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1

       며칠 뒤.

         

       오랜만에 프란체와 단둘이 시간을 가졌다.

         

       최근에 탑 건설과 마석 광산. 그리고 제국 각지에 매장을 짓고, 프란체 코퍼레이션의 사업 확대까지 더해진 탓에 둘이 남을 기회가 없었다.

         

       “오랜만에 이런 여유를 즐겨보네.”

       “그러게 말입니다.”

       “문득 이러고 있으니 예전이 생각나.”

       “제가 처음 왔을 때 말입니까?”

         

       프란체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와 비교하면 많은 것이 변했다.

         

       더이상 그 누구도 프란체를 무시하지 못한다. 그게 공작이 됐건, 에덴이 됐건 말이다. 라인은 뭐, 이제 취급도 할 필요 없으니 넘어가고.

         

       “그때 네가 마법을 배우자고 해서 마법을 배우고, 사업을 하자고 해서 사업을 했지.”

         

       프란체는 손을 뻗어 내 뺨을 쓰다듬었다. 그대로 잡고 뺨에 비비고 싶을 정도로 따뜻한 손길이었다.

         

       “네가 아니었다면 이런 삶은 생각도 하지 못했을 거야. 나는 권태로움과 체념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겠지.”

         

       이내 손길이 옮겨져 가 내 입술에 닿았다. 프란체는 엄지로 내 아랫입술을 매만졌다.

         

       “나는 이제 네가 없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어. 이에 대한 책임은… 질 거지?”

         

       지그시 나를 바라보는 프란체. 내게 사랑이라도 바라는 것일까?

         

       “…제게 따로 원하시는 게 있습니까?”

       “말했잖아? 나와 평생 같이 있는 거.”

       “…….”

         

       그런데 이거 프로포즈 아닌가? 프란체에게서 항상 듣던 말이라 잘 와닿지 않았는데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뭐야, 얼굴이 왜 붉어져?”

       “…글쎄요.”

       “음… 나로 이상한 상상이라도 했니?”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내 볼을 콕콕 찌르는 프란체. 눈빛이 요망하다…….

         

       “크흠. 아닙니다.”

       “그래? 유감이네.”

         

       그리 말하곤 배시시 웃는다. 순진하던 그 공녀님이 이런 건 어디서 배웠는지.

         

       프란체가 많이 밝아져서 그런지 최근 단둘이 있을 때면 이런 장난도 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좋아서 싫진 않은데.’

         

       저 미소가 언젠가는 사라질 걸 알기에 두렵다.

         

       “아, 그러고 보니 도게자 백작이 말하더라.”

       “무엇을 말입니까?”

       “마법사를 대규모로 모집했다고.”

         

       숫자도 적고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마법사들을 대규모로 모집했다고? 능력도 좋다.

         

       “그런데 대부분 염동만 사용할 수 있는 하급 마법사들인가 봐. 보수가 워낙 좋아서 연구비 충당하러 온 걸지도?”

         

       프란체의 말에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마법사들은 연구비가 무지막지하게 들어가니까요.”

         

       궁정 마법사들이 만들어내는 마도구와 황실 도서관에 있는 마법서를 읽는 데만 해도 많은 돈이 들어간다.

         

       어떻게든 성취를 이루기 위해선 가리지 않고 일을 해야지.

         

       “그런데 카자르는 세이렐 백작령의 지방 남작이라 했지? 마법은 어떻게 배웠대?”

         

       프란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자르가 특이한 겁니다. 걔는 독학으로 저 경지까지 올라갔으니까요.”

         

       독학이라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 프란체.

         

       “…마법을 독학했다고?”

       “예. 기존 마법을 자기 방식대로 바꿨을 겁니다.”

         

       카자르는 그만큼 유능한 마법사다. 보조 마법만으로 전투 랭크 B. 기사로 치면 검신도 없는 칼자루만 가지고 웬만한 기사들을 다 때려눕히는 수준이다.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구나.”

       “공녀님도 불세출의 천재에 가깝죠.”

       “그런가?”

       “그렇습니다.”

         

       마법을 배운지 이제 6개월이 넘어가는 시점. 프란체는 궁정 마법사의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카자르에게 들었다.

         

       ‘일반적으로 말이 안 되지.’

         

       검을 배워본 적도 없는 사람이 6개월 만에 기사 작위를 따낸 거다. 말도 안 되는 재능.

         

       “그래도 네가 아니었으면 내 재능을 찾지도 못했겠지. 항상 네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안 드는구나.”

         

       오늘따라 왜 이렇게 부끄러운 말을 많이 하는 거지…….

         

       여기서는 멋쩍으니 말을 돌리도록 하자.

         

       “크흠, 공녀님. 혹시 탑 완공 날짜가 나왔습니까?”

         

       내 물음에 프란체는 검지로 볼을 톡톡 건드렸다.

         

       “음… 반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네.”

       “반년밖에요? 그 높이를 만드는데?”

       “말했잖아? 마법사를 대규모로 모집했다고.”

         

       대체 얼마나 모집했길래 그 넓이과 높이를 가진 탑이 반년 만에 완성되는 거지? 재료 충당과 골조 만드는데도 시간이 걸릴 텐데.

         

       “그래서, 그 탑이 완성되면 그 마법사들도 전부 모으는 거지?”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마법서는 카자르가 만들 거고, 공녀님은 그 정상에 앉으실 겁니다.”

         

       카자르에게 미안해질 정도로 혹사시키는 일이긴 한데, 결국엔 본인에게 도움 되는 일이니 뭐…….

         

       “그런데 황실의 궁정 마법사단에서 반발이 있지 않을까?”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마탑과 궁정 마법사단은 명백하게 다르니까요.”

         

       나는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세우며 말을 이었다.

         

       “황실 기사단과 다른 기사단이 나뉘지 않습니까? 마탑과 궁정 마법사단도 똑같습니다. 소속만 다를 뿐이에요.”

         

       프란체는 “그렇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황실과 마찰이 있을 순 없습니다. 공녀님과 지금의 황실은 사이가 좋지 않습니까? 황실도 공녀님과 척을 지고 싶진 않을 겁니다.”

         

       진 바렌베르크. 나라는 존재를 다룰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미 황실에게 큰 이득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마탑주, 제국의 상업을 장악하고 혁명을 이룬 사업가가 된다?

         

       ‘말할 것도 없지.’

         

       아무리 황실의 힘이 강하고, 양대산맥을 이루는 두 공작가가 세다고 해도 프란체를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정말로 제국 최고의 권력자가 되어버렸네….”

         

       프란체는 허공을 응시하며 입을 벌렸다. 앞으로의 일이 믿기지 않나 보다.

         

       “제국 최고의 권력자라는 말은 정정해야겠습니다.”

       “응?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대륙 최고의 권력자가 맞겠네요.”

         

       프란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륙 최고…?”

       “제국이 대륙에서 가장 강한 국가 아닙니까? 여기서 최고 권력자면 대륙 최고의 권력자죠.”

         

       게임에서의 지식과 기본 설정 집만 아는 수준이라 다른 국가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동안 봐왔던 제국의 전력을 생각해보면 맞겠지.

         

       “듣고 보니 그렇구나. 제국의 권위는 드높으니까.”

         

       나는 옅은 미소를 보이며 “그런 거죠.”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프란체도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 내가 이 세상에서 받은 최고의 선물은 너야.”

       “아, 예, 예? 예.”

         

       오늘따라 왜 이렇게 부끄러운 말만 하는 건지.

         

       “귀가 빨개졌어.”

       “…….”

       “부끄럽니?”

       “…….”

       “사실 이런 반응 보려고 한 거야.”

         

       이 공녀님이…….

         

       내가 심기 불편한 얼굴로 쏘아붙이자 프란체는 쿡쿡거리며 웃었다. 나를 놀리는 맛에 들린 듯하다.

         

       “아무튼. 이대로 시간만 지나면 짧으면서도 긴 여정이 끝나는구나.”

         

       나는 “그렇네요” 하고 싱긋 웃었다.

         

       “근데 왜 아까부터 시선을 피하니?”

       “예?”

       “지금까지 나랑 눈 한 번도 안 마주쳤잖아.”

         

       그건 어쩔 수 없다. 괜히 보다가 동기화가 심화하면 큰일이거든.

         

       “비밀입니다.”

       “비밀? 그냥 날 보기 부끄러운 거 아니야?”

         

       단순히 그런 거였으면 좋겠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어서요.”

       “그래? 뭐, 믿어줄게. 네가 이상한 소리 하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프란체는 싱긋 웃고는 찻잔을 들었다. 그러던 그 순간.

         

       콕콕. 콕콕.

         

       전서구가 창문을 두드렸다.

         

       “전서구?”

         

       프란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창문을 열었다.

         

       -푸르륵. 푸르륵.

         

       곧장 전서구의 다리에 묶인 전서를 빼냈다. 용건이 끝난 전서구는 쿨하게 푸드덕거리며 바로 날아갔다.

         

       “누구한테 온 거지?”

       “엑시드에서 왔네요.”

         

       사업에 관한 얘기는 끝마쳤다. 그런데 엑시드가 이렇게 전서를 보내온 걸 보면…….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닌 거 같네요.”

       “그래?”

       “예. 엑시드에서 먼저 보낸 건 안 좋은 소식이 대부분이니까요.”

         

       저번에도 프리다 마담의 움직임을 알려줬다. 이번에는 대체 누가 움직일까.

         

       프란체는 서둘러 전서를 펼쳤다.

         

       【사하라의 모옥 간부, 칠성이 제국으로 밀입국했다. 수상한……】

         

       ‘칠성? 모옥? 사하라?’

         

       사이다야, 뭐야? 내가 알지 못하는 정보들로만 가득하다. 이는 게임의 설정 집이나 퀘스트에서도 나오지 않은 정보들이다.

         

       ‘스토리가 제국을 중심으로 흘러갔으니.’

         

       이는 프란체도 잘 모르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하라의 모옥? 칠성?”

       “공녀님도 잘 모르십니까?”

       “너도 잘 모르는 거야?”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잠시 멍을 때렸다.

         

       “네가 모르는 게 있을 줄이야.”

       “저도 타국의 사정은 잘 모르니까요.”

       “제국은 그렇게 잘 알고 있었으면서?”

         

       음. 이 공녀님은 항상 날카롭다니까.

         

       “제국은 바렌베르크의 바로 옆이라 눈치를 봐야 했으니까요.”

         

       프란체는 “그렇구나.” 하면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가볍게 넘어갔다.

         

       근데 사하라는 어디에 있는 나라고, 뭘 하는 나라인가. 이름만 들어보면 사막이랑 관련된 건 맞는데.

         

       ‘프란체에게 물어보기엔 좀 그래.’

         

       지금껏 정보를 알고 있는걸 왕족이라는 핑계로 때어왔다. 그런데 같은 대륙에 있는 나라도 모르는 건 이상하지.

         

       “모옥이 뭐지?”

       “제 생각엔 암흑 길드 같습니다.”

       “암흑 길드?”

       “예. 모옥의 간부, 칠성이라 했으니까요.”

         

       셀다스가 이렇게 직접 전서를 보낸 거면 보통 놈들이 아니라는 건데…….

         

       ‘걱정이군.’

         

       곧 소미레와 황태자의 결혼식이 열린다. 그런데 이런 뒤숭숭한 얘기가 나올 줄이야.

         

       “근데 이런 시기에 왜 암흑 길드 간부들이 밀입국하지?”

       “그러게 말입니다. 일개 암흑 길드가 제국을 상대로 허튼짓을 하려는 건 아닐 테고.”

       “…이해가 안 가네. 엑시드에서 우리한테 이걸 알려준 이유는 또 뭘까.”

         

       굳이 알려준 이유는 우리와도 관계가 있다는 뜻이겠지. 자세한 건 잘 모르겠다마는.

         

       “지금 제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혼자서…?”

       “예. 간단하게 이유만 묻고 오는 거니까요.”

       “…….”

         

       프란체는 침묵을 유지하다가 하아,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모처럼 단둘이 만끽하는 시간이었는데.”

         

       나와 같이 있는 시간이 끝나 아쉬운 듯하다.

         

       “금방 다녀올게요.”

       “그래. 기다리고 있을게.”

         

       싱긋 미소 짓는 프란체를 본 뒤 창틀에 올라섰다.

         

       “그럼 빠르게 다녀오겠습니다.”

         

       다리에 오러를 집중시킨다. 뿌득. 장딴지와 허벅지의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올라오며 핏줄이 두드러졌다.

         

       ‘그렇다고 진각을 밟으면 안 돼. 창틀을 부수면 안 되니까.’

         

       가볍게 발돋움했다. 허공에서 오러를 한 번 더 일으켜 풍압을 만들어냈다.

         

       화아악―!

         

       돌풍과도 같은 풍압이 생기며 몸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렇게 공작저를 나오고, 지붕을 넘어 다니며 바로 셀다스에게로 향했다.

         

       술집으로 들어와 안쪽 방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고 있자니 접수원이 막아 세웠다.

         

       “잠시만요! 멋대로 들어가시면 마스터가…!”

       “비켜. 그 마스터가 전서를 보내서 온 거니까.”

         

       가볍게 접수원을 옆으로 치워주고 문을 열었다. 셀다스는 가면을 쓴 채 이마를 부여잡고 지도를 보고 있었다.

         

       “셀다스.”

       “진 바렌베르크인가. 무슨 일이지?”

       “전서를 보고 왔다.”

         

       자연스레 소파에 앉아 말을 이었다.

         

       “사하라의 모옥, 칠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라.”

         

       한창 지도에 열중하던 셀다스가 고개를 들었다.

         

       “말 그대로 사하라에서 온 모옥의 간부, 칠성이 밀입국했다는 거야.”

         

       내가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잖아.

         

       “자세히 설명하라고 했을 텐데. 나는 그들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후우, 셀다스는 한숨을 내뱉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대륙 중부에 있는 사막 지역의 국가, 사하라.

         

       그곳에 ‘모옥’이라는 집단이 있는데, 이 암흑 길드가 대륙 최강이라고 불린다 한다.

         

       칠성은 일곱 개의 별이라는 뜻으로, 모옥의 핵심 전력이라고.

         

       “그 일곱 명이 약소국가 하나를 무너트릴 만큼 강하다고?”

         

       셀다스는 “그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게 이걸 알려주는 이유는?”

       “너희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다.”

         

       ……우리는 전혀 접점이 없었는데.

         

       “무슨 연유로?”

       “성녀와 황태자가 관계되어 있어.”

         

       순간 눈이 번뜩 뜨였다. 셀다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대비하라는 거다. 성녀는 수상할 정도로 데카르트 공녀에게 관심이 많으니까.”

         

       셀다스는 소미레에 관해서 알고 있는 건가? 나는 되물었다.

         

       “성녀가 공녀님에게 관심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지?”

         

       연속되는 질문 공세에 셀다스는 귀찮은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제국에 떠다니는 모든 정보를 취급하니 알 수밖에. 그리고 왠지는 모르겠다만, 성녀는 예전부터 데카르트 공녀의 뒷조사를 하고 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다음화 보기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