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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1

       ​

        “라몬, 성기사들이 먼저 진입했네.”

        ​

        여기저기를 다니며 기사들을 살리고 온 파라몬이 들은 이야기였다.

        ​

        조금만 더 가면 나오는 산 정상.

        ​

        하지만 그 앞은 두꺼운 불길로 막혀 있었다.

        ​

        “마법사들의 마나는 온전한가?”

        ​

        “다들 지쳐 있네, 벤시의 울음도 무력화 시키며 올라왔으니.”

        ​

        바로 교단의 뒤에 따라붙어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불 앞에서 막막한 상황임에도 파라몬은 걱정이 없었다.

        ​

        “왔군.”

        ​

        주위에 있던 기사와 병사들의 두 눈이 부릅 떠졌다.

        ​

        너무나 이질적인 광경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

        불길 사이로 파도가 만들어졌다.

        ​

        촤아악 –

        ​

        족히 사람키의 두 배는 될법한 높이.

        ​

        산속에서 치는 파도를 본적이 있는가.

        ​

        한줄기의 파도가 불을 꺼뜨리며 길을 만들었다.

        ​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엘프가 한 일이었다.

        ​

        “가지를 지키는 잎사귀. 아이린이라고 해요.”

        ​

        “드디어 도착했군.”

        ​

        “이미 도착한지는 시간이 조금 지났답니다. 크리스의 부탁을 들어줬을 뿐.”

        ​

        클로셀과 파라몬이 한시름 덜었다는 얼굴로 몸을 가다듬었다.

        ​

        엘프들이 온 이상 이제는 일사천리로 진행되리라.

        ​

        파라몬이 주변을 둘러보며 떨떠름하게 말했다.

        ​

        “많이도 왔군…”

        ​

        “그러게 말일세.”

        ​

        이미 근처에 엘프들이 빼곡했다.

        ​

        상당히 많은 숫자였다.

        ​

        막말로 엘프의 숲에 있던 전력의 반을 데려온 것 같지 않은가.

        ​

        “좌측과 우측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도착했을 거예요.”

        ​

        “고맙네.”

        ​

        파라몬이 하는 감사 인사에도 아이린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

        주변의 엘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

        오히려 살짝 화가 난 듯 보였다.

        ​

        “어디 있어요?”

        ​

        “…무엇이 말인가?”

        ​

        “엘프의 은인을 괴롭힌 자들 말이예요.”

        ​

        곧장 분노한 엘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감히, 크리스님을!”

        ​

        “내 화살이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

        “크리스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

        화를 내면서도 이리저리 움직이는 엘프들.

        ​

        주변을 덮치던 불길들이 급속도로 사그라들었다.

        ​

        치이익 –

        ​

        불에 물이 닿으며 수증기가 피어올랐지만 그조차도 실프들이 움직이자 하늘로 흩어졌다.

        ​

        아이린이 서슬 퍼런 눈빛으로 산 위를 올려다보았다.

        ​

        “엘프들은 길을 여세요.”

        ​

        착 –

        ​

        착 –

        ​

        마치 한 사람이 움직이는 듯한 소리였다.

        ​

        근처에 있던 마법사들이 침음성을 흘렸다.

        ​

        압도적인 마나의 양.

        ​

        인간의 마법사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 엘프들이 동시에 정령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

        “이들이 전부 정령사라는 말인가.”

        ​

        “터무니없는 힘이야.”

        ​

        마법사들이 정령에 반응했다면, 기사들은 다른 것에 반응했다.

        ​

        엘프들이 외치고 있는 말의 내용 때문이었다.

        ​

        “은인의 부탁이다!”

        ​

        “크리스님의 털끝 하나라도 상했다가는 모두 가지를 꺾어야 할 것이다!”

        ​

        모두가 같은 의미를 담은 말을 내뱉고 있었다.

        ​

        그렇다는 것은 정말로 엘프들이 크리스 때문에 이곳에 왔다는 것.

        ​

        황당한 시선을 주고 주고받는 그들 사이로 아이린의 살벌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

        “네크로맨서를 포위하겠습니다.”

        ​

        사사삭 –

        ​

        아이린의 말이 끝나자마자 엘프들이 흩어졌다.

        ​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

        불이 났다고는 하지만 산속에서 엘프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

        그것도 화난 엘프들을 말이다.

        ​

        순간, 산전체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

        콰아아앙 –

        ​

        화르르륵!

        ​

        땅이 울릴 정도로 강한 충격파였다.

        ​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

        산 전체에 멀쩡한 곳이 없을 정도로 불이 나고 있었다.

        ​

        클로셀이 헛웃음을 흘렸다.

        ​

        “이보게 라몬, 엘프들이 안 왔다면 말일세.”

        ​

        “음?”

        ​

        “저 불들이 우리를 감쌌지 않겠는가?”

        ​

        엘프의 시기적절한 등장과 때맞춰 일어난 폭발.

        ​

        그들이 없었다면 나무들이 타는 연기만으로도 상당수의 병사들이 힘을 잃었으리라.

        ​

        그것뿐이겠는가.

        ​

        크리스가 교황을 비롯한 성기사들을 데려오지 않았다면 전투의 사상자는 더 늘어났을 것이다.

        ​

        “이런 전쟁은 처음일세.”

        ​

        사람이 살다 보면 뭐든 되는 날이 있다.

        ​

        준비된 것처럼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날들.

        ​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

        “마치, 모든 행운이 우리와 함께하는 것 같군.”

        ​

        이건 정말로 무심코 던진 칼이 표적에 적중 하는 꼴이었다.

        ​

        그것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으리라.

        ​

        “이대로라면 화살도 알아서 빗겨나갈 것 같군.”

        ​

        파라몬이 고개를 저었다.

        ​

        “실제로 그러고 있지 않은가.”

        ​

        저벅 –

        ​

        저벅 –

        ​

        다친 병사들을 치료하던 교황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

        “교단에서도 그랬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오.”

        ​

        “말씀해주시겠소?”

        ​

        “인간이 계획을 세워 봤자 신의 뜻 안이라고.”

        ​

        참으로 성직자 다운 말이었다.

        ​

        다만, 이 상황에는 경우가 조금 달랐다.

        ​

        그런 일을 일으키는 게 고작 한 사람의 힘이었으므로.

        ​

        파라몬이 검을 고쳐잡았다.

        ​

        “이제 그만 끝을 내야겠소.”

        ​

        피식 –

        ​

        절로 웃음이 나왔다.

        ​

        왜 안 그렇겠는가.

        ​

        대 정령사, 대마법사, 소드 마스터, 교황.

        ​

        대부분이 생존한 병력들까지.

        ​

        “완승이로군.”

        ​

        ***

        ​

        “데스나이트를 모두 진격시켜라!”

        ​

        “어,어느 곳으로 말입니까?”

        ​

        혼란.

        ​

        이 단어 말고는 상황을 표현할 말이 없으리라.

        ​

        도대체가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

        “이곳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엘프들이 나타났습니다!”

        ​

        “전방의 성기사들이 거의 근접했습니다!”

        ​

        “우측과 좌측에서 병사들이 출몰! 언데드의 수가 부족합니다!”

        ​

        불리한 전황의 정점을 찍는 보고가 이어졌다.

        ​

        “교황을 포함한 주요 인물들이 이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

        “….더 올 것이 남아 있느냐?”

        ​

        “보고드린 것이 전부입니다.”

        ​

        이대로 계획에 실패 할 수는 없었다.

        ​

        산전체에 불을 질렀으니, 제물이 쌓이는 속도도 늘어났을 것이다.

        ​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생각은 빗겨나갔다.

        ​

        “…변함이 없군.”

        ​

        조금씩의 변화는 있었다.

        ​

        언데드와 불이 저들을 공격하니 사상자가 없지는 않은 것이다.

        ​

        티가 나지 않는 양이었지만.

        ​

        “….”

        ​

        손 발이 꽉 묶인 기분이었다.

        ​

        네크로맨서가 주섬주섬 물건들을 아공간 주머니에 채워 넣기 시작했다.

        ​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

        단서나 흔적을 남겨서는 안되는지금, 아공간 주머니만은 저들이 확인할 수 없는 안전한 방법이었으니까.

        ​

        “이대로 소환을 진행한다. 모두 몸을 던져 시간을 끌도록.”

        ​

       

        ***

       

       

       ​

        “온몸이 아파.”

        ​

        업무가 많으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

        만병의 근원인 것이다.

        ​

        그런데 나는 일이 많아도 너무 많다.

        ​

        “만신이나 됐으면 몰라.”

        ​

        “…만신이요?”

        ​

        “무당으로 살다 보면 이신 저신 다 인연이 닿아서 결국엔 그렇게 돼.”

        ​

        세레나에게 설명해주려 했지만, 그럴 힘도 없었다.

        ​

        안 그래도 힘든 와중에 등산까지 하고 있으니 힘이 남아 있을 리가 있나.

        ​

        다행이라면 기우제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는 것.

        ​

        하늘의 구름이 죄다 검게 물들어 있었다.

        ​

        곧 비가 쏟아질 것이다.

        ​

        “따로 연락은 없었어?”

        ​

        “모두 정상에 진입했다고 했어요.”

        ​

        잠깐 망설이던 세레나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

        “많이 살았다는 소식도 전해왔어요.”

        ​

        이제는 내가 뭘걱정하는지도 짐작이 가는 모양이다.

        ​

        물어보려고 했던 것을 먼저 말하는 걸 보니.

        ​

        “그럼 됐어.”

        ​

        여전히 산 정상은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다.

        ​

        달라진 것이라면 불 한줄기가 보인다는 것뿐.

        ​

        일 전에 들었던 파란색의 불이었다.

        ​

        “홀릴 만 하네.”

        ​

        기우제를 지내던 중에 문득 보이기 시작한 불.

        ​

        정말로 보기만 해도 편안 함이 느껴지는 불이었다.

        ​

        산에 지른 불이 육신을 태운다면 저것은 영혼에 영향을 끼치는 종류였다.

        ​

        휘릭 –

        ​

        딸랑 –

        ​

        “아저씨, 정신 차려 봐요.”

        ​

        오다가 이 사람의 시체를 봤다.

        ​

        노르딘 백작의 휘하에 있는 기사.

        ​

        “팔은 어디다 두고 오신거야.”

        ​

        – ….!

        ​

        솔직히 뭐라고 할 수밖에 없다.

        ​

        팔 하나를 잃었으면 됐지, 남은 팔을 왜 나무에다가 꽂아 놓았다는 말인가.

        ​

        단검을 찔러서 고정시켜 놓은 그 팔을 본 나는 마음이 찝찝했다.

        ​

        노르딘 백작이 나에게 알려 준 신호였으니까.

        ​

        영혼이 홀린다고 했더니, 몸으로 신호를 남긴 것을 보라.

        ​

        기사라는 사람들은 지긋지긋한 사람들이었다.

        ​

        “이러니까 제 명에 못죽지. 못해도 십 년은 더 살았을 텐데….”

        ​

        – …..

        ​

        “이제 좀 쉬어요. 거의 끝났으니까.”

        ​

        이렇게 말한다고 쉴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

        불에타서 쓰러질까 봐 검으로 몸을 고정시킨 사람이다.

        ​

        그런 사람이 죽었다고 뭐가 달라졌겠는가.

        ​

        생전의 고집불통 그대로지.

        ​

        “백작님 살아계시는 거만 보고 갈길 가시는 겁니다? 알겠죠?”

        ​

        끄덕.

        ​

        “머리 떨어진 영혼도 있으니까, 신경 안쓰셔도 괜찮아요. 두 번은 안죽어요.”

        ​

        끄덕.

        ​

        “마지막까지 버티셨나보네요.”

        ​

        아마 다른 영혼들은 불길에 홀려서 산을 올라가고 있을 것이다.

        ​

        이 양반이 제일 나중에 죽어서 밑에 있는 것이겠지.

        ​

        “할 일이 자꾸 늘어나네.”

        ​

        가만히 있어도 느껴지는 걱정과 염려들.

        ​

        이걸 다 어떻게 풀어 준다는 말인가.

        ​

        순간, 산 정상에서 불길함이 잔뜩 피어올랐다.

        ​

        더럽고 추악한 모습을 가진 무언가였다.

        ​

        쑤욱 –

        ​

        등에 머리를 대고 있던 루나가 고개를 들었다.

        ​

        지난번 교황아저씨를 볼때처럼 아무런 동요가 없는 무표정.

        ​

        곧이어 차분한 옹알이가 들려왔다.

        ​

        “자우.”

        ​

        “작두?”

        ​

        성검을 향해 팔을 버둥거리는 루나.

        ​

        그러고 보니 루나는 성녀이지 않은가.

        ​

        또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 것일 테지.

        ​

        원래 성검의 주인 또한 루나이기도 했고 말이다.

        ​

        “자이!”

        ​

        “잡귀?”

        ​

        “푸!”

        ​

        “푹?”

        ​

        루나에게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

        “꺄륵!”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

        “세레나, 날아가자.”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제 크리스 휴가 좀 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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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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