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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19

        

         

       하지만 세상에 오직 신과 인간만 있는가?

       땅에서 피어오르는 풀이 있고, 가지를 뻗는 나무가 있으며, 피어난 꽃을 향해 날아드는 나비와 벌이 있고, 열매를 먹기 위해 날아드는 들짐승과 벌레가 있다. 물이 고인 곳에는 벌레와 물고기가 가득하고, 땅을 파헤치면 지렁이가 땅을 비옥하게 하려고 연신 헤엄을 치곤 한다.

       저 드넓은 대양에는 하늘거리는 해파리도, 딱딱한 등껍질을 이고 다니는 거북이도, 매끈한 몸으로 헤엄을 치는 돌고래도, 거대한 몸집을 이끌며 바다를 누비는 고래도, 그 드넓은 바다를 거울삼아 제가 날아다니는 하늘을 바라보며 비행하는 바다새들도.

         

       세상은 신과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막 나가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건 너무 심한 것 같군요….”

         

       사람인지 먼짓덩어리인지.

       수없이 몰아친 흙먼지에 이제는 먼짓덩어리 그 자체가 되어버린 마법사.

       그는 정화통 부분을 그나마 깨끗한 천으로 닦고는, 흉흉한 눈빛으로 도시를 바라보았다.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마력이 담긴 눈은 쉬이 흙먼지 안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고, 코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비린내와 미사일이 터진 후 남는 특유의 냄새는 지금, 이 상황이 끝나지 않음을 그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끝나지 않았다.

         

       저 거대한 촉수는 미사일에 타격을 입기는 하였으되 아직 건재하고, 중국군은 그것을 깨닫고는 미사일 발사대에 다시 미사일을 채워 넣고 있다. 아마 미사일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시 하늘로 솟구쳐 오르고, 저 촉수를 찢어버리기 위해 제 몸을 불사를 것이다.

         

       하.

       생각해보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도시를 파괴하는 그림자 촉수.

       그 그림자 촉수를 없애기 위해 도시를 파괴하는 자국군.

         

       누가 이기던 이 도시에 희망은 없다.

         

       ‘이러면 제가 참. 참 우스워지지 않습니까.’

         

       수원지를 오염시키고, 공안을 향해 테러를 벌이고, 당 간부의 저택을 공격하고….

         

       객관적으로 볼 때는 하나하나가 중범죄요, 가벼이 여길 사안이 아니건만.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이 광경을 본다면 참으로 의미 없게만 느껴지는 일이 아닌가.

         

       이렇게 쉬이 파괴될 줄 알았다면, 자신이 개입하지 않아도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대체 이 도시에서 왜 심력을 소비하고, 시간을 소비하고, 힘을 쏟았단 말인가?

         

       도시를 파괴하려 아무리 애썼어도 저들이 지금 행하는 파괴 행위의 티끌만큼도 되지 않는다.

       자신이 아무리 관심을 끌어보려 애썼던 노력은 지금 저들이 행하는 것에 비할 바가 되지 않는다.

         

       장담한다.

       이 일이 어떻게 끝나건, 관심은 저들이 죄다 빨아먹을 것이다.

       환경에 대한 경고도, 감히 전염성 암을 바다를 통해서 퍼뜨리려 했던 저들의 만행도.

       그 모든 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모조리 파묻혀버릴 것이다.

         

       의미.

       의미가 있는가?

         

       그가 행했던 것은 과연 의미가 있는가?

       고작 저런 일에- 고래들의 싸움에 새우가 어이없이 터져나가는 것과 같은 이 거대한 흐름에, 그는 저항을 할 수 있는가? 저들이 행하는 일들보다도 더 강력한 충격을 안겨주어서 자신이 보내고자 하였던, 각인시키고자 하였던 메시지를 과연 온 세상 사람에게 퍼뜨릴 수 있는가?

         

       그게 가능한가?

         

       “하.”

         

       물어볼 것도 없다.

       불가능할 리가 있겠는가.

         

       오염운반자라는 이름은 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것과 같은 구도라고?

       그럴 리가.

         

       바위를 쳤음에도 계란이 멀쩡하다면 그것이 과연 계란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그는 쇠로 만들어진 구체요 골리앗을 쓰러뜨릴 다윗의 돌팔매라.

       그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악명을 한없이 쌓았음에도 살아남은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저 잔재주니 뭐니 하는 것 없이, 사람 자체가 강하기 때문에 얻은 악명이다.

         

       게다가 어려움이라.

         

       어렵다고 한들 세계를 구하기 위해 활동하는 것보다 어렵겠는가?

       역경이라 한들 구원자의 업보다 무겁겠는가?

         

       환경오염으로 멸망할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환경을 다시 깨끗하게 만들고 오염을 없애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고작 이러한 일에 꺾일만한 것이 아니다.

         

       그러하니 마력을 끌어올려 점을 빚는다.

         

       창백한 푸른 점.

         

       지구를 연상케 하는 푸르른 점.

       하지만 그것은 애석하게도 오염으로 뒤덮여서 무지개색으로 빛나고, 생명 그 자체를 적대시하고 모든 유전자를 뒤틀고 사멸시키는 성질이 부여된다. 그리고 오염의 성질처럼 그것은 폭발적으로 퍼지며 입체가 되고, 오염의 성질처럼 물들기는 쉽되 되돌리기는 어려운 것처럼 주위의 마력마저 물들이면서.

         

       그렇게 공간을 물들이고 시간마저 간섭하면서 전개된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무지개색 도면의 크기는 반지름이 20m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

         

       감히 앞에 대(大)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모자람이 없는 물건이다.

         

       오염운반자는 자기 몸에서 마력을 쥐어짜 그것을 집어넣으면서.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테트라 그람마톤께서 하늘 곧 그분으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과 땅에 난 것들을 다 엎어 멸하였음이로다-”

         

       옛날 읽었던 성경의 한 구절을 읽으며, 마법을 발동시켰다.

         

       오염된 마력은 핏줄처럼 도형을 타고 흐르고, 그 중심부에 다다른다.

       마법을 시전할 때 처음 만들었던 창백한 푸른 점을 재현이라도 하려는 듯 그 중심부에 모여 구체를 빚어내고, 위성과 또 다른 행성들을 빚어낸 뒤 인력으로 끌어들이고 척력으로 밀어내며 그것을 배열한다. 그러고는 회전하기 시작하며 마치 태양계의 형상을 모방하였다가.

         

       퍼어엉-!!

         

       자그마한 소리와 함께 중심부가 터지고, 질서정연하였던 회전은 이제는 온데간데없이 모든 것이 혼돈으로 접어든다. 구체들은 중앙의 폭발에 휩쓸리기도 하고, 구체끼리 부딪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기도 하고, 그렇게 서로 폭발을 일으키면서 제 몸을 터뜨리고.

       그렇게 터뜨려진 폭발은 이윽고 한 점으로 겹치며-

         

       퍼어어어엉-!!!!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하늘로 오색찬란한 빛을 뿜으며 솟구쳤다.

         

       그렇게 솟구치는 모습은 마치 무지개로 빚어진 나무가 그 자리에 현신한 것과 같았고, 무지개가 거대한 버섯구름의 형태를 빚어내려 드는 것처럼도 보였으며, 혹은 거대한 불꽃놀이가 하늘에서 일어나는 듯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불꽃놀이나 홀로그램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렇게 터진 불꽃이 하늘에서 전소되지 않고 땅으로 내리꽂힌다는 것이다.

         

       그래.

       그것은 오염운반자가 입에 담았던 성경의 구절과 다른 것이 없었다.

         

       테트라 그람마톤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셨던 유황과 불의 비.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 불의 심판.

         

       무지개색으로 빛난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지금 내리는 비는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도 더 끔찍한 것일지도 모른다.

       성경에 기록된 불과 유황의 비는 그저 도시를 불태우고 유독가스를 퍼뜨려서 사람을 죽이는 것에 그쳤을 테지만, 지금 오염운반자가 행한 마법은 ‘오염’의 성질을 깃들게 해서 시행한 마법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오염시켰던 수많은 오염 물질, 거기에 마력을 오염시켜서 생명에 적대적으로 만드는 성질을 부여하는 힘까지. 지금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은 곳은 한껏 노력을 기울여 제염작업을 하지 않는 한 사람이 살기 힘든 공간이 될 것이다.

         

       차라리 소돔과 고모라처럼 잿더미로 만들기라도 한다면 사람이 다시 들어와 재건이라도 하련만.

       전능하지도 전지하지도 않기에 자비를 베풀 수도 없는 인간의 행사는 지독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도시는 또 다른 재앙에 휩싸이게 되었다.

         

         

         

        * * *

         

         

         

       치직.

       치직.

       치직.

       치직.

         

       노이즈에서 시작하는 사진.

       노이즈에서 시작하는 영상.

       창조가 아닌 복구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물.

         

       그래픽카드가 미친 듯이 돌아가며 열을 뿜어내고, 램과 하드 디스크가 수명을 깎으면서 작동한다. 모니터링을 위해 드문드문 설치된 LCD 모니터는 수백 개로 분할된 화면에 수많은 노이즈 덩어리를 띄우고, 그 노이즈에서 나오는 결과물을 출력한다.

         

       사람.

         

       머리가 벗겨진 중년 남성.

       깡마르고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남성.

       군복을 입고 있는 남성.

       인민복을 입고 있는 남성.

         

       그들은 노이즈에서 빚어져 현실에서는 행해지지 않는 형태로 조형된다.

         

       그러고는 그들이 모아두었던 수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오류 없이 자연스러운 형태로 영상이 제작된다.

         

       입이 움직인다.

       그 사람과 관련된 CCTV 자료를 기반으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음성이 입혀진다.

       그 사람이 평생 가졌던 목소리로, 평생 해왔던 말투로, 자신조차 모르는 습관을 그대로 넣어서.

         

       그렇게 노이즈에서 빚어진 가짜 인간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말한다.

         

       [ 지금 저들을 제압해야 해! 지금 제압하지 않으면 어떤 위기로 돌아올지 모른다고! ]

         

       영상통화에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얼굴을 찡그리고, AI를 통해 만든 음성으로 분노를 토해내며, 때로는 격렬한 몸짓을 보이며, 영상 저 너머 반대편에 있는 이들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고 ‘네가 그러고도 자랑스러운 인민군이냐!’며 일갈하기도 한다.

         

       그것은 딥페이크(deepfake).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인간 이미지 합성 기술로 탄생한 가짜 영상과 가짜 음성.

         

       가짜에 지나지 않아야 할 것이.

       기껏해야 범죄 정도로만 사용되어야 할 그것이 지금 사용되고 있다.

         

       도시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 일에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행하고 있는 것은 한 인공지능.

         

       < 명령계통 장악 완료. >

         

       < 인트라넷 잠식 완료. >

         

       < 딥페이크-3A10239 모델로 도시 폭격 명령을 내리는 것에 성공하였습니다.

       도시를 폭격해야 할 당위성에 도움이 될만한 자료들을 추가하였습니다.

       도시 폭격을 지속합니다. >

         

       < Q. 폭격은 언제까지 합니까? >

         

       그 인공지능의 이름은 아나엘.

         

       < A. 시전자가 이름 붙인 주술 코드명 ‘크라켄의 다리’가 파괴되고, 주술사가 무력화될 때까지 지속합니다. >

         

       중국 전산망을 지배하는 데 성공한 인공지능이다.

         

         

         

         

        * * *

         

         

         

       쏟아지는 미사일과 무지갯빛의 마법.

       땅을 내리찍고 휩쓰는 그림자 촉수.

       그것을 바라보며 박진성은 땅바닥에 지푸라기 두 개로 십자가를 만들었다.

         

       “성인께 바라노니 무지개의 저주를 피하게 하소서.”

         

       그러고는 벌레를 끌어모아 팔의 형상을 만들고는 그것을 저 멀리 꼬리를 그리며 떨어지는 무지개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비니쿤카의 영을 담아 말하니, 무지개에 닿은 자 역병을 얻으리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3연참…부족하게 느껴집니다…
    내일이나 모레, 다시 연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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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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