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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1

       

       

       

       

       “예. 제 눈이 맞는다면 저건 보통 루비가 아니라….”

       

       주인장의 전문 용어가 담긴 장황한 말을 요약하자면, 저 루비는 일반 루비가 아니라 좀 더 색이 짙은, 희소성 있는 루비의 한 종류라는 모양. 

       

       “…그래서 이 루비가 만약….”

       “그, 죄송하지만.”

       “예?”

       

       말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는 어쩔 수 없이 주인장의 말을 끊어야 했다.

       

       “이 루비는 팔 생각이 없습니다. 돈을 더 주신다고 해도요. 애초에 팔 생각이었다면 말씀드렸겠지요.”

       “아아…. 그렇습니까. 아쉽군요. 그래도 만약 마음이 바뀌시거든 언제든지 저희 가게로 찾아와 주십시오. 다른 가게보다 훨씬 값을 잘 쳐 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살펴 가십시오!”

       

       주인장은 매우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영업용 미소를 되찾고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나와서 가방을 내려다 보니, 아르가 나를 빼꼼 올려다 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루비를 빼앗길세라 품 안에 꼬옥 안고 있는 채였다. 

       

       “쀼우!”

       

       대략 ‘안 판다고 해 조서 고마어, 레온!’이라고 말하는 아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당연히 안 팔지, 아르야.”

       

       10골드면 분명 적은 돈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평생 동안 주머니에 금화 열 개를 담아 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용병이 하루 벌어 이틀 먹고 사는 인생이니까 말이지.’

       

       널려 있는 용병뿐 아니라 마법사나 기사 역시 전장에 나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

       특히 개인 기량이나 재능의 한계로 위로 올라가지 못한 이들은 더더욱 그렇다. 

       

       그들에게 현대 사람들처럼 노후를 대비해서 꾸준히 저축을 하는 건 오히려 어리석은 행위에 불과하다.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주머니에 돈이 있다면 응당 자신을 위해 써야 하지 않겠는가. 

       

       아마 내가 흔한 용병 A였어도 그렇게 했을 거다. 

       

       ‘그리고 전장에 나가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주한테 세금을 왕창 뜯기면서 사니….’

       

       상류층이 아니고서야 자산이란 걸 축적할 수가 없는 구조다.

       

       모르긴 몰라도 평소 집에 금화 한두 개만 비상용으로 숨겨 둘 수 있으면 괜찮게 사는 집인가 보다 할 정도일 거다. 

       

       ‘하지만.’

       

       아무리 저 루비가 그렇게 비싼 보석이라고 해도, 저건 내가 아르에게 준 첫 선물. 

       

       무엇보다 아르가 너무나도 맘에 들어 해서 잘 때도 머리맡에 꼭 두고 자는 루비다. 

       

       10골드가 아니라 100골드를 준다고 해도 안 팔…거다.

       

       ‘그러고 보면 첫 선물로 좀 더 좋은 걸 해 줄 걸 하고 생각했던 게 오히려 좀 머쓱하네.’

       

       저것보다 더 좋은 걸 해 주려면 도대체 어떤 선물을 해 줘야 하는 거야. 

       

       여튼.

       

       “그리고 내가 선물을 해 준 시점에서, 그걸 팔고 안 팔고는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아르가 결정하는 거지. 그건 아르 거니까. 아르 허락 없이는 절대 안 건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

       “쀼우…!”

       

       내 말에 감동을 받은 듯, 아르는 촉촉해진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가방으로 다시 들어가면서 루비를 더욱 품에 소중히 품었다. 

       

       “뀨우.”

       

       들고 있는 가방 안에서 아르가 기분 좋아 뒹굴며 루비를 이리저리 가지고 노는 것 같은 느낌이 손을 통해 전달되는 걸 느끼며, 나는 피식 웃었다. 

       

       ‘저렇게 좋을까.’

       

       아무래도 저 루비는 아르에게 이미 애착 인형 같은 존재가 된 것 같았다. 

       

       “귀여워라….”

       

       실비아는 일부러 내가 들고 있는 아르 가방 쪽에 서서 아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르를 보느라 앞도 안 보면서 걸어서 지나가던 행인이랑 한 번쯤 부딪힐 법도 한데, 정말 신기하게도 실비아는 귀신같이 모든 장애물을 피해 냈다.

       

       여튼, 보석상에 들렀던 우리는 다시 익숙한 용병 길드로 들어왔고. 

       

       “오셨습니까! 형님! 누님!”

       “어서 오십쇼!”

       

       이제는 얼굴도 낯이 익은 용병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의뢰 게시판 앞으로 갔다. 

       

       그리고, 게시판 앞에 선 나는 곧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제 나오실 때가 됐지.”

       

       ***

       

       “쀼—.”

       “—플레임 스피어!”

       

       화륵!

       

       힘차게 뻗은 내 왼손 앞의 마법진.

       거기서 쏘아진 (쀼)플레임 스피어가 머드-리자드맨의 심장부를 뚫고, 그 뒤에 있던 두 마리의 머드-리자드맨까지 한 번에 불태워 쓰러뜨렸다. 

       

       “레온 씨, 뒤쪽!”

       

       실비아의 외침에 나는 곧바로 내 뒤쪽의 진흙에서 튀어나온 머드-리자드맨의 공격을 피한 후 단검으로 놈의 목을 베어 날렸다. 

       

       푸확!

       

       빨간 피 대신 초르스름하고 질척한 액체가 튀었다. 

       

       “그르르르….”

       “그르륵.”

       “역시 끝이 없군.”

       

       벌써 스무 마리 가량의 머드-리자드맨을 잡았지만, 눈앞의 진흙 늪지대에서는 계속해서 똑같이 생긴 마물들이 우후죽순 튀어나왔다.

       

       ‘하지만 바라던 바다.’

       

       이제 전방에 있는 머드 리자드맨은 지금 튀어나온 놈들이 전부다.

       

       그렇다면.

       

       나는 다시 손을 내밀었다.

       

       “쀼—.”

       “—아이스.”

       

       내가 나지막이 영창하자 (쀼)아이스는 순식간에 전방의 늪을 얼려 나갔다. 

       

       프스스스슷.

       

       “그르르르…?”

       “그륽….”

       

       늪에서 걸어 나와 나에게 달려들어야 할 머드-리자드맨들은 늪과 함께 발이 꽁꽁 얼어붙어 옴짝달싹하지 못했고. 

       

       “더블 스탭.”

       

       슈슉, 슉.

       

       나는 움직임이 봉쇄되어 당황한 머드 리자드맨들의 숨통을 하나씩 차례로 끊었다. 

       

       늪 한가운데에 있어 단검으로는 건드리지 못했던 머드-리자드맨도 얼음 위를 빠르게 미끄러져 들어가며 급소를 그어 처리했다.

       

       촤아악!

       

       “그르륵!”

       “그륵….”

       “오, 이거 편하네.”

       

       단검술을 비롯해 근접 전투를 하는 사람들에게 늪지대는 상당히 까다로운 필드다. 

       

       ‘검술의 기초는 상체가 아니라 하체에 있으니까.’

       

       단검술을 구사하는 데에 있어 필요한 기초 동작 및 응용 동작을 전부 숙지한 이후, 실비아가 나에게 거듭 강조했던 말이었다. 

       

       -지금은 검을 어디에서 어디로 긋고, 어느 타이밍에 손을 올리고, 그게 중요하게 보이겠지만, 실력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중요한 건 기본이고 기초예요. 그리고, 그 기초는 하체에서 나오는 거고요.

       

       모든 동작이 하체로부터 시작되는 건 물론, 그 동작에 실리는 힘도 하체를 얼마나 잘 쓰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특히 단검술은 일반 검술에 비해 스탭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기 때문에, 발이 묶여 버리는 늪은 단검술을 쓰는 암살자들에게는 최악의 필드나 마찬가지. 

       

       ‘하지만, 이렇게 (쀼)아이스로 늪을 얼려 버린다면 발이 빠질 염려 없이 마음껏 디뎌도 된다는 말씀.’

       

       물론….

       

       “그르륽!”

       “우아악! 회피 태세!”

       

       한 번 방향을 정하고 몸을 날려 미끄러졌으면 중간에 방향을 전환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나는 기괴한 각도로 날아오는 머드-리자드맨의 공격을 회피 태세로 피해 내야 했다. 

       

       ‘이거 좀 응용이 필요하겠는데.’

       

       [스킬 동기화를 통해 ‘아르젠테’로부터 ‘아이스’를 공유 받습니다.]

       

       “아이스.”

       

       미끄러져 가던 나는 아르의 (쀼)아이스 위에 새로 아이스를 시전해 벽돌 크기의 작은 방지턱을 만들었고.

       

       “그륵!”

       

       그 방지턱을 밟고 멈추는 데에 성공한 나는 머드-리자드맨의 템포를 빼앗은 뒤 방지턱을 밟고 재도약해 단검으로 급소를 찔렀다. 

       

       “후후.”

       

       나는 완벽한 나의 스킬 활용에 스스로 감탄하며 실비아 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하아압!”

       

       촤아악! 촤악! 촤아악!

       

       “…….”

       

       실비아는 그냥 늪에 걸어 들어가 정직하게 머드-리자드맨들을 일도양단하고 있었다. 

       

       ‘…이게 그 압도적인 체급차 앞에서는 기술이고 뭐고 없다는 그건가.’

       

       물론 실비아도 그냥 아무렇게나 들어간 건 아니었고, 마력을 발에 둘러서 늪에 완전히 발이 잠겨 봉쇄되는 걸 막으며 움직이고 있는 거지만….

       

       저렇게 내 눈에도 보일 정도로 마력을 선명하게 두르고 유지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며 검술을 펼치는 것 자체가 실비아의 실력을 말해 주고 있었다. 

       

       ‘나중에 나도 수련 열심히 할 테니 저런 것 좀 가르쳐 달라고 해 봐야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손을 뻗었다. 

       

       “쀼—.”

       “—플레임 스피어!”

       

       ***

       

       늪지대 일대의 머드-리자드맨을 싹 쓸어 버린 우리는 그나마 양지 바른 곳을 찾아 휴식을 취했다. 

       

       물로 진흙을 씻어낸 뒤, 불을 피워 몸을 뽀송하게 말리며 나는 아르를 품에 안고 토닥여 주었다. 

       

       “뀨우.”

       

       아르는 따뜻한 불 쪽으로 젤리를 뻗고 온기를 즐겼다. 

       

       ‘후우. 이 정도면 이 시기에 늪지대에서 뽑을 수 있는 뽕은 거의 뽑은 거 같은데.’

       

       내가 캐머해릴에 오기 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사냥터 중 하나가 바로 이 캐머해릴 동부 숲의 늪지대였다. 

       

       ‘캐머해릴은 대장장이의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나름 동쪽 지역에서는 논농사가 꽤나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지.’

       

       그리고 거기서 더 동쪽에 있는 이 숲에서는 이 시기에 머드-리자드맨이 평소보다 가파른 속도로 증식한다. 

       

       머드-리자드맨의 개체 수가 가파르게 늘어나면 늪지대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리자드맨류 특유의 악취가 진동하며, 방치할 경우 농사를 짓는 땅까지 오염될 수 있다. 

       

       ‘그래서 거기에 농사를 짓는 농사꾼들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용병 길드에 머드-리자드맨 퇴치 의뢰를 하게 되는 거고.’

       

       머드-리자드맨은 비슷한 수준의 마물 중에서 상당히 경험치를 쏠쏠하게 주는 편이라 캐머해릴에 오자마자 바로 쓸어 버려도 되지만, 이렇게 좀 더 증식하고 의뢰가 나오는 시점에 사냥하러 오면 경험치도 더 얻을 수 있고 의뢰비까지 챙길 수 있으니 일거양득.

       

       ‘매일 매일 의뢰 게시판을 체크했던 보람이 있구만.’

       

       어차피 머드-리자드맨은 용병들이 싫어하는 늪지에 사는 데다 특유의 악취가 있어 퇴치 의뢰를 해도 그렇게까지 빨리 수주가 이뤄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번 건은 보수가 꽤 세서 선점하는 게 중요했어.’

       

       나는 뿌듯한 표정으로 시야 한쪽에 뜬 느낌표를 바라보았다. 

       

       ‘자, 그럼 얼마나 레벨업이 됐는지 까 보실까.’

       

       따라란, 따라란 딴 딴.

       

       속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는 느낌표를 터치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예상대로 레벨업 메시지가 쭉 떴고.

       

       그걸 쭉 내리던 나는 한 메시지를 보고 스크롤을 멈추었다. 

       

       [사역마 ‘아르젠테’가 특정 레벨을 달성해 ‘성장’이 가능합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익명의 독자님이 비공개로 13코인 후원을 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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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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