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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1

       브왈레가 돌아오기까지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무대에 오르더니 좌중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희 주최 측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을 인정하겠습니다.”

         

       그는 품에서 종이뭉치를 꺼내 들었다.

       도스빌 남작은 친절하게도 가격을 매길 근거까지 모두 조사해두었다.

         

       최근 몇 년간 새로 만들어진 퍼즐 시리즈는 양산품과 원본 사이에 일정한 비율을 두고 가격이 형성되었다. 퍼즐 시리즈가 100개를 넘어가고 생산량과 마니아층의 수요 역시 일정하게 유지되자, 일종의 시장가격 비슷한 것이 자리 잡은 것이다.

         

       퍼즐의 난이도에 따라 원본은 양산품의 200배에서 600배 사이를 오갔다.

       운영위원회는 마야가 받은 퍼즐의 원본에 500배의 가치를 부여했다.

         

       규칙에 따라 경품의 가격만큼, 즉, 매출에서 퍼즐 500개 분량이 삭감되었다.

         

       설명을 들은 루이니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단원들도 낭패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굳이 계산을 해보는 사람은 없었다.

       결과는 정해졌다.

         

       브왈레가 손을 들었다. 스포트라이트는 이전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승자는 은막의 서커스입니다!”

         

       반 박자 늦은 박수와 환호가 뒤따랐다.

       판도라가 받았던 것에 비해 그 크기가 상당히 작고, 사람들의 표정도 어딘가 어색했다.

         

       상을 받은 당사자들의 반응도 떨떠름하긴 마찬가지였다.

       왠지 남이 받아야 할 상을 도둑질한 기분이었다.

         

       아르노 역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는 상으로 제공된 원본이 퍼즐 500개의 매출을 담당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상이 수여된 것은 경연 첫날 점심 무렵이었다.

       경품은 매출 신장의 역할을 거의 하지 못했다.

       500개나 제외하는 것은 부당한 조치였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기권?

          

       순간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도 단원들도 손에 들어온 승리를 내던질 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대결에 임한 게 아니었다.

       거기다 지금 상황에서 기권 따위를 해봤자 상대도 “아, 감사합니다.” 하고 받을 리 없었다.

         

       차라리 500개 부분을 지적해 볼까?

       퍼즐을 맞춘 시점 이전의 매출만 제외하고 겨루어 본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건너편에 있던 루이니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당당하게 승리를 선언할 때에 비해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아르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브왈레는 그를 무대 중앙으로 인도하는 척하면서 작게 속삭였다.

         

       “34개를 제외해도 당신들 승리입니다.”

         

       아.

       이미 대회의 운영진에서는 그러한 항의까지 예상하고 계산을 해본 모양이었다.

       500개로 발표한 것은 이후에 있을 다른 팀의 부정에 대한 경고의 의미였다.

         

       아르노는 결심을 굳혔다.

       여기서 그가 더 머뭇거리면 상황만 더 혼란스러워질 뿐이었다.

         

       그는 무대 중앙에 서서 승리 소감을 발표했다.

       그 내용의 절반은 상대가 얼마나 훌륭하게 싸웠냐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그의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에 그가 연설을 마쳤을 때, 그에게 가는 환호와 갈채는 아까보다 훨씬 커졌다.

         

       판도라의 사람들 역시 그에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루이니의 표정도 아까보다 조금 홀가분해 보였다.

       

         

       ***

         

         

       1주 차 대결은 흥미진진했다.

       각자 개성이 뚜렷한 공연에, 매출을 결정지은 뜻밖의 요인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반전까지.

       물론 그 결말을 끌어낸 인물은 별로 환영받지 못하긴 했지만.

         

       “엘라 양은 판도라 쪽을 응원했죠? 아쉽게 됐군요.”

       “어쩔 수 없지. 남작의 말에 틀린 점은 없었어.”

         

       엘라는 마차 안에 앉아 노트를 붙잡고 무언가 열심히 쓰고 있었다.

       그녀는 첫날부터 뭔가 괜찮은 아이디어나 전략을 볼 때마다 열심히 메모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의 프로그램에 반영했다.

       본받을 점은 취하고, 아쉬운 점은 수정했다.

       밤새는 일도 빈번했다.

         

       그녀는 지금 ‘상품과 경품’ 조항을 다시 검토하고 있었다.

       혹시나 우리가 준비한 프로그램도 문제가 될 수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어떻습니까? 우리가 준비한 ‘그것’은 규칙에 걸릴 여지가 없을까요?”

         

       엘라는 뒤통수를 긁으며 노트를 뒤적였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단정치 못하게 뻗어 있었고, 눈 아래는 검게 눈그늘이 가라앉아 있었다.

         

       어제도 밤새 노트를 붙잡고 매출, 전략, 퍼포먼스를 분석했다고 했다.

       우리가 출전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녀는 점점 더 자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다시 봤는데, 다행히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 애초에 경품 쪽은……판도라가 실수한 거야. 조금만 규칙을 세심히 검토하고 조심했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엘라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한 손으로 노트를 넘겨 가며, 반대쪽 손으로는 깃펜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렸다.

       그것도 두 손가락도 아닌 한 손가락으로.

         

       그런데도 깃펜은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펜을 돌리는 동안 그녀의 손가락이 계속해서 변하는 원심력의 중심점으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론상이나 가능한 곡예를 그녀는 나와 대화를 나누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전개하고 있었다.

         

       과연 대단한 재능이었다.

       옆에서 다른 단원들도 놀란 눈으로 그녀의 손재주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이번 대결에 대한 평을 해나갔다.

         

       “운영도 그렇지만 탈출왕의 체력도 걱정이야. 앞으로 2년 넘게 여정을 해나가야 하는데, 그 폼이 유지될지 모르겠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돌리던 깃펜을 탁 튕겼다.

       깃펜은 휴대용 잉크병의 얇은 주둥이 속에 그 부리를 쏙 집어넣으며 들어갔다.

         

       “와!”

         

       유라크네가 탄성을 내지르며 손뼉을 쳤고, 스벤도 달그락거리며 큰 소리로 웃었다. 마야 역시 눈을 깜빡이며 깃펜과 그녀의 손을 번갈아 바라봤다.

         

       엘라는 왜들 그러는지 고개를 들었다가 상황을 파악하고는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뭘 이 정도 갖고 놀라?”

         

       그녀는 천성이 곡예사였다.

       상당히 지쳐 보였는데도 박수를 들으니 힘이 났는지, 내친김에 깃펜을 이용한 몇 가지 재주를 더 보여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엘라의 작은 공연을 감상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호텔에 도착했다.

         

       “아, 맞다. 2주 차 입장권이랑 코인은 받아왔어?”

         

       그녀가 마차에서 내리기 직전에 나를 붙잡으며 말했다.

       나는 품에 든 주머니를 보여주었다.

         

       “일단은요. 그런데 우리 안 가기로 했잖아요?”

         

       3주 차에 대결에 임하는 우리는 2주 차 경연 동안 준비했던 것을 마무리해야 했다. 느긋하게 공연이나 보러 다닐 시간이 없었다.

         

       엘라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괜찮아. 나 혼자서 갔다 올게.”

       “혼자서요?”

       “응. 내가 할 일은 이제 많이 줄었잖아. 오히려 이제 당신하고 마야가 할 게 많지.”

         

       그녀의 말에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그녀가 할 일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고, 나와 마야가 할 일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녀가 하는 일이 더 많았다.

       우리 둘을 합친 것보다 더.

         

       “길게는 안 있을 거야. 그냥 정찰 정도로만……웃.”

         

       마차에서 폴짝 뛰어내린 그녀.

       그런데 착지하는 자세가 어딘가 이상했다.

       약간이지만 몸이 기우뚱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동작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난 몇 주 동안 그녀가 마차에서 내리는 것을 몇 번이나 봐왔다.

         

       그녀는 지금까지 마차에 오르내리면서 한 번도 엉거주춤한다든지 머뭇거린다든지 한 적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평지를 걷듯 물 흐르는 듯한 동작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중심이 흐트러진 것이다.

         

       “엘라 양.”

       “응?”

       “체력 관리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닐까요?”

         

       나의 말에 그녀는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순간 말을 꺼내고 뜨끔 했다.

         

       그녀에게 그동안 일을 다 떠맡긴 게 누군가?

       바로 나였다.

         

       그녀는 짐짓 화난 얼굴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나도 더는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있는데 그녀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걱정하지마. 이 서커스단을 제대로 굴러가도록 돕는 게 계약이잖아. 무엇보다 딱히 무리하고 있는 것도 아니야. 이 정도는 한 달 내내 해왔어.”

         

       한 달 내내?

         

       내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그녀는 내 손에서 주머니를 휙 낚아채 가더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날부터 우리는 본격적으로 공연 준비를 시작했다.

         

       우리의 현재 대본 소화율은 25%.

       이제 이것을 2배로 끌어올릴 시간이 온 것이다.

         

       공연은 배우만으로 하는 게 아니었다.

       설사 단원들이 대본에 나오는 모든 연기와 재주를 완벽하게 익힌다고 해도 절대 50%는 넘길 수 없었다.

         

       의상, 소품, 배경, 특수 효과.

       그 모든 것이 공연의 완성도에 더해지는 것이다.

         

       엘라는 자신의 수제작 도구들이라면 +20% 정도는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동안은 단원들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만 힘썼다.

       의상과 도구, 배경은 시간을 들여 만들어나가다가 막판에 갖춰지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의 계획에 비해 많은 진전이 있었다.

       마야의 합류로 소품과 배경에 있어서 품질이 크게 향상된 것이다.

         

       시간이 촉박할 거라 여겼던 특수 효과도 3주라는 기간이 추가로 주어진 덕분에 가까스로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마야는 이제 폭발, 번개, 안개 등의 환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의상에 대한 진전이 컸다.

       엘라는 그녀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의상에서 4% 이상 끌어올릴 자신이 없다고 했다.

       여기서 나의 새로운 능력이 빛을 발했다.

         

       의상실.

       이것은 내가 보고 만진 의상들을 기록해두었다가, 언제든 데볼루트를 대여료로 내면, 옷을 만들어 내어 원하는 대상에게 입힐 수 있었다. 물론 ‘단원 관리’에 부가된 기능이라 그 대상은 나 자신과 단원들만이 가능했다.

         

       이 능력의 한 가지 좋은 점은 입히는 옷은 그 대상의 체형에 맞게 크기가 조정된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그전까지 시도하지 못했던 영역까지 발을 뻗을 수 있었다.

         

       “으랴압!”

         

       우몬이 지렛대로 나무 상자를 뜯었다.

       그곳에는 아나이스에게 부탁해서 빌려온 붉은 기운이 도는 갑옷이 들어있었다.

         

       게임에서 ‘적혈귀’와는 세 가지 단계의 전투를 벌였다.

         

       앞치마를 착용하고 식칼을 들고 덤비는 ‘푸줏간’.

       쇠사슬을 몸에 두르고 망치를 들고 덤비는 ‘대장간’.

       갑옷을 입고 갈고리를 들고 덤비는 ‘화로’.

         

       우몬에게 입힐 의상 중 앞의 2가지는 어떻게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마지막이었다.

       아무리 해도 그에게 입힐 갑옷을 구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덩치도 덩치지만 그의 체형은 어딘가 평범한 인간과 달랐다.

       비정상적으로 굵은 어깨도 그랬고, 근육의 형태나 팔다리의 길이도 묘하게 어긋났다.

         

       그래서 엘라는 그에게 갑옷 입히는 것을 포기했었다.

       그만이 아니더라도 단원들 각자의 신체적 개성 때문에 맞는 복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나의 의상실 능력 덕분에 그 문제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굴해 님, 10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처음 받아보는 단위에 받고도 깜짝 놀랐습니다! 최대한 열심히 써서 항상 만족할 수 있는 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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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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