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817

        

         

       “지금부터 유령선에 놓인 항해일지를 낭독하오니 여신이여 바다여 나를 가호하소서 길을 인도하는 북극성의 빛으로 나를 가호하옵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비너스의 찬란함으로 내 몸을 감싸 안으사 제가 육지에 무사히 발을 디딜 수 있도록 하옵소서. 하나, 항해 7일 차. 순풍이 불어오매 돛은 바람을 받아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며 돛대의 가장 위쪽에 있는 이는 말간 눈으로 저 멀리 바라보아도 암초도 해적선도 보이지 아니하니 순조로운 항해가 될 것인즉 과아연 선수상(figurehead)을 참나무를 깎아 주노(Juno)의 아리따운 형태로 조각한 보람이 있는 듯하여-”

         

       까드득 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가 주변을 깎아내린다.

       뿌리째 뽑혀 기울어져 있는 나무에 그림자가 엄습하고, 그림자는 톱과 정으로 나무를 이리저리 조각하며 사람의 형상 비스름한 것으로 만든다. 머리에는 왕관을 두르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홀을 들고 있으며, 왼손에는 술을 담는 접시를 들고 있었는데 그 접시에는 기이하게도 비가 내리지 않았음에도 물이 고여있었고, 바닥에 닿기 무섭게 비릿한 냄새를 한껏 풍겼다.

         

       “옛날 영웅들이 있던 시절 아르고호에서 그러하였듯이 위대한 여주인, 가정을 보우하시는 주노께서 우리를 가호하사 우리의 배는 무사히 항해를 마치리라. 무사히 항해를 마치리라. 다만 항해 9일째, 갑작스럽게 폭풍이 불기 시작하였으매 저 멀리에서 먹구름이 들이치기 시작하였는데 번개가 동반하는 것이 마치 주피터가 넵튠에게 번개의 지팡이를 휘두르는 것과 같은 형상이었으니 항해사 가로되 주피터께옵서 물로 된 말을 타고 여자를 끌어안아 바다로 도망친 넵튠에게 분노를 느끼사 번개로 돌팔매질하여 넵튠을 밖으로 끌어내려 하는 것이라 하였다.

       여자를 사이에 둔 치정이 얼마나 지독한지 너희도 알 것이며, 그것이 신과 얽혀있다면 어찌 그것이 끔찍한 일이 아닐 수가 있겠느냐 하시매 우리의 선수상을 가리키며 주노께서 우리를 가호한다 한들 제우스는 주노의 간청조차 무시하고 수많은 간통을 저지르고 가정을 파괴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할 수 있는 신인바 우리는 그저 주노의 가호만을 믿어서는 아니 될 것이라 하였다. 또한 선장이 거기에 살을 붙이니 넵튠께서도 그 격이 낮은 신이 아닌지라 번개의 돌팔매를 언제까지 맞고 있을 리가 없으니 세 갈래로 나뉜 창을 들고 바다를 찍어 그 분노를 재현할 것이니 우리는 그 사이에 끼어서 볼품없이 무너져버릴 먼지와도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하였으니 그리하여 모두가 돛을 한참을 붙잡아 항로를 바꾸기로 결정을 내렸음이다….”

         

       어설프게 조각된 주노 여신상이 그림자 손에 들려 허공으로 떠오른다.

       그러고는 그것을 이리저리 흔들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배를 따라서 흔들리는 형상 같기도 하였고, 하늘을 향해 미끼를 흔드는 것과 같은 경박한 느낌이기도 하였는지라.

         

       아, 감히 인간이 신을 능멸하느냐?

       아, 감히 인간이 신에게 조롱하려 하느냐?

         

       너희 인간들은 감히 신을 고개를 들고 쳐다봐서는 안 될 것이며, 공경과 공포 이외에는 그 어떠한 감정도 품지 아니할 것이며, 오직 숭배만을 해야 할 것이로다.

       그리하여 신들의 왕께서 신좌에서 몸을 일으키사 한 손에 들고 있는 번개의 창을 들고 구름을 향해 내리찍으니 번개는 구름을 통과하여 땅에 내리꽂히사 한 줄기의 빛이요 징벌이 되어 내리꽂히기에 이르렀으니.

         

       쿠르릉.

       콰아앙-!!!

         

       그 속도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보다도 빠르고,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선수상이 새까맣게 타버려 그 형상조차도 제대로 알 수 없게 되었으니 과연 신들의 왕이라는 명성이 허명이라 할 수 없음이라 너희 인간들은 이 신의 행사에 두려움과 경외심을 품고 마땅히 몸을 낮추고 고개를 땅에 박아 공포와 숭배를 바쳐라.

         

       “항해 13일 차 태풍이 사라지고 먹구름이 사라졌으나 우리는 조난하였다. 잔잔한 바다 위에서는 현재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그 어떠한 것도 발견할 수 없었고, 별은 누군가가 손바닥으로 가리기라도 한 것처럼 잘 보이지 않아 길잡이가 될 별을 확인할 수가 없다. 배 안에 있어야 할 항해일지와 나침반은 난리 통에 부서져 버리고 말았고, 우리는 이제 어서 하늘이 개기만을 기다리며 벌레가 잔뜩 기어 다니는 딱딱한 쉽비스킷을 먹으면서 버텨야만 한다. 이미 썩어가는 물의 역한 냄새는 어찌나 지독한지, 술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선장은 그것도 용납지 아니하니 모두가 분노를 쌓아가고 있다-”

         

       하지만 벼락이 떨어졌음에도 인간은 신에 대한 두려움을 품지 아니한다.

       특히나 피에르 마틴은 더더욱 그러하였다.

       그러한 두려움을 품기에는 그는 너무나 미쳐있었고, 맹목적으로 광신하기에는 그는 너무나 이성적이었다.

       광기와 이성.

       공존해선 안 될 것이 공존하는 기묘한 정신.

         

       어쩌면 피에르 마틴은 아주 오래전부터 미쳐있었을지도 모른다.

       박진성이 ‘주화입마’라고 표현하였을 증상이 발현되기 이전에도, 그림자를 탐구하고 허상과 진짜에 대해서 깊은 고찰을 반복했을 그 시절에도, 혹은 주술사가 되기를 마음먹었던 그 순간부터.

       그는 광기와 맹신에 이미 휩쓸려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하니 그러한 광기로 그는 주언을 외운다.

         

       “항해 15일 차. 갑판에서 포탄을 굴렸다.

       항해 17일 차. 선장을 죽이기 위한 모의를 했다.

       항해 20일 차-”

         

       그 대가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것이어서.

       의식이 채 끝나지 않았음에도 그 여파만으로 그의 피부가 불어 터지고 뭉개지며 산채로 썩어가는 고통을 느끼고 있음에도. 그렇게 뭉개져서 훤히 드러난 새하얀 뼈 위에 따개비들이 다닥다닥 샘솟으면서 그 자리를 메우고, 따개비들이 살을 산채로 파먹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는 주언을 입에 담는다.

         

       “-넵튠께서 사자를 보내사 분노를 표출하였으니. 그 발은 여러 개요 그 굵기는 능히 배를 휘감고 끌어당기기에 모자람이 없는 것인지라. 거인을 징벌하기 위한 넵튠의 사자가 우리의 배를 손가락질하였으매.

       넵튠이여, 분노하소서.”

         

       넵튠이여.

       분노하소서.

         

       가장 깊숙한 어둠.

       미지의 미답지, 우리가 알 수 없는 그곳.

       다만 사람들의 뇌리에 가득 담겨있는 그 형상화된 공포를 이곳에 강림시키사.

       그 다리로 그들께 그 그림자를 보여주소서.

         

       쿠웅-!

       쿠웅-!

       쿠구구구구궁-!

         

       아, 그 간절한 기도.

       공포와 숭배가 뒤섞인 그 기도.

       하늘이 아닌 바다에 바치는 그 간증은 넵튠께 닿기에 충분한 것이었는즉.

       넵튠께서 응답하사 사자의 그림자를 이 땅에 내리셨음이다.

         

       쿠구구구궁!!!

         

       그리하여 땅거죽이 뒤집히고, 배를 갉아 먹는 벌레들이 집으로 삼은 곳들이 무너지고, 새까맣게 타버린 주노의 여신상이 박살이 나며, 바닥에 깔린 해조류들이 하늘 높이 치솟는다. 이곳저곳에서 솟았던 상수도와 하수도의 물은 물웅덩이처럼 고였으매, 그곳은 통로가 되어 다리 하나가 빠져나오기 충분한 넓이가 되었으니 그리하여 마침내 새까만 그림자로 직조(織造)된 거대한 촉수 하나가 육지에 그 형상을 드러낸다.

         

       “-크라켄의 다리.”

         

       흐흐흐.

         

       피에르 마틴이 불러온 것은 크라켄의 다리.

       수많은 배를 휘감고 가라앉혔다는 전설 속의 괴수에서 비롯된 주술.

       사용하는 방법은 까다롭지만, 그 위력만큼은 대단하다.

         

       심지어 ‘그림자’라는 것마저도 그와 딱 들어맞으니.

       몸에 맞는 옷을 입는다 한들 이것만큼 잘 맞을 수 있겠느냐?

       그림자로 짜인 저 다리를 영술사가 조종하는 것만큼이나 효율적인 일이 어디에 있겠느냐?

         

       그리하니 따개비가 몸을 파먹고, 조개가 피부 안을 기어 다니며 근육을 파먹는 고통 속에서도 그는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끔찍한 고통 와중에도, 빼꼼 피부를 뚫고 제 존재감을 발하는 배좀벌레조개(Shipworm)를 아무렇지도 않게 붙잡아서 밖으로 끄집어내는 일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아. 아아아아- 아아아아악!!!”

         

       하지만 고통이 문제가 아니다.

       고통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의 숙원이 방해되었다는 것이라.

       바로 그 사실인지라.

       그것은 차마 참을 수 없는 고통, 심장을 뜨거운 쇳물에 담그는 듯한 격통, 몸의 모든 구멍을 불로 지져서 오감을 차단하려 한다고 할지라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악몽과도 같은 기억이었는지라. 그리하여 그 악몽에서 깨기 위해서는 그 어떠한 짓도 할 수 있으리라는 각오가 있는지라, 제 꿈을 이루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떠한 일도 행할 수 있노라고 맹세하였는지라.

         

       그리하여 그는 크라켄의 다리를 휘두른다.

         

       가로로.

       세차게.

         

       그리하여 크라켄의 다리는 지휘자가 휘두르는 지휘봉처럼 거칠게 도시를 휩쓴다.

         

       그것은 말 그대로 신 혹은 거인이나 보일법한 위력이었는지라.

         

       뱃사람들이 옛적 그 그림자만 보아도 두려워하였듯, 뭍에서도 그러하리라.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