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81

       내 스스로 불사에 도달했다 칭하는 이들을 여럿 만났다.

       

       한 때 사파의 수장이었던 이가 그러했고, 본인을 악이라 규탄하던 신선 놈들이 그러했고, 내 골을 오랫동안 아프게 했던 혈교주가 그러했다.

       

       그들이 진정 불사에 도달한 존재였다면 나는 오래 전에 땅에 묻혔을 것이다.

       

       본인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어디까지나 인간. 영원히 이어지는 소모전에서 승리를 거둘 순 없으니.

       

       허나 본인은 이 곳에 서 있었다. 불사를 자칭하던 모든 이들을 죽이고서 살아남았다. 자칭 불사자들은 불사에 가까웠을 뿐 진정 불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내 보기엔 하르키아라고 해서 그들과 다를 것 같진 않다.

       

       저 자가 진정 불사자라면 본인을 상대로 겁을 먹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처음과 같은 자신감은 어디로 간 게냐.”

       

       왜 걸음을 뒤로 물리는가.

       

       그대가 지닌 힘은 강하다.

       

       그대가 마법을 통해 얻은 힘은 진짜다.

       

       스스로를 믿어라. 단 한 번의 공격이면 내 나약한 몸은 박살이 날 것이다.

       

       지금 내 입꼬리가 올라가 있지 않으냐.

       

       그대와의 투쟁이 나름 즐거웠다는 이야기다.

       

       내게 즐거움을 안겨준 이는 얼마 되지 않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도망칠 셈은 아니겠지?”

       “내가 인간을 상대로 등을 보일 것 같나?”

       “잔뜩 겁을 먹은 것처럼 보였는데 착각이었나 보군.”

       

       내 도발에 하르키아가 자신의 마력을 끌어 올리더니 거대한 힘으로 공간 전체를 짓누른다.

       

       으음. 좋구나.

       

       이런 압박감을 느껴보는 게 얼마만인지.

       

       역시 육신은 나약한 것이 좋다. 쓸데없이 강해봐야 투쟁의 즐거움만 사라질 뿐이니까.

       

       발을 내딛어 하르키아에게 다가서기 무섭게 하르키아가 주먹을 뻗는다.

       

       이전에도 생각했던 것이지만 참 경이로운 힘이다. 눈으로 따라잡기 버거울 지경이라니.

       

       아쉬운 사실은 그저 그 뿐인 주먹이란 거겠지.

       

       강하고 빠르면 무얼 하느냐.

       

       그 주먹을 휘두르는 당사자가 어설픈데.

       

       무를 모르는 자의 주먹은 눈을 감고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뻔했으니 보이지 않는다 하여 문제될 것은 없었다.

       

       1초 새 이어진 스물 한 번의 연격을 피하던 중 무언가가 내 다리를 붙잡았다.

       

       이 느낌은 일전에 나를 하늘로 날린 염동인가.

       

       무의 부족을 자신의 마법으로 보충하려 하는 게로구나.

       

       좋은 판단이고, 재미난 판단이다.

       

       신기한 것을 보여주었으니 나 또한 신기한 걸 하나 보여주어야겠지.

       

       하르키아가 뻗은 주먹에 손바닥을 가져다 댄다.

       

       주먹이 나의 손에 닿으며 사람 하나는 가벼이 가루로 만들어버릴 충격이 덮치려 든다.

       

       허나 그 힘의 흐름은 너무도 정직했으니.

       

       그 흐름을 건드려 힘의 당사자에게 돌려 보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퍼엉!

       

       터져나간 것은 하르키아의 팔이었다.

       

       하르키아는 즉시 팔을 재생시켰음에도 공격을 하는 대신 의문이 서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무어냐.

       

       내가 무슨 수작을 쓴 것인지 궁금하더냐?

       

       미안하다만 알려줄 생각은 없다.

       

       본인은 대적자에겐 그리 친절하지 않아서 말이다.

       

       대답을 대신해 주먹으로 하르키아의 머리를 날려주었더니 하르키아가 이를 꽉 깨물고 내게 달려들었다.

       

       박투가 이어진다.

       

       하르키아는 무투의 사이사이에 자신의 마법을 끼워 넣었다.

       

       때로는 주먹을 피하기 무섭게 바람의 칼날이 날아들어 나를 반토막 내려고 했고.

       

       때로는 대지가 나의 움직임을 막아 어쩔 수 없이 하르키아의 공격을 받아내야 할 때도 있었다.

       

       어떤 때는 갑작스레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기도 했고.

       

       어떤 때는 하르키아의 염동이 내 몸을 붙들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어설픈 박투와 경이로운 마법의 조화인가.

       

       재밌다.

       

       여태 겪어보지 못한 것이기에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어 좋다.

       

       한 번 판단을 그르치면 그대로 죽게 되리라는 사실이 즐겁다.

       

       정정하마.

       

       그대는 혈교주를 닮았기에 죽어야 할 이가 아니다.

       

       내 진심으로 죽이겠다 마음먹을 가치가 있는 자다.

       

       하르키아는 어느 순간부터 방어를 완전히 포기했다. 대신 내 공격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이 수를 둘 시간을 벌었다.

       

       그는 한 수를 둘 때마다 하나의 목숨을 희생해 내게 위협을 가했다.

       

       허나 내가 공격을 허용하지 않기에 위협은 위협이 되지 못했고, 희생은 그저 수를 불릴 뿐이었다.

       

       하나의 희생이 열의 희생으로 바뀌고, 그 숫자가 백에 달해, 이윽고 천을 넘어선다.

       

       죽음이 늘어감에 따라 하르키아가 재생하는 속도도 느려진다.

       

       없어지자마자 재생되던 것이 어느새 재생을 마치는 데 1초가 걸렸고, 그게 10초로 바뀌더니, 이제는 팔이 없어진 지 30초가 흘렀음에도 하르키아는 자신의 팔을 재생하지 못했다.

       

       싸움의 시간이 끝나고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르키아의 복부에 충격을 가하자 그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저만한 통증을 견딜 힘조차 잃어버린 것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목숨은 몇 되지 않겠지.

       

       하르키아 본인도 그것을 느끼고 있는 듯 그 눈동자엔 공포가 서려 있었다.

       

       그 눈은 조금 아쉽구나.

       

       죽음을 각오한 눈을 했다면 완벽했을 터이네.

       

       뭐어. 그 정도는 이해해주마.

       

       내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해 주었으니 말이다.

       

       “하르키아.”

       “뭐냐.”

       “그대가 재밌는 것을 보여줬으니 나도 재미난 것을 하나 보여주마.”

       

       그대는 이를 볼 가치가 있느니라.

       

       숨을 들이 쉬며 몸 안을 관측한다.

       

       여태 이어진 싸움에서 소모된 것은 하르키아 뿐이 아니다.

       

       게임 속 내 몸은 지금 너덜너덜해진 상태다.

       

       아무리 모자란 육신의 경지를 깨달음으로 보충했다 한들 거기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

       

       억지로 버티고 서있긴 하다만 이 싸움을 마치면 이 몸도 한계에 달하겠지.

       

       어차피 무너질 것이라면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해야 하지 않겠나.

       

       생명을 태워 보자꾸나.

       

       이미 마력은 바닥을 드러냈으나 상관없다. 그건 생명으로 대신하면 되니까.

       

       무공을 배우지 못한 몸이라도 선천의 진기는 존재하기 마련.

       

       이번에 내가 보일 것은 마력으로 흉내 낸 무가 아니다.

       

       내가 평생을 쌓아오며 이뤄낸 하나의 결정체이니라.

       

       꺼져가는 촛불에 기름을 들이 붓는다. 모든 것을 화려하게 불태울 수 있도록.

       

       모든 진기를 발아래에 모아 진각을 밟는다.

       

       콰앙!

       

       그 여파로 대지에 지진과 같은 진동이 인다.

       

       발아래에 있던 진기가 허벅지를 타고 허리를 지난다.

       

       허리를 뒤틈과 동시에 어깨로 향한 마력은 전완을 타고 팔꿈치를 지나 결국 손에 모였다.

       

       “내 따로 이 기술에 이름을 붙인 적은 없다만 요즘 다른 아해들은 나의 권을 이렇게 부르더구나.”

       

       위험을 느낀 하르키아가 다급히 내게 달려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권은 이미 쏘아질 준비를 마쳤으니까.

       

       “천마펀치다.”

       

       쏘아진 권은 대지를 가르고, 하르키아를 꿰뚫고 지나가고도 계속해서 나아가다가, 하늘의 구름을 갈라 가려졌던 보름달의 모습을 드러냈다.

       

       권에 직격당한 하르키아는 더 이상 재생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그의 시체가 바닥에 쓰러졌다.

       

       좋다. 이 정도면 멋진 결말이구나.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 나는 그 상태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화령 씨?!>

       

       놀라 비명을 지르는 엔리에게 답을 하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거야 원.

       

       죽을 거면 빨리 죽을 것이지.

       

       괜히 죽음이 늦어서 남을 걱정시키지 않으냐.

       

       <GAME OVER>

       

       내가 투덜거리는 것을 듣기라도 한 듯 검은 색 창이 떠오름과 동시에 내 시야가 일순 암전했다.

       

       다시 정신을 차리니 눈 앞에 요새가 보였다.

       

       이 곳은 분명 새벽이니 뭐니 하는 곳이었던가.

       

       “내가 왜 이 곳에 있는 게냐?”

       <죽어서 리스폰 한 거에요.>

       

       엔리의 말을 듣고 팔과 다리를 움직여 보니 몸이 멀쩡해 졌음을 알 수 있었다.

       

       진즉에 이럴 것이지.

       

       <대체 뭘 한 거에요?! 왜 하르키아를 죽이고 아라 씨까지 죽은 거에요?>

       “생명을 태워 무를 펼쳤을 뿐이다.”

       

       일종의 자폭기라 할 수 있겠구나.

       

       <할 거면 미리 말을 하고 해주세요. 깜짝 놀랐잖아요.>

       “어차피 게임일 뿐인데 무얼 놀라고 그러느냐.”

       

       엔리를 타박하며 채팅창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광기에 빠진 이들이 보였다.

       

       – 천마펀치!천마펀치!천마펀치!천마펀치!천마펀치!

       – 하늘 갈랐다고!하늘 갈랐다고!하늘 갈랐다고!하늘 갈랐다고!

       – 신 그는 화령인가!신 그는 화령인가!신 그는 화령인가!신 그는 화령인가!

       

       이것이야 말로 본인이 바란 반응이었느니라.

       

       그대들도 참 야박하구나.

       

       내 진심을 다한 무언가를 보이고 나서야 이런 반응을 보여주다니.

       

       “오늘은 슬슬 끝을 내자꾸나. 이만하면 오래 한 것 같다만.”

       

       어느새 방송을 시작하고서 반나절 가까운 시간이 흘러 있었다.

       

       시청자의 숫자는 이미 수천에 달했으니 이만하면 충분히 성공적인 시작이리라.

       

       정작 인간 백아라를 보여주겠단 목표는 전혀 달성하지 못했지만 뭐어 그거야 천천히 해나가면 되니까.

       

       조급해 하지 말자꾸나. 마음이 다급해져서 잘 풀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 가지마!

       – 좀 더 하고가! 보스 하나 더 있잖아!

       

       시청자들이 좀 더 하고 가라며 원성을 냈지만 난 그걸 무시했다.

       

       엔리에게 신신당부를 들었다.

       

       시청자들이 무어라 하건 간에 꺼야 할 때는 방송을 꺼야 한다고.

       

       지금 엔리가 살벌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을 게 뻔하기에 마음을 바꿀 순 없겠구나.

       

       – 다시 올거지?

       – 언제 다시 방송 킬 거임?

       

       “글쎄다. 마음이 내키면 켜겠다. 잘 있거라.”

       

       난 한치 망설임 없이 방송종료 버튼을 눌렀다.

       

       *

       

       아침에 일어난 당소일. 민일수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어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커뮤니티를 살폈다.

       

       기상하자마자 30분 정도 커뮤니티를 살피는 건 그의 일과나 마찬가지였다.

       

       논란을 피하려면 커뮤를 살필 수밖에 없다 주장하는 그이지만 실상은 그저 평범한 커뮤 중독자일 뿐이었다.

       

       오늘도 커뮤니티 화제의 중심에 있는 건 이전에 그를 처참하게 발라버린 천마 유저. 화령이었다.

       

       어제 방송을 켰다고 했었지. 그럼 당연히 마교도들이 커뮤를 점령하지.

       

       일수는 어제 화령의 방송을 보지 못했다. 어제 그는 현생에서의 일 때문에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친구들이 화령 방송 개 쩔었다고 감탄하는 것은 들었지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다.

       

       원래는 방송 다시보기라도 볼 작정이었지만 커뮤를 보던 일수는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방송 시작될 때부터 커뮤 반응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볼까.

       

       가벼운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기던 그는 그 숫자가 10페이지를 넘겼을 즈음에 이상함을 느꼈다.

       

       왜 화령에 관한 화제가 안 끝나지?

       

       일수는 그 뒤로도 한참이나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야 겨우 화령의 방송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글을 찾아냈다.

       

       [화령님 방송킴!]

       

       <천마신교 본관에서 곰방대를 피우는 화령의 사진>

       

       주작 아님. 찐임.

       

       – 어딘데?

       └ 터렛. 화령이라고 치면 나옴.

       – 머리 바꿨네? 난 단발이 좋았는데.

       └ 단발충 OUT. 장발 되니까 더 이쁜데 무슨 소리냐.

       

       여긴 별 내용 없네.

       

       난 어제 화령이 뭘 했는지가 궁금하다고.

       

       일수는 여섯 페이지를 앞으로 넘기고 나서야 화령이 어제 킨 게임이 뭔지 알 수 있었다.

       

       [화령 오늘 하늘의 끝 한다네?]

       

       용 잡으러 간대.

       

       [초장부터 학살을 하네.]

       

       프롤로그 병사가 저렇게 약헀나?

       

       [천마님 용잡는 장면.]

       

       

       <검을 휘둘러서 하늘에 뜬 용을 떨어트리는 영상.>

       

       일수는 처음 영상을 보곤 자기가 뭘 본 건지를 믿지 못해서 다시 한 번 재생 버튼을 눌렀다.

       

       착각이 아니었다.

       

       화령은 검으로 태양을 베어서 떨어트렸다.

       

       왜 저 사람 하늘의 끝에서 아피스를 하고 있는 거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걸로 이번 에피소드는 끝입니다.
    여러모로 아쉽네요. 흔들리면서 글도 같이 흔들린 것 같아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따라와 주신 독자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천마펀치!

    다음화 보기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