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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1

    참 안타깝게도 루크의 볼의 탄력은 며칠간 이어진 키르케의 노력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덕분에 루크의 얼굴은 현재 수많은 숲지기동료들의 실험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을 알아내는 과정에서 그 숲지기들은 원없이 루크의 볼을 만지작거렸기에 큰 불만은 생기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여튼, 오늘도 루크는 얼굴에 팩이니, 로션이니, 에센스니, 하는 피부에 좋다는건 죄다 발라둔 상태였다.

     화장품을 한번 쓰게 해주고 귀여운 아이의 볼을 마음껏 주물떡거릴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니, 어떻게보면 윈윈이아닌가?

    평소엔 그리도 얼굴을 만져지는것을 싫어하던 여자아이가, 뚱한 표정으로도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잘 참는게 또 매우 재미있었기에.

    예르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루크가 저렇게 볼을 늘리는데도 얌전한건 신기하네.’

    그것은 화장품을 쓴 다음은 ‘확인’을 명목으로 만지기때문이리라.

    마법사의 호기심을 타고난 루크는 실험의 결과에 궁금한 그 감정을 모를수가 없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그 욕구가 더 심하면 심했지.

    사실은 자신도 궁금한 것이리라. 이 모든 행위들이 쓸모가 있는가, 하고.

    ‘원래는 나만 할 수 있는거였는데…….’

    예르나는 살짝 질투가 났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왜 나는 미리 화장품을 구매하지 않은걸까, 내가 케어할 수 있었으면 이런 느낌은 받을 필요 없었을텐데.

    “으윽.”

    반면, 루크는 답답한 느낌에 신음했다.

    얼굴에 뭘 바르는것은 익숙치 않다.

    애시당초 피부관리라는것을 해본적도 없다.

    과거 외모관리처럼 스스로를 가꾸긴 했으나, 이는 전부 마법의 재료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해왔을 뿐, 마법사가 경지에 이르면 스스로의 육체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다, 루크는 특별히 자신의 피부가 나쁘지도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하지, 이 이상은 소용 없어보이니.”

    루크는 그렇게 말하면서 앞머리가 닿지 않도록 머리를 고정한 머리띠를 치우려고 손을 얼굴로 올린다.

    그 선언과도 같은 행동에, 화장품을 준비하고있던 숲지기들은 각자 충격받은 표정으로 외쳤다.

    “어째서? 그거 그대로 놔두면 큰일나!”

    “맞아. 어릴때 관리해야지, 늙어서 관리하면 훨씬 더 많이 든다?”

    피부관리에 관해서는 자신보다는 이 숲지기들이 더 권위가 있으리라.

    루크는 올렸던 손을 힘없이 내리면서 중얼거렸다.

    “하지만……. 너무 답답하단 말이다.”

    얼굴에 뭔가 발라지는것이 너무 신경쓰여서 뭘 할 수가 없었다.

    책을 읽을때도, 첼로를 연주할때도, 심지어는 밥을 먹을때조차 얼굴에 발려있는 갖가지 화장품의 감각에 답답해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루크도 스스로 왜 그리 그 감각이 신경쓰이는건가 알 수 없었다.

    사실 루크는 과거엔 애초에 피부에 뭔가 붙어있다는 감각을 느껴본 일이 없었다.

    삶 대부분을 마나배리어가 함께 했으니, 피부엔 이물질이 직접 붙을일이 없으므로.

    게다가 마나배리어는 자신의 의지대로 공기를 투과시킬수도 있었으나 지금 얼굴에 붙은 화장품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이 감각은 ‘낯선’ 감각이었던 것이다.

    ‘낯설다라…….’

    생각해보면 이 몸에 관해선 모든것이 낯설었다.

    스스로 가장 알 수 없는것이 자신의 몸이라니, 이것은 마법적 아이러니다.

    마법사로서 지녀야할 가장 중요한것, 그것은 스스로를 정의하고 알아내는 것이었다.

    물론 자신은 루크 이루시다, 하지만…….

    이 몸은 ‘루크 이루시’가 아니지 않은가?

    루크는 잠시 자신의 심장에 돌고있는 서클에 손을 올렸다.

    느껴지는 마력량은 가공할 정도다. 2서클이라곤 믿기지 않는 수준.

    본래 이 마력량이라면 3서클의 틀이라도 잡을 수 있어야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온전한 2서클만이 회전할 뿐. 3번째의 고리는 얇게조차 형성되어있지 않다.

    그저 마력이 부족한 탓이라 여겼는데…….

    어째서인가 생각해보면 그것이 문제였다.

    루크는 ‘자신’을 몰랐다.

    ‘……뭘까, 나는.’

    과거엔 십여년을 넘도록 자라온 세월과 인간관계,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확신’하나, 너는?

    루크가 스스로를 ‘루크 이루시’로 정의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알아야만 했다.

    두근, 두근.

    심장의 고동에 따라 단 두개의 서클이 회전함이 느껴진다.

    루크는 잠깐 눈을 감고 스스로를 떠올렸다.

    분명 최후의 기억은 모호했다.

    스스로의 죽음을 제외한 3개의 다른 기억, 루크는 그중 첫번째를 깨닫고 기억의 실마리를 잡았었다.

    그렇다면 남은 두개의 기억은 뭔가?

    떠올리려 해봐도 안개에 싸여진 듯 흐릿하고 답답한 감각만이 루크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

    생각을 하며 루크는 버릇처럼 고개를 살짝 숙이고 시선을 바닥으로 향하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무언가 고민이 있는 루크의 표정은 일견 고아한 학자의 표정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화장품을 바르기 싫어했던 상황이 어우러져 그냥 화장품이 너무 싫은 아이의 모습으로 비춰졌다.

    그리고 예르나에겐 그 모습이 너무나 씁쓸해보여서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해, 루가 싫어하니까.”

    루크가 화장품이 싫을 이유는 많았으리라.

    그러고보면 인체실험을 온전히 부정하진 않았지 않던가.

    저렇게 실험을 당하듯이 다뤄지는것이 루크에게 결코 좋은 경험일리 없는데.

    스스로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트라우마 같은건 전혀 없으니 평범하게 대해달라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게 정말 사실인지는 모를 일이다.

    루크라면 그저 자신에게 걱정을 끼치고싶지 않아서 한 말일 가능성도 충분하지 않은가.

    예르나의 진지한 표정을 본 숲지기들은 조금 압도당해 한발짝씩 물러나며 반응했다.

    “그래, 그만 하자.”

    “우리가 심했네.”

    “맞아, 저렇게까지 싫어할줄은 몰랐어.”

    숲지기들은 알아서 서로 반성하며 루크에게 사과를 건네며 고개를 숙였다.

    루크는 문득 생각을 멈추고 벌어진 상황에 조금 당황했다.

    “음.”

    얼결에 의견이 받아들여진 루크는 머리띠를 벗어내며 한동안 머리띠에 눌려있던 옆머리를 긁었다.

    “대신 얘기해줘서 고맙군, 예르나.”

    “루, 답답했지? 미안, 내가 더 빨리 알아채지 못 해서…….”

    이런, 예르나가 또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

    루크는 이제 그 표정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

    덕분에 예르나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괜찮다. 내 분명 내게 미안해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응…….”

    예르나는 루크의 보드라운 손길을 느……낄수 없었다.

    처음보다 그다지 보드랍지 않다.

    “루크, 손이 많이 푸석푸석하네…….”

    “…….”

    루크는 즉시 손을 떼었다.

    왜 다른 사람들이 다들 피부가 안좋아졌다고 하는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루크가 예르나에게 걱정하는것은 이것이다.

    ‘예르나마저 화장품을 산다면 나는…….’

    만약 예르나마저 화장품을 자신에게 사용하게 된다면 마지막 안식처마저 사라지는 꼴이다.

    “그냥 느낌만 그런 것이겠지.”

    “그러니……?” 

    “아니면 손을 씻지 않았기 때문이던가. 됐네, 난 목욕이나 하러 가는게 낫겠군.”

    그리 말하며 샤워실로 들어가버리는 루크의 뒷모습은 어쩐지 급해보였다.

    ——-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의 온도를 맞추는 작업은 이제 아주 능숙해졌다.

    처음에는 그마저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가워 그 중간을 맞추는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도구를 이런식으로 설계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그러고보면 처음엔 예르나에게 물을 맞춰달라 부탁한적도 꽤 있었다.

    그녀의 섬세한 물조절은 정말 예술의 경지였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실제로 처음의 그 딱 알맞은 따듯함은 한동안 루크의 목표이기도 했다.

    그리고 스스로 그 온도를 맞출 수 있게되고부터는 예르나의 목욕시중을 더이상 받지 않게 되었다.

    그것을 떠올리면 꽤 많은 폐를 끼쳤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쏴아아…….

    장마철의 빗줄기처럼 쏟아져내리는 물길에 몸을 맡기고 물이 몸을 흐르도록 둔채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언제 보아도 참 이상한 몸이다.

    제 시선으로 여아의 몸을 본다는 것은 언제나 낯선 감각을 불러오지만, 그건 사실 루크의 기준으론 낯선 감각의 축에도 끼지 못한다.

    고양이의 귀와 출처 모를 뿔, 게다가 한쪽만 남은 마력시.

    그리고 무엇보다 이상한것은, ‘정령친화력’.

    스스로 생각해도 이 괴물같은 마나친화력에 일반적으론 정령친화력이 깃들 수 없다.

    본래 두 재능은 상충되는 것이니까.

    게다가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정령이 보인다고하면 이상한 녀석 취급을 받으며 웃어버리는 시대다.

    ‘정령사가 이토록 흔치 않은 시대에서 정령을 볼 수 있을정도라면…….’

    정령친화력도 거의 역대급이라고 봐야겠지, 파이의 모습이 단순하다고 스스로의 정령친화력은 별거 아닐거라 생각한것이 잘못이었나.

    루크는 옆에서 자신과 목욕을 함께하는 파이와 눈을 마주쳤다.

    -……?

    뭔가 묻고싶은거라도 있어? 라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파이의 모습에, 루크는 간단한 허밍으로 감정을 전했다.

    허밍의 음율에 실린 감정엔 스스로의 의문을 담았다.

    ‘대체 넌 누구니?’

    -파이, …….

    루크는 파이가 늘어놓은 뒤의 소리를 되새겼다.

    머리가 아닌 감정으로.

    그렇게 느껴진 감정을 언어로 풀자면…….

    ‘나도 잘 몰라/알 수 없어/잊어버렸어.’

    그러면 그렇지, 하고 생각하고는 루크는 다시 허밍을 했다.

    ‘그러면, 대체 ‘에레’는 무슨 뜻이야?’

    -에레는 에레야.

    ‘그게 무슨……?’

    -……. 에레는 에레야.

    ‘말 그대로야/그러니까/어쨌든 에레는 에레야.’

    “…….”

    생각보다 도움이 안되는 정령과의 대화에 루크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정말이지, 쉽게 알 수 있는게 하나도 없군.”

    그리 생각하며 루크가 몸을 거품칠한 샤워타올로 문질렀을 때였다.

    “음?”

    무언가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 루크는 자신의 피부가 뭔가 이상하다는것을 깨달았다.

    “이건 대체…….”

    ———

    예르나는 편히 앉아서 루크가 내는 물소리를 들으며 샤워실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흐음, 흠~.”

    “후훗.”

    어쩜, 샤워하면서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그렇게 화장품이 답답했던걸까.

    루크의 허밍은 참 듣기 좋았다.

    원래 연주를 하면서도 가끔 허밍을 하곤 했는데, 그것이 또 연주와 너무 잘 어울려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나중엔 그 수많은 후원금을 받았던 연주도 다시 들려주었는데, 그때 어린아이의 목소리도 그렇게 예쁠 수 있다는걸 처음 알았다.

    ‘원래도 목소린 꽤 예뻤지만.’

    스스로 ‘루크 이루시’를 고집하며 딱딱한 말투를 써서 그렇지.

    목욕이 끝나면 한번 더 연주해달라고 부탁해볼까, 이번엔 노래도 넣어서? 

    상상만 해도 입꼬리가 들썩거린다.

    음, 나 지금 표정이 좀 변태같을지도.

    예르나가 입가를 만지작거리며 표정을 관리하던 중, 벌컥 하고 샤워실의 문이 열렸다.

    황급하게 뛰쳐나온것인지 채 닦아내지 못한 물기가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예르나!”

    “루? 무슨 일이야? 물도 다 안말리고.”

    “이것좀 보게! 내 피부가…….”

    “응? 피부가 왜?”

    루크는 제 팔을 집게손가락으로 집더니 쭈욱 늘렸다.

    그러자 마치 껍데기가 벗겨지듯이 피부가 찢어져 떨어져나왔다.

    예르나는 벌떡 일어나서 루크를 제지했다.

    “그만 뜯어, 그러다 잘못될수도 있으니까!”

    “아, 알겠네. 그러지.”

    루크는 즉시 피부를 벗기던 작업을 멈췄다.

    확실히 이것이 무슨 증상인지는 모른다. 당장 섣불리 행동하면 안되리라.

    “이거 혹시 피부병은 아니겠지?”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군.”

    그때, 예르나의 머리를 스치는 한가지 가능성.

    “……설마.”

    이건 인체실험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피부과에 가봐야한다, 지금 당장.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과연 피부과에선 뭐라고 할지…..

    ps. 첫 삽화는 어떤 영화의 포스터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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