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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1

       “옳은 일을 하면서, 가업도 지킬 수 있어요.”

        

       이수아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옳은 일이라는 게, 예사라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라는 거냐?”

        

       아뇨.

        

       이수아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그저 친하게 지내는 것은 싫다. 그보다 조금 더 가까이서,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었다.

        

       닮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사라도 나를 닮아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당연히 그런 말을 대놓고 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두 분 다 바빠서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함께 하는 시간에는 늘 보지 못했던 시간만큼 자신들의 딸과 함께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는 법을 아시는 분들이었다.

        

       하지만, 이수아의 부모님은 모두 다소 보수적인 면이 있었다.

        

       한국에서 제일 오래된 기업 중 하나를 운영하기 때문일까. 한국 최고, 세계 최고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조상들을 두고 있기 때문일까. 두 분은 모두 이수아가 ‘핏줄’을 잇기를 바랐다. 물론 대놓고 이야기한 적은 없다. 애초에 대놓고 이야기해야 할 정도로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었으니까.

        

       그저 이야기하다가, 가끔 ‘언젠가 우리 수아가 결혼하면, 자식을 가지면……’ 하는 말들을 하곤 하는 정도였다.

        

       이수아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생각했었다.

        

       아버지의 말대로, 가업을 잇는 것은 중요하다. 이수아도 이 기업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는 않았다. 하지만, 사라지지만 않는다면 무조건 자신의 손으로 이어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부모님은 보수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시는 분들도 아니었다. 동성애자를 차별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요즘 세상에 그런 짓을 했다가는 기업째로 흔들릴 수도 있었으니까. 이수아는 적어도 자신의 부모님이 그렇게 닫힌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진 않았다.

        

       그렇기에, 이수아가 좋아하는 사람이 여자라고 해도, 부모님은 일단은 반대하지 않으실 거다.

        

       다만, 그래도 결혼은 남자와 했으면 좋겠다고 은근히 바라겠지만.

        

       그렇다. 여자끼리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 동성결혼이 허용되고 동성 부부가 아이를 입양 받아 키울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 입양된 아이에게는 ‘핏줄’이 흐르지 않는다.

        

       삼촌도, 고모도 있었지만, 부모님은 기업을 이수아에게 물려주고 싶어 할 터였다. 이수아는 그것이 내심 부담스러웠다. 좋아하는 사람이 없던 어릴 적부터.

        

       ……하지만 그렇다고, 가업을 자신의 변덕 하나로 날려버릴 수만은 없다.

        

       사라라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테니까.

        

       “네, 그렇게 생각해요.”

        

       이수아는 차분하게 말했다.

        

       조금 빠르게 뛰던 심장이, 말을 하면 할수록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처음 생각하기가 어려울 뿐, 막상 말을 하고 나니 긴장이 조금씩 풀려나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수아의 말을 기다리는 듯 조용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지금 사라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계시나요?”

        

       “아니, 그렇지는 않지.”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어째서 사라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하신 건가요?”

        

       “그건.”

        

       아버지는 말을 하다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고민하듯 눈을 감고 한동안 그대로 앉아있었다.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두들기던 그는, 마침내 한숨을 푹 쉬더니 입을 열었다.

        

       “그 아이의 양어머니인 회장이 직접 경고했다, 라는 말을 들었지.”

        

       ‘그런 말을 들었지’.

        

       이수아는 순간 자기 귀를 의심했다. 아버지가 그저 소문만 듣고 한 아이의 인생을 망치는데 협력하고 있었다는 말일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를 소문에 이수아도 동참하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누군가가 심장을 꽉 움켜쥐는 것처럼 가슴이 조여들었다.

        

       “누구도 직접 말을 하지는 않았어. 그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문을 조합했을 뿐이야. 하지만 그 소문을 뒷받침해주는 중요한 사례들도 분명히 있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는 손으로 뒷목을 쓸었다.

        

       “몇 년 전, 꽤 잘 나가던 중견기업 하나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 대기업에 납품하던 기업이었기 때문에 그 기업과 연관되어있던 대기업도 큰 타격을 입었지. 그 중견기업에서 뻗어나가는 수많은 하청기업이 한꺼번에 도산했어. 꽤 큰 이슈였다.”

        

       “……그 사건이, 어떻게 사라와 연관이 되어있다는 거죠?”

        

       “그 기업의 아들이, 그 예사라라는 아이와 친했다.”

        

       “…….”

        

       이수아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

        

       “그것뿐이 아니야.”

        

       이수아가 뭐라고 하기 전에, 그녀의 아버지가 먼저 말을 이었다.

        

       “단순히 그 사건 하나만을 두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그 아이들이 서로 친해지기 전부터, 이미 예사라는 고립되기 시작했다더군. 그리고 그 고립을 주도한 사람이 있다, 라는 ‘소문’이 있었다.”

        

       이번에도 ‘소문’이었다.

        

       “그 ‘소문’에 따르면, 부잣집 자제들이 다니는 어느 학교 재단에 막대한 양의 기부금이 들어가고 있고, 그래서 어떤 아이가 학교에 나가건 나가지 않건 출석 처리가 되고, 시험을 보지 않아도 시험지가 저절로 채점되고, 평균 이상의 점수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

        

       “그리고 그 아이의 주변에 다가가는 인간이 있다면, 그 인간을 누군가가 반드시 파멸시킨다. 방법은 주로 돈이고. 그 중견기업의 아들뿐만이 아니야. 그 이전에도 이미 본보기가 된 집안이 몇 곳 더 있었다고 했다. 그 중견기업보다 더 작은, 어느 회사 사장의 아이들이었다지. 그리고,”

        

       아버지는 다시 한번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참 놀랍게도, 그 중견기업이 납품하던 기업이 유진 그룹의 기업 중 하나였다…… 라는 소문이야.”

        

       그리고, 이수아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증거는 없지. 누군가가 철저하게 숨겼으니까. 아는 사람의 입을 틀어막고, 겁을 주고, 아마 협박도 했을 거다. 만약 그 모든 사람을 하나하나 다 매수할만한 돈이 있다면 더더욱 쉽겠지. 그렇기에, ‘소문’인 거다.”

        

       이수아의 아버지는, 이수아 쪽으로 몸을 살짝 숙이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마치 누가 듣기라도 하고 있다는 것 마냥.

        

       “자신의 그룹 내의 기업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을 감수하면서, 중견기업 자체를 없애버렸다. 그 과정에서 온갖 더러운 일이 일어났다는 ‘소문’이다. 사장이 납치되어 구타당해 사지가 모두 골절당하고, 그 부인은 장 보고 오던 와중에 실종되었다가 3일 뒤에 만신창이가 되어 알몸으로 돌아오고, 누군가가 집에 불을 지르고, 공장 창고에 도둑이 들고, 기업의 가장 중요한 기밀이 유출되었다는 ‘소문’. 찾아낸 범인은 누구의 사주도 없었다고 당당하게 주장하고, 결국 단독범으로 감옥에 갔다가 나와 갑자기 생긴 막대한 재산으로 호의호식하고 있다는 ‘소문’.”

        

       그리고 그는 다시 몸을 뒤로 빼서 의자에 가만히 기대어 앉았다.

        

       “듣자 하니 그 집안에서 무사할 수 있었던 건 정작 그 딸과 친하게 지냈던 그 아들 하나뿐이라고 했다. 어째서 그 아들만 무사할 수 있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해. 망가진 자기 가족을 보면서 평생 살라는 의미였다, 라는 소문은 있지만.”

        

       “……하지만.”

        

       이야기를 듣던 이수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 기업은 이렇게 크잖아요. 그 기업과는 연관도 거의 없는 업종이고. 게다가, 그런 방법은 한 명이 대상이라면 몰라도 수많은 사람이 대상이라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방법인데요…….”

        

       “수아야.”

        

       아버지는 작게 한숨 쉬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저 기업이 망했다는 게 아니야. 그 기업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이, 그 아이 주변의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거지. 나는 네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아…….”

        

       이수아는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잦아들었던 심장이 다시 쿵쿵 뛰기 시작했다. 긴장감으로. 그리고 공포감으로. 처음 입을 열었을 때의 자신감은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이건 ‘경고’다. 그리고 이런 경고는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잘 먹히지. 이건 애초에 모두를 대상으로 한 경고가 아니야. 접근하는 누군가를 대상으로 한 경고지. ‘반드시 당한다’가 아니라, ‘나도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가, 누군가 그 아이 곁으로 다가가는 것을 막아내고 있는 거다.”

        

       우리를 포함해서.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이수아의 귀에는 그 마지막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싫어요.”

        

       하지만, 이수아는 그 말을 듣고도 그렇게 말했다.

        

       “수아야.”

        

       “아무리 그래도,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예요.”

        

       “방법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걸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야.”

        

       시도했다가는 어떤 상처를 입을지 모르니까.

        

       “아뇨, 반드시 제가 해야 해요.”

        

       수아는 이를 악물었다. 공포도, 긴장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심장은 쿵쿵 뛰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 했다.

        

       왜냐하면 자신이 사라 옆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사람 중 하나였기에.

        

       아무도 모르던 비밀을 알아낸 사람 중 하나였기에.

        

       “제가 알아낸, 정보가 있어요.”

        

       “흠.”

        

       이수아가 끝까지 물러나지 않는 것을 보고, 이수아의 아버지는 자기 딸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래? 그럼 그 정보를 알려줄 수 있겠니? 만약 그 정보가, 만약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라면 나도 네가 그 아이 곁에 있는 것을 허락하도록 하마.”

        

       “…….”

        

       이수아는 잠시 생각했다. 이 정보를 정말로 아버지에게 말씀드려도 되는 걸까?

        

       정보의 중요성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사라의 개인정보였기에, 자신이 함부로 떠벌리고 다녀도 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을 뿐이다.

        

       ……그래, 그 편지에 대한 것, 수면제에 대한 것은 일단 접어두자.

        

       그보다는,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을 말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이수아는 자기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계획을 말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빼놓은 채.

        

       *

        

       결국,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은 허락받지 못했지만.

        

       그 정도는 예상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마음먹은 것을 하지 않을 생각도 없었다.

        

       이수아의 방은 2층에 있었다.

        

       이수아는 창문을 열고, 커튼을 뜯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검색한 방법으로 커튼을 묶어 밧줄을 만들었다.

        

       밧줄은 꽤 제대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이수아가 그 밧줄을 타고 내려올 만큼 대단한 힘은 없었다는 것이다.

        

       다행히, 잔디 위에 떨어져서 소리는 크지 않았다.

        

       떨어지면서 지면에 닿은 왼쪽 몸이 전체적으로 살짝 까지긴 했지만,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자고 있던 초코가 고개를 들어 이쪽을 보았다.

        

       이수아는 초코 쪽으로 다가가 그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좀 오래 밖에 나가 있을 거야.”

        

       늙은 개는 힘 없이 이수아의 손을 핥을 뿐이었다.

        

       “전부 마무리되면 돌아올게.”

        

       늙은 개는 이수아의 손에 자신의 턱을 얹고, 그녀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수아는 몸을 일으켰다.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대문을 살짝 열고 밖으로 나가,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사라가 있는 곳으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런데 올리고 생각해보니, 이러면 매일 두 화씩 연재하는데 화수가 홀수가 되네요.

    생각만 해도 킹받으니 내일도 한 화 더 써서 짝수로 맞추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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