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말 그대로, 이곳이 자신들의 무덤이 되어가고 있었다.

       

         

       “도, 도와줘! 살려줘!!”

       “생존자다! 빨리 데리고 와!”

       

       

       

       안면이 있던 동지들이 급히 남자를 챙겨서 이동한다.

         

       이제 마지막 지점만이 남은 상태다. 여기서도 저지가 실패한다면 남은 건 바깥으로 향하는 길목뿐이다. 그리고 그곳엔 제국 이능력자들이, 특무대가 도사리고 있을 터.

         

       남자는 차라리 항복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동지들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바깥에서 자신들을 아주 팔팔한 상태로 기다리고 있는 특무대를 조우할 바에, 이 거대한 카타콤을 계속 움직이며 조금이라도 지쳤을 괴물을 상대키로 한 모양이었다.

         

       그 결정을 듣자마자 남자는 최대한 뒤로 물러났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음을 너무 잘 안다.

       괴물이 왜 괴물인가. 인간이 감당할 수가 없어서 괴물인 것이다.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가 없기에 그러한 단어를 붙인 거다.

         

       뭐? 괴물을 죽이는 건 인간이라고? 개소리. 괴물을 죽이는 건 괴물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곳엔 그런 괴물이 없다. 전부 인간일 뿐이다.

       아무리 이능력자라고 해도 애당초 격이 안 맞는 상대를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

         

       

       ―쿠구구구!!

         

       좁은 길목을 따라 거대한 바위가 굉음을 내며 굴러간다. 어지간한 이능력자도 어떻게 대처가 안 되는 곳에서 가해지는 함정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바위가 굴러가고 잠시 후 뒤에 숨겨져 있던 쇠뇌가 발사된다. 오직 앞에만 신경을 쓰던 침입자들은 등판에 바람구멍이 나게 되는 형식이다.

         

       

       “…이, 이 미친!”

       

         

       그러나 시력이 좋은 몇몇 이능력자들이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칠 때. 남자는 자신이 예상했던 대로 괴물은 괴물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콰앙!

         

       걸음을 옮기던 괴물이 빠르게 굴러오는 거대한 바위를 상대로 슬쩍 어깨를 내민다.

       이윽고 굉음과 함께 바위가 산산조각이 났다. 그와는 반대로 괴물의 몸에는 먼지만 좀 묻어있을 뿐이다. 뼈가 부러지는 건 고사하고 긁힌 상처조차 없다.

         

       쇠뇌? 그건 이미 다 부러져서, 혹은 촉이 뭉개져선 바닥에 떨어진지 오래였다.

       등판에 방패라도 있었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그냥 정말 맨살에 부딪쳤을 뿐인데, 무슨 진흙으로 만들어진 것마냥 아주 제대로 망가졌다!

         

       

       “어떻게! 어떻게 이 카타콤 전체를 들쑤시고 다니는데! 상처 하나는커녕 피 한 방울조차 흘리지 않는 거냐고! 으아아아악!!”

         

       

       저것은 공포다. 저것은 죽음이다. 제국은 거짓말을 했다. 악마를 해치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저게 바로 악마다. 그래, 저게 악마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 악마인가.

       신이 기어코 이 세상을 버린 것이다. 악마를 내려 보내서 제국 전체를 현혹한 것이다!

         

       

       “빌어먹을! 플랜 C! 이제부터는 각자도생이다! 산개! 흩어져! 지상으로 나가든 지하 구석에 숨든! 한 명이라도 살아서 다른 지역에 있는 곳에 소식을 알려!!”

         

       

       아직 다른 곳은 여기 상황을 알지 못한다. 제국의 소탕은 안다고 해도 저런 괴물이 동원되었음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을 거다.

       그러니까 알려야 한다. 함정도 안 통하고 이능도 안 통하니, 아예 지상으로 올라가서 민간인들을 인질로 삼든가, 아니면 모두가 합심하여 단번에 잡아야 한다고 말이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럴 줄 알았다고!’

       

         

       겨우 다리에 힘이 좀 돌아오는가 싶었는데 또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방금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흉흉하게 빛나는 그 괴물의 안광을 보고 말았다.

       그 순간 근육이 마비라도 되는 것처럼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도망치자. 어떻게든 저 괴물에게서 멀어지자. 죽어도 특무대 손에 죽는 게 낫다.

       저 괴물 손아귀에 붙잡히고 싶진 않다. 다른 동지들이 어떻게 되는지 봤지 않나.

       무슨 파리 죽이듯 그러고 있더라. 팔 한 번 휘두르니 온몸이 다 으스러지더라.

       

         

       “어이. 저기.”

        “사, 살려줘! 살려줘! 같이 가!!”

       

         

       원래라면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어야 맞다. 괴물의 손아귀에 모든 이들이 갈려나가는 와중에 저렇게 사지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는 존재는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걸 판단키엔 지금 남자는 너무나 큰 두려움에 잠식당한 후였다. 이성이고 뭐고, 우월주의고 뭐고 일단 생존이 먼저였다.

         

       

       “데리고 나갈까?”

        “괜찮을 듯한데? 마침 정보 제공할 놈도 필요하긴 했고.”

         

       

       그의 동지들. 아니, 그렇게 위장한 제국 측 이능력자들은 남자를 챙겨선 얼른 몸을 돌렸다.

       아무리 같은 편이라고 해도 저 괴물 같은 후배님을 지켜보고 있는 건 자신들도 몸서리치게 무서운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

         

       

       ―콰앙! 쾅!!

         

       뭔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게 특무대가 내린 결론이었다.

         

       

       “저기, 선배님. 정말 괜찮은 거 맞슴까?”

        “설마 그 후배님을 걱정하는 거냐.”

        “아니. 후배님 걱정이 아니라 불순분자들 걱정임니다.”

       

         

       모조리 처벌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아직 각지에 퍼진 놈들도 많이 남은 실정이다.

       따라서 고급 정보를 알고 있을 만한 자들은 되도록 생포하여 아는 걸 토설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짓을 조금이라도 더 일찍 끝낼 수 있으니까.

         

       한데 저 멀리서부터 전해지는 이 섬뜩한 기세는, 그걸 불가능하게 만드는 종류였다.

         

       

       “걱정할 거 없다.”

        “샤벨 선배님?”

        “여가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냐. 너희가 이 고생을 하는 원인이 무엇이냐.”

        “어… 이능 우월주의 때문이죠?”

       

         

       그러자 샤벨이 바로 그렇다, 라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 말을 받는다.

       

         

       “이능을 범죄에 사용하는 자들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그 이능을 지니고서 세상의 질서를 다시 정립해야 한다느니 뭐니 하는 놈들 덕분에 미칠 지경이지.”

        “그렇습니다.”

        “한데 말이다. 저 대단한 후배님이 그 멍청이들을 전부 치워버린다면 정보고 뭐고 필요 없는 일이 되지 않겠느냐.”

         

       

       예? 하는 반문이 양옆에서 날아온다. 당연한 일이다.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이능 우월주의는 이능력자가 많이 생겨나면 생겨날수록 꺼지던 것도 다시 발화가 되는 게 순리다. 이능이 없어지지 않는 한 영원토록 그리 될 거다.

       따라서 불순분자들을 아무리 처리해도 완전한 박멸은 힘들 것이라고. 아니, 불가능할 거라고 모두가 여기고 있는 중이었다.

         

       

       “여도 그리 생각했다. 이능이 없어지지 않는 한 힘들 것이라고.”

        “생각이 달라지신 겁니까?”

        “그래.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저기 보려무나.”

       

         

       ―쿠구구구!!

         

       샤벨이 가리키지 않아도, 이미 특무대원들은 굉음이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린 상태였다.

         

       

       카타콤이 무너지고 있다. 그냥 지하도시도 아니고 그 카타콤이다. 이능력자들이 자신들의 모든 걸 담아서 만들어낸 그들의 지하요새다.

       저 안에 배치된 함정이 몇 개이고 매복한 자들은 또 몇이던가. 거기에 기둥 하나 뺀다고 무너지는 곳도 아니다. 최소 절반 이상을 점령해야만 내부 붕괴의 시도라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데 지금 이 순간. 그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들이 자신들 바로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대규모의 공격도 아니고, 소수 정예라고 하기에도 어폐가 있는 방식으로. 그냥 한 명이 진입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 그대로 아작을 내고 있다.

       

       죽을 때까지 항전하겠다고 외치던 불순분자들이 무슨 도망치는 토끼들마냥 튀어나와서는 제발 좀 살려달라며. 아는 건 전부 불 테니 저 괴물에게서 벗어나게 해달라며 울부짖고 있다.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하하하… 그 후배님이 좀 많이 무섭긴 했지만, 이게 가능한 일인 검까?’

       

         

       아군에게는 친절해도 적에게는 검을 든 살귀가 되는 샤벨. 그런 그녀를, 불순분자들은 두려워하기는커녕 끝까지 항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었다.

       그 정도일진데 저 안에서 어떠한 광경을 보았기에 전의를 상실하다 못해 아예 멘탈이 바스러져 가루가 되어버린 건지.

         

       

       “저, 선배님. 정말로 악마 다 잡은 거 맞슴까?”

        “악마 둘이 제국에 투항했다고 들었는데, 저 후배님이 아닌 거 확실하죠?”

        “당연히 악마는 아니다. 그리고 정말 만에 하나라도, 저 후배님이 악마면 안 되지 않겠느냐.”

       

         

       정말로 악마면, 저걸 누가 막아. 이 몸도 무리인데. 샤벨은 미소를 지었다.

         

       

       

    다음화 보기


           


Surviving in a Genre I Mistook as a Munchkin

Surviving in a Genre I Mistook as a Munchkin

Overpowered in the Wrong Genre 장르 착각에서 먼치킨으로 살아남기
Score 3.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found myself in an apocalypse novel with no dreams or hope. And because of that, I trained and trained to become stronger in order to survive. “Wait, hold on a minute.” But, one day, I realized I had mistaken the genre of the novel I had transmigrated into.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