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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

       ─추출하겠습니다.

       

       철밥통은 주사기와 흡사한 모양새의 아티팩트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축 늘어진 리버레이션 간부의 시체 머리 부분에 주사기를 꽂아 넣었다.

       

       쭈우욱-

       간부의 머리에서 뇌수 같은 것이 빨려 나왔다. 저 주사기는 마나 추출기이며, 빨려 나오고 있는 것은 마나였다.

       

       ─추출 완료했습니다.

       “수고했어.”

       

       마나가 가득 채워진 아티팩트를 건네받은 뒤. 짭현성을 소환했다.

       

       ─푸으!

       

       이번에는 짭현성의 몸에 아티팩트를 꽂았다. 밀대 부분을 밀어 넣자 마나가 안정적으로 주입되었다.

       

       이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간단했다. 짭현성은 마나를 흡수하는 능력이 없기에, 마나의 주인이 직접 주입시켜주지 않는다면 능력을 사용할 수 없으니까.

       

       리버레이션의 간부가 살아있었다 해도 스스로 마나를 넘겨줄 리는 없을 테니, 차라리 죽인 뒤에 강제로 마나를 취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밥통이에게 마나 추출기 아티팩트 제작을 의뢰하기도 했고.

       

       ─푸으!

       

       마나를 전부 주입받은 짭현성의 몸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진흙이 되어 바닥에 퍼진 짭현성의 몸이 잿빛으로 물들고, 이내 다시 색을 되찾기 시작하며 점차 인간의 형태를 갖추었다.

       

       이윽고.

       리버레이션 간부와 완벽히 일치하는 외형으로 변모하는 데 성공했다. 외형 카피 스킬이었다.

       

       탈바꿈한 모습을 확인한 뒤.

       시선을 밥통이에게 옮기며 얘기했다.

       

       “밥통아. 저번에 부탁했던 거 가지고 왔지?”

       ─그렇습니다. 제작하는 데 애 좀 먹었습니다.

       “그래, 고생했어. 아무튼 빨리 줘.”

       

       철밥통은 어깨에 걸치고 있던 배낭을 내려놓았다. 지퍼를 열고 안에 손을 넣어 휘적거리기를 잠시. 행동을 멈춘 철밥통이 살짝 고개를 들고 나를 응시했다.

       

       ─건네드리기 전에, 머리부터 쓰다듬어주십시오.

       

       남들이 보면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확연히 토라진 얼굴이었다.

       표정이 없어도 주인인 나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삐졌나?’

       

       일단 바로 쓰다듬어줬다.

       토라진 이유는 대강 짐작이 갔다.

       어젯밤, 깨비의 머리만 쓰다듬고 곧장 자버려서 그런 거겠지.

       

       ─좋습니다. 넘겨드리겠습니다.

       

       참 손이 많이 가는 소환수였다.

       

       그렇게 두 개의 아티팩트를 건네받고.

       리버레이션 간부의 모습으로 변한 짭현성의 구강에 아티팩트 하나를 설치했다.

       

       “아아.”

       

       손에 들고 있는 네모난 아티팩트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소리를 내봤다.

       

       “아아.”

       

       그러자 짭현성의 입에서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물론, 내 목소리가 아닌 리버레이션 간부의 목소리였다.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이 음성 변조기, 짭현성 구강에 심어진 것이 음성 변조기와 연결된 스피커였다.

       

       ‘서한빛이 눈에 불을 켜고 탐냈었는데···. 오늘 사용하면 쓸 일도 없을 거 같으니, 돌아가면 선물로 줘야겠네.’

       

       서한빛은 마취총까지 제작해서 자신한테 주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왠지 이상한 곳에 쓰려는 것 같아서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여하튼 잠입 준비는 이로써 끝마쳤다.

       

       “오. 도플갱어인가요?”

       

       이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빙결 길드의 간부가 물었다.

       

       “아뇨. 클론 골렘이라고, 도플갱어보다 하위호환인 마물이에요. 도플갱어도 소환할 수 있기는 한데, 그 녀석을 써먹기에는 적절치 않은 작전이라서요.”

       “아. 하긴···. 도플갱어는 복사한 대상의 성격까지 닮는 경우도 있어서 까다롭기는 하겠네요.”

       

       간부는 시체 흡수기를 통해 시체를 수거했다. 처리가 완료된 걸 확인한 나는 곧장 몸을 틀고 말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김수한한테 전해 들은 얘기는 잊지 않으셨죠?”

       “물론이죠. 최대한 사망자가 나오지 않도록 주의할 테니 걱정 마세요. 그런데 정말 리버레이션 쪽에 저희 인원이 붙지 않아도 괜찮은가요?”

       “자만이 아니라, 진짜로 저하고 김수한 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렇다면야 뭐, 건투를 빌게요.”

       

       이후.

       빙결 길드 간부는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나는 김수한과 접선 후 함께 리버레이션 놈들이 모여있는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위치는 철밥통이 생명 감지를 통해 알아낸 뒤였다.

       

       

       

       

       

       ***

       

       

       

       

       철원의 어느 황무지.

       고구려 길드가 주둔하고 있는 곳에 차유라가 당도했다.

       

       “일찍 오셨네요?”

       “아 네···. 안녕하세요···.”

       

       부길드장인 지민호가 차유라를 반겼다.

       차유라는 고구려 길드에 임시로 가입하고 이번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명령이 아닌 오로지 그녀의 의지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한창 전쟁을 준비하느라 분망한 고구려 길드원들을 둘러보며, 차유라는 침을 꼴깍 삼킨 뒤 긴장되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괜찮을 거야···. 나한테는 이게 있으니까.’

       

       차유라는 주머니 속에 고이 넣어둔 부적을 매만졌다. 소환 아티팩트. 소환 대상으로 이현성이 등록되어 있는 부적이었다.

       

       ‘그리고 바선생이랑 바둥이들도 있고.’

       

       바선생과 바둥이.

       킹 바퀴와 엘더 바퀴에게 차유라가 직접 붙여준 애칭이었다. 공식적인 이름은 아니다.

       

       뒤에 붙어서 쫄래쫄래 따라오고 있는 거대한 바퀴벌레들을 보며 안정을 되찾고 있던 중.

       

       “유라 왔니? 오랜만이네?”

       

       다채로운 색의 한복을 걸친 중년의 여인이 말을 걸어왔다. 손에는 부채가 들려 있었다. 고구려 길드 간부급 이상이라는 증표였다.

       

       그녀가 누구인지 곧장 알아본 차유라는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그렇게 깍듯할 필요 없어.”

       

       부채로 입을 가리며 웃는 여자.

       그녀의 정체는 바로 고구려 길드의 길드장, ‘박아라’였다.

       

       “네가 어렸을 때는 나한테 반말도 하고 그랬잖니? 내가 차병호 그 인간은 혐오하지만 넌 아니니까, 예전처럼 편하게 말 놓아도 돼.”

       “아니에요. 어떻게 박유문 길드장님께 반말을···.”

       “···박아라라고 불러줄래? 언제 적 이름을.”

       

       미소로 가득 차있던 박아라의 얼굴이 별안간 일그러졌다.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은 차유라는 다급히 허리를 구십 도로 숙이며 사죄했다.

       

       “죄, 죄송합니다! 박아라 길드장님!”

       “그래.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주의해 주렴.”

       

       박아라는 이 부분에 대해서 예민했다.

       그녀는 태생부터 여자였던 것이 아닌, 성전환을 통해 남자에서 여자가 된 경우였으니까.

       

       여자가 된 것도 오래되지는 않았다.

       불과 5년 전에 성전환을 했으니 말이다.

       그전까지는 항상 여장만 하고 다녔다.

       

       그렇다고 또 남자를 좋아하는 성소수자는 아니었다. 여자를 좋아하는 평범한 성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성전환을 했을까?

       그 이유는 박아라의 부인이 동성애자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을 숨기고.

       소꿉친구의 연에서 비롯된 의리 하나만으로 결혼까지 한 아내를 처음에는 원망했지만, 여전히 아내를 사랑했기에 결국에는 자신이 여자가 되는 방향으로 타협을 본 것이었다. 서로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여장을 하고 다녔던 이유도.

       오직 자신의 아내를 위해서였다.

       

       아무튼.

       그녀 앞에서 예전 이름을 부르는 것과 남자였던 과거를 들춰내는 것은 고구려 길드에서 금기시되는 일이었다. 물론 박아라의 아들들은 꾸준히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얘네들은 뭐니?”

       

       박아라는 차유라 뒤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바퀴 마물들을 보고 호기심이 가득 찬 눈으로 질문했다.

       

       차유라는 바선생의 더듬이를 쓰다듬으며 바퀴들을 소개했다.

       

       “제 친구들이에요.”

       “···멋진 친구들이구나. 혹시 이현성이라는 아이가 소환해 준 마물이니?”

       “네. 제가 걱정된다고 일부러 벌레 마물들이 가득한 던전까지 가서 재료를 얻고 진화시켜 줬어요.”

       “지극정성이네 아주. 혹시 둘이 연인 관계야?”

       “그, 그건 아니에요···.”

       

       얼굴을 붉히며 부정하는 차유라를 보며, 박아라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딱 보니까, 그 남자애가 너한테 관심 있는 것 같은데? 아니면 그렇게까지 수고를 할 이유가 없잖아?”

       “설마요. 그냥 친구라서 도와준 것뿐이에요. 걔가 원래 마음이 고와서···.”

       “남녀 사이에 친구는 없단다?”

       “진짜 아니에요···.”

       “남자는 관심 없는 여자한테는 말도 안 거는 거 모르니? 다 너한테 마음이 있으니까 그러는 거지.”

       “···그러고 보니, 다른 애들한테 하는 것보다 유독 저한테 더 친절한 것 같기도···.”

       

       팔랑귀인 차유라는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왜 나한테만 고백을 안 한 거지? 그전에는 마음이 없다가, 같이 지내다 보니 나한테 서서히 빠져든 건가?’

       

       어쩌면.

       조만간 이현성이 고백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금세 상념을 떨쳐내 버렸다.

       

       ‘···지금은 아버지, 아니 차병호 일에만 집중하자.’

       

       아버지를 떠올리자 기분이 더럽고 속이 메스꺼워졌지만, 함께 있는 바선생과 바둥이들을 보며 위안을 느꼈다. 전부 이현성 덕이었다. 그에게는 한없이 고마웠다.

       

       상념을 떨쳐낸 지 몇 초만에.

       다시 이현성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

       항상 콩고물이라도 하나 얻어먹으려 접근하는 속물적인 인간들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남자였다.

       

       ‘나처럼 벌레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탐색꾼들이 극도로 꺼려하는 던전에 갈 정도니까···. 이건 날 좋아하는 게 확실해.’

       

       이현성의 얼굴이 머릿속에 스쳐 눈에 아른거렸다. 이번에는 가슴이 두근거리며 열까지 올라왔다.

       

       ‘나를 구속하던 족쇄만 없애면, 나도 내 인생을 살아가는 거야. 못해봤던 연애도 해보고···.’

       

       차유라는 남이 정해준 거짓된 관계가 아닌, 스스로 원하는 관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연인 관계 또한.

       

       ‘고백해 오면 바로 받아주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박아라가 차유라의 어깨에 손을 얹고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긴장은 좀 풀렸니?”

       “아, 네!”

       “후후. 원래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법이란다. 자, 그럼 슬슬 가볼까?”

       

       마치 긴장을 풀어주려 이 대화를 유도했다는 듯 말한 박아라가 구름 한 점 없는 창공을 응시했다. 차유라도 시선을 따라갔다.

       

       퍼엉-!

       

       상공에서 폭발이 일어남과 동시에.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포성이 울려 퍼졌다.

       

       【2DE6Q-1P8TB97에서 알립니다.】

       【현 시간부로 전쟁 지정 구역, 철원은 무법지대로 전환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소리 증폭 아티팩트인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성이 철원 전체로 빠르게 뻗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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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s Only Monster Summoner

The Academy’s Only Monster Summoner

아카데미 유일급 마물 소환사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a madman in the novel who confessed to the heroines and was dum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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