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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12

       

       

       

       

       묵연과의 담화를 끝낸 다음, 출전을 위한 인원을 뽑은 후 곧장 일장로를 찾았고.

       

       나는 앞으로 일을 위해 일장로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래서. 사천을 가게 됐다는 말이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아무래도 그럴 것 같네요.”

       

       “거 참 바쁘게도 움직이는구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산서로 돌아가긴커녕 사천부터 가야 된다는 말에 일장로는 헛웃음을 터트린다.

       집보단 밖을 싸돌아다니는 게 더 많아졌으니 이상하게 보일 법도 했다.

       

       “네가 하고 싶다면야 말릴 생각은 없다만…. 괜찮겠느냐?”

       

       “…음.”

       

       일장로의 말에 볼을 살짝 긁적인다.

       괜찮냐는 말은 다름이 아니었다.

       

       “다른 장로들이 귀찮게 굴 수 있다.”

       

       조금 있으면 소가주 자리에 앉아야 할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 대뜸 대주일을 하겠다며 바깥을 나돈다고 하니, 당연히 반발이 올 수 있겠지만.

       

       “그건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장로들이 아무리 들고 일어난들 파동은 크지 않을 것이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다만, 일장로님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그냥 산서로 가는 게 맞을까요?”

       

       앞에 있는 일장로 의견은 좀 중요할 것 같다는 점이다.

       하여 다소 긴장을 품고 묻자 일장로가 말하길.

       

       “어차피 다 저질러놓고 물어본들 뭐 달라지겠느냐?”

       

       “…”

       

       상당히 맞는 말이었다.

       

       “네가 하고 싶다면 그리하거라. 어차피 감당 또한 네가 할 일이니까.”

       

       좋은 선택지는 아니라는 걸 돌려 말한다.

       이게 최선은 아닐 것 같다는 것쯤은 스스로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하여 내가 살짝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일장로가 헛숨을 터트렸다.

       

       “그 표정은 무엇이냐. 설마 이 노부가 대신 감당해주길 바랐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그런 거 아닙니다. 그리고, 감당해달라고 해도 안 해주실 거 아닙니까?”

       

       “당연하지. 끌끌. 그걸 노부가 뭣 하러 하느냐.”

       

       저것도 맞는 말이다.

       일을 저지르면 감당은 스스로 한다.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장로들의 반발이든. 시기상 무리를 하든.

       그 끝에 올 반동 또한 오롯이 내가 품을 일이리라.

       

       ‘그래서 더 길게 끌기는 힘들겠지.’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았고 그에 비해 주어진 시간은 없다.

       더 악착같이 움직여야 하는 이유였다.

       

       그때.

       

       “다 좋다. 뭘 하려든지 네가 원한다면 열심히 하거라. 근데 있잖느냐.”

       

       “예.”

       

       “그래도 신경 쓸건 또 써야 하지 않겠느냐.”

       

       말을 뱉으며 일장로가 어딘가를 가리킨다.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

       

       잔뜩 화가 났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 채 여길 보는 누군가.

       바로 구가의 넷째. 구령화였다.

       

       “듣자 하니, 여기 오고선 얼굴 한 번 안 비췄다고 하던데. 맞느냐.”

       

       “그게 조금 바빠서….”

       

       구령화가 화산파와 함께 도착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딱히 보러 가지는 않을 뿐이다.

       

       워낙 일정이 많기도 했고. 무엇보다.

       

       ‘깜빡했지.’

       

       …그래, 깜빡했다.

       

       영풍이 와서 구령화를 언급했던 날. 

       그때에도 한 번 보러 간다고 하긴 했었으나….

       

       ‘…그러고서 안 갔던 거 같은데?’

       

       아마 안 갔을 것이다.

       그러니까 쟤 표정이 저렇겠지. 아주 심술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이다.

       

       하지만 죄는 내 쪽이 지은 것 같으니 쉬이 쳐다보기도 힘들다.

       간신히 힐끔힐끔 보는 정도랄까.

       

       그렇게 본 구령화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성숙해져 있었다.키가 딱히 큰 것 같지는 않은데…. 분위기가 달라진 느낌이다.

       

       ‘흐음.’

       

       남자라도 생긴 건가?

       나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쥐었다.

       

       ‘어떤 새끼지?’

       

       과연 어떤 개새끼일까. 문득 궁금하다.

       

       아, 그냥 궁금하다는 거다. 뭘 할 생각은 없다.

       

       ‘저번에 화산파 갔을 때 눈깔 이상한 놈 하나 있던 것 같은데….’

       

       혹시 그놈인가? 아마 삼대제자 중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 연애도 좀 할 수 있지 뭘.’

       

       안다고 뭐가 달라지진 않겠으나, 진짜 그냥 궁금한 거였다.

       핏줄의 연애다 보니 궁금할 수 있지 않은가.

       

       안다고 정말 뭔가 하진 않을 거긴 하다만….

       

       ‘내가 안 하면 되잖아.’

       

       우연찮게 사고 정도는 생길 수 있지.

       암. 그렇고말고.

       

       ‘그러니까 이름만 좀 알아볼까.’

       

       “…천아.”

       

       ‘도호는 아마 영풍한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게 알아낸 다음….나히에게 말해서 사람을-.’

       

       “양천아.”

       

       “예?”

       

       머리를 굴리다 말고 부름에 정신을 차렸다.

       

       “왜 그러느냐?”

       

       “제가 뭘요?”

       

       “지금 누구 하나 꼭 담가버리겠다는 얼굴이잖느냐. 무서우니 얼굴 좀 피거라. 인상도 나쁜 것이 그런 얼굴을 하니 귀신이 따로 없구만….”

       “…”

       

       말을 듣고 피를 토할 뻔했다.

       사람 보고 귀신이라니, 나보고 손주니 하던 양반이 뭔 말을 저리 서운하게 하는 거지?

       

       “…그냥 잠깐 멍때린 겁니다.”

       

       “두 번 멍때리면 사람 한 명 죽겠구나.”

       

       “…”

       

       계속된 공격에 끝내 몸을 일으켰다. 

       더 듣고 있다간 화병부터 날 것 같았다.

       

       내가 몸을 일으키니 앞에서 반응이 느껴진다. 

       

       구령화 쪽이다.

       녀석은 자기한테 다가올까 흠칫 놀란 듯 보인다.

       

       ‘으으음.’

       

       원래도 가려고 마음먹고 일어난 것은 맞다.

       이 상황까지 왔는데 안 가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다.

       

       “야.”

       

       흠칫.

       

       내 부름에 구령화가 크게 몸을 떤다. 

       하지만 여전히 표정은 그대로였다.

       

       “야.”

       

       다시 한번 부르자 눈이 살짝 좁혀지며 닫혀 있던 입이 열린다.

       

       “…왜.”

       

       그래도 대답은 해주네. 다행이었다.

       목소리는 상당히 안 좋다. 마지못해 대답해준다는 티가 팍팍 나고 있다.

       

       “화났냐?”

       

       “안 났어.”

       

       “안 나기는. 볼때기 커진 거 보니까 화난 거 맞는데.”

       

       

       “…!”

       

       지적을 듣자마자 구령화가 급히 제 볼을 쓰다듬는다. 

       그리고는 눈알을 열심히 굴리더라. 자기가 봐도 부풀리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 이건 그냥 부어서야.”

       

       “부어? 왜. 누구한테 맞았어?”

       

       어떤 새끼지? 

       관절 채로 뽑아서 젓갈을 담아버릴라.

       

       “…맞긴 뭘 맞아. 아니야 그런 거.”

       

       “아니면 말고.”

       

       퉁명스럽게 말하며 슬쩍 옆에 앉았다. 

       앉자마자 구령화가 거리를 살짝 벌린다.

       

       “뭔데.”

       

       “뭐긴. 그냥 옆에 좀 앉은 거지.”

       

       “왜 앉아. 저리 가.”

       

       “내가 내 엉덩이 써서 앉겠다는데 네가 뭔데.”

       

       “여기 내 자리야.”

       

       “여기가 왜 네 자리야. 따지자면 미 부인의 자리겠지.”

       “…”

       

       구령화가 입을 꾹 다문다.

       실제로 현재 구가의 이들이 머물고 있는 처소는 미 부인의 것이었다.

       

       게다가.

       

       “너 화산파 사람 아니냐? 더 따지자면 내가 자리라고 하는 게….”

       

       “갈래.”

       

       “농담이야 농담.”

       

       조금 놀린 걸로 곧장 일어나려 하길래 구령화를 잡아 앉혔다.

       

       “분위기 좀 풀어보려 해본 거야.”

       

       “오빠는 분위기를 이런 식으로 풀어…?”

       

       “왜? 괜찮지 않냐?”

       

       “…언니들이 불쌍해.”

       

       “…”

       

       그게 무슨 의미지…? 가슴이 확 긁힌 기분이었다.

       아무튼, 어떻게든 구령화를 잡는 데는 성공했고 그 뒤에 서로 앉아 아무말 없이 시간이 조금 흐른다.

       

       그렇게 찰나가 지나고.

       

       “그. 미안하다.”

       

       먼저 멋쩍게 사과를 꺼냈다. 

       내 사과에 구령화가 날 쳐다본다.

       

       “뭐가 미안한데?”

       

       “보러 간다고 해놓고 안 보러 간 거?”

       

       “…흥.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써.”

       

       신경 안 쓰긴 개뿔이. 사과했다고 기분 풀린 게 얼굴에 다 보이는구만.

       

       대체 누굴 닮아서 저리 거짓말을 못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바빠서 그런 거지 안 보려고 한 건 아니었고.”

       

       분위기를 타 재빨리 변명을 덧붙이려는데.

       

       “알아.”

       

       “응?”

       

       그 말에 구령화가 말한다.

       

       “알고 있어. 오빠 바쁜 거.”

       

       “…네가 어떻게 아는데?”

       

       “지금 오빠 바쁜 거 모르는 사람은 하남에 없을걸? 여기저기서 오빠 봤다는 말만 잔뜩 들려. 뭐 얼마나 돌아다니는 거야?”

       

       “…”

       

       …그랬나? 그렇게 막 돌아다니진 않았던 거 같은데, 목격담이 가끔 있는 모양이다.

       

       ‘이러면 더 조심히 다녀야겠군.’

       

       좀 더 신경 써서 다녀야 할 것 같았다. 눈이 예상보다 많았다.

       

       “그래서….몸은 괜찮아?”

       

       구령화가 내게 물었다.

       

       “응? 몸?”

       

       갑자기 뭔 소리인가 싶었는데.

       

       “…다쳤었다고 하던데. 괜찮냐구.”

       

       “아.”

       

       아무래도 백급 마물때의 얘기를 하는 것 같다.

       

       “보면 알겠지만 멀쩡해.”

       

       “…”

       

       이에 대답해주지만, 구령화는 미심쩍은 눈으로 날 이리저리 살필 따름이다.

       

       “뭐야. 왜 그렇게 쳐다봐?”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괜찮다니까? 봐봐 아프면 이렇게 돌아다니는 게 가능할 리….”

       

       “근데 왜 안 찾아왔어?”

       

       “…가 있지. 확실히 아직 좀 아픈 것 같아.”

       

       “…”

       

       “…”

       

       눈을 슬쩍 피했다. 

       함정 수사에 걸린 느낌이다.

       

       이 녀석, 못 본 사이 많이 똑똑해졌군.

       

       내가 대답을 못하고 어물쩍거리고 있으니, 구령화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됐어…. 딱히 오빠를 보고 싶었던 건 아니니까. 그냥 물어본 거야. 나도 별로 막 그렇게 보고 싶지는 않았어.”

       

       하기야 우리가 언제부터 친했다고.

       납득가는 부분이라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런 것 치곤 양천이 다쳤다고 하니 곧장 찾아왔었다고 하든데.”

       

       “자, 장로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뒤에서 일장로가 끌끌 웃으며 말을 더하고. 구령화가 시뻘게진 얼굴로 버럭 소리쳤다.

       

       “제, 제가 언제요. 저 안 그랬어요…!”

       

       “그래? 그런 것 치고는 사용인들 말이….”

       

       “장로님…!!”

       

       “으응. 그래. 노부가 아무래도 잘못 들은 모양이야.”

       

       “…”

       

       결국 구령화의 외침을 이기지 못한 일장로가 말을 돌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언제 찾아왔던 거지?’

       

       나는 딱히 들은 적 없는 사실이다. 말을 듣고 구령화를 쳐다본다.

       구령화는 붉어진 얼굴로 내 눈을 피하기 바빴다.

       

       ‘음.’

       

       아무래도 진짜인 것 같다. 

       그 탓인지 속에 죄책감이 살짝 올라왔다.

       

       찾아왔다는 데 못 본 이유야 뻔하다.

       

       ‘정신을 잃고 있던 것도 있고. 찾아왔을 때 구령화가 아마 안 들어온 것도 있겠지.’

       

       당시 휴식을 취할 무렵, 날 챙겨주던 건 모용희아였으니 그녀라면 왔던 걸 알았을지 모른다.

       한데 말도 전하지 않은 건.

       

       ‘구령화의 뜻인가.’

       

       그렇다고 보는 게 빠르리라.

       

       “왔으면 찾아오지 그랬냐.”

       

       “…안 찾아 갔었다니까?”

       

       아닌 척하는 걸 보니, 아마 끝까지 잡아떼려는 것 같다. 그래서 굳이 파고들진 않았다.

       내쪽도 안 간 입장에서 뭘 캐묻겠는가.

       

       “그래, 안 찾아 왔었구나.”

       

       “안 믿는 눈치인데?”

       

       “믿는다고.”

       

       “알겠어….”

       

       그리고 또 침묵이 찾아온다.

       

       서로 익숙한 고요함이다.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조용히 있는 게 익숙해진 관계.

       

       이제 와서 언젠가로 돌아갈 수도 없고 서로 미움을 담은 말을 안 꺼내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였다.

       

       그리 떠올리며 숨을 고르고 있는데.

       

       “있잖아.”

       

       문득 구령화가 내게 말한다.

       

       “나 산서로 돌아갈 것 같아.”

       

       “뭐?”

       

       눈을 키웠다.

       산서로 돌아간다고?

       

       “완전히 돌아가는 건 아니고. 남은 시간은 산서에서 보낼까 해…. 그, 미 부인도 그러길 원하셨고. 장문인께서도 허락해 주셨어.”

       

       아, 완전히 돌아간다는 뜻은 아니구나.

       올해만 조금 휴식을 취한다는 뜻 같았다.

       

       한데 와중에 놀란 게 하나 있다면.

       

       “미 부인이 원했다고?”

       

       “응? 응.”

       

       바로 미 부인과 관련된 얘기였다.

       

       “너…. 미 부인이랑 얘기해?”

       

       “응? 으응. 가끔?”

       

       의외였다.

       구령화는 아예 미 부인과 얘기를 안 나누는 줄 알았는데. 가끔이라도 얘기를 했었구나.

       

       그 부분에 놀라고 있으니, 되레 구령화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뭘 그렇게 놀라…?”

       

       “아니, 그냥 좀 신기해서. 너는….”

       

       미 부인이 미울 줄 알았거든.

       

       그런 뒷말을 삼켰다.

       집이 싫어 떠났고.

       떠난 곳에서 자유를 찾았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묘한 눈으로 쳐다보니 구령화가 살짝 낮아진 눈으로 말한다.

       

       “밉지 않아.”

       

       “…”

       

       뒷말은 분명 뱉지 않았건만, 구령화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알아차렸다.

       

       “…딱히 그분이 무언가 한 건 아니니까. 조금 어색하고 멀 뿐이야. 오빠도 그렇지 않아?”

       

       “…”

       

       “그리고. 굳이 미워한다면 그분이 우리를 미워해야겠지. 근데.”

       

       구령화가 머뭇거리듯 말을 덧붙인다.

       

       “그분은 우릴 미워하지 않는데. 우리가 미워할 이유는 없잖아…?”

       

       흐르듯 들리는 말에 나도 모르게 침을 살짝 삼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다음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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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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