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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1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산맥에 물결처럼 끼얹은 안개가 넘실거린다.

        회백색 하늘에서 천둥이 내리칠 때마다 마치 산이 울부짖는 것처럼 공기가 떨려온다.

        세계선에 진입한 나는 조금 전 마법 거울로 봤던 6일 뒤의 미래를 떠올리며 애꿎은 나뭇잎을 팍팍 튀겼다.

        고작 나 하나 사라진다고 마탑이 망하다니, 이건 상식적으로 다른 마법사들이 무능하기 때문임이 틀림없었다.

        원탁회에서 질리지도 않고 메테오가 무슨 마법인지 싸우는 걸 매주 봤으니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대체 왜 망한 거지?’

       

        공룡이 멸망한 설에도 여러 가지가 있듯 어째서 단 6일 만에 멀쩡하던 마탑이 잿더미로 변해버렸는지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 있었다.

       

        비나가 기어이 얼음 메테오를 대륙에 떨궈 빙하기를 초래하고 만 것일까?

        아니면 지하미궁에 있던 대학원생들이 반란을 일으켰나?

        꿀벌단과 말벌단이 기어이 전면전을 펼치며 생긴 여파 때문일 수도 있다.

       

        당장 떠오르는 이유 중 어느 하나도 명확한 답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잡히는 것보단 나았지만 시련에 입장해 버렸기에 일주일 간은 꼼짝없이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하는 상황.

        우선 당장은 시간이 있었으니 나는 메릴린을 따라가기로 했다.

        그녀는 목적지가 따로 있는지 산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한 방향으로 쭉 올라가고 있었다.

        이따금 눈을 감은 채 천둥소리를 따라가는 걸 보면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나는 자꾸 허벅지를 쿡쿡 찌르는 살살이의 손잡이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살살아, 이러다 진짜로 6일 뒤에 세상이 망하면 어떡하지?”

        — 사, 사사ㅏㅏ

        “그렇게 돼서 너랑 나밖에 안 남으면 우리 둘이서 갤질 할 수밖에 없겠다. 내가 분탕 역할을 할 테니까 넌 지금처럼 완장을 해. 너도 그게 좋지?”

        — ㅏㅏㅏㅏㅏ!!!!!

        “……찾았다.”

       

        살살이와 정겨운 대화를 주고받던 도중 메릴린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길도 제대로 나 있지 않은 숲길을 헤치고 나아가던 그녀가 멈춘 장소는 어느 한 나무 앞이었다.

        벼락을 맞은 것처럼 새까맣게 타버린 고목.

        그 안에 손을 집어넣더니 이내 샛노란 빛을 내며 타닥이는 무언가를 꺼내었다.

        비나의 얼음 케이크를 연상캐하는, 마력이 가득 담긴 막대사탕 모양의 구체였다.

       

        “그건 뭔가요?”

        “내 힘의 원천이야. 석상에 가둬두기에는 너무 큰 힘이라 다시 깨어났을 때 회수하기 쉽도록 이 산맥 곳곳에 숨겨놨어.”

        “중간에 누가 가져가면 어떡하고요?”

        “하층 녀석들이 감당할 마력이 아니야. 그래도 손을 대서 자기 것으로 소화할 수 있다면 그건 나름의 실력이 있는 거지 뭐.”

       

        사탕을 입에 넣고 굴리며 쿨하게 다음 것을 찾으러 가자 말하는 메릴린이었다.

        하긴, 세계선 같은 위험한 시련이 고작 30층에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여길 통과하는 마법사 정도의 수준이면 혹여 사라진다 해도 마탑에 그리 유의미한 영향을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일 차에 세상이 멸망해 버렸으니 이건 나와 관련된 누군가의 탓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머릿속으로 후보를 추리던 도중, 갑자기 하늘이 갈라질 듯한 엄청난 천둥소리가 산맥을 뒤흔들었다.

       

        — 쿠르르르릉!!!

       

        “이건……?”

        “쳇, 아무래도 내 마력으로 이 공간을 유지하고 있던 모양이네. 재수 없는 년, 남의 힘이라고 막 가져다 쓰다니.”

        “아까는 실력이 있다면 그래도 좋다고…….”

        “아 시끄러! 여기가 무너지건 말건 남은 건 전부 회수할 거니까 따라와!”

       

        그 이야기는 메릴린이 완전히 힘을 되찾으면 6일이 지나기 전에 시련을 통과할 수 있다는 건가?

        절망적 상황 속 한 줄기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관목들을 치우며 앞서 가는 작은 등에 창을 겨누었다.

        그 순간 드넓은 챙에 가려진 뒷머리가 바짝 서며 메릴린의 고개가 돌아갔다.

       

        “뭐야?”

        “저한테 한 번만 찔려 주시죠.”

        “난 그런 변태 같은 취미는 없는데?”

       

        물고 있던 막대 사탕을 입에서 빼내었을 뿐인데 피부가 저릿할 정도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힘을 완전히 되찾은 게 아님에도 이 정도라니, 칠현자의 위치는 허투루 딴 게 아닌가보군.

        그러나 아녜스의 저주도 해주해본 내게 이 정도의 마법쯤이야 훤히 들여다 보였다.

       

        ……물론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었기에 그냥 맞으면서 가까이 다가가 메릴린의 뺨에 작은 생채기를 만들어냈지만.

       

        “잠깐, 그 힘은……! 너, 설마…… 꺅!?”

       

        내 공격을 피하려다 발을 접질린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흙의 풋내와 이불에 남아있던 잔향, 동상을 닦을 때 사용했던 세정제의 냄새.

        어쩔 줄 모른 채 작게 벌어진 입안에서 막 흡수되기 시작한 달달한 마력을 잡아낸 나는 기감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산맥에 퍼뜨렸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사탕을 다시 메릴린에게 들려주며 말했다.

       

        “더 빠르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이제부턴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

       

        같은 시각.

        6일 후 마탑이 무너진다는 소식을 접한 행정부에서는 급하게 원탁회를 소집했다.

        의장 베이커는 보고서를 읽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세계선에 입장한 순간 마탑에서의 행적이 사라져 버리기에 범인이 누군지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29층에 남아있던 생활부의 직원들은 이미 자신들을 밀치고 시련에 들어간 이의 인상착의를 잊어 버렸다.

       

        더 큰 문제는 마탑의 멸망을 초래할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치는 마법사가 사라지면서 어떤 점이 더 바뀌었는지 파악할 수가 없다는 것.

        치안부장과 정보부장, 그리고 네 개의 기숙사 사감 중 하나의 자리가 비어있는 등 의심 가는 정황만이 가득한 상태였다.

       

        불안함을 뒤로하고 베이커가 의제를 내자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쳤다.

       

        “의장님, 점성학파의 칠현자께 도움을 요청하는 게 어떻습니까?”

        “맞습니다, 천칭의 주인이라면…….”

       

        물론 이런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이곳은 엄연히 마탑이었다.

        일곱 개의 신비와 셀 수 없는 마법이 공존하는 조화로운 지식의 상아탑.

        그 꼭대기에 발을 들인 고고한 자들이라면 분명 범인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행정부의 의장이자 점성학파의 장문인 베이커조차 그들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는 없었다.

       

        “리브라 님께서는 수년째 학파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으셨네. 어떤 대가를 바쳐도 죽어가는 실낙원의 꽃들을 되살릴 수 없다는 걸 아신 후로부터.”

        “허면 다른 칠현자 분들께…….”

        “다들 알고 있지 않나? 그분들 중 누구도 우리에게 관심이 없으시다는 것을.”

        “…….”

       

        일곱 학파의 칠현자들은 대부분 행방이 묘연하거나 밝혀져 있더라도 오랫동안 외부와 접촉을 끊은 상태였다.

        뇌제(雷帝) 클라우디아 아네스코트는 칼피스 학파의 최상층 공략을 실패한 후 심각한 부상을 입어 생사를 헤매는 중이고.

        대륙 최고의 정령사인 린지 스트리블링은 정령계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신성학파의 칠현자인 세실리아 페이지 역시 뇌제가 빠진 최상층 공략대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정신이 없어 연락이 안 되고 있었다.

       

        “후우, 차라리 그놈이 얌전히 시련을 통과하기만 한다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텐데.”

        “불가능하죠. 세계선에 머무는 기간은 일주일인데 그 전에 마탑이 사라질 테니…….”

       

        세계선의 현실 개변 효과는 영속적이지 않다.

        대상자가 30층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모든 변화는 약간의 흔적만 남기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일반적인 시련은 통과하거나 실패하는 두 가지 경우뿐인데, 이번에는 통과하게 놔둘 수도 없고 실패란 더욱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단 하나였다.

       

        “그자를 죽여야 합니다.”

        “고행의 층에 있는 마법사들을 우선 모조리 불러 모으도록 하죠.”

        “헌데 괜찮을까요? 그들이 사라지면 또 어떤 비극이 펼쳐질지 모르는데.”

        “그래도 마탑이 망하는 것보단 낫지 않겠소. ”

       

        30층에 입장한 의문의 마법사를 발견 즉시 사살하라.

        결론을 내린 원탁회가 끝나자 베이커는 부관에게 오늘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이들에 대해 조사하라 명했다.

        만약 범인이 행정부 소속이었다면 빈자리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부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돌아와 곤란한 표정으로 리스트에 적힌 한 여인을 가리켰다.

       

        “죄송하지만 단독으로 조사가 어려운 인물이 끼어 있습니다.”

        “누구지?”

        “정보부장님입니다. 수배범을 잡느라 바쁘셔서 오늘 회의엔 참석하지 않으신지라…….”

        “아, 그렇군.”

       

        검은 머리칼을 뒤로 묶은 채 허리에 장도를 맨 마법사.

        5년 단위로 열리는 마법제에서 두 번 연속으로 우승하며 단숨에 마탑의 일약 스타로 거듭난 천재.

       

        “시엔 경은 배제해도 괜찮네. 꼬리를 밟으려 하면 오히려 발목이 잘릴 테니.”

       

        단신으로 100층을 돌파한 괴물 같은 여인은 현재 연금학파에 테러를 가한 의문의 세력을 쫓는 중이었다. 

       

       

       

        *

       

        “여기 하나 더 찾았습니다.”

        “그래.”

       

        나는 밤새 메릴린과 산맥을 헤집으며 그녀가 힘을 되찾는 것을 도왔다.

        무슨 소원 들어주는 구슬도 아니고 사탕 일곱 개를 모으면 살살이를 되살려 줄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은 그것보다 더 큰 문제에 직면해 있었지만 어쨌거나 이곳을 6일 안에 떠날 생각이었으니 해야 할 일은 변치 않았다.

        메릴린이 구슬을 섭취하자, 마찬가지로 하늘이 쩌렁쩌렁 울리며 땅이 흔들렸다.

       

        — 쿠르르르릉!!!

       

        “오?”

       

        그 순간, 상시 들고 있던 위치노트의 전파가 잡혔다.

        대미궁에 구멍이 뚫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시련이 있는 층에 균열이 일어나면 한 번씩 연결되는 모양이었다.

        세계선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마탑 내부로 한정된다.

        갤러리는 내 상태창이나 마찬가지니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겠지.

       

        이것으로 밖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갤러리를 켰다.

       

        ====

        [분끼얏호우~!! 분끼룩끼룩~ 분끼얏호우~!! 분끼룩끼룩~ 분끼얏호우~!! 분끼룩끼룩~ 분끼얏호우~!! 분끼룩끼룩~ ]

       

        끼룩끼룩!

       

        — 분하하하! 분하하하하!! 분하하하! 분하하하하!! 분하하하! 분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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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점심 추천받음]

       

        (사진)

       

        지금은 저녁 시간이라고?

        그럼 내 점심이나 보고 가!

        다 소화된 뒤에 찍은 거긴 하지만 

       

        — 크아아아악!!!!

        — 니가, 니가 먼저 시작한 거다

        — 제발 누가 저 새끼들 좀 죽여 줘

         ㄴ 소용없다 ㅋㅋㅋ 여긴 처음부터 이랬음

        ====

        ====

        [나 커뮤니티 하다 왔는데 여기 완장같은 거 없음?]

       

        갤이 관리하는 사람도 없이 돌아가네

       

        — 자치구역임

        — 모두가 완장임

        — 선 넘는 새끼 있으면 합심해서 고로시하면 그게 정의임

         ㄴ 인민재판 아니고……?

        ====

       

        “살살아.”

        — …….

        “우리 그냥 평생 여기서 살까?”

       

        주딱이 없는 세계.

        그곳은 이미 아포칼립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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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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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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