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1

       “신호와 함께 마법 풀겠습니다.”

       “네! 네! 어서요! 어서요!”

         

       파스텔은 경기장 입구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입구는 바람 마법이 경기장 내부의 보라색 독가스를 새어 나오지 않게 결계처럼 막고 있었다.

         

       “새 마법으로 교체하는 타이밍에 진입하시면 됩니다, 각하.”

       “네! 네! 알아요! 빨리요!”

         

       파스텔은 발을 동동 동동.

         

       어서 앨시어를 도와줘야 하는데!

         

       멜리사를 구조한다고 시간을 너무 썼어!

         

       말 많은 테러범 트마우트 씨가 파스텔 흑막설로 무슨 모함을 하고 있을지도 굉장히 신경 쓰이지만 포위망에 갇힌 앨시어의 몸 상태가 더 걱정이었다.

         

       악마님은 준기사급은 가스 저항을 잘한다고 했지만 그건 너무 섬세하지 않은 시선이야!

         

       파스텔은 이리저리 우왕좌왕했다.

         

       『이럴 게 아니라 빗자루를 타라. 고장 나서 느리겠지만 발소리가 안 나니 기습 효과가 탁월할 거다.』

         

       그렇구나!

         

       하얀 빗자루를 탔다. 느리다고 빗자루를 때려 망가트린 덕분에 맛이 가서 고공비행은 어려웠지만 저공비행은 가능했다.

         

       빗자루 친구, 아까는 때려서 미안해!

         

       근데 네가 꽤 느린 건 사실이었잖아?

         

       멜리사와 함께 탔다고 비행 속도가 그 모양으로 떨어지면 어떡해! 마법 빗자루 실격이야!

         

       아 맞아! 이게 아니지 참!

         

       파스텔은 빗자루를 쓰다듬었다.

         

       빗자루 친구, 과거는 잊고 같이 힘내보자!

         

       아자아자!

         

       마법을 유지하던 교수가 돌아봤다.

         

       “마법 교체합니다!”

       “네! 어서요! 어서요!”

         

       교수가 신호를 보내자 바람 결계가 사라졌다. 가스가 폭발적으로 분출되려 하자 대기하던 마법사들이 새로운 마법 결계를 펼쳤다.

         

       “파스텔 출격……!”

         

       파스텔은 그 찰나의 틈을 파고들어 비행했다. 분홍 머리카락이 꼬리처럼 흔들렸다.

         

       보라 가스가 시야를 뒤덮었다. 마석 냠냠으로 가스 면역이 되지 않았다면 진입과 함께 바로 쓰러질 양이었다.

         

       『그 트마우트라는 준기사급이 대장일 테지. 들려오는 총성으로 위치를 파악하고 기습해라. 기습 한 번으로 죽이진 못하겠지만 유리한 고지는 차지할 수 있을 거다.』

         

       파스텔은 빗자루 봉을 꽉 잡았다.

         

       준기사급과 생사결?

         

       으이.

         

       그건 좀 아닌 듯.

         

       악마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전투를 전제로 얘기하지만 파스텔의 생각은 달랐다.

         

       그야 그럴게…….

         

       그건 무섭기 때문이다.

         

       응응.

         

       악마님도 내가 준기사급이 아니라 단언했으면서 깜빡하셨나 봐.

         

       이 정도면 전투와 함께 호르몬 친구도 도망칠 격차!

         

       이럴 때 필요한 건 무식한 힘 싸움이 아니라 파스텔다운 똑똑한 지성이야.

         

       “유식한 저는 전투를 안 해도 돼요! 다 계획이 있거든요!”

         

       빠르게 비행하자 가스 저편에서 트마우트의 목소리가 울렸다. 파스텔 모함을 열심히 하는 중이었다.

         

       크래프트 가문의 사악한 과거사까지 되짚으며 그냥 분홍 벚꽃일 뿐인 소녀를 악랄하고 흉악한 흑막으로 모함했다.

         

       너무해……!

         

       그걸 큰 반박도 안 하고 잠자코 듣는 앨시어도 너무해!

         

       흑막 크래프트에게 조종당한 피해자의 귀중한 얘기를 듣겠다는 의도가 팍팍 느껴지잖아!

         

       하지만 이 상황을 이용할 만큼 똑똑한 파스텔은 충분히 사감을 접어둘 수 있었다.

         

       똑똑하니까!

         

       “이뿐만이 아니다. 크래프트 가문은 형제자매를 모두 죽여야만 가주가 될 수 있는 승계 전통을 유지했지. 마계에서 연구한 바로는 이런 전통은 성격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이중적인 성격을 만들게 한다. 친족에게조차 거짓 가면을 유지해야 하니.”

       “파스텔 러브 크래프트는 형제자매가 없어서 바로 가주가 됐지 않아? 친족 살인은 하지 않았어.”

       “지금 가주도 제 어미를 죽이고 태어났으니 다를 바가 없지!”

         

       파스텔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트마우트의 뒤편에서 빗자루 비행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트마우트 씨.”

         

       소스라치게 놀라는 기색이 느껴졌다.

         

       “누구냐!”

         

       트마우트가 이쪽 방향으로 총구를 돌리는 행동이 옷자락 소리와 뒤도는 발소리로 파악됐다.

         

       “어떻게 기척도 없이 뒤를 잡은 거지?!”

         

       으아으아!

         

       쏘지 마세요!

         

       그냥 빗자루 타고 있을 뿐이에요……!

         

       파스텔은 서둘러 말을 꺼냈다.

         

       “놀라지 마세요. 저니까요.”

       “크래프트!”

         

       우와앗! 목소리만으로 정체를 바로 들켰어!

         

       인기인의 운명이긴 하지만 좀 집착 심한 스토커 같았다.

         

       완전 무섭!

         

       “순진한 애를 상대로 그렇게 아무 말이나 하시면 다소 곤란해요. 역할을 끝낸 당신은 퇴장하는 게 맞다고요.”

       “크큭!”

         

       트마우트가 돌연 웃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의 치욕을 되갚기 위해 이를 갈고 기다렸지!”

         

       트마우트가 이쪽과 전투를 하겠다는 양 완전히 자세를 바꿨다. 그러더니 기존 총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새로운 총을 꺼내는 옷자락 소리가 들렸다.

         

       “그때와 다르게 네 경지는 첩자에 의해 이미 파악됐다! 준기사급도 아닌 네가 여유를 부려봤자 두렵지 않아!”

         

       우와아악!

         

       한 것도 없는데 어그로가 여기로 쏠리고 있어!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러세요……?!

         

       하지만 몸이 떨리는 것과는 별개로 상대를 도발해서 앨시어가 포위망을 빠져나올 기회를 주려던 일이니 잘됐다.

         

       파스텔은 보라색 가스 안개 덕분에 자신의 어벙한 모습이 안 보인다는 점에 안도했다.

         

       “아하하!”

         

       최선을 다해 웃음소리를 냈다.

         

       “그게 끝인가요?”

         

       트마우트가 멈칫했다.

         

       “뭐?”

       “제 역량을 파악했다느니 자신감에 가득 차서 새로운 총기도 준비해 오고, 잘했어요.”

         

       가볍게 손뼉 쳤다.

         

       가스 안개 속에서 박수 소리만이 울렸다.

         

       “그런데 그게 끝인가요?”

         

       트마우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왜 그리 여유로운 거지? 그때와 다르게 총기를 제대로 준비한 건 어찌 안 거고?”

         

       아니 그야 총기는 방금 옷자락 소리로 총 바꾸는 게 느껴졌으니까.

         

       『네 청각이 인간을 너무 벗어나서 그렇지 이 거리에선 가스 안개 너머에서 총을 바꾼 건 알기 어렵다.』

         

       아하.

         

       “트마우트 씨, 상상력을 발휘해 보세요.”

         

       마석 냠냠 하고 인간 탈출했어요.

         

       우왕.

         

       “설마 또냐!”

         

       트마우트가 돌연 격분했다.

         

       “내가 기사단의 처형에서 탈출하는 것도, 이 테러가 일어나는 것도, 저 벨라몬트 앞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도 모두 네 계획대로인 거냐!”

         

       이 사람 상상력이 과해…….

         

       파스텔은 당혹스러워졌다.

         

       앨시어가 있을 법한 방향을 바라봤다.

         

       앨시어!

         

       어서 포위망 탈출해!

         

       왜 잠자코 듣기만 하는 거야?

         

       “이제야 모든 게 명확해졌다! 공작가 장남에게 죽을 위협을 받는 저 벨라몬트 앞에서 네 뒷면을 과시하고 후원자 겸 보호자 위치를 얻어 후계 쟁탈전에 끼어들려는 거겠지!”

         

       파스텔은 입이 벌어졌다.

         

       그런 건가요?!

         

       “이런 나와 함께라면 살 수 있다! 이런 나와 손을 잡지 않으면 내 심기를 거스른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 협박을 말로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게 하려는 거겠지!”

         

       파스텔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친구 되겠다고 접근한 거부터가 사악한 목적으로 곡해 당하잖아요!

         

       난 그냥 앨시어가 준기사급이라길래 친구라는 이유로 대련을 해보고 싶었을 뿐인데!

         

       오잉.

         

       파스텔은 멈칫했다.

         

       전투 실력을 보고 접근했다.

         

       그리고.

         

       후계 자격을 보고 접근했다.

         

       둘의 차이점은 뭐지?

         

       허억.

         

       딱히 다르지 않음.

         

       게다가 게다가!

         

       무려 글자 수도 똑같아!

         

       으아아!

         

       글자 수까지 똑같다니……!

         

       파스텔은 입이 벌어졌다.

         

       분홍 머리를 부여잡고 경악했다.

         

       사실 파스텔은 나쁜 애였던 거야?!

         

       착한착한 파스텔이 아니라 나쁜나쁜 파스텔이었어?!

         

       으아아!

         

       나쁜나쁜 파스텔이래!

         

       아니라고 해줘, 친구들!

         

       앨시어의 방향을 쳐다봤다.

         

       앨시어가 목소리를 냈다.

         

       “그렇구나…….”

         

       바로 긍정하지 마!

         

       우리의 우정이 그것밖에 안 됐던 거야?

         

       그런 식으로 우정을 배신해도 되는 거야?!

         

       솔직히 별로 안 친한 건 맞지만!

         

       그래도 그래도 친구 관계에서 상하 관계로 바뀌는 순간을 인정해선 안 되는 거잖아!

         

       상상하고 보니 뭔가 마음에 드는 기분이지만 착한착한 파스텔은 그런 관계를 용납하지 않으니까!

         

       응응!

         

       트마우트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크래프트 네가 준기사급이 아니라는 건 자명하다! 아무리 촘촘한 계략을 짜고 여유를 부린다 한들 힘으로 무너트리면 그만이야!”

         

       총구가 겨눠지는 미세한 소리가 났다.

         

       우와악!

         

       방아쇠의 작동음, 화약의 폭발음.

         

       빗자루를 부여잡은 파스텔은 회피 기동을 했다.

         

       한 차례의 굉음이 울렸다.

         

       총성은 한 번에 불과했지만 막대한 총탄이 방사형으로 퍼지며 영역을 분쇄했다.

         

       준기사급의 격이 담긴 탄막은 가스 연기를 폭발적으로 밀어내고 가시거리를 확장시켰다.

         

       가스 마스크를 쓴 용병대장 트마우트가 이미 쏜 총을 지면에 버렸다. 장전해 놓은 새 총이 등에 묶여 있는 게 보였다.

         

       방사형 총격이 가능한 근접전 최강자.

         

       산탄총……?

         

       트마우트 씨의 자신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우와아악!

         

       칼싸움에 샷건 쓰지 마세요……!

         

       도망치려 빗자루를 부여잡았다.

         

       보라색 가스 안개가 시야를 덮어갔다. 가시거리가 확보된 찰나 동안 트마우트의 손에 새 산탄총이 들렸다.

         

       가스가 시야를 덮었다.

         

       짜릿한 감각이 피부를 감쌌다. 아드레날린이 정신을 밀어냈다.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해볼 만한데?

         

       정신을 삼킨 본능이 빗자루를 고장 내며 폭주시켰다. 소녀는 가스 안개 속으로 몸을 숨겼다.

         

         

         

         

         

       

       

    다음화 보기


           


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