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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15

        

         

       오염운반자와 고깃덩어리를 완전히 세상에서 지워버리겠다는 듯 쏟아지는 포탄.

       그것은 옛적 포병을 두고 ‘전장의 신’이라고 부른 이유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지금 이 자리에 전장의 신이 재림하였다….

         

       콰아아앙-!!!

         

       수많은 포탄이 겹쳐서 떨어지며 하나의 거대한 굉음으로 합쳐진다.

         

       찌이이잉—.

         

       그 뒤를 잇는 귀울림과 어지러움.

       현실과 괴리되어 버린 것만 같은 감각의 혼동.

         

       콘크리트 철근을 잔뜩 발라서 만든 건물들조차도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강대한 파괴력이 한 곳에 내려꽂혔고, 반복되는 폭발은 파편조차도 다시 파괴하며 죄다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은 돌덩이와 쇳덩어리의 비.

       우박이 아니라 비로 표현해도 될 정도로 잘게 쪼개진 파편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폭발의 중심부에 있는 것은 고깃덩어리 하나.

         

       “O welche Marter, welche Pein!”

         

       고깃덩어리는 포탄을 얻어맞고도 사라지지 않았다.

       포탄으로 넝마가 되었음에도 끊임없이 몸을 부풀렸으며, 뻥뻥 뚫린 구멍은 물이 빈자리를 메우는 것처럼 순식간에 그 자리를 메웠다. 그것은 일반적인 생물이라기보다는 SF 영화나 B급 크리쳐 영화에나 나올법한 초자연적이고 우주적인 괴수의 모습처럼 보였다.

         

       피해를 당하는 즉시 재생하는 존재라니.

       아마 저 존재는 지금, 이 도시에서 불사신(不死身)이라는 단어에 가장 가까운 존재일 것이다….

         

       “Haben Mitleid! Verschone mich!”

         

       고깃덩어리는 기괴한 입을 벌리며 노래한다.

       제 몸에 생긴 상처에 고통스러워하면서, 제 몸을 난도질했던 이들을 증오하며.

       기괴하게 뒤틀린 목소리로 그들은 노래한다.

         

       마치 오페라처럼.

         

       고깃덩어리는 오페라 가수요, 그를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는 자들은 관객이라.

       지금 이곳은 기괴한 무대가 되었다.

         

       고깃덩어리와 군대의 관계는 바로 그러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자발적인 것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고깃덩어리가 노래를 부르고 있고, 그 노랫소리의 범위 안에 있는 이상 그들은 그러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Haben Mitleid! Verschone mich!”

         

       자욱한 흙먼지는 무대의 연출과 같고, 뻥 뚫려버린 거리는 마치 극장의 소품과도 같다.

       인위적으로 이루어졌기에 더더욱 작위적으로 보이는 폐허의 배경은 그 자리에 우뚝 솟아나 홀로 존재하는 고깃덩어리와 참으로 잘 어울리고 있었고, 고깃덩어리는 저를 위해 준비된 무대에서 홀로- 마치 가수나 배우가 혼자 무대 위에 올라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그렇게 오페라를 부른다.

         

       강제적으로 행해지는 의식과도 같은 그것.

         

       강제적으로 정립된 무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들은…그리 많지 않았다.

         

       사람을 홀리는 저 기괴한 목소리.

       어떠한 조건이 충족되기만 하면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드는 힘이 담긴 노래.

       그것은 사람의 인지를 한 곳으로 몰아넣는…강제적으로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어 보였다.

         

       그것은 쉬이 저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처음부터 저 고깃덩어리를 신경을 쓰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하였다.

         

       아.

       무대 위에 빛나는 별에 시선을 빼앗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대 위에서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별을 본다면 그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람의 숙명인가?

       우상을 보고 경외를 느끼고, 그것에 혼을 빼앗기고 찬양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란 말인가?

         

       만약 그러한 본능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저것을 거부할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그래.

       포탄이 떨어지기 전 고속 이동으로 자리를 피한 뒤 몸을 숨겼던 한 마법사 정도는 되어야 저 고깃덩어리에서 벗어날 자격이 있었다.

         

       “…후욱. 후욱. 후우우욱.”

         

       푸쉬익.

         

       마법사는 파란 연기를 방독면 밖으로 내뱉으면서 숨을 헐떡였다.

       포탄이 터지면서 생긴 충격파 때문일까? 아니면 어마어마한 굉음 때문일까?

       마법사의 양쪽 귀에서는 가느다란 핏물이 흐르고 있었고, 그의 코에서도 점막이 터져서 피가 섞인 콧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고막이 터졌고, 코가 부러져서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들고, 폭발 와중에 혀를 실수로 깨물어서 반토막이 날 뻔했고, 거기에 충격파 때문에 전신 타박상까지.’

         

       마법사는 숨을 헐떡이며 자기 몸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였다.

       귓가에 들리는 찌이이이잉- 하는 날카로운 소음.

       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들리는 이명이다.

         

       컨디션이 좋은 상황이라면 잦아들어야 정상이건만.

       누군가가 고막을 손가락으로 헤집기라도 하는 듯 이명은 점점 심해지고, 귀가 먹먹해지는 증상까지도 느껴진다. 거기다가 몸이 흔들리는 것인지, 아직 여진(餘震)이 있어서 진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시야가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기까지 했다.

         

       ‘그래도 나쁜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나쁘지 않다.

         

       타박상?

       고막 파열?

       자기 나라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 각오로 쏟아부은 포탄 세례를 무사히 회피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수할만한 대가다. 아니, 이 정도면 거저나 다름이 없다.

         

       ‘마법으로 막았다면 전신 타박상도 입지 않을 수 있긴 했겠지만…. 그랬다면 마력이 소모되었을 테니, 오히려 손해였을 테고….’

         

       오염운반자는 마력을 운용하여 통각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고, 미리 몸에 붙여두었던 마약성 진통제 마이크로니들 패치(Microneedle Patch)를 활성화를 시켰다. 그러자 몸 곳곳에서 느껴지던 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대신에 몸이 축 늘어지는 것만 같은 감각과 함께 목이 조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과민성 반응으로 인해 기도가 부어서 생기는 현상이었다.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하나 더 늘었군.’

         

       오염운반자는 쓸만했던 진통제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마력을 끌어올려 마법을 주위에 흩뿌리기 시작했다.

         

       창백한 푸른 점.

       지구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광채의 점이 허공에 박히며 점묘화를 그리고, 그것은 이내 입체로 화하기 시작한다. 마치 점과 점이 이어지며 별자리를 그려 의미와 형상을 자아내듯이 말이다.

         

       점과 점.

       선과 선.

         

       뱀의 머리(Serpens Caput)와 뱀의 꼬리(Serpens Cauda)가 잘리지 않은 온전한 뱀의 형태를 한 뱀자리(Serpens) 형상의 마력이 무지갯빛을 내기 시작한다. 뱀의 머리에 있는 삼각뿔은 날카롭게 날을 세운 창이 되었고, 각진 뱀의 몸통은 언제든 주인의 뜻에 따라 움직이기를 갈망하며 빛을 발한다.

         

       ‘무지개 뱀.’

         

       그의 상징(signature)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마법 중 하나.

       공격부터 방어까지, 수동 조작부터 자율 방어까지.

       만능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그의 창조 마법.

         

       몸에 강력한 부하를 주고, 사용하는 시간에 따라 마력의 순도를 떨어뜨리며, 남용하면 ‘마력 오염’을 일으켜서 신체에 비가역적인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단점만 제외한다면 이만큼 효율적이고 강력한 마법이 또 없었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마법이 아니라 주술을 연상케 하는 단점 때문에 쉬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것의 도움이 있어야만 했다.

         

       퍼엉-!

       퍼엉-!

       퍼엉-!

         

       “Verloren ist der Feinde Mühe, Die Götter selbst schützen sie—!!!”

         

       ‘개판이군….’

         

       …쉴새없이 퍼붓는 포탄들.

       정신에 영향을 주는 고깃덩어리의 노랫소리.

       자신의 머리통을 노리고 있을 저격수의 존재.

       포탄이 날아오기 전까지 활발히 날아다니면서 사람들 몸에 바람구멍을 만들었던 드론.

       얼마 전 마주쳤던 주술사의 존재 등등.

         

       간과했다가는 끔찍한 꼴을 볼 것이 분명한 것들이 지금 이 자리에 즐비하여 있었으니까.

         

         

         

         

         

        * * *

         

         

         

         

       [ 쏴라-!!! 저 불순분자 테러리스트를 죽여라!!! ]

         

       [ 총알을 아끼지 마라! 사람 탈을 쓰고 있는 요괴 놈들을 죽여라-!!!! ]

         

       박진성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개판이군.’

         

       누구라도 실시간으로 박살 나는 도시를 본다면 이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참으로 개판이 따로 없어.’

         

       가루가 되는 건물들.

       집조차 안전하지 않다고 여긴 것인지, 맨홀 뚜껑을 열고 하수도 안으로 기어들어 가는 인민들.

       노래를 부르는 고깃덩어리와, 그 고깃덩어리에 홀려서 멍하니 있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얻어터지고 나서야 총을 고쳐잡는 군인들.

       자신은 홀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려는 듯 발작하듯 포탄을 난사하는 탱크와, 충격파 때문에 이리저리 튕겨 나갔다가 망가져 버린 드론들. 마도 과학으로 만들어낸 외골격을 입고 도시에 진입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특수부대에, 도시 상공을 날아다니며 폭격할 준비를 하는 전투기까지.

         

       누가 본다면 철천지원수인 나라 둘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 착각할 광경이다.

         

       원한이 사무쳐서 폭격과 포격으로 도시를 소거해버리려는 것이 아니고서야, 이런 장면이 쉬이 연출되기도 힘들겠지.

         

       ‘군대까지 동원한다는 것은…어지간한 일이 아닌데 말이지….’

         

       물론 군대가 나설만한 사안이기는 하다.

       당장 오염운반자만 여러 수원지를 오염시키고 곳곳에 테러를 벌인 일 때문에 중국과는 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讐)나 다름없는 사이였고, 도시의 비밀 연구소를 탈취한 주술사에 이르러서는 아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우선으로 죽여서 입을 막아야만 하는 특급 사안이었으니까.

       그 둘이 얽혀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군대를 동원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군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미사일을 동원해서라도 ‘테러리스트들’을 없애고 비밀 연구소를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말이다.

         

       ‘확신을 하는 것 같단 말이지….’

         

       이것이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 도시에 오염운반자가 있고, 주술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그걸 중국 정부가 어떻게 알았느냐가 문제다.

         

       그래, 알 수도 있다.

       사방에 깔린 게 CCTV고 감시용 인공위성이니 우연히 포착했을 수도 있겠지. 아니면 박진성이 모르는 어떤 특별한 장비로 테러리스트와 영술사의 존재를 확인하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마법사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저들 말대로라면- 그래. 사람 탈을 뒤집어쓴 요괴라 불릴 법한 것들의 신원까지 알아채는 건…. 명백히 이상한 일이지.’

         

       누군가가 개입했다.

       알 수 없는 누군가.

       그가 보냈던 요괴들을 죽게 했던 이와 비슷한 손길이 느껴진다.

         

       작위적이고, 인위적이며, 묘한 집착이 느껴지는.

       그러면서도 은밀하고, 간접적으로 행해지는.

       그러한 느낌이 든다….

         

       ‘흐음.’

         

       초월종의 권능을 휘두르는 계약자인가?

       시간 속에 파묻힌 예언자인가?

       뇌를 한계까지 쥐어짜고 있는 초능력자인가?

       아니면….

         

       도시를 바라보는 박진성의 눈이 깊어진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의 몸을 이루고 있는 벌레들이 이리저리 조립되면서 도시를 더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변형되기 시작하였다.

         

       이 변화가 끝난다면 망원경을 눈에 씌우기라도 한 듯 도시를 더 자세하게 바라보며 깊이 상념에 잠길 수 있으리라….

         

       “너. 뒤틀린 벌레여. 내 숙원을 어찌 이리도 방해하느냐?”

         

       …그의 상념을 방해할 불청객만 없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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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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