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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16

        

         

       “관측하는 순간 우리는 인지하고, 그 인지는 세상에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에 옛 선현께서는 이리 말씀하셨음이다. 세상이 존재하기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기에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그러하니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순간 세상은 존재하지 않게 되며, 그 어떠한 가치도 지니지 못한다.”

         

       영술사, 피에르 마틴.

       그림자를 누더기처럼 기워입은 남자가 말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하는 법. 삶을 어찌 살았든 죽음으로 귀결되듯이, 하나의 경지에 오른 이가 다른 경지에도 맞닿아 있는 것처럼. 정신에 관한 깊은 탐구가 물질에 대한 깨달음에도 맞닿아 있듯이. 미시와 거시가 서로 다르지 아니한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귀결됨이니. 세상이 나로 인해 존재하는 것과 내가 세상 덕분에 존재하는 것은 큰 차이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반대의 위치에 서 있되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일 뿐인 까닭이다.”

         

       뒤집어쓰고 있는 인간 가죽 가면이 일그러진다.

       마치 진짜 그의 얼굴이라도 되는 듯이.

         

       “나의 실험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의 숙원에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고 있음이 느껴졌고, 나는 소년과도 같은 설렘을 느꼈다. 아주 어릴 적 옆집의 아가씨를 보고 느꼈던 그 설렘과도 같은, 첫사랑의 열병보다도 더 뜨겁고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그러한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음이다.”

         

       피에르 마틴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사라져라, 사라져라. 사라져라 허상이여. 승천을 방해하고 유황불에 사람을 끌어내리려는 사탄, 천년왕국으로 들어가기 전 심판에서 죄를 끄집어내고 성토하며 추락시키려 드는 변호사, 수많은 유혹으로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마귀와 같은——”

         

       마귀와 같은-!!!!!!!!!!!

       끔찍한 벌레여!!!!!!!!!!!!

         

       찢어지는 듯한 고성.

       피와 함께 토해지는 분노.

         

       피에르 마틴의 손길이 얼굴에 있는 인간 가죽을 단숨에 찢어발기고, 사방에 그림자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새까만 연기 같은 것들이 사방으로 뻗치고, 물체에 달라붙은 그림자는 원래 그 자리가 자신의 거처였다는 듯 자연스럽게 흡착되며 사방을 새까맣게 물들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림자가 사방을 뒤덮는다.

       마치 해가 가려졌을 적 온 세상이 어둠으로 뒤덮이는 것처럼.

         

       그리고 그러한 그림자의 한가운데에서, 박진성은 허허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허허. 거참, 사람 하고는.”

         

       그리고는 잠시 말을 쉬고는, 섭섭하다는 듯.

         

       “거, 서로의 목적에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같이 쓰는 것 정도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매몰차기도 하이.”

         

       그리 말하고는 퍼엉-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터뜨렸다.

         

       흩어지는 벌레떼.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지는 옷가지 하나.

         

       남은 것은 없다.

       허상은 허상처럼 사라지고, 벌레로 변화해서 사라졌다.

         

       피에르 마틴은 박진성이 사라진 빈자리를 보며 절규하기 시작한다.

         

       “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분노를 이기지 못해서 내지르는 절규.

       손톱이 몸에 파고들어 핏물을 줄줄 흘리고 있음에도 고통을 인지하지 못하고, 바닥에 세차게 부딪힌 무릎은 뼈에 금이 간 것이 분명하건만 그것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피에르 마틴은 감정에 휘둘린 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너무 울어버린 나머지 실신하기까지 하는 것처럼.

       감정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아기가 그것에 휘둘리며 괴로워하는 것처럼.

         

       그렇게 무릎을 꿇은 피에르 마틴은 그림자를 일으켜 짐승의 손과 같은 형상으로 만들어 땅을 그대로 쥔다.

         

       푸욱.

         

       시멘트 바닥이 마치 두부라도 된 것처럼 피에르 마틴의 손길을 허락하고, 그림자 손에 들린 모래는 해변의 모래라도 되는 것처럼 잘게 부서져서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다.

       피에르 마틴은 그 모래를 보며 말한다.

         

       “-출항하기 전에 어머니 바다께 제를 지내니 태(胎)에서 저를 낳았을 적 그러하였듯 나를 자애로이 감싸주옵고 그 새까만 바닷속 심연을 저에게 보내지 않으사 항해를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주옵소서. 썩어빠진 판자를 갉아 먹을 벌레를 배에 태우지 아니하옵고 달라붙는 따개비들이 배를 깊은 바다로 끌고 가는 손길이 되지 않도록 가호하소서. 배에 벌레를 용납하지 않으사 당신의 품 안에 안길 자들을 깨끗하게 하옵고 그들을 괴롭히지 않게 하소서-”

         

       쿵!

       쿵!

         

       피에르 마틴은 시멘트를 가루로 만든 다음 바닥에 흩뿌리고, 그 위를 주먹으로 연신 두들겼다.

       마치 땅을 다지기라도 하려는 듯 말이다.

       그러고는 그 모래를 다시 한 움큼 쥐고, 그것을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퉤에.

         

       그러고는 모래에 자신의 침과 피를 잘 섞어서 한 덩어리로 만든 뒤 뱉고는, 적당한 크기의 건물에 그것을 집어 던졌다.

         

       포격의 충격파 때문에 창문이 다 깨지기는 했지만, 아직은 멀쩡히 제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건물이었다.

         

       하지만 피에르 마틴이 뭉친 흙덩어리가 그것에 맞닿는 순간, 우뚝 서 있던 건물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파삭.

         

       볼품없는 소리와 함께 벽면에 부딪혀 산산이 조각나는 흙덩어리.

         

       하지만 그 결과는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다.

       적어도 ‘볼품없다’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말이다.

         

       끼기긱.

       끼기기기긱.

         

       무언가가 뒤틀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철근이 뒤틀리고, 시멘트가 팽창하고, 나무가 갉아 먹힌다.

         

       사각.

       사각.

       사각.

         

       귓가에 들리는 소름이 끼치는 소리.

       그리고 그 소리와 함께 수없이 탄생하는 자그마한 구멍.

         

       그것은 마치 해면(海綿)동물 스펀지(sponge)를 연상케 만드는 것이었다.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우리가 흔히들 설거지할 때 사용하는 인공스펀지의 어원이 된 바로 그 생물 말이다.

         

       멀쩡했던 건물에 수없이 크고 작은 구멍이 생기는 모습이란.

       한때 괴담으로 유행했던 환공포증(環恐怖症)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생리적이고 근본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었다.

         

       그저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모습만 보더라도 닭살이 돋을 지경인데.

         

       스으윽.

         

       그 구멍들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온다.

       반투명한 색깔의 무언가.

       미끈거리는 몸체와 살짝 새까만 앞부분을 가지고 있는 그것들.

       촉수, 혹은 조개의 속살처럼 보이는 무언가.

         

       그것들이 건물의 구멍에서 툭툭 튀어나오며 제 존재감을 발한다.

         

       그리고는 꿈틀꿈틀꿈틀꿈틀꿈틀.

       물속으로 들어갔을 적 머리카락이 물결에 흔들리면서 꿈틀대는 광경을 재현이라도 하려는 듯, 혹은 익사해 가라앉은 시체의 머리카락이 해초처럼 흔들리는 광경을 재현하기라도 하려는 듯 짧고 가느다란 신체를 수없이 꿈틀거린다.

         

       역겹다.

       혐오스럽다.

         

       그냥 보아도 징그러울 광경이, ‘건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나타났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얕은 바다로 향하였을 때 당신의 머리카락이 배를 붙잡고 휘감아 그 자리에 붙잡아놓지 않기를 희망하며, 매끄러운 머리카락에 향유를 뿌리지는 못하나 그 윤기 흐르는 머릿결에 경의를 표하사 하늘에 별자리로 박제된 터럭의 빛을 내리쬘 것인즉 해초가 감히 당신의 안에 들어온 배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가호해주소서. 당신의 터럭에서부터 거웃까지, 머리에서부터 비밀스러운 곳까지. 당신의 신체에 있는 모든 것들로 배를 감싸 안으사 우리는 어머니의 품 안에서 안정을 취하고 다시 당신의 품에서 나가 육지에 발을 디딜 것입니다-”

         

       하지만 피에르 마틴의 주술 의식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건물 하나를 저렇게 만든 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는 듯, 그의 몸에서 피어오른 그림자는 물리적인 힘으로 사방팔방을 헤집어놓기 시작했다.

       멀쩡했던 건물은 이리저리 난도질해서 흉하게 만들어놓았고, 시멘트 바닥은 깨부수고 벽돌은 뒤집어엎으며 안의 속살을 모조리 드러나게 했다. 거기에 상수도와 하수도 역시 건드려서 물을 뿜어내게 만들며 사방을 물바다로 만들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물바다를 향해, 피에르 마틴은 다시 한번 흙덩어리를 집어던졌다.

         

       그렇게 퐁당, 하는 소리와 함께 물에 떨어져 부서져 버리는 흙덩어리.

         

       그리고-그 흙덩어리는 이변의 씨앗이 되어, 새싹을 틔운다.

         

       물에서 피어나는 화초.

       바다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그것들.

         

       해조류(seaweed).

         

       피에르 마틴이 집어던진 흙덩어리는 바로 그 해조류가 되었다.

         

       마치 곰팡이라도 되는 것처럼 물웅덩이를 중심으로 해조류가 폭발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녹색, 붉은색, 갈색.

       미끈거리고 비린내 나는 그것들은 땅을 대체하기라도 하려는 듯 폭발적으로 퍼져나가며 사방을 뒤엎고, 물이 고여있는 곳에서는 산호를 흉내 내기라도 하려는 듯 딱딱한 것들이 솟아나서 화려한 빛깔을 뽐낸다. 그러다가 회색으로 굳어지기도 하였지만, 이내 피에르 마틴이 미리 부수고 뒤엎어선 시멘트와 벽돌과 융합하며 다시 더 거대한 산호초로 거듭나며 사방을 바닷속의 풍경처럼 만든다.

         

       바다에 가라앉은 도시가 이러할까.

       물 대신 공기가 있을 뿐, 이곳의 풍경은 바다에 한 번 휩쓸린 도시의 그것과 다르지 않게 변화하고 있었다.

         

       바로 피에르 마틴이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그림자가 드리운 땅. 미지와 어둠이 가득 드리워진 곳. 미답지이자 인간 지성의 그림자. 바다의 깊숙한 곳에 몸을 던지매 그 바다여 여신이여 나를 그 품에 안으사 안식을 취하게 하소서. 사방팔방에 드리운 그림자로 미지를 품에 안겨주사 번쩍이는 생각조차 잠재울 그림자로 눈을 감게 하옵고 그 지성의 이면에 위치한 상상으로 그 형상을 빚어내어 형상을 이루게 하소서. 그 그림자를 팔처럼 휘두르게 만드사 그 물의 흐름과 같이 거세고 거대한 것으로 만들어 내가 인지하게 하소서….”

         

       피에르 마틴이 원한 것은 바다와의 연관성.

       인류가 탐사하지 못하였던 미답지이며 인류의 탐구 의지의 그림자와도 같은 공간.

         

       자신이 앞으로 행할 주술 의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림자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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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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