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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14

    <814 – 뉴비 받아라(13)>

     

    최전선에서 마도구와 기관총으로 피난경로 상에 존재하는 왕국군 청소가 진행 중인 사이, 서귀연 본단은 발칵 뒤집어졌다.

     

    “당장 피난해야 한다! 선단에 짐을 실어라!”

    “아니, 싸워보기도 전에 지레 겁먹고 달아나면 어떡합니까?”

    “걸음 한 번에 방면군 하나를 증발시키는 미친 괴물과 무슨 싸움을 하란 말이냐! 애초에 세계정복도 진심으로 노릴 수 있는 전력을 무력으로 겁박해서 말을 듣게 길을 들이겠다는 발상부터가 자멸행위였어. 너희와 함께 공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몰살이 두려워 항복하는 귀족가문이 있는가 하면, 항복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두려워 피난에 나서는 이들도 있었다.

    모두가 똘똘 뭉쳐서 맞서도 당해낼 수 있을지 두려운 벨벳 벨렛, 거대화의 악몽을 사방팔방 분열된 서귀연 본단의 힘으로 당해낼 수 있을까.

    남은 이들도 그런 불안에 흔들렸다.

     

    “여러분. 동요하지 마십시오. 서귀연 본단에는 제가 있습니다.”

     

    그런 몰락 직전의 서귀연 본단에도 걸출한 인재가 하나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크림필드 로제파스타.

    20년 전, 기프트 아카데미를 졸업한 실력자이자 가문을 위해 피비린내 나는 정쟁에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은 독종이었다.

     

    “로제파스타 가문의 악종?”

    “크림필드라면 분명… <휘감기>로 엄청난 경지에 오른 초고수가 아니었나?”

    “녀석의 휘감기가 벨벳의 짓밟기를 이길 수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거대화 짓밟기를 이길 수 있다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

     

    벨벳의 공격은 확실히 강했다.

    정면승부로는 크림필드에게도 승산이 없을 정도로.

     

    “인정하지요. 대책 없이 맞선다면 저라도 벨벳을 단독으로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거봐, 입만 산 녀석이잖아!”

    “괜히 듣고 있던 나만 바보가 됐지. 이럴 시간에 하나라도 더 가문의 자산을 빼돌려야 하는데…!”

     

    벨벳을 막을 생각은 아무도 없고 모두가 달아날 생각뿐인 서귀연 본단.

    당당하게 도망칠 예정이라는 사실을 입에 담으며 서류를 챙기고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석했던 귀족 한 명이 제자리에서 자빠졌다.

     

    “어?”

     

    당황한 그가 무언가에 다리가 걸리기라도 했나 시선을 아래로 향하자 마치 물에 젖은 수건을 쥐어짜듯이 잔뜩 말린 바지가 보였다.

    당연히 의복 아래의 다리 또한 <휘감기>에 휘말려 쥐어짜인 상태였다.

     

    “으아악!!”

    “미친 거냐, 크림필드?!”

    “미친 건 당신들이죠. 여기까지 와놓고 도망치면 순순히 놓쳐줄 정도로 벨벳과 아카데미 학생들이 만만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도주를 결심한 시점에서 이미 10년 내로 피난처에서 벨벳파 암살자에게 살해당할 미래가 확정되었습니다.”

     

    크림필드가 걸음을 내디디며 눈길을 줄 때마다 그의 시야 안에서 도망치던 귀족들이 비명을 지르며 팔이나 다리가 <휘감기>에 당한 채로 쓰러졌다.

    그의 영역에 저항할 수 있는 실력자는 남은 귀족 사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서귀연 본단에서는 가문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행동대장’ 따위가 수뇌부에 올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광경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가 널 지금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게 해주었다고 생각하는 거냐!! 우리가 너를 인정하기에 여기에 올 수 있었던 천방지축 모르고 날뛰는 망아지 새끼가 어느 안전에서 설치는 게냐!!”

    “저를 지금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게 해준 것? 그건 물론 제 실력이지요. 부정할 수 없는 공에 압도당한 여러분의 어설픔도 한몫할 테고요.”

     

    크림필드는 그런 정세 속에서도 부정할 수 없는 공적을 쌓아 지금의 자리에 올라선 예외.

    서귀연 본단 귀족들은 그를 예외로라도 받아들여서는 안 됐다고 후회했지만 크림필드는 본단 귀족들의 그런 구태의연함이야말로 자신을 행동에 나서게 만든 이유라고 여겼다.

     

    “한번 사다리를 걷어차서 특정세대의 권력독점을 이어 나갈 작정이었다면 끝까지 가셨어야지요. 어설프게 젊은 피를 수혈한다고 이용하려 드니 이런 꼴이 되는 것 아닙니까.”

    “기사단장들은 뭘 하는 거냐!! 당장 우리를 지키지 않고!!!”

     

    문밖에서 고밀도의 마나가 요동치는 파동음이 울리더니 실내 전체가 진동했다.

    깜빡.

    조명의 불마저 꺼졌다가 들어올 정도로 위력적인 공세 이후, 문이 열렸다.

     

    “대기 중인 병력은 몰살했습니다.”

    “이걸로 본단귀족파벌 수뇌부를 지킬 병력은 사라졌습니다. 대업을 이루십시오, 크림필드 각하.”

    “그렇게 되었습니다. 본단 귀족 여러분. 이제 그만 후학이 성장하는 모습을 저승에서라도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배은망덕한…!”

    “시, 싫어. 제발 목숨만…”

     

    끝까지 자신은 죽으리라 생각하지도 않는 자.

    죽음의 위기 앞에서 귀족의 허울도 벗어던지고 솔직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자.

    모두가 크림필드의 영역 속에서 목이 <휘감기>에 비틀린 채로 죽었다.

     

    “전선 군단장들의 지휘권부터 확보하십시오. 본단 귀족들은 지닌 바 능력에 비해 욕심만 많아 젊은 이들의 피땀으로 정복욕을 충족시킨 죽어 마땅할 쓰레기들이지만 그들의 아래에서 육성된 맹견들마저 모두 쓰레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로 합류하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크림필드 님과 저희는 모두…”

     

    쉿.

     

    크림필드가 검지를 들어올리자 불안을 호소하던 어느 귀족의 호위기사가 흠칫 놀라 입을 닫았다.

     

    “우리가 재단의 장학생이라는 사실을 알던 ‘감독관’은 지난 대전과 함께 전사했습니다. 재단의 품에서 해방되고 서귀연 본단 귀족의 품에서도 해방된 지금, 이 모든 전리품을 이사장의 후계자에게 바칠 작정입니까?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그렇다.

    크림필드와 기사파벌은 실제로는 아카데미의 교육과정을 통과한 재단 장학생.

    서귀연 본단과 재단의 이중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이들이었다.

    규격 외의 강함.

    그 비결은 이중으로 받는 지원에 있었던 것이다.

     

    “벨벳파에 재단의 공식전력이 가세했다고 해도 우리가 지닌 재단의 유산 역시 적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서귀연 본단 귀족과 벨벳파의 대결은 구 이사장 재단 소속 크림필드 파벌과 현 오크노디 재단 협력자 벨벳파벌의 대결구도로 뒤바뀌었다.

     

     

    * * *

     

     

    조나가 굉장히 안타까운 소식을 전한다는 얼굴로 동아리실에 찾아왔다.

     

    “아가씨. 전장에서 들어온 보고입니다.”

    “헉. 집사분들 혹시 돌아가셨어요?”

    “신변에 문제가 생긴 집사나 메이드는 없습니다. 하지만 재단에서 나오며 아가씨에게 드리고자 지참한 <선물>이 훼손되었다는 연락입니다.”

     

    선물. 뭐든지 받으면 아무튼 좋다는 고인물의 입장에서는 이가 갈리는 소식이었다.

     

    “어떤 선물인데요?”

    “복용자에게 스톤스킨 기능을 하사하는 은패급 식재료 스톤가이거가 금이 갔습니다.”

    “헉?!”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는 소리를 낼 수 있는 동패급 천둥앵무새는 교전의 여파에 놀라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으앙 내 앵무새!”

    “교전의 여파로 수납자루에 구멍이 뚫려 파손된 탓에 동패급 식재료 울프포도가 은패급 식재료 스톤가이거에게 잡아먹히는 불상사도 벌어졌습니다.”

     

    이거, 자동사냥만 맡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당장 현장으로 갈래요!!”

    “3분 내로 전송마법사에게 연락을 취해 가장 가까운 전송 지점을 확보하겠습니다.”

    “아가씨. 외출에 필요한 준비물을 함께 챙기시지요.”

     

    조나가 전송마법진 수배에 나서는 사이, 리프가 코디북을 꺼냈다.

     

    “오늘의 외출복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세트복으로 하시겠습니까?”

    “흰 치마에 피 묻으면 싫어요!”

    “그럼 피가 묻어도 티가 나지 않는 암흑괴도 세트복을 추천해 드립니다.”

    “와 망토! 가면도 써요?”

     

    리프가 접근권한을 허가받은 내 배낭배낭의 의상배낭에 손을 집어넣고는 다섯 개의 무도회 가면을 손가락 하나마다 한 개씩 걸어서 펼쳐 보였다.

     

    “만렙살인토끼 가면, 인육포식요괴 가면, 사기계약정령 가면, 얼굴은닉무면 가면, 소망투영거울 가면. 어느 가면이 취향이십니까?”

    “거울 가면이 재밌어 보여요!”

    “머리띠는 별 모양과 달 모양, 하트모양 중에 어느 머리띠가 마음에 드십니까?”

    “눈입자 모양 머리띠도 있어요?”

    “있습니다.”

    “와, 리프 최고!”

    “손톱 매니큐어도 칠하시겠습니까?”

    “그거 칠하면 무슨 효과 있어요?”

    “햘퀴기 공격에 색상별 추가 속성타격이, 반지형 장착 아이템에 시너지 효과가 있습니다.”

    “에이 별로다. 안 칠할래요!”

     

    단장을 마치고 나니 문득 걱정이 들었다.

     

    “마하바라타 쌤 외출에 점점 깐깐하던데 외출허가는 괜찮을까요?”

    “이미 에이프릴을 보내 통보했습니다.”

    “통보요?!”

    “허가하지 않으면 재단의 후계자가 아카데미를 ‘탈출’하게 되는데 외출과 탈출 중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지 직접 골라야 하면 외출이 될 겁니다.”

    “우왕, 그런 개꿀 방법이 있구나!”

     

    앞으로는 나도 허가받느라 고민할 필요 없이 양자택일 협박을 해야겠다.

     

    “전송지점을 확보했습니다. 그럼 출발하시지요.”

    “넹!”

     

    양손으로 조나와 리프의 손을 잡고 팔을 앞뒤로 흔들며 신나게 나갔다.

    선물이 훼손당했다고 들었을 때는 화가 났지만 이렇게 셋이 나가면서 생각하니 조나와 리프 두 사람과 함께 나가는 건 티켓시험 치르러 가는 길 제외하면 사실상 처음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나가는 기분을 내니 즐거운 마음에 흥얼흥얼 노래까지 불렀다.

    바이올린이 눈치 없이 전투브금을 틀길래 대괴수에게 씹어먹히는 고통을 동조마법으로 날리며 일상 산책 브금을 떠올렸다.

    엉뚱한 노래를 연주하던 바이올린이 그제야 고통에 덜덜 떨다가 똑바로 작동하며 마음에 쏙 드는 브금을 연주했다.

     

    “도시락도 쌀 걸 그랬네요!”

    “그러실 것 같아서 이미 준비했습니다.”

     

    리프가 내 배낭배낭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넣어둔 도시락을 슬며시 꺼내서 보여줬다.

    역시 조나랑 리프가 짱이야!

    오늘 산책은 꽤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누가 봐도 이사장의 후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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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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