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1

       강자의 오만인가, 혹은 변이한 육신에 적응하고 있는 것인가.

       

       비틀린 형상의 교주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후자라면 교주가 이형의 육체에 익숙해지기 전에 공격을 날려야 할 터. 그러나 베네트는 니오레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길쭉한 뼈창의 삐져나온 부분을 롱소드로 잘라내고, 주저앉는 니오레를 부축했습니다. 창을 뽑아내지는 않았습니다. 이곳에는 회복 능력을 갖춘 사제가 없었으니, 출혈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의식은, 유지할 수 있겠나?”

       

       “⋯⋯⋯⋯.”

       

       니오레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눈앞이 흐려졌으나, 불에 달군 인두로 지지는 것 같은 통증에 시야가 또렷하게 잡혔습니다. 고통이 오히려 의식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베네트는 여신의 수정을 주워 들었습니다. 그리고, 막연한 말을 내뱉었습니다.

       

       “니오레, 부탁한다.”

       

       “⋯⋯⋯⋯?”

       

       무엇을, 어떻게 부탁한다는 건지 모를 두루뭉술한 말. 

       

       여신의 수정으로부터, 찬란한 금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노래하는 듯한 색채가 베네트의 전신을 휘감으며 신체 곳곳에 깃들었습니다.

       

       “번제(燔祭) – 『마력 증폭』.”

       

       베네트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피부를 뚫고 새어 나온 마력광이 넘실거렸습니다. 그는 은은한 금빛을 몸에 두른 채, 교주에게 돌진했습니다.

       

       툭.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에, 니오레는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았습니다.

       

       여전히 빛을 잃지 않은 여신의 수정. 베네트가 떨어트린 것 같았습니다. 조심스럽게 주워들어 수정에 남은 마력의 잔량을 확인해 본 결과, 거의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

       

       여신의 수정이 거의 무한에 가까운, 드래곤 하트에 버금가는 배터리라서? 아닐 것입니다. 그만한 힘을 품고 있었더라면 진작에 운석이라도 떨어트렸을 테니.

       

       베네트는, 여신의 수정을 사용한 척을 했던 겁니다.

       

       그렇다면 저 마력 증폭은⋯⋯ 흑마법사들의 비의를 사용해, 자신의 영혼을 긁어내어 사용한 것. 베네트는 실시간으로 영혼과 수명을 태워 가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밝게 빛나고 있었지만, 실은 화려한 자살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니오레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베네트는 교주가 모르게, 자신에게 소모되지 않은 여신의 수정을 맡겼습니다.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뿐일 터. 그녀는 치명적인 숨은 칼날이 되어야 했습니다.

       

       니오레는 여신의 수정을 등 뒤로 숨기고 주문을 외기 시작했습니다. 베네트의 목숨을 태우는 사투를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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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검술과 마법 양쪽을 수행하는 것은 이도 저도 아니게 될 가능성이 큰 선택이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숙련되지 못하고 어정쩡하면, 하나를 집중적으로 탐구하느니만 못 한 꼴이 되니까.

       

       개인의 마력량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치명적인 문제였습니다. 검술에도 마력이 소모되고, 마법에도 마력이 소모됩니다. 동시에 사용하려면 소모 또한 두 배가 될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조건을 넘어서서 완성된 마검사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

       

       “『안구를 태우는 적색광』.”

       

       눈꺼풀을 뚫고 각막을 태워버리는 붉은 섬광을 터트려, 시야를 흐리고.

       

       “『구덩이』.”

       

       교주가 내디딘 지면을 푹 꺼지게 해서 무게중심을 교란, 베네트를 노리고 채찍처럼 휘둘러진 오른팔이 엉뚱한 곳을 때리게 하고.

       

       “『암석 유도』,『순간 빙결』.”

       

       교주의 오른팔이 애꿎은 바닥을 때려 사방으로 깨진 돌 조각과 먼지가 튈 때, 그 부산물을 안면으로 날려 한 번 더 교란. 관절 부위를 얼려 움직임을 둔하게 한 뒤에.

       

       뛰어올라서.

       

       “『흑섬격』──!!”

       

       3미터 높이에 있는 교주의 목덜미에, 절삭력을 극도로 강화시킨 마력 칼날을 박아 넣었습니다.

       

       온갖 마법을 유기적으로 짜올려 변수를 창출해 내고 유효타를 때려 박는 것. 완성된 마검사는, 자신보다 격상의 상대를 붙들어놓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카가가가각-!

       

       분명히 피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살갗일진대, 온갖 마력을 때려 박은 참격으로도 고작 손가락 한 마디 깊이의 상처가 났습니다. 인간에게는 충분했지만, 괴물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한 상처.

       

       영혼 번제를 통해 모든 마법의 위력이 상승된 상황에도 유효타를 먹일 수 없다는 건, 악재였습니다. 

       

       베네트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패배를 떠올렸으나, 고개를 흔들어 털어내었습니다.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으니까.

       

       쩌어억.

       

       교주는 입을 벌렸습니다. 턱 윗부분이 아예 뒤로 넘어가 버릴 만큼 크게. 그의 목구멍 너머에서 불길한 색채가 번뜩였습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의 위기감. 

       

       “『마력 밧줄』⋯⋯!”

       

       공중에 떠오른 베네트는, 롱소드 손잡이에 마력 밧줄을 묶어 부메랑처럼 던졌습니다. 

       

       회전하며 날아간 롱소드가 교주의 발목을 한 바퀴 돌며 마력 밧줄을 단단히 감으면, 이어진 밧줄을 힘껏 당겨 아래로 쏘아졌습니다.

       

       쿠아아아아아악──!!

       

       교주의 입에서 베네트가 있던 자리를 관통하며 마력포가 쏘아졌습니다. 지면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흙이 기체가 되어 증발했습니다. 그 상태로, 교주는 목을 움직여서 베네트를 추적했습니다.

       

       지지지지직──!!

       

       돌덩이도 녹여버리는 광선이 베네트의 뒤를 쫒았습니다. 베네트는 교주의 오금을 밟고 뛰어올라, 그의 날개뼈를 붙잡고 등 뒤에 매달렸습니다. 베네트는 불안정해진 호흡을 골랐습니다.

       

       교주 자체를 엄폐물로 삼고 있으니, 저 마력포가 베네트에게 날아올 일은⋯⋯.

       

       쩌어억.

       

       교주의 상반신이 실타래처럼 뜯어지며 말 그대로 구멍이 생겼습니다. 베네트는 당황으로 눈을 빠르게 깜빡였습니다.

       

       “⋯⋯큭, 몸이 슬라임이라도 되는 거냐!”

       

       베네트는 날개뼈를 잡은 손에 힘을 줘 당겨 올렸습니다. 그리고 온 마력을 다리에 끌어모아, 뒤로 꺾인 교주의 머리통을 올려 찼습니다. 

       

       콰앙-! 기이이이이-

       

       머리와 다리가 부딪힌 소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소리와 함께, 교주의 벌어진 입이 강제로 닫혔습니다. 그의 입 안에서 폭발이 일어나, 머리가 터져나갑니다.

       

       쿠우웅-!

       

       그 충격에 튕겨 나간 베네트가 지면에 처박혔습니다. 

       

       “⋯⋯컥!”

       

       등이 지면과 충돌하자, 폐에 남아있던 공기가 강제로 내뱉어집니다. 베네트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습니다. 보통은, 머리가 터져나가면 죽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이미 인간을 벗어난 꼴로 보이는 교주였으니 조금도 방심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머리가 날아가서 휘청거릴 때, 조금이라도 더 피해를 욱여넣어야 합니다. 

       

       “끅⋯⋯.”

       

       베네트는 몸에 퍼진 충격을 이겨내며 억지로 일어섰습니다.

       

       부글부글. 교주의 목의 단면에서 기포가 끓어오르며 머리가 재생되기 시작했습니다. 베네트는 롱소드를 꼬나쥐고 교주의 다리를 노렸습니다. 기동력을 깎아내면 좀 더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으리라는 판단.

       

       지연전으로 가야 했습니다. 정면승부로는 이길 수 없으니, 목숨을 건 외줄 타기를 최대한 길게 이어 나가야 할 터. 그렇기에, 다리.

       

       절삭력을 강화시킨 참격으로도 손가락 한 마디 깊이의 상처가 났으니, 유의미한 피해를 주려면 긴 캐스팅이 필요한 마법을 써야 했습니다.

       

       머리가 사라졌으니, 주문을 외울 시간은 충분할 것이다⋯⋯.

       

       약 10초의 영창이 필요한 『용암 칼날』로, 교주의 다리를 노리려는 그때. 섬뜩한 느낌이 들어 베네트는 뒤로 몸을 빼냈습니다.

       

       직후, 교주의 몸에 수십 개의 눈동자가 돋아났습니다.

       

       퍼엉-!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로 휘둘러진 촉수가, 땅을 쪼개고 회수되었습니다.

       

       서걱-!

       

       베네트의 왼팔이 하늘을 날았습니다. 

       

       “⋯⋯⋯⋯!!”

       

       전투를 보고 있던 니오레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허공을 부유한 왼팔이 툭, 하고 지면을 굴렀습니다.

       

       날붙이에 잘린 것처럼 어깨부터 반듯하게 도려내진 절단면. 베네트는 출혈이 발생하기 전에, 단면을 움켜쥐고 불을 일으켰습니다. 고기 익는 냄새가 났습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베네트의 뺨에 식은땀 한 줄기가 흘렀습니다. 몸을 빼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팔을 내주는 대신에 죽었을 터.

       

       교주는 어깨 어림에서 입을 돋아나게 한 뒤에 말했습니다.

       

       “눈치가 빠르시군요.”

       

       “⋯⋯어떻게 되어 먹은 몸이냐. 이미 인간을 포기했군.”

       

       “머리가 날아가면 방심해 주리라 생각했는데, 상상력이 풍부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장난은 이쯤 하죠. 신께서 지루하다고 하셔서요.”

       

       베네트는, 억지로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지금까지 두들겨 맞기만 하지 않았나?”

       

       “모기에게 물린걸 ‘맞았다’고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상당히 소모된 것 같군요. 팔도 잘린 데다가, 벌써 땀으로 온몸이 젖어있지 않습니까.”

       

       “⋯⋯⋯⋯.”

       

       베네트는 땀으로 축축해진 손아귀를 옷자락에 문질러 닦고, 남은 한쪽 팔로 롱소드를 굳게 쥐었습니다.

       

       교주는 차분하게 생각했습니다. 신께서 내려주신 이형의 몸은, 인세에 다시 없을 걸작이라.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도 없었으며, 온종일 저 청년과 놀아주더라도 패배를 생각할 일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다만.

       

       유일하게 염려되는 것은, 여신의 수정.

       

       전투가 시작하기 전, 청년은 여신의 힘을 일부 사용했으나. 여신의 힘은 그 정도가 끝이 아닐 것입니다. 신께서 조언도 해주셨습니다.

       

       그것만큼은 주의해야 한다고 신께서 말씀하셨기에, 시간을 들여가며 청년을 손질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빈틈을 보여주고, 몰아붙여도 비장의 수를 꺼내지 않는다면⋯⋯.

       

       교주는 눈동자 중 하나를 돌렸습니다. 배를 움켜쥐고 주저앉은 소녀가 보였습니다. 아주 친근해 보이는 사이였으니, 어쩌면. 끌어낼 수 있을지도.

       

       교주는 거대한 몸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니오레를 향해 달려 나갔습니다.

       

       “⋯⋯멈춰-!!”

       

       “흐,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좀 더 빨리 달려보세요! 늦으면 이 소녀는 죽을 겁니다!”

       

       속도는 우세. 베네트와 교주 사이의 거리는 멀어지고, 니오레와 교주 사이의 거리는 빠르게 가까워졌습니다. 꺼내라. 어서. 동료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다면──.

       

       교주가 촉수를 뽑아 들어 니오레에게 내려치려는 그때.

       

       뒤에서, 찬란한 금색 빛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쓰려나 보군요!”

       

       교주는 뒤를 돌아, 베네트를 마주 보았습니다. 어떤 공격이 오더라도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이전처럼 지속해서 몸을 강화하는 계열이라면 시간을 끌며 소모시키면 될 테고.

       

       감당할 수 없는 공격이라면, 공간을 비틀어 피해내거나, 소녀를 휘감아 방패 삼아도 좋을 터.

       

       “⋯⋯⋯⋯?”

       

       어딘가, 위화감.

       

       베네트의 손아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을, 교주는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쥐고 있는 건 여신의 수정이 아닌, 흔한 돌멩이였습니다. 마법을 이용해서 금빛을 뿜어내고 있었을 뿐인.

       

       여신의 수정이 청년에게 없다면⋯⋯ 대체 어디에?

       

       대답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작열감이 대신했습니다. 니오레는 여신의 수정을 쥐고, 기나긴 영창을 끝맺었습니다.

       

       쌕쌕거리는 소리가 섞인, 볼품없는 목소리가 고하는, 죽음의 선고.

       

       “『정화의 불』.”

       

       거대한 불기둥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도시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높이.

       

       ===============================================================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불기둥의 안쪽에서, 인간이 아닌 형체의 그림자가 춤을 추었습니다. 교주는 불꽃에서 빠져나가려 수없이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사마귀, 나비, 두꺼비, 사자.

       

       시시각각 형태가 변하는 그림자는, 언뜻 보기에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재생 속도보다도, 불꽃이 몸을 태우는 속도가 더욱 빨랐습니다. 위대한 신의 힘을 받은 세포들이 하나둘 새까맣게 타서 문드러졌습니다. 

       

       차라리, 재생 능력이 없었더라면!

       

       평범한 인간의 육신처럼,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먼지가 되어 흩날렸더라면!

       

       교주는 끝내, 자신의 몸에 깃든 외신의 힘을 원망하고야 말았습니다.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끝났군.”

       

       [끝났, 네요.]

       

       “아직 움직일 수 있겠나?”

       

       [죽을 것 같지만요. 베네트는 어때요?]

       

       “⋯⋯죽을 것 같다.”

       

       니오레와 베네트는 서로를 마주 보고 실소를 터트렸습니다.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팔이 잘리고, 배에 구멍이 난 꼴이었으니.

       

       “의식을 완료하지. 바쁘게 움직이면 죽기 전에는 해낼 수 있을 거다.”

       

       [말 그대로 죽을 각오로 하는 일이네요⋯⋯.]

       

       실혈사에 대해서는, 마법사의 응급 귀환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피가 이 이상 빠져나가거나 하면, 위험하다고 판단한 마법이 푸른 빛과 함께 이들을 현실로 내쫒아버릴지도 모르니. 서둘러야 했습니다.

       

       “⋯⋯신성 마법이 아쉽긴 하군.”

       

       [그러게요. 음, 타라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비관적으로 생각하면, 신성력을 잃은 성녀를 성녀로 대접해 주지는 않겠지. 아카데미에서도 나가게 될 테고.”

       

       [그럼. 타라를⋯⋯ 시종으로 들이는 건 어떨까요? 물론, 정말로 부리자는 게 아니라. 아카데미에 함께 있으면 좋으니까요. 타라만 좋다면⋯⋯.]

       

       “그래, 좋은 생각이야. 이대로 내쫒기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나.”

       

       그들은 잠깐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흑마법사인 베네트의 앞날도, 타라의 앞날도, 안개가 낀 듯 불분명했으나. 힘을 모은다면 지금처럼, 어떻게든 헤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어깨에 잔뜩 들어갔던 긴장이, 다소 풀렸습니다.

       

       그런 베네트를, 새까맣게 탄 손가락이 겨누었습니다.

       

       “⋯⋯베, 넷, 트⋯⋯!”

       

       교주는 마지막으로 남은 모든 힘을 끌어모아 마법을 발동했습니다. 휘말린 대상을, 100년 후의 미래로 보내버리는 힘. 죽일 수 없다면, 저들의 계획이라도 부수어 놓고 싶어서.

       

       니오레는 베네트를 가로막듯이 몸을 던졌고, 두 사람은 마법에 휘말렸습니다. 그들은 그림에서 지워지듯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시전자가 다른 시계열로 이동하자, 『정화의 불』역시 꺼졌습니다. 그러나 모든 힘을 쏟아낸 교주는, 부활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운석 구덩이에는.

       

       베네트의 잘린 팔과,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들어 간 소사체만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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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걸까.

       

       베네트는, 니오레는, 의식을 성공시켰을까?

       

       타라는 가만히 있지 못 하고 한참이나 방 안을 서성거렸습니다. 불안했습니다. 혹시 다른 사고에 휘말려버린 건 아닐까. 교주와 만나버렸으면 어떡하지.

       

       “⋯⋯제발, 신이시여.”

       

       불안에 떠는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이 있다면, 이곳에서는 죽음을 맞이하지 않는다는 것.

       

       죽음의 위기에 처하면 푸른 빛에 감싸여, 원래 세계로 이동하게 되니까. 그러니까 설령 세상을 구해내지 못한다고 해도, 베네트와 니오레의 생존만큼은 확실하게 보장되었습니다.

       

       구하지 못해도 좋으니. 부디 목숨만은 살아있어 주길. 

       

       그렇게 지독하게도 느린 시간이 지났습니다. 1분 1초가 기어가는 듯했고, 불안은 메아리처럼 울려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타라는 기도하고, 간절하게 빌다가, 창가에 달라붙듯이 하며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일행은 저곳으로 갔습니다. 바로 저기. 창문 밖으로도 보이는 저 방향으로. 

       

       타라는 망부석처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하늘 끝까지 닿을 것 같은 불기둥이 솟아올랐습니다.

       

       “⋯⋯저건.”

       

       “저, 저건 뭘까요. 베네트 씨가 뭔가를 했다거나⋯⋯?”

       

       “샐리, 나 역시, 나가봐야겠어. 가 볼게.”

       

       “잠깐, 타라! 힘을 잃었다면서요⋯⋯!”

       

       타라는 충동과 불안을 참지 못했습니다. 호신용 나무 배트를 등에 걸고, 마검을 허리춤에 차고, 던질 수 있는 돌멩이 세 개를 주워서 길을 떠났습니다.

       

       샐리가 아무리 달라붙어서 말려도, 타라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운석 구덩이로 향하는 길. 타라는 바쁘게 걸었습니다. 마력이 없는 몸인 터라, 활력도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소녀처럼 오래 걸으면 지쳤습니다.

       

       마검과 나무 배트의 무게도 무겁게만 느껴졌습니다. 언제 광신도들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불안 또한, 타라의 마음을 매섭게 쪼아댔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확인해야 했습니다.

       

       하늘에 닿던 불기둥이 꺼졌습니다. 결판이 난 것 같았습니다. 걷는 속도를 조금 더 올렸습니다. 나뭇가지가 팔을 긁고, 날카로운 풀잎이 종아리를 베어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타라는, 수풀 너머에서 베네트와 니오레의 모습이 보이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베네트는 분명 혼내겠지. 이렇게 위험한데 어째서 마중을 나왔냐면서, 오다가 험한 일이라도 당했으면 어떡했냐고 걱정해 줄 겁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되어서 어쩔 수 없다고 하면. 표정을 풀고 머리를 쓰다듬어 줄 겁니다. 니오레도, 상처는 아프지 않냐면서 걱정해 줄 겁니다. 그럼, 그러면 자신은.

       

       너희들이 엄청 많이 고생했으니까, 수고했다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서, 축하 파티라도 간소하게 열자고 할 겁니다. 세계를 구한 기념으로.

       

       다 같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웃고, 떠들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제 아브라함은 없지만, 그를 추모하면서. 잔을 들어 올리고⋯⋯ 그렇게.

       

       “⋯⋯⋯⋯아.”

       

       타라는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습니다.

       

       격렬한 전투의 흔적. 이곳에서 엄청난 싸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베네트와 니오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그러면, 돌아간 거구나.

       

       큰 상처를 입어서 돌아간 모양이었습니다. 그럼, 축하 파티는⋯⋯ 샐리를 빼고 열어야겠네. 나도, 여기서 나가서⋯⋯ 일단, 고생했다고 말해 줘야.

       

       “⋯⋯⋯⋯.”

       

       어라.

       

       타라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새까맣게 타버린 무언가가 있어서. 쪼그려 앉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건, 누군가의 시체였습니다.

       

       걸치고 있는 옷도, 피부도, 대부분이 불타버려서, 누구인지 식별할 수는 없었습니다. 타라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스스로 다독였습니다. 그럴 리가 없어.

       

       안전장치가 있잖아.

       

       안전장치가 발동해서, 베네트와 니오레는 안전하게 돌아갔을 거야. 이건, 두 사람 중 하나의 시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나가던 광신도의 시체겠지. 그럴 거야.

       

       그럴 텐데.

       

       그러면, 저 팔은⋯⋯ 뭘까.

       

       저건, 베네트의 팔인데. 잘렸어. 베네트의 검도, 바닥을 구르고 있어.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안전장치가 발동했다면, 시체가 남지 않을 텐데.

       

       아닐 거야. 타라는 그 소사체가 베네트가 아니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서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니오레같은 눈썰미를 지니지 않은 그녀는, 그 무엇 하나 발견할 수 없어서.

       

       그녀가 눈에 담을 수 있는 건, 잘린 베네트의 팔과. 새까맣게 탄 누군가의 시체라.

       

       “⋯⋯『치유』.”

       

       타라는 시체에 손을 얹고, 주문을 외웠습니다.

       

       “『치유』, 『화상 회복』, 『재생』⋯⋯!!”

       

       발동할 리가 없었습니다. 그녀의 신성력은 텅 빈 상태였으니까.

       

       애초에, 이렇게 타 죽어버린 사람을 살려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타라는, 목이 쉴 때까지 신성 마법을 부르짖었습니다. 해가 지고, 온 세상에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타라는,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응답해⋯⋯ 응답해주세요⋯⋯.”

       

       몇 번이고 지면에 이마를 내리찍으면서, 여신을 애타게 찾았습니다.

       

       “잘못, 잘못했어요. 저, 이제⋯⋯ 똑바로 할 테니까. 매일 같이 당신을 섬기고, 찬미하고, 제대로⋯⋯ 성녀 다운 일을 할 테니까.”

       

       그러나, 그녀를 내려다보는 것은 별님과 달님뿐이라.

       

       “응답하라고, 제발──!!!”

       

       타라의 절규가 밤하늘에 무의미하게 흩어졌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있었습니다.

       

       눈물은 메말랐습니다. 손톱이 부러져라 땅을 긁어대면서 소리 높여 울어도, 누구 하나 듣는 이가 없어서. 타라는 멍한 표정으로 시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시체는 당연하게도 미동도 없었습니다. 온갖 기도와 애원, 협박은 그 어떠한 결과도 낳지 못했습니다. 타라는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이 드넓은 우주에 혼자 뚝 떨어진 것 같은.

       

       그리고 조용히 읊조렸습니다.

       

       “당신은 이미 내게서 가족을 앗아갔잖아, 이번에도, 늦으려는 거야?” 

       

       담담히 증오를 토해냈습니다. 고요하게. 

       

       “이번에도, 내가 모든 것들을 빼앗긴 후에 나타나서, 선심 쓰듯이 신성력을 던져주려는 거냐고⋯⋯.” 

       

       

       번져가는 들불은, 작은 불씨에서부터.

       

       타라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머무르고 있던 불길이, 조금씩 스며 나왔습니다. 타고 남은 재를 삼키듯, 새빨간 불꽃이 일어났습니다. 

       

       응답하지 않겠다면. 내 불행이, 당신에게는 아무런 상관없는 무가치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런 거라면──!!” 

       

       그렇다면.

       

       “더는 네게 매달리지 않겠어. 그, 잘난 적선에 휘둘리지 않겠어, 나는, 오롯이 내 힘으로, 내 의지로──!!” 

       

       타라는 일어나서, 마검을 뽑아 들었습니다.

       

       그녀의 성녀복 소매로부터 가시덩굴이 뻗어 나왔습니다. 그것은, 타라의 피와 고통을 잔뜩 머금어 붉은빛을 흘리며 자라나, 마검을 휘감고 파고들었습니다.

       

       -네가, 나의 새로운 주, 주주, 주, 인⋯⋯.

       

       으드득, 끄드드득.

       

       비집고 들어간 가시덩굴이 마검을 잠식해 들어갔습니다. 마검의 칼날이 점차 붉게 물들어갔습니다. 아름다운 포식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마검은 온전히 그녀의 것이 되었습니다. 

       

       타라는 자신의 영혼이 붉게 물들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잘못된 것은, 신앙. 그저 신을 우러러 원망하며 기도하기만 할 뿐, 무엇 하나 스스로 거머쥐려고 노력하지 않은 나의 게으름. 그 사실을, 지독하게 후회하기에.

       

       우화(羽化), 『회한만극(悔恨蔓棘)』.

       

       동이 떠올라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타라는 선언했습니다. 한을 품은, 은의 황혼 교단, 괴물, 여신, 부패한 성직자들, 동료를 죽인 이들, 이와 조금이라도 관련되었다면, 전부, 다.

       

       “모조리 죽여버릴 거야.”

       

       그날, 타락한 성녀에 의해 많은 광신도가 죽었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William Ryan Fritch – Weightless. 오늘의 추천곡입니다. 성녀 타라 파트는 이걸 들으면서 썼어요.
    그럼, 월요일날 다시 만나요. 마이 프렌즈.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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