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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11

    <811 – 뉴비 받아라(10)>

     

    “불가능해.”

     

    고민 끝에 벨벳은 결국 선을 그었다.

     

    “재단공방전이 끝나고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어. 서귀연이 재단의 비밀파벌이냐는 정치적 공세가 끊이지 않을 거야. 서귀연엔 아직 힘이 부족해.”

     

    재단 출신의 집사와 메이드들을 교사로 받아들인다.

    아무리 교사임용권한이 있더라도 사방에서 쏟아질 공세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실제로 재단이 망하고 과거를 세탁하고자 괜히 목소리 높여가며 “너 재단스파이지?”를 외쳐대며 재단의 끄나풀들을 족치는 수상쩍은 귀족들이 한둘이 아니다.

    마치 자신들이 재단스파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지우겠다는 것처럼 병적으로까지 보이는 척살에 대한 집착!

     

    “에에. 그럼 벨벳 선배를 학생회장으로 밀어드리기는 힘든데요?”

    “감수해야지.”

     

    아쉬움을 드러내는 나와 달리, 벨벳 선배의 눈에는 음울한 기색이 아른거렸다.

     

    “타협하면 이쯤에서 손을 잡을 수 있어. 갈라선다면 네 과거와 상처를 후벼파야만 할 거야. 그런 사이가 되고 싶지는 않아.”

    “전 괜찮아요!”

     

    선배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고 있다.

    선거는 네거티브 전략도 중요하지.

    나도 근력올인 시절에는 많이 해봤다.

     

    -수수께끼의 복면괴인의 습격을 받았다고 팔씨름에서 진 회장후보 따위를 우리 아카데미 최강의 학생회장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

    -누가 봐도 네가 습격한 거거든?! 그 덩치가 복면 하나 쓴다고 감춰질 것 같아?! 게다가 학생회장은 딱히 최강 아니어도 되고 근력이랑 아무 상관 없거든!!

     

    다양한 커스튬을 장착하고 정체를 감춘 채로 회장후보를 습격하며 회장후보가 얼마나 나약하고 한심한 존재인지를 어필하는 근력 네거티브 전략!

    벨벳 선배라면 거대화 기습킥 네거티브 전략이라도 펼칠지도 모르겠네!

    나 말고 다른 후보를 고르면 언제 기습 거대화 킥에 조인트… 아니 몸통이 걷어차여 테트라포스 선배처럼 꿱 하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질지 모른다.

    후보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후보발표는 최대한 뒤로 미루거나 내가 직접 나가야겠다.

    내가 직접 나가는 이유는?

    그야 거대화 킥에 대적할 방법이 있기 때문이지!

     

    “그런 건 익숙하거든요!”

    “…날 너무 쓰레기로 만들지는 마.”

     

    그런데 벨벳 선배가 어째서인지 굉장히 슬픔을 억누르는 얼굴로 돌아섰다.

    갑자기 기분이 많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한 달에 한 번 있는 그날이기라도 한 걸까?

     

     

    * * *

     

     

    -타협하면 이쯤에서 손을 잡을 수 있어. 갈라선다면 네 과거와 상처를 후벼파야만 할 거야. 그런 사이가 되고 싶지는 않아.

    -전 괜찮아요! 그런 건 익숙하거든요!

     

    벨벳은 오크노디의 해맑은 외침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11살이다.

    귀족가문의 영애도 사교계 데뷔를 위한 공부에 매진하는 나이.

    그 어린 나이에 과거와 상처를 후벼파겠다는 선언에 그런 건 익숙하다는 대답이 돌아오다니.

    다른 아이라면 뜻을 모르고 객기를 부린다고 여겼겠으나 그 이사장과 1 대 1로 겨루어 승리한 오크노디가 철부지처럼 객기를 부린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전부 알고 있는 거겠지. 내가 하려던 짓을.’

     

    암살자를 보내고, 휘하 조직원들을 노리며 지지선언을 철회할 때까지 습격하고, 선거캠프 구성원들이 소속된 본토 조직이나 가문에 불상사가 빗발친다.

    서귀연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기프트 아카데미 안팎에서 벌어질 그 모든 정쟁을 ‘익숙하다’고 대답하는 재단의 아가씨.

    벨벳 벨렛은 이해하기 싫어도 이해하게 되었다.

     

    ‘아가씨가 오크노디 하나만 있을 리가 없잖아.’

     

    재단 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아가씨.

    집사들이 키우고 이사장이 고른 수석장학생.

    그 특별한 지위에 오를 때까지 얼마나 많은 아가씨와 경쟁하고, 그 아가씨들을 수석장학생으로 만들고자 애쓴 집사들과 메이드들의 습격을 받았을까.

    왕비의 자리를 두고 귀족가문이 서로 왕비후보나 그 집안을 공격하는 경우도 흔한 마당에 오크노디의 자리는 뒷세계에서 왕비보다 더한 진귀한 자리였겠지.

    경쟁도 더 치열하면 치열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거다.

    양지가 아닌 음지.

    귀족가문이 아닌 와이히엠하이 재단이 아닌가.

    그간 신경 쓰지 못했던,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오크노디의 과거를 알아보려 애쓰니 너무나도 쉽게 그 불행한 과거를 엿볼 수 있었다.

     

    “서귀연의 미래가 저 아이의 불행을 강요해야만 할 정도로 값진 건가?”

     

    벨벳은 스스로에게 자문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적어도 그녀 개인이 섣불리 포기해도 좋을 정도로 서귀연 대표의 자리가 가볍지는 않다.

    그래서 호출했다.

    서귀연 소속 모든 귀족 재학생, 휴학생, 본가에서 파견된 참관인과 실권자들을.

     

    “우리는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실질적인 후계조직 <오크노디와 놀아주는 조직>과 대립관계에 처했어. 학생회장 후보직을 내려놓지 않으면 38만 표에 달하는 호문쿨루스 표를 빼앗고자 많은 정책을 내면서 동시에 오크노디가 얼마나 잔인하고 가혹한 조직의 후계자인지를 아카데미와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해.”

     

    서부귀족가문에서 파견된 실권자들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재단의 후계자에게 막대한 권한을 지닌 학생회장의 지위를 빼앗길 수는 없지.”

    “세계 각지에 분포하는 아카데미 졸업생과 휴학생을 우리 서귀연을 위해 이용할 절호의 기회다. 애 하나를 짓밟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오히려 이런 간단한 일에 우리까지 소집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군.”

     

    아카데미를 다니는 재학생과 휴학생 일동은 그걸 말이라고 하냐며 극심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카타콤원정을 벌써 잊었어? 강의도 그런 가혹한 교수에게 받고 있는 아이야. 사다코 교수부터 그 아이의 과거를 빌미로 학대에 가까운 강의로 고문을 하고 있어. 이미 충분히 고통받은 아이라고 생각해.”

    “재단공방전에서 오크노디가 나서지 않았으면 죽었을 학생과 연합군이 얼마나 많다고 생각해? 우리는 그 아이를 돕고자 나섰지만, 그 아이도 우리를 돕고자 나섰어.”

    “오크노디는 불쌍한 아이다. 재단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많은 이들이 재단을 향한 원한을 오크노디에게 앙갚음하려 들겠지. 그 아이는 학생회장이 되지 못하면 틀림없이 죽을 거야.”

     

    벨벳은 오크노디와 가까운 사이라고 볼 수도 있을 981기 서귀연 대장 안데르센을 돌아봤다.

     

    “네 생각은 어떻지, 안데르센?”

    “자신의 것이 아닌 책임을 져왔고, 그 불쌍한 모습에 모두가 동정심을 보였으며, 재단이 고지를 점할 수 있는 상황에도 모두를 구하고자 친아버지를 죽인 아이입니다. 우린 그녀에게 큰 빚을 졌다고 해석해도 무방합니다.”

    “개소리! 우리 서귀연 본가에서는 오크노디에게 어떠한 빚도 지지 않았다. 가문의 사정도 모르는 너희 애송이들이 멋대로 호의를 베풀었다고 가문의 뜻을 왜곡하려 들지 마라!”

     

    요컨대, 의견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오크노디에게 빚을 졌다는 학생들의 입장.

    그런 빚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문의 입장.

    한쪽의 손을 들어주어야만 한다.

    벨벳이 결정을 내리기에 그리 어렵진 않았다.

     

    “서귀연은… 오크노디의 손을 들어주겠어.”

    “월권이다!”

     

    본가에서 파견된 대리인들이 힘을 끌어올렸다.

    칠색의 일곱 가지 영역이 크기를 키웠고, 이에 맞서 영역을 마주 전개하던 휴학생들이 연신 뒷걸음질을 치며 침음을 흘렸다.

    재학생들은 감히 이 격돌에 끼어들지 못하고 후배들을 지키기도 빠듯했다.

     

    그렇다.

     

    서귀연의 모든 강자들이 아카데미에 머무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야심이 있는 누군가는 제 힘으로 말미암아 탄생할 비극을 아랑곳 않고 권력다툼을 위해 가문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런 강자의 힘을 단신으로 맞서며 벨벳은 자신의 의지를 더욱 또렷이 세계에 각인시켰다.

     

    “우리의 뿌리가 서귀연일지언정, 서귀연의 가치는 우리의 행동이 스스로 규정해. 당신들의 서귀연은 그런 모습일지 몰라도 내 서귀연은 달라.”

     

    가문의 지원을 받고 성장한 강자들.

    그들의 영역이 벨벳 한 사람에 의해 평형을 유지하더니 점차 밀려났다.

    서귀연 당대 최강의 칭호란 허투루 치적놀음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반역이다!”

    “본가의 뜻을 거부할 작정이냐?”

    “서귀연은 네 것이 아니다. 가문의 어르신들의 것이다, 애송이!!”

     

    본가 대리인들의 눈이 충혈되었다.

    이마에 힘줄이 돋아나고 실핏줄이 터진 눈에 피가 맺혔다.

    이를 악문 입에서도, 코에서도, 귀에서도.

    벨벳의 영역이 자아내는 어마어마한 압력을 견뎌내지 못한 이들의 출혈이 속출했다.

    과거의 벨벳이라면 꿈도 못 꿀 짓이었다.

    힘의 측면에서도.

    마음의 측면에서도.

     

    ‘전부 그 아이와 엮여서, 뒤에서부터 무섭도록 추격을 당해서 성장의 필요성을 느낀 덕이지.’

     

    따라오는 이가 있기에 강해질 수 있었다.

    자신의 무력감을 느꼈기에 강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자신이 소속된 조직의 틀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만의 인생을 살기 위해.

    그러기 위해서라면 부모조차도 죽일 각오를 보인 아이가 있었기에.

    벨벳은 서귀연이라는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껍질을 깨고 더 큰 야심을 드러낼 수 있었다.

     

    “재단의 하극상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당신들. 서귀연의 본가. 그런 건 전부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야 각오가 섰어.”

     

    본가에 맞설 각오가.

    내 길을 걸어갈 각오가.

     

    “겁쟁이들. 언제까지 휴학을 연장하고 아카데미에서 미적거리며 본가를 피해 다닐 셈이야?”

     

    휴학생들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벨벳, 너… 진심이냐?”

    “본가와 전쟁을 벌이겠다고?”

    “별것도 아니잖아. 재단의 내전에 비하면.”

     

    경악은 잦아들고 희열이 찾아왔다.

     

    “어쩌면 우린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바라왔을지도 모르겠군.”

    “너만 믿고 따르마, 벨벳.”

     

    서귀연의 학생들이 본가의 어르신들과 갈라설 것을 각오했다.

    그 각오는 한 장의 서신이 되어 오크노디의 책상 앞에 놓였다.

     

    [후보 단일화의 조건 : 서귀연 집행위원회, 서귀연 각료이사회, 서귀연 의회 회장 자리를 벨벳 파가 차지하도록 조력할 것.]

     

    오크노디가 잔뿌리를 마구 휘두르며 하극상을 꿈꾸는 응애와 손가락 하나로 놀아주며 씨익 미소 지었다.

     

    “흐응. 이번 회차의 벨벳 선배는 결심이 1년 빠르시네? 조기발현 이벤트는 처음인데 이런 재미난 이벤트를 놓칠 수는 없지!”

     

    오크노디가 학생회장 후보 단일화의 조건으로 제시된 서귀연 벨벳파의 지원 요청을 받아들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파벌보스들의 빅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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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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