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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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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핫, 낯선 천장은 무슨. 어제 노아에게 안내 받은 방이라 낯설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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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는 걸 느끼며 마른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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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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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 의문형으로 끝난 이유는 잠들기 전에 봤던 천장과 색부터 생김새까지 달랐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덮고있는 이불의 감촉까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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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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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 굴에 잡혀들어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참한 호랑이와 결혼할 수 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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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겨우 진정시킨 후 눈을 이리저리 도르륵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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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들기 전에 보았던 회색 천장이 어느새 진 갈색 나무 천장이 되어있었고, 싱글 침대가 퀸 사이즈 침대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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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하얀 이불은 실크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두툼해 피부를 스치는 감촉이 굉장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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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쩍 고개를 움직여 좀 더 확실하게 바뀐 공간을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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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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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내가 잠들었던 방은 ‘원룸’이라고 불릴 만한 크기의 방이었다. 그런 방과 비교자체가 미안할 정도로 이곳은 굉장히 넓었다. 방 세개 정도 딸린 아파트(38평)만한 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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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에는 부드러운 카페트가 깔려있었고, 커다란 테라스가 두 개가 한쪽 벽 양 끝에 자리잡고 있었다. 테라스 사이에는 커다란 창문이 자리하고 있어 방 안은 따로 불을 켜지 않아도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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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라스 한 곳이 살짝 열린 채 바람이 불어, 새하얀 커튼을 살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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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 가운데에는 소파와 테이블이 자리잡고 있었고 벽쪽에는 딱 봐도 비싸보이는 서랍장과 책장이 있었다. 고급스러운 목재 책상도 한쪽 구역에 마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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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대 – 소파,테이블 – 책장,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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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나란히 세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각 구역마다 다른 카페트가 깔려있어 공간이 분리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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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비싸보이는 방은 뭐지? 설마 다른 사람의 몸에 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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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급히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내 머리카락 색을 확인했다. 어깨까지 자란 새하얀 머리카락이 시야에 들어왔다. 뒤이어 손등을 확인했다. 마검의 인장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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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다행히 다른 몸에 빙의당한건 아닌가보네. 그런데…이거 언제부터 빛나기 시작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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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은 매일 같이 피를 쪽쪽 빨아먹더니 별의별 이상한 기능이 생기고 있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인장을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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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등에 관한건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여기가 어디인지 부터 조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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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바로 방 안으로 조심스럽게 살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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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내 가방, 여기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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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 방 한쪽에 내 가방이 놓여있었다. 계속 잠옷을 입은 채 돌아다닐 순 없었기에 가방에서 옷을 꺼내 갈아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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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에 누가 들어오면 어쩌나 걱정되었는데, 다행히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후 테라스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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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으로 나갔다가 적이랑 마주치면 곤란하니까. 대충 어디쯤인지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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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이상 함부로 움직일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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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 안에서 보면 테라스 입구가 두 개로 보였는데, 두 개의 테라스는 이어져 있어 꽤 널찍했다. 티 테이블과 의자를 스쳐지나가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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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긴…어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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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야가 닿는 곳마다 진녹색의 나뭇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가득했다. 딱 봐도 네스트의 본부가 있던 곳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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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으응,어? 저 멀리 뭔가 보이는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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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 말고도 무언가가 저 멀리 보이는 것만 같았다. 나는 테라스 난간을 붙잡고 몸을 앞으로 쭉 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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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은 아닌 것 같고. 엄청 큰 벽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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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벽 같은게 저 멀리 보이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거대한 벽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살펴보자 벽이 반투명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을 더욱 앞으로 빼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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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이 아니라 저건 -…”
    “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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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어라 다른 답을 입에 담으려는 순간, 뒤쪽에서 비명같은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이 굳어버렸고, 자연스럽게 몸이 앞으로 쏠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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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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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에 ‘어어어? 떨어진다?’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파바밧! 하고 달려온 누군가가 내 등 뒤를 쭉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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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청,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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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덕분에 몸이 뒤로 쏠려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대신 몸이 비틀거리다가 테라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순식간에 시야가 훅훅 변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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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게 정신을 추스른 후, 상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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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덥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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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친 손길에 어깨가 붙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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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무슨 생각으로 거기에 서있었던거야!?”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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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그러진 노아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내가 뭔가 큰 잘못을 한 것 같았다. 나는 눈을 도르륵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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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위험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죽지 않을테니까. 이 정도 높이는 괜찮지 않나?”
    ‘미안해, 내가 실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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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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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뒤늦게 생각과 말이 반대로 튀어나갔다는 걸 자각했다. 슬쩍 노아의 얼굴을 바라보자,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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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것을 마주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나는 곧바로 두 손을 저어보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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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그게! 내가 번지 점프! 번지 점프가 익숙해서 말이 잘못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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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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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지…점프..? 그게,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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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테라스 밖으로 몸을 빼고 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지만, 그걸 별거 아닌 일이라고 치부하는 모습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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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비명을 억누른 채, 리안의 변명을 기다렸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준 노아에게 리안은 끔찍한 말을 서슴없이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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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을 줄로 묶어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놀이야.”
    “뭐?”
    “나도 처음에는 억지로 떠밀려서 해봤는데, 생각보다 안 무섭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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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먹 한 방에 하늘을 날아다니는 개그 주민에게 번지 점프는 어린 시절에 타던 그네와 다를 바 없는 놀이 기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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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랜덤할 확률로 환하게 웃으며 뛰어내리던 모습이 영정사진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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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줄도 없는 맨 몸인데 바보같이 착각해버렸나봐, 하하핫. 걱정시켰다면 미안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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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리안의 사과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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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이건..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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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보기에 리안은 조금전에 벌어질 뻔 했던 끔찍한 사고가 정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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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사과는 어디까지나 ‘노아를 놀라게 해서 미안해.’라는 의미 일 뿐이지 그 이상이 의미를 담겨 있지 않다는 걸, 노아는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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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을 매달고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고? 그것도 억지로?’
    ​
    ​
    별거 아닌 일상을 이야기 하듯 늘어놓는 말 속에 그의 상처가 훤히 드러나있었다. 하지만 본인은 제 상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태연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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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엉망진창으로 다친 아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헤실헤실 웃고있는 꼴을 마주한 것만 같았다. 노아는 목이 턱 막히고 눈가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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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어디서부터 망가진 것인지 알 수 없어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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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을 몸에 매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건 해선 안되는 일이다. 고통을 견딜 수 있다고 해서 절대 괜찮은 일이 아니다. 따위의 말이 머리 속을 맴돌았지만 그를 몰아붙이 듯 소리칠 것 같아 아무런 말도 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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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피투성이가 된 그를 상처입히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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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저나 노아 여긴 어디야? 원래 내가 잠들었던 방이 아니라서 깜짝 놀랐어.”
    “…어제 네가 잠든 곳은 일반 조직원들이 머무르는 곳이야. 간부들은 모두 이 건물에서 생활하고 있어. 최대한 외부에 알려지면 안되는 곳이라 네가 잠들었을 때 몰래 데려왔어.”
    “아아! 어휴, 나는 그것도 모르고 깜짝 놀랐다니까! 납치라도 당한줄 알고! 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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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위기를 환기시켜보고자 리안은 힘차게 웃어보였다. 하지만 노아의 기분은 더욱 깊게 가라앉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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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치를 당했는데 테라스 밖으로 몸을 던지려고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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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순간 머릿속에 끔찍한 실험 장면이 떠올랐다. 그 장면을 떠올리자 어째서 리안이 테라스 밖으로 몸을 던지려고 했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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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혀 괜찮지 않았던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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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항상 말했다. 자신은 금방 회복하는 몸이라 괜찮다고. 아프지도 괴롭지도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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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말하며 환하게 웃어보이는 리안의 모습에 노아는 항상 속아넘어갔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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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속은 이미 썩어 문드러져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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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 바닥은 차갑잖아. 안에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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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주제에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 먼저 손을 내미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온기에 모여든 이들이 얼마나 애가 타는지도 모른 채, 제 상처를 아무도 모르게 숨겨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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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볼 안쪽 살을 깨물며 리안의 손을 잡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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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에게 의지하는 사람이 아닌, 의지가 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더 이상 겁먹은 채 울기만하던 멍청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
    ​
    그녀의 눈이 새파랗게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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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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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많이 났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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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밀어진 손이 머쓱해 바지에 손을 슥 닦으며 눈을 도르륵 굴렸다. 노아의 눈빛이 살벌한 걸 보니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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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휴, 다음부턴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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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남의 집에 와서 함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안된다. 그리 생각하며 방 안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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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지나지 않아 릴리와 제스, 아이리스가 찾아왔다. 후다닥 달려온 아이리스는 내 옆자리가 제 지정석인 것처럼 파고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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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내 다리 옆에 주저앉아 무릎 위에 얼굴을 올려놓고 그르릉거렸다. 익숙하게 제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으니 테이블 위에 식사가 차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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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말해줬으면 내가 식당으로 갔을텐데.”
    “방에서 먹으면 편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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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는 ‘앞으로 쭉 방에서 먹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어차피 나갈 일도 없는데.’라는 말을 꿀꺽 삼키며 웃어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3

릴리는 네로와 짝입니다. 소꼽친구,순애…

날이 추울까봐 테라스를 없애달라고 몸으로 표현하는 리안의 모습..대단하네요!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하핫, 낯선 천장은 무슨. 어제 노아에게 안내 받은 방이라 낯설었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는 걸 느끼며 마른침을 삼켰다.

“거겠지…?”

말이 의문형으로 끝난 이유는 잠들기 전에 봤던 천장과 색부터 생김새까지 달랐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덮고있는 이불의 감촉까지 달랐다.

‘침착하자.’

호랑이 굴에 잡혀들어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참한 호랑이와 결혼할 수 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겨우 진정시킨 후 눈을 이리저리 도르륵 굴렸다.

잠들기 전에 보았던 회색 천장이 어느새 진 갈색 나무 천장이 되어있었고, 싱글 침대가 퀸 사이즈 침대로 바뀌었다.

새하얀 이불은 실크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두툼해 피부를 스치는 감촉이 굉장히 좋았다.

슬쩍 고개를 움직여 좀 더 확실하게 바뀐 공간을 관찰했다.

“헉…!”

원래 내가 잠들었던 방은 ‘원룸’이라고 불릴 만한 크기의 방이었다. 그런 방과 비교자체가 미안할 정도로 이곳은 굉장히 넓었다. 방 세개 정도 딸린 아파트(38평)만한 크기였다.

바닥에는 부드러운 카페트가 깔려있었고, 커다란 테라스가 두 개가 한쪽 벽 양 끝에 자리잡고 있었다. 테라스 사이에는 커다란 창문이 자리하고 있어 방 안은 따로 불을 켜지 않아도 밝았다.

테라스 한 곳이 살짝 열린 채 바람이 불어, 새하얀 커튼을 살랑거렸다.

방 가운데에는 소파와 테이블이 자리잡고 있었고 벽쪽에는 딱 봐도 비싸보이는 서랍장과 책장이 있었다. 고급스러운 목재 책상도 한쪽 구역에 마련되어 있었다.

침대 – 소파,테이블 – 책장,책상.

이렇게 나란히 세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각 구역마다 다른 카페트가 깔려있어 공간이 분리되어 보였다.

‘이 비싸보이는 방은 뭐지? 설마 다른 사람의 몸에 빙의했다?’

다급히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내 머리카락 색을 확인했다. 어깨까지 자란 새하얀 머리카락이 시야에 들어왔다. 뒤이어 손등을 확인했다. 마검의 인장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후우…다행히 다른 몸에 빙의당한건 아닌가보네. 그런데…이거 언제부터 빛나기 시작한거지?’

마검은 매일 같이 피를 쪽쪽 빨아먹더니 별의별 이상한 기능이 생기고 있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인장을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손등에 관한건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여기가 어디인지 부터 조사해보자.’

곧바로 방 안으로 조심스럽게 살피기 시작했다.

“아! 내 가방, 여기 있었네!”

다행히 방 한쪽에 내 가방이 놓여있었다. 계속 잠옷을 입은 채 돌아다닐 순 없었기에 가방에서 옷을 꺼내 갈아입었다.

중간에 누가 들어오면 어쩌나 걱정되었는데, 다행히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후 테라스 쪽으로 향했다.

‘문으로 나갔다가 적이랑 마주치면 곤란하니까. 대충 어디쯤인지 확인해보자.’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이상 함부로 움직일 순 없었다.

방 안에서 보면 테라스 입구가 두 개로 보였는데, 두 개의 테라스는 이어져 있어 꽤 널찍했다. 티 테이블과 의자를 스쳐지나가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여긴…어디지?”

시야가 닿는 곳마다 진녹색의 나뭇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가득했다. 딱 봐도 네스트의 본부가 있던 곳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끄으응,어? 저 멀리 뭔가 보이는 거 같은데?’

숲 말고도 무언가가 저 멀리 보이는 것만 같았다. 나는 테라스 난간을 붙잡고 몸을 앞으로 쭉 뺏다.

“건물…은 아닌 것 같고. 엄청 큰 벽 인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벽 같은게 저 멀리 보이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거대한 벽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살펴보자 벽이 반투명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몸을 더욱 앞으로 빼며 중얼거렸다.

“벽이 아니라 저건 -…”

“리안!”

무어라 다른 답을 입에 담으려는 순간, 뒤쪽에서 비명같은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이 굳어버렸고, 자연스럽게 몸이 앞으로 쏠려버렸다.

“엇…!”

머릿속에 ‘어어어? 떨어진다?’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파바밧! 하고 달려온 누군가가 내 등 뒤를 쭉 잡아당겼다.

휘청,털썩.

그 덕분에 몸이 뒤로 쏠려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대신 몸이 비틀거리다가 테라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순식간에 시야가 훅훅 변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뒤늦게 정신을 추스른 후, 상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려는 순간.

덥석!

거친 손길에 어깨가 붙잡혔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거기에 서있었던거야!?”

“어어?”

일그러진 노아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내가 뭔가 큰 잘못을 한 것 같았다. 나는 눈을 도르륵 굴렸다.

“그, 위험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죽지 않을테니까. 이 정도 높이는 괜찮지 않나?”

‘미안해, 내가 실수했어.’

아.

나는 뒤늦게 생각과 말이 반대로 튀어나갔다는 걸 자각했다. 슬쩍 노아의 얼굴을 바라보자,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게 보였다.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것을 마주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나는 곧바로 두 손을 저어보이며 말했다.

“아니,그게! 내가 번지 점프! 번지 점프가 익숙해서 말이 잘못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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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점프..? 그게,뭔데?”

리안이 테라스 밖으로 몸을 빼고 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지만, 그걸 별거 아닌 일이라고 치부하는 모습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노아는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비명을 억누른 채, 리안의 변명을 기다렸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준 노아에게 리안은 끔찍한 말을 서슴없이 입에 담았다.

“몸을 줄로 묶어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놀이야.”

“뭐?”

“나도 처음에는 억지로 떠밀려서 해봤는데, 생각보다 안 무섭더라고.”

주먹 한 방에 하늘을 날아다니는 개그 주민에게 번지 점프는 어린 시절에 타던 그네와 다를 바 없는 놀이 기구였다.

문제는 랜덤할 확률로 환하게 웃으며 뛰어내리던 모습이 영정사진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줄도 없는 맨 몸인데 바보같이 착각해버렸나봐, 하하핫. 걱정시켰다면 미안해.”

“…”

노아는 리안의 사과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건,이건..아니야.’

노아가 보기에 리안은 조금전에 벌어질 뻔 했던 끔찍한 사고가 정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사과는 어디까지나 ‘노아를 놀라게 해서 미안해.’라는 의미 일 뿐이지 그 이상이 의미를 담겨 있지 않다는 걸, 노아는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줄을 매달고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고? 그것도 억지로?’

별거 아닌 일상을 이야기 하듯 늘어놓는 말 속에 그의 상처가 훤히 드러나있었다. 하지만 본인은 제 상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태연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엉망진창으로 다친 아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헤실헤실 웃고있는 꼴을 마주한 것만 같았다. 노아는 목이 턱 막히고 눈가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그가 어디서부터 망가진 것인지 알 수 없어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줄을 몸에 매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건 해선 안되는 일이다. 고통을 견딜 수 있다고 해서 절대 괜찮은 일이 아니다. 따위의 말이 머리 속을 맴돌았지만 그를 몰아붙이 듯 소리칠 것 같아 아무런 말도 뱉지 못했다.

이미 피투성이가 된 그를 상처입히고 싶지 않았다.

“그나저나 노아 여긴 어디야? 원래 내가 잠들었던 방이 아니라서 깜짝 놀랐어.”

“…어제 네가 잠든 곳은 일반 조직원들이 머무르는 곳이야. 간부들은 모두 이 건물에서 생활하고 있어. 최대한 외부에 알려지면 안되는 곳이라 네가 잠들었을 때 몰래 데려왔어.”

“아아! 어휴, 나는 그것도 모르고 깜짝 놀랐다니까! 납치라도 당한줄 알고! 하하핫!”

분위기를 환기시켜보고자 리안은 힘차게 웃어보였다. 하지만 노아의 기분은 더욱 깊게 가라앉을 뿐이었다.

‘납치를 당했는데 테라스 밖으로 몸을 던지려고 했다고?’

노아는 순간 머릿속에 끔찍한 실험 장면이 떠올랐다. 그 장면을 떠올리자 어째서 리안이 테라스 밖으로 몸을 던지려고 했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전혀 괜찮지 않았던거잖아.’

리안은 항상 말했다. 자신은 금방 회복하는 몸이라 괜찮다고. 아프지도 괴롭지도 않았다고.

그리 말하며 환하게 웃어보이는 리안의 모습에 노아는 항상 속아넘어갔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속은 이미 썩어 문드러져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노아, 바닥은 차갑잖아. 안에 들어가자.”

그런 주제에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 먼저 손을 내미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온기에 모여든 이들이 얼마나 애가 타는지도 모른 채, 제 상처를 아무도 모르게 숨겨버린다.

노아는 볼 안쪽 살을 깨물며 리안의 손을 잡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에게 의지하는 사람이 아닌, 의지가 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더 이상 겁먹은 채 울기만하던 멍청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이 새파랗게 번뜩였다.

***

‘화가 많이 났나봐..’

내밀어진 손이 머쓱해 바지에 손을 슥 닦으며 눈을 도르륵 굴렸다. 노아의 눈빛이 살벌한 걸 보니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어휴, 다음부턴 조심해야겠다.’

역시 남의 집에 와서 함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안된다. 그리 생각하며 방 안으로 향했다.

얼마지나지 않아 릴리와 제스, 아이리스가 찾아왔다. 후다닥 달려온 아이리스는 내 옆자리가 제 지정석인 것처럼 파고들었고.

제스는 내 다리 옆에 주저앉아 무릎 위에 얼굴을 올려놓고 그르릉거렸다. 익숙하게 제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으니 테이블 위에 식사가 차려졌다.

“아, 말해줬으면 내가 식당으로 갔을텐데.”

“방에서 먹으면 편하잖아요.”

릴리는 ‘앞으로 쭉 방에서 먹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어차피 나갈 일도 없는데.’라는 말을 꿀꺽 삼키며 웃어보였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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