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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1

        

         “……쓰읍.”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켜봐도, 초조함을 가지고 응시해봐도 보이는 상처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매끈한 절단면에서는 끊어진 회로들과 쪼개진 합금 단자들이 자아내는 슬픈 불꽃놀이가 한창.

         게다가 아침만 해도 광택이 흐르던 복합장갑 일면은 어디 강판에 대고 갈아버린 것처럼 무수한 흠집이 새겨져 있었다.

         

         그에 반해… 파이브 아이즈 요원들은 이렇다 할 피해를 입은 자국도 없이 쌩쌩해 보이는 게 상당히 거슬렸다.

         

         내 뒷조사까지 성실하게 마치고 조직에 끌어들이겠다고 다가온 로잘린이 있어서, 극단적인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으리라 믿었거늘. 이렇게 사양없이 애를 패 놔?

         

         깡통이 요원 몇몇을 묵사발내기라도 했나?

         

         – 저들의 공작용 장비로 추정되는 전자기기의 전력을 차단하긴 했습니다. –

         

         겨우 그거 가지고? …거 뒤지게 쪼잔하시네들.

         

         “…쓰으읍.”

         

         치솟는 스트레스 덕에 뒷목이 좀 뻐근하다.

         접선은커녕 시기가 오기 전까지는 관련될 예정도 없던 지하 비밀 조직께서, 일개 해커한테 몸소 관심을 주는 것만 해도 충분히 부담스러웠는데 애꿎은 로봇은 왜 건드린 걸까.

         

         고민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피어난 반항심을 고개를 치켜들려던 찰나.

         지금 내가 보는 시야부터, 평화협정을 전달한 소리까지 모두 빌려 쓰는 와중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에휴….”

         

         ……조금만 참자. 참고 마음 속 장부에 이 빚은 달아 두자.

         여기서 내가 먼저 분노를 터트려봐야,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건 현장에 있는 깡통. 보나마나 더 망가질 뿐이다.

         

         하지만 내 참견으로 인해 이미 굴러가기 시작한 형편은, 그다지 많은 인내심을 요하지도… 뜻대로 풀리지도 않았다.

         

         “뻔한 속임수군. 우리가 긴가민가하는 이 순간에도 기업 병력들이 다가오고 있는 것 아닌가?”

         

         “……예?”

         

         아시프가 얼음장 같은 말투로 이쪽이 내민 손길을 뿌리쳤다.

         그나마 친절하게 이유를 알려줘서 고맙…긴 개뿔. 왜 이렇게 조심성이 많아!?

         

         – 아무래도 저들은 아샤님의 관용을 의심하는 것 같습니다만. –

         

         “나도 똑똑히 잘 들었어…!”

         

         이쪽도 꽤 냉정하게 사리 분별에 성공했다 여겼는데, 책임질 머리가 한두 개가 아닌 그는 차갑다 못해 내민 거래 조건 자체를 믿어주지도 않은 모양이다.

         

         짤깍…!

         스르릉…….

         

         허리춤에 둘러진 밀리터리 벨트로부터, 총알 대신 예리하게 벼려진 손도끼가 섬뜩한 소리와 함께 뽑혀져 나왔다.

         

         단순한 일반인의 손에만 들려도 지대한 위협이 될 흉기. 그리고 지금 그걸 쥔 건 반란군 비슷한 조직의 특무조장 아시프.

         

         차라리 그냥 속은 답답해도 통제 가능했던 로잘린이랑 계속 떠들 걸… 하는 후회가 몰려왔지만 너무 늦었다.

         

         “드로이드만 포획해서 추후 역추적에 사용. 세부적인 위치가 특정될 만한 시끄러운 화기는 엄금이다. 손에 넣는 대로 신속하게 퇴각한다.”

         

         리더의 호령에. 후위는 퇴로를 점검하려는 지 산개해서 모습을 숨기기 시작, 나머지는 각자 백병전 용 무기를 빼 들고 슬금슬금 거리를 좁혀왔다.

         

         정말 이런 식으로 나올 거냐는 뜻을 담아 로잘린 쪽을 바라봤지만, 그녀는 자신과 더 떠들고 싶다면 채널에 다시 들어오랍시고 단말기를 붕붕 휘둘러 보였으니.

         

         …십, 지금 나랑 장난해?

         

         “내 새끼를 납치하겠다는 놈들 앞에서. 느긋하게 채팅이나 칠 시간이 어디 있어!”

         

         – 그게 결정하신 제 애칭입니까? 분명 거친 표현인 데도, 이해하기 어려운 친근함이 묻어나는군요. –

         

         “으극…! 천하태평한 소리 하지 말고! 너도 얼른 도망칠 준비나…….”

         

         몇 시간 동안이나 같은 자세로 앉아있어서 삐걱거리는 몸을 일으키고.

         골목 안쪽에서 수상한 인간들을 발견했다는 첩보를 현장 용병들에게 송신하며, 대책을 웅얼거리다가… 말을 멈췄다.

         

         지금부터 내가 전력으로 뛰어도 도착하기 전에 어떻게든 결판이 나겠다는 판단이 서기도 했지만. 역시 일방적 피해자인 나나 깡통이 한수 접어줘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류 역사에서 시대를 불문한 상식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바로 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좋게 좋게 넘어가는 것과 무시당하고 호구 잡히는 것엔 어마어마하게 큰 차이가 있다는 것.

         

         …씨발. 이것들이 고장 난 물건처럼 때린다고 고쳐질지도 모르겠고.

         깡통이, 우리가 이긴다는 보장도 없긴 한데 아무튼 나도 좀 때리고 싶어졌다.

         

         여차하면 시간만 끌어도 이기는 싸움이니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엔 딱 좋은 기회다.

         

         – 손도끼를 착용한 적은 현재 하드웨어로는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여차할 경우, 사살해도 괜찮겠습니까? –

         

         “……아니, 미안한데 딱 받은 만큼만 돌려주자.”

         

         평생의 원수를 만들려는 우리 살인기계를 간신히 진정시켰다.

         

         건물 계단을 최대한 빨리 뛰어내려가며 방침을 정했다.

         거리가 굉장히 멀어서 능력 제어에 좀 난항을 겪을 게 뻔히 보였지만… 그건 가까워질수록 해결될 문제. 진짜 중요한 건 강력한 자의식을 가진 깡통의 동체에 마개조 된 내 신호가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 모른다는 게 좀 거슬렸다.

         

         “깡통아, 나 믿지?”

         

         – 일일이 물어보거나 허락을 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아샤님을 위해 존재하니까요. –

         

         에이씨, 괜히 찔러봤다. 내가 실수하면 분해 당하는 건 자기일 텐데 얘는 쫄리지도 않나.

         

         “…그건 너무 부담되고. 어쨌든 그럼 신호 중계기 역할 잘 부탁해, 금방 갈 테니까 절대 다치지… 긁히지 말고…!!”

         

         

         

         ★ ☆ ★ ☆ ★

         

         

         

         부웅!!

         

         내질러진 금속 주먹이 허공을 가른다.

         하지만 그 정권 지르기에 아시프를 맞추려는 의지가 정말 있었냐고 물으면, 이 자리에 있는 전투원 중 누구도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다가올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는, 방어를 위한 공격.

         흡사 훈련된 사냥개가 요구되는 순간에만 내지르는 위협용 포효와 같은 교활한 술수에 아시프가 감탄했다.

         

         “짐작대로…! 대놓고 시간만 끄는 게, 노리는 바가 아주 노골적이야.”

         

         – 아샤님의 순수한 호의를 걷어차신 건 그쪽입니다. 그런 식의 책임 전가는 납득하기 어렵…! –

         

         콰드득!! 하고. 말을 걸어서 신경을 분산시킨 뒤, 공기를 찢어발기며 투사된 손도끼가 땅바닥에 꽂혔다.

         명중률에 꽤 자신이 있는지, 또 다시 거침없이 던져진 도끼를 깡통은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방향으로 관절을 구부려 겨우 피해냈다.

         

         아슬아슬하게 스치는데 그친 외부 장갑은 얼핏 보기엔 멀쩡해 보였으나, 그 표면이 예리하게 갈려 나갔다는 건 이미 한 번 가격당해본 케어봇이 잘 인지하고 있었다.

         

         – ……성질이 제법 고약하시군요. –

         

         “쯧! 말본새가 거의 사람 같아서 자꾸 로봇이라는 걸 나도 모르게 잊게 되는군.”

         

         전장 한복판에서, 그것도 전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무장을 손 놓는 건 죽여 달라고 목을 내미는 것과 동일. 하지만 적은 하나가 아니었기에 아쉽더라도 놔줄 수밖에 없었다.

         

         맨손이 된 아시프를 백업하고자, 뒤로부터 휘둘러진 기습.

         

         쨍—!

         

         “큿?!”

         

         금속이 맞부딪치며 발생한 찢어지는 쇳소리가 귀를 괴롭혔지만 그게 요원들의 손속을 느슨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이식된 임플란트의 증폭율이 충분하지 못했는지, 장갑과 충돌한 쇠파이프가 미친듯이 진동하며 튕겨져 나갔다.

         그러나 그 잠깐 사이에 이미 그는 쫓을 수 있는 범위에서 벗어났기에, 대신 던져진 무기라도 빼앗겠다는 일념으로 깡통은 몸을 날렸으나.

         

         도끼가 틀어박힌 위치에 도달하기도 전에 한 명은 길을 막아섰고, 다른 요원은 그 틈에 손도끼를 회수해서 주인에게 전달했다.

         

         – 너무 신중하신 것 아닙니까? 이래서야 누가 시간을 끈다는 건지 모르겠군요. –

         

         “씨바! 고작해야 무슨 총도 없는 로봇에 이딴 인공지능을 심어 놨어?!”

         

         영리한 움직임이 주는 압박감.

         사람처럼 빈정거리는 도발에 나지막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적대 해커의 제안을 걷어찬 후, 최초의 교전에서 지시받은 대로 ‘포획’을 시도하던 동료가 벽에 얼굴을 처박고 기절하는 걸 본 그들은 절대 일대일로 정면승부에 나서지 않았다.

         

         적수공권 상태로도 충분히 끔찍한 전투력을 보유한 놈이 무기를 얻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조금씩 방어를 깎아 나갈 뿐.

         

         “해커들은 뭐 하는데? 얼른 전투 모듈부터 강제로 꺼버리면, 드로이드는 상대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니었나?”

         

         “본부 아가씨…! 힘 좀, 어떻게 더 써 봐!”

         

         “아니…!! 방화벽이 꼭 살아있는 것처럼 계속 구조를 바꾸는데 해킹이 말처럼 쉽겠냐고요!”

         

         그렇지만 깡통의 언사처럼 전투가 늘어져서 아쉬운 건 그들.

         인재 스카우트는 고사하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근방 은신처나 소속 인원들이 노출될 수도 있는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육체 평가 등급이 B 이하인 이들은 그만 몸을 빼도록. 넉넉한 개조가 이루어진 전투원들만 남아서 단숨에 제압한다. 로잘린, 적들이 접근해오면 바로 물러날 테니 감시는 맡기겠다.”

         

         “아… 알겠어요 리더.”

         

         스르륵….

         명령을 내린 아시프가 호쾌하게 장갑과 재킷을 벗어 던지자, 꿈틀거리는 근육 대신 번들거리는 의수가 드러났다.

         

         골목의 그늘 속으로 자취를 감춘 요원들을 빈자리를 메꾼 이들도 하나같이 기계 팔이나 기계 다리를 자랑하는 개조 인간이었다.

         

         가정용 로봇 정도야 손쉽게 깔아뭉갤 수 있을, 안전 장치나 출력 제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불법 개조물의 등장에.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준비성이 부족한 주인을 탓하도록.”

         

         – ……. –

         

         거친 마찰음이 울려 퍼진다.

         

         허나 여태까지 말 한마디 안 지고 꼬박꼬박 대들던 기계는, 허용선을 한참이나 넘은 주인 욕을 들었음에도 기묘한 침묵을 유지하다가… 사라졌던 의식이 돌아온 것처럼 재가동을 마쳤다.

         

         – 실례, 잠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느라 헛소리를 좀 놓쳤습니다. 이쪽도 방금 막 적절한 비살상 무기를 전송받았으니 안심하시길. 재물 손괴에는 재물 손괴로 돌려주라고 말씀하시는군요. –

         

         “…흡!!”

         

         기합과 함께 순식간에 양자의 거리가 제로로 변했다.

         

         여지껏 깡통을 회피에 집중하게 만든 주된 원인, 아시프의 날카로운 일격이 날아든다.

         다른 요원들도 결판을 짓고자 사방에서 옥죄어 들었지만… 미동도 않는 드로이드의 모습에 승부가 끝났다고 여겼다.

         

         그러나 아시프는 몰랐다.

         농담처럼 내뱉어진 말마따나, 진짜 보이지 않은 무기가 그의 손에 쥐어졌음을.

         승리-포획-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 한 잔걱정 많은 해커에 의해 방금 막 차단되었음을.

         

         동력원이 있을 가슴팍을 향해 휘둘러진 데스 블로우(Death Blow).

         실상 그것이 담은 물리력을 고려하면 소형 폭탄이나 다름없는 폭력에 대항해 깡통은 그저 팔을 내밀었을 뿐이지만.

         

         쩌저저저저저적—!

         

         견고하기 그지없던. 그 자체로도 철옹성처럼 단단하고 막강해 보이던 의수가, 거의 접촉과 동시에 마치 바위 위에 떨어진 계란처럼 산산이 조각났다.

         

         아니, 조각난 게 아니라… 덧씌워진 새로운 명령으로 인해 스스로 분해되는 것이었다.

         

         “저게… 무슨…?”

         

         비산하는 부품들을 본 로잘린이 이해의 범주를 벗어난 기현상에 멍하니 중얼거렸지만 정작 그걸 일으킨 장본인, 장본기계는 정말 뻔뻔한 대답만을 돌려주었다.

         

         – 죄송하지만 제가 모시는 분은 그 누구를 데려와도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나시고 우수하신 분이므로, 자꾸 멋대로 재단하지 말아 주시겠습니까? –

         

         ……자기도 전혀 몰랐던 주제에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 자식… 치사하게 스탠드를 쓰다니!

    오늘의 글쓰기용 배경음악은 Crypt of the Necrodancer OST – The Wight to Remain (4-3) 였습니다.

    언제나 재밌게 읽어주시고. 바쁜 와중에도 추천 눌러주시고. 매 화마다 댓글까지 달아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또 모레는 예비군이네요…. 나한테 왜 이래ㅐ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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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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