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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18

    <818 – 학생회의 권력(1)>

     

    지젤의 당선은 오크노디의 최측근들에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지젤은 자주 일을 맡겨주는 고용주라서 즈앙이 참았지, 다른 사람이라면 어느 날 밤에 침상 위에 나타나서 단검을 들고 사퇴 혹은 죽음을 강요하는 즈앙과 마주쳤을지도 몰랐다.

    그런 사정은 꿈에도 모르는 지젤은 당선소감부터 발표하는 신세가 됐다.

     

    “학생회장 취임 후 처음으로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제게 큰 영광이며,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오래도록 실험체로 사용되었던 호문쿨루스에 대한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겠지요.”

     

    지젤은 가장 먼저 호문쿨루스의 정체나 그들의 역할을 모르는 자신을 비롯한 하급반 학생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호문쿨루스는 오래도록 기프트 아카데미의 대인실험에 사용되었습니다. 단명종에 짧은 수명, 인격이 없는 미숙한 소인 신생아들을 진정으로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사실 당선 직후, 호문쿨루스에 대한 내용을 접하면서 지젤이 받은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쪽지시험을 치를 때마다 보았던 시험 내용을 호문쿨루스는 맨몸으로 겪고 있었다니!’

     

    어떤 부분에서는 두려움마저 느꼈다.

    만일 순서가 조금만 다르다면.

    호문쿨루스도 같은 시험을 몸으로 치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제출한 답에 따라 호문쿨루스가 ‘재현’을 하고 데이터를 쌓는다면.

    그 결과, 호문쿨루스가 임무를 완수해서 살아남으면 정답판정을 받고 죽으면 오답판정을 받는 시스템이었다면…

     

    “우리는 그런 불길한 가능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오답이 어느 가엾은 호문쿨루스의 죽음과 직결되리라는 상상을 말입니다!”

     

    학생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세상에!”

    “맙소사!”

    “그, 그럼 난 지금까지 대체 몇이나 되는 호문쿨루스를 죽인 거지?”

    “아, 안 돼. 내가 호문쿨루스 연쇄살인마라니.”

    “그럼 난 대량학살자잖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생명의 죽음에 일조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할 학생은 없다.

    비인간적인 악성향 학생들조차도 자신의 무능함의 대가를 대신 치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는 열받기 마련이다.

     

    “호문쿨루스들은 나한테 고마워해야겠어.”

    “즈앙, 그게 무슨 소리야?”

    “난 똑똑해서 성적이 늘 좋았으니까 내 덕에 살아남은 호문쿨루스는 아주 많을 거야.”

    “…”

     

    물론 죄책감과는 정반대로 호문쿨루스들이 자신한테 목숨을 빚졌다고 생각하는 즈앙처럼 독특한 학생들도 소수 있었지만!

     

    ‘이건 기회다. 오크노디를 괴롭혀왔던 아카데미에게 학생회의 권한으로 압박을 가하고 대등하게 마주설 수 있는 기회.’

     

    지젤은 즈앙처럼 정신력이 강한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학생들을 등에 업고,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아카데미를 지탄하기 시작했다.

     

    “장명종 호문쿨루스들에게는 우리가 우려하는 고통이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들은 지성이 있고, 더 오래 고통을 느낄 것이며, 무엇보다도 이 사실을 이제는 우리 모두가 알기 때문입니다.”

    “옳소!”

    “우리 암흑상회 동아리 일동은 학생회장을 지지한다!”

    “우리 괴도단 동아리 일동은 학생회장을 지지한다!”

    “우리 982기 신입생 부흥회 동아리 일동도 학생회장을 지지해요!”

    “지고쿠해적단도 동의해주지.”

    “헥토르가신단도 동의한다.”

    “카멜라사단도 동의~”

    “황녀친위대도 동의해 드리겠어요!”

    “서귀연 총연합회도 동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학생들의 지지선언!

    지젤은 기세를 몰아 교수들에게 제출할 동의자 명부를 만들었다.

    동아리 단위로, 사조직 단위로, 혹은 개인으로라도 지지선언을 하는 이들은 많았다.

    물론 38만 명이 넘는 장수종 호문쿨루스도 다 함께 동의했다.

    그러나 지젤의 표정은 썩 밝지 못했다.

     

    ‘왜지? 선배들의 표가 좀처럼 모이질 않아.’

     

    4학년은 서귀연을 제외하면 전멸에 가까운 수준이고 3학년도 만델라 카스테라를 비롯한 980기 학년사천왕을 비롯한 파벌구성원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건가?’

     

    그간 호문쿨루스에게 행해진 부당한 처우에 대한 조사대를 모집하고 상세한 사항을 기록,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여 호문쿨루스 시설복지금으로 사용하겠다는 지젤의 야심찬 계획.

    학생회장에 오른 뒤로 이행하는 첫 번째 공약에 마침내 묘한 긴장감을 보이던 선배들이 움직였다.

     

    “아앗~~핫핫핫~~! 이 만델라 카스테라를 제치고 먼저 학생회장의 자리에 오르다니, 암흑상회의 지젤도 제법이었사와요!”

     

    980기 최강자이자 3학년 사이에서도 오크노디와 학년 수석을 앞다투는 수석후보 만델라 카스테라.

    그녀가 몸소 사람들의 눈을 피해 비밀스럽게-저런 요란한 웃음소리를 내는데 행적을 감출 생각이 있기는 한가 싶지만- 지젤을 찾아왔다.

     

    “감사합니다. 부족한 점이 많음은 저 자신이 가장 잘 실감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호문쿨루스 건에 대한 폭로에 대해 선배들은 무언가 알고 계시더군요.”

    “안 그래도 그 건으로 해줄 조언이 있어 찾아왔사와요! 이 만델라 카스테라의 상냥함에 머리를 조아려도 부끄러운 일이 아닌 것이와요!”

    “하하. 그럼 지혜를 빌려볼까 합니다. 선배들이 알고 계시고 저는 모르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만델라 카스테라는 유쾌한 웃음소리와 달리, 긴장된 눈으로 창문이나 벽과 천장 등 주변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결계를 펼쳤다.

    그녀 정도 되는 실력자가 저토록 조심스럽게 행동하니 지젤도 덩달아 긴장했다.

     

    “호문쿨루스가 학생들의 시험 결과를 고스란히 이행한다는 추정은 ‘정답’이와요!”

    “가장 바라지 않던 현실이 찾아오고야 말았군요. 그런 비인간적인 짓이 실제로 벌어져왔다니…”

    “그리고 이 비밀은 아카데미 ‘4학년’이 되면 필연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와요! 저는 벨벳 선배와 돈독한 우정을 나누었기에 정보를 일찍 얻었고, 몇몇 다른 학생들도 그렇사와요!”

    “선배들은 이 비밀을 어째서 폭로하고 지탄하지 않은 겁니까?”

    “그건… 호문쿨루스 실습제도가 ‘운빨’로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유효한 시스템이라며 동조하는 선배들이 있기 때문이와요!”

     

    운빨.

    종종 오크노디가 운빨 타령을 하는 일이 있고, 확률형 랜덤가챠 판매시스템으로 암흑상회의 매출액을 떡상시킨 지젤 입장에선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운빨… 정확히 말하자면 학생의 실수로 인해 호문쿨루스가 해당 답안을 풀 수 없는 입력값으로 도전했음에도 호문쿨루스의 노력으로 같은 시련과 위기, 문제를 극복하면 그 문제는 ‘부분정답’으로 처리되와요! 말 그대로 운빨로 점수를 얻사와요!”

    “설마… 그 운빨을 위해서 호문쿨루스 제도의 존속을 지지하는 선배들이 있단 말입니까?”

     

    4학년들의 암묵적인 호문쿨루스 실험지지.

    이는 4학년들이 호문쿨루스 학대파라는 대단히 안 좋은 소식이었다.

    아카데미에서 가장 강한 학년이 학생회가 아닌 교직원의 편이 된 것이다.

     

    “더욱이 가상으로 입력한 답안이 실제로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되었는지 호문쿨루스의 부상을 살피거나 시신을 해부하면 더욱 상세히 알 수 있기에 마법학부는 무척이나 애용하는 것이와요!”

    “시신의 해부?!”

    “게다가 호문쿨루스가 실은 당해도 싼 인간쓰레기라는 소문도 퍼져있기에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고 마구 괴롭히고 싶어하는 학생들도 많사와요! 자기 성적이 떨어지기에 제 인생을 망쳐가며 학대를 하는 미치광이는 없지만 여론은 좋지 않은 것이와요!”

     

    4학년이 되면 호문쿨루스의 실체를 모든 학생이 알게 되고, 호문쿨루스에 투영하는 자아는 벌을 받아도 싼 녀석들이라고 모두가 자기합리화를 한다.

     

    “그런 고학년들은 이용하기 좋은 호문쿨루스가 사라진 것을 결코 달갑게 보지 않을 것이와요! 지젤에게도 사적인 보복이 있을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하는 것이와요!”

     

    만델라 카스테라의 우려는 이내 현실이 되었다.

     

    “지젤 학생회장. 잠시 시간 좀 빌리지.”

    “부르테 글라스 선배님…?”

     

    부르테 글라스.

    호문쿨루스 지지선언 타이밍을 놓쳐 학생회장 후보에서 광탈한 선배가 이번에는 역으로 4학년들의 지지를 받으며 돌아왔다.

     

    “호문쿨루스 실험체 제도를 부활시키게.”

    “선배님,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오해는 마라. 이미 장명종으로 긴 수명을 얻은 이들을 실험에 쓰라는 말은 아니니.”

    “새로운 단명종을 만들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 아카데미 학생들의 <시험지>로 쓰이는 단명종 호문쿨루스 제도를 다시 도입해라. 이는 우리 아카데미의 <졸업률>과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이다.”

     

    새로운 단명종 호문쿨루스를 만든다면 이번에 새로운 삶을 얻은 장명종 호문쿨루스들의 생명과 인권을 위협하는 일 없이 장명종은 인권을 누리고, 4학년들도 실험용 단명종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장명종 호문쿨루스들이 느낄 불안과 공포는 어떻게 되는가.

    오크노디가 재단에 학대에 가까운 엘리트 암살자 교육을 받은 아이라는 생각에 동정심을 품고 기프트 아카데미까지 따라온 지젤에게, 갓난아기나 다름없이 이제야 새 인생을 시작하는 장명종 호문쿨루스들이 공포에 떠는 미래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만일 제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대답하면, 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분명 걱정이 되겠지. 자네와 자네 주변의 많은 사람이 다칠 미래가.”

    “협박입니까?”

    “졸업을 앞둔 4학년들이 졸업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을 뿐이다.”

    “…선배님의 우려는 이해했습니다. 제 나름대로 심사숙고 후에 결론을 내려보겠습니다.”

     

    지젤은 부르테 글라스를 돌려보내고는 의자에 머리를 기대며 파하, 한숨을 내쉬었다.

    달칵.

    천장 뚜껑이 열리며 즈앙이 먹이를 노리는 부엉이처럼 고개를 내밀었다.

     

    “죽일까?”

    “상대는 4학년 사천왕 급의 강자입니다. 참아주십시오. 그냥 4학년들을 적으로 돌린다는 상상만으로도 손이 덜덜 떨리는데 일을 더 키우면 어떡합니까.”

    “그래서 저거, 어쩔 거야? 굽힐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이는데.”

    “제 눈에도 통보하러 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제겐 너무 큰 짐이군요. 이 폭탄덩어리를 저한테 떠넘긴 장본인한테 다시 골칫덩어리를 되돌려주는 수밖에요.”

     

    지젤이 말했다.

     

    “오크노디를 불러주십시오. 지금 당장.”

    “싫다고 도망가면 어떡해?”

    “부학생회장 자리에 오크노디를 꽂아버릴 거라고 말하십시오.”

     

    일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괴롭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의무와 책임을 강제로 던져주는 것이었다.

     

    “줘도 일을 안 하면 소용없잖아.”

    “그땐 저와 사이좋게 업무상배임죄를 물고 아카데미 대감옥에 갇히면 됩니다.”

    “…독하네.”

     

    얼굴 한번 보기 힘든 아이가 기겁하며 제 발로 나타나기까지는 정확히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물귀신 지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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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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