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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

    <82 – 가짜깃발>

     

    바닐라는 결국 깃발의 구매에 실패했다.

     

    “미안해요, 용사님.”

    “아니에요. 제가 부탁드린 일인걸요.”

    “착수금으로 받은 포인트는 돌려드릴게요.”

    “10포인트는 제가 드리는 착수금이에요. 성공유무와 별개로 제가 드리는 포인트니 받아서 오늘 저녁 밥값이라도 하세요.”

    “고마워요!”

     

    이슈타르는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직접 나서면 경계를 살까봐 다른 이를 시켜서 깃발매수를 시도했건만, 명석한 오크노디는 대리인을 내세운 구매를 간파했다.

    그렇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대한 정보를 얻었기에 아쉬움은 덜했다.

     

    “바닐라가 듣는 강의를 전부 알고 있었다니, 오크노디의 정보력이 심상치 않네요.”

    “정말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요! 겁에 질린 바닐라의 어깨를 토닥토닥 해주세요, 용사님!”

    “그건 좀.”

     

    자신에게 안기려 드는 바닐라의 어깨를 양 손으로 붙잡아 매정하게 떼어낸 이슈타르.

    바닐라를 돌려보낼 때까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했지만, 시무룩한 얼굴로 바닐라가 돌아가자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이슈타르. 뭘 좋아하는 건가요.”

    “유피. 들었어? 오크노디가 나한테 관심이 있나봐.”

    “…그 아이는 암살자잖아요.”

    “내가 눈여겨본 수속성 동료후보 1순위이기도 하고.”

    “암살자가 사전정보를 수집하는 경우는 보통 하나밖에 없거든요?”

     

    앞에서는 제 동료가 되기 싫다고 했으면서 뒤로는 제가 듣는 강의와 같은 반 학생들의 목록까지 조사했다며 기뻐하는 용사와 달리, 성녀는 긴장했다.

     

    “제 생각이지만… 오크노디 양은 어느 조직의 사주를 받고 접근한 암살자가 틀림없어요. 그것도 당대 용사의 암살명령을 받은 암살자요.”

    “유피. 걱정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오크노디는 이제 막 10살인 꼬마아이잖아.”

    “A그룹 수석을 나이 가지고 얕잡아보지 말아요. 이슈타르. 용사인 당신에 비견될 정도의 강자라고요.”

     

    두 사람의 대화에 그들과 같은 조였던 스콜라가 유피의 의견을 거들었다.

     

    “그 아이는 궁술도 범상치 않았습니다. 궁술로는 능히 981기에서 2위라고 생각합니다. 1위는 물론 신궁의 후예인 제 몫이지만요.”

    “들었어? 궁술에 조예가 있다면 <저격>도 할 수 있을지 몰라. 마음 놓으면 안 된다고.”

    용사 이슈타르의 정식파티원은 성녀 유피 한 명.

    981기 궁수랭킹 1위인 자신이라면 능히 이슈타르의 동료 자리를 꿰어찰 수 있으리라 믿은 스콜라의 가세였지만…….

    흠칫.

    정작 스콜라를 쳐다보는 이슈타르는 1위인 그보다는 2위인 오크노디에게 관심이 많아보였다.

     

    “정말인가요? 오크노디의 궁술은 어땠죠?”

     

    스콜라는 그녀의 궁술을 떠올렸다.

     

    “이동사격을 시험하는 경주였는데 우선 발이 날래고 몸이 가벼웠습니다. 코어근육까지 발달되어서 불안정한 자세에서도 충분히 화살에 힘을 싣고는 했죠.”

    “힘이 세서 파워샷을 능숙하게 구사하기도… 음, 그 외에 특기할만한 점은 시야가 넓다는 점일까요.”

    “하지만 자신보다 뒤처지는 동급생을 돌보느라 경주 도중에 트랙을 역주행해서 함께 달릴 정도로 어수룩한 면모도 있었습니다. 결국은 애라는 거겠죠.”

     

    너무 칭찬만 한 것 같아서 마지막에는 오크노디의 단점도 슬쩍 더했다.

    오크노디보다는 자신이 궁수로서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어필하기 위한 발언이었지만 의도와 달리 용사의 표정은 싸늘하기만 했다.

     

    “실망이군요, 스콜라.”

    “…용사님? 오해입니다! 저는 그 아이를 폄하하려던 것이 아니라…!”

    “폄하가 아니라면. 당신은 정의롭고 선량한 마음씨를 볼 때마다 그것을 애 취급 하는 것을 당연한 상식이라고 여긴다는 말이군요. 그럼 정의를 숭상하는 용사인 저도 당신 눈에는 애처럼 보이나요?”

    “전혀 아닙니다!”

    “변명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게 당신이 살아가는 방식이라면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단지 저와는 맞지 않을 뿐이죠.”

     

    용사파티 동료의 자리가 목전에서 날아갔다는 생각에 스콜라는 속이 쓰렸다.

     

    ‘역시 동료는 힘이 좋아야지.’

     

    반면, 이슈타르는 기분이 좋아졌다.

    수속성 할당제에 궁수할당제, 근력가산점까지 오크노디를 뽑을 이유가 잔뜩 늘었다.

    이 정도면 1순위를 넘어서 0순위 영입후보군이다.

    본인도 마음이 있으니 교우관계 조사까지 했겠지.

    츤데레 같기는!

     

    ‘이번 강의에서 용사의 유능함을 보여주면 오크노디도 더는 내숭을 떨지 못하고 솔직하게 동료가 되어줄 거라 생각했지만…. 아쉽게 됐네.’

     

    오늘만 기회가 있는 건 아니다.

    용사는 훗날을 기약하기로 결심했다.

     

     

    * *

     

     

    -내가 왔다!

     

    결국 교장이 등장할 때까지 이슈타르는 막판뒤집기로 깃발개수를 역전하는 것에 실패했다.

     

    -5인1조로 모은 깃발들을 각자 바구니에 집어넣어라. 깃발의 총 개수에 따라 순위를 매겨주마.

     

    드래곤 교장은 많아봤자 팀당 열 개에서 스무 개를 예상했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으니까.

    바구니마다 깃발이 넘치도록 가득 담기고 심지어는 탑 쌓듯이 위로 수북하게 올라오는 깃발더미들을 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왜 이렇게 깃발들이 많지?

     

    학생들은 내심 기대했다.

    가짜깃발도 진짜로 인정해주면 이 깃발로 랭킹이 떡상할 수 있을 텐데!

     

    -누가 가짜 깃발을 풀었군.

    -무려 삼백 개나.

    -참으로 당돌해.

     

    상인의 자질이 가짜깃발을 많이 팔기로 결정된다면 지젤은 훌륭한 대상인이었다.

     

    ===

    □후라이드 공자팀(B) – 합계 122개

    □아카디아 공녀팀(A) – 합계 112개

    □야요이 3황녀팀(B) – 합계 69개

    □오크노디 수석팀(A) – 합계 63개

    □이슈타르 용사팀(B) – 합계 58개

    □매스각키 2황녀팀(B) – 합계 55개

    □지젤 팀(A) – 합계 8개

    □안데르센 팀(A) – 합계 6개

    □카시아 팀(C) – 합계 5개

    ===

     

    사방에 넘쳐나는 가짜깃발들!

    정직하게 경쟁에 임한 것은 포인트가 아까웠던 하위 2팀과 가짜깃발을 모두 팔아치운 지젤 팀, 애초에 깃발이 많았던 오크노디 팀 정도였다.

    모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여기에는 아직 한 팀, 가짜깃발을 지니지 않은 팀이 존재한다.

     

    -가짜깃발은 당연히 전부 무효다!

    -지금이라도 자수하면 기특한 정성을 봐서 벌점은 봐주지.

     

    드래곤 교장이 선처를 베풀자 학생들은 깃발을 하나 둘 바구니 옆으로 덜어냈다.

     

    “어? 잠깐만. 이게 가짜였어 진짜였어?”

    “몰라. 다 똑같이 생겼잖아.”

    “교, 교장님. 만일 진짜 깃발을 바구니에서 내려놓으면 어떻게 됩니까?”

     

    -당연히 계산되지 않는다.

     

    “그럼 가짜깃발이 바구니에 남아있으면요?”

     

    -벌점을 각오해야겠지?

     

    학생들은 원망스레 지젤을 돌아봤다. 기껏 천장도 10+1연차도 없는 가챠에 포인트를 쏟아 부었건만 돌아오는 것은 냉혹한 벌점이라니!

     

    “규, 규칙성을 찾아야해. 진짜 깃발은 어떻게 생겼었지? 이게 진짠가? 저게 진짠가?”

    “싯팔 우린 다 망했어! 후라이드 녀석, 쓸데없이 깃발을 많이 사서 진짜 깃발까지 조졌잖아!”

    “니들도 좋다고 거들었잖아! 애초에 가장 많이 포인트를 쓴 건 나라고!”

    “알게 뭐야! 조장은 너니까 네가 책임져!”

    “세레브한 와타시가 아카데미 첫 주차만에 벌점을 얻은 열등생…? 이런 내용, 본가에 보낼 서신에는 적을 수 없는데스!!”

     

    혼란에 빠져 깃발을 뒤적거리거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절규하거나 서로 멱살을 잡는 학생들.

    수라장 속에서 매스각키가 탕탕 소리를 내며 책상을 내리쳤다.

     

    “주목!”

     

    혼란에 빠졌던 제국측 학생들이 매스각키를 돌아보았다. 명색이 2황녀가 호출을 하는데 주목하지 않을 수 있는 생도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한심하게 망했다는 얼굴이나 하고, 너무 한심하지 않아~? 허접♥ 열등생♥ 막판역전의 찬스는 아직 남았다고♥”

     

    매스각키는 충격적인 방안을 떠올렸다.

     

    “가짜깃발을 다른 팀 바구니에도 마구 섞어버리면 모든 팀이 전부 벌점을 받게 된다구~?”

    “!!!”

    “그런 명안이!!”

    “역시 황녀님이십니다!”

    “가짜깃발이 없는 팀은 오크노디 팀과 지젤 팀, 안데르센 팀에 C그룹 다섯이 모인 팀인가!”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자 지젤이 급히 거수를 하며 드래곤 교장에게 말했다.

     

    “제출은 이미 끝난 거 아닙니까?”

     

    -목요일까지 깃발을 가져오라고 했지, 강의가 시작되면 마감이라고 말한 적은 없다만?

     

    지젤이 간과한 점이 있다면, 교장의 인성은 상상 이상으로 고약하다는 것!

     

    -세상을 살다보면 마감기한에게 뒤통수를 맞는 일은 한두 번이 아니지.

    -갑작스러운 일정변경으로 오후 1시까지 학회에 보내야 할 논문접수마감기한이 오후 2시로 변경되는가 하면, 의문의 괴한이 학회를 습격해 그 한 시간 사이에 논문을 불태우는 일도 벌어질 수 있지!

    -제멋대로 변경되는 마감기한 속에서도 팀의 성과물을 지켜내는 것.

    -이것은 너희가 향후 아카데미는 물론이고 냉혹한 사회에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도 반드시 겪어야 할 귀중한 경험이다.

     

    듣는 사람도 그런 건가? 싶을 정도로 묘하게 구체적이고 그럴싸한 예시.

     

    ‘교장이 시간을 바꾼 거 아니야?’

    ‘교장이 불태웠을지도 모르지.’

    ‘<드래곤의 생식행위는 용 상태와 인간 상태 중 어느 상태로 이루어질까>에 대한 논문이 수치스럽다고 지가 불살랐으면서 시치미 떼기는!’

     

    학생들이 의심어린 눈으로, 유난히 키가 작은 학생 하나는 확신어린 눈으로 교장을 쳐다보는 사이, 교장은 최종제출기한을 발표했다.

     

    -제출기한은 앞으로 30분 뒤.

    -그 동안 상대팀의 깃발을 불태우든 힘으로 빼앗든 가짜깃발을 섞어버리든 마음대로 해라.

    -심사는 30분 뒤, 각 팀에게 주어진 바구니에 담긴 깃발들로만 실시한다.

     

    요컨대 앞으로 30분. 순도 100% 진짜 깃발만 모아놓은 팀들은 쟁쟁한 상급반 동급생들 사이에서 깃발방어전을 벌여야한다.

    가장 많은 학생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히 가장 많은 진짜깃발들을 모은 오크노디 팀.

     

    ‘어라? 이거, 잘하면 오크노디가 솔직하게 동료가 되도록 만들 수 있는 찬스?’

     

    용사 이슈타르 또한 눈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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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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