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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

    베르그가 아담과 대화하러 떠난 이후, 네르와 아르윈은 묘한 분위기 속에서 베르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가 분노하여 헤아 교단을 내쫓던 모습에 둘은 말 없이 놀라고 있었다.

     

    평소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니 더욱 혼란스러웠다.

     

     

     

    -끼이익…쿵.

     

     

    둘은 말 없이 고요한 베르그의 집으로 들어선다.

     

    사람 하나가 빠지니 공허하게 느껴지는 집.

     

    그들은 이제야 집이 지닌 원래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듯 했다.

     

     

    아르윈은 성기사들에게 돌진하던 베르그의 뒷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갤리아스 때도 느꼈지만…이번에도 똑같은 의문이 떠오른다.

     

    죽는게 두렵지 않은걸까.

     

    왜 그렇게 무모한 싸움을 벌이려고 한걸까.

     

    베르그가 느껴야할 두려움을 아르윈은 멋대로 삼킨 것 같았다.

     

    뛰는 심장은 아직까지도 가라앉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걸까요.”

     

    그녀만 놀라고 있는것도 아니었다.

     

    네르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어왔다.

     

     

    아르윈은 근처 의자에 조신히 앉으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

     

     

    헤아 교단과 대체 어떤 사이이길래 이런 일이 발생한걸까.

     

    도대체 그 교단이 왜 베르그를 찾아온걸까.

     

    베르그는 왜 그 교단을 보며 앞뒤 가리지 않고 화를 낸걸까.

     

    혹시 베르그가 종교를 믿지 않는것과 상관이 있을까.

     

    성기사는 어떻게 베르그를 알아본걸까.

     

     

     

    수많은 의문의 조각들을 맞춰보려 애쓴다.

     

     

    혹시 베르그는 성기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던 중이었을까?

     

    부모님이 헤아 교단의 고위 신도들이었던 걸까?

     

    헤아 교단이 베르그를 쫓으려고 했던 적이 있는걸까?

    밖으로 퍼져서는 안될 헤아 교단의 정보를 베르그가 알고 있는걸까?

     

    “…”

     

    무엇하나 확신할 수가 없다.

     

    비어있는 정보들이 너무 많았다.

     

     

    “…베르그랑 대화를 해야 알 것 같아.”

     

    끝내 아르윈이 결론을 내렸다.

     

    네르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로 둘은 한참을 가만히 앉아 오지 않는 베르그를 기다렸다.

     

     

    조용한 시간 속에서 긴장감이 천천히 낮춰진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둘만 남는건 또 오랜만이었다.

     

    서로에게 속내를 밝힌 비밀 친구.

     

     

     

    아르윈은 조용히 제 반지를 만지다, 네르를 향한 의문들이 피어올랐다.

     

    베르그가 있을때는 묻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다.

     

    마을로 돌아오던 여정만 하더라도 그렇다.

     

     

    연기 하나 할 필요 없는 상황속에서, 제 꼬리를 베르그의 허리에 둘렀던 네르의 모습이 잊혀지질 않았다.

     

    그 외에도 몇가지의 어색한 부분들도 기억에 남았다.

     

     

    아르윈은 이 질문들을 물어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조용히 고뇌했다.

     

     

    “…반지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하지만 그러는 동안, 네르가 먼저 화두를 던졌다.

     

    아르윈은 네르를 한번 보았다가, 제 반지를 다시 내려다본다.

     

     

    간단한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할지 고민하게 된다.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아.”

     

    아르윈은 가벼운 말투로 네르의 질문에 답한다.

     

    네르는 끄덕이다 말했다.

     

     

    “그렇구나. 저랑은 달리 빨리 익숙해지시네요.”

     

    “…우리의 반지가 조금은 더 편한걸까?”

     

    “…우리요? 저는 이제야 편해졌는데…”

     

     

    아르윈은 제 말을 정정했다.

     

    “아, 나와 베르그의 반지 말이야.”

     

    “…”

     

     

    네르는 유심히 아르윈을 바라보다, 제 꼬리를 깔고 앉았다.

     

    그리고는 묻는다.

     

     

     

    “…설마 베르그한테 벌써 빠지셨어요?”

     

     

    아르윈은 그 질문에 숨을 삼켰다.

     

    갑작스레 깊이 들어오는 노골적인 질문인것도 있었지만…늑인족이 물어와서 그럴까.

     

    급히 사랑에 빠지는 사람에 대한 무시가 깔린 질문 같았다.

     

     

    아르윈은 평정을 유지했다.

     

    네르가 질문을 던진 말투나 분위기 때문에 달리 답할 수 있는건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일까? 왜 갑자기 그런걸 물어?”

     

    “예전과 달리 분위기가 달라지신 것 같아서…”

     

    아르윈은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네르에게 답했다.

     

     

    “…단명종을 사랑할 수 없다 말했잖아?”

     

     

    그리고 그런 그녀의 대답에, 네르는 고개를 단박에 끄덕인다.

     

    “그렇네요. 그랬죠.”

     

    “…”

     

    하지만 막상 네르가 고개를 그렇게 끄덕이니, 아르윈은 이상한 찝찝함을 느꼈다.

     

    묘하게 네르가 대화를 주도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한참토록 침묵이 이어진다.

     

    끝내 네르는 숨을 조금씩 들이쉬더니, 속삭이듯 아르윈에게 물었다.

     

    “아르윈님?”

     

    “응.”

     

     

    “…앞으로 제가 베르그와 계속 잘까요?”

     

    “…”

     

    “…저는 이제 익숙해졌는데.”

     

     

    네르의 제안에 아르윈의 심장에 또 돌이 얹어진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베르그와 함께하는 밤을 떠올렸다.

     

    며칠전만 해도 악몽에 들었던 그녀를 깨워, 안도하도록 그녀를 진정시켰던 그였다.

     

    그때 느꼈던 따스함이 얼마나 그녀를 흔들었는지 모른다.

     

    이후 그 새벽에 이어진 대화로, 그에게 궁술까지 배우게 되었다.

     

    …아르윈에게는 더 없는 추억이 되어가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니, 네르의 제안은 거절하고 싶었다.

     

    베르그와 함께하는 밤은 이제 아르윈이 거부감을 갖는 행동이 아니었다.

     

    …외려 베르그가 곁에 없는 밤이 이제는 심심할 정도였다.

     

     

    하지만 방금전 단명종을 사랑할 수 없었다고 해서 그럴까.

     

    네르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신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아까 했던 말이 거짓말처럼 들릴 것 같다.

     

     

    “…”

     

    그러니 아르윈은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너는 어때, 네르?”

     

    “네?”

     

    “…베르그에게 빠졌어?”

     

    “…”

     

    “네 할머니, 메이벨에게 점지 받은 귀족은 이제 포기했어?”

     

    “…왜 그런걸 물으시죠?”

     

     

     

    “지금 같이 자고 싶다길래.”

     

    “같이 자고 싶은게 아니라…아르윈님만큼 힘들지는 않을 것 같아서요.”

     

     

    “난 버틸만해.”

     

    “그럼 다행이구요.”

     

     

    아르윈은 얼렁뚱땅 질문을 넘기려는 네르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르윈도 궁금했었으니.

     

     

    “그래서, 베르그에 대한 마음이 바뀐거야?”

     

    아르윈은 네르가 베르그의 품속에 들어가 키득대던 모습을 떠올리며 물었다.

     

    “아까도 베르그의 허리에 꼬리를 감던데.”

     

     

    “…연기를 부탁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마을을 떠난 이후로도 감고 있었잖아.”

     

    “…”

     

    “네 운명의 상대가, 네게 그런 과거가 있었다고 한다면 싫어하지 않을까.”

     

    “베르그는 제 첫 친구에요. 조금 더 특별한게 당연한거죠.”

     

     

    그런 네르의 말에, 아르윈도 제 행동들에 대한 변명을 마무리 짓기로 한다.

     

    “나도 마찬가지야. 베르그만큼 친한 사람은 처음이라…그래서 네가 느끼기에는 내 분위기가 달라졌나봐.”

     

     

    둘은 서로를 바라보다, 시선을 떼어낸다.

     

    이 주제는 이걸로 끝이었다.

     

     

    아르윈은 네르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니, 누군가가 집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베르그가 왔네요.”

     

    네르가 말한다.

     

     

    아르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

     

     

     

    베르그에게 물어볼것이 산더미였으나, 그는 휴식을 취하고 싶다며 네르를 데리고 방으로 돌아갔다.

     

     

    아르윈은 자신도 모를 답답함을 느낀다.

     

    헤아 교단에 대한 의문을 빨리 풀고 싶었다.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싶다.

     

     

    “…”

     

    하지만 또, 네르와 함께 사라진 베르그의 뒷모습에 씁쓸함이 남은 것 같기도 했다.

     

    아까전 네르와의 대화 때문일까.

     

    더더욱 답답한 경향이 있었다.

     

     

    혹시라도 베르그가 다시 방에서 나올까, 아르윈은 거실에 앉아있었다.

     

    아직 잠에 들기에는 이른 시간이기도 했다.

     

     

    아르윈은 어느새 침묵을 지키며 집 안에서 울려퍼질 소음에 집중했다.

     

    “…”

     

    완전한 고요.

     

    네르와 베르그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하지만 보이지 않는만큼 상상력은 크기를 키웠다.

     

     

    아르윈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창가에 붙는다.

     

    그곳에서 창문을 열어 밤공기를 받아들였다.

     

     

    그녀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행동하고 있었다.

     

    조용히 마법을 외우니, 그녀의 두 눈이 푸르게 빛난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파닥이는 소리와 함께 한 새가 날아든다.

     

    용사 일행의 마법사 실프리엔에게 배운 마법이었다.

     

     

    아르윈은 제 새에게 부탁했다.

     

    “…저 방에서 뭘하고 있는지 잠시 보고 와줄래?”

     

    가벼운 궁금증이었다.

     

    그토록 오랜시간 베르그를 기다렸는데, 홀랑 방에 들어가니 찜찜했다.

     

    혹시라도 둘만 대화를 나누고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기분이 나쁠 듯 했다.

     

     

     

    그렇게 새는 날아간다.

     

    아르윈은 문득 자신이 무얼하고 있는지 의아했다.

     

    그럼에도 부탁은 이미 했으니 말 없이 아르윈은 제 새를 기다렸다.

     

     

     

    그녀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

     

    베르그와 궁술을 연습하며 까진 손끝.

     

     

    벌써부터 그의 흔적이 몸에 남고 있다.

     

     

    아르윈은 베르그를 떠올렸다.

     

    …내일은 그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그러고보니 베르그에게 글을 알려줘야 하기도 했다.

     

     

    -톡톡톡.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자니, 새가 날아와 창문틀을 두드렸다.

     

    상념에서 벗어난 아르윈이 고개를 기울였다.

     

     

    -짹! 짹!

     

    아르윈은 들려온 대답에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뭐?”

    목구멍이 꾹 막혀온다.

     

     

    베르그가 네르를 뒤에서 강하게 안고 있다고 한다.

     

    마치 진정한 부부처럼.

     

     

    “…”

     

    네르는 베르그가 그저 친구라고 하지 않았던가?

     

    왜 그러고 있는걸까.

     

     

    …베르그는 자신에게, 그래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는데.

     

    그녀는 자꾸만 노을 속에서 반지를 끼워주던 베르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르윈은 입술을 가볍게 잘근대다,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 네르의 본심을 알아낼 방법은 따로 있었다.

     

    상황이 상황인만큼 효과적인 방안들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딱히 네르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네르와 베르그가 듣지 못하게, 아르윈은 천천히 네르의 방으로 향한다.

     

    들어서서는 안될 개인 공간.

     

    그 속에서 아르윈은 가볍게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딱!

     

    그렇게 방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의 위치가 그녀에게 주어진다.

     

     

    “…”

     

    아르윈이 찾는건 다른게 아니었다.

     

    네르가 셀레브리엔 영지에서 새로 들고 돌아왔던 것.

     

     

     

    그녀의 일기.

     

     

    아르윈은 네르의 짐 속에서 찾아낸 그녀의 일기장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본심이 분명 이곳에 적혀있을 것이었다.

     

     

    왜 그걸 아는게 중요할까.

     

    아르윈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본심에 대한 궁금증은 크기를 키우고 있었고, 아르윈은 그걸 거부하지 못했다.

     

    그녀도 처음 경험하는 감정들이, 그녀를 극단적으로 내몰았다.

     

     

    마법으로 인해 아르윈의 눈이 어둠속에서 빛난다.

     

    그녀는 익숙한 자세로 책을 폈다.

     

    독서는 얼마만이던가. 기억나지 않았다.

     

     

     

    “………….어?”

     

    하지만 첫장에서부터 아르윈은 혼란에 빠진다.

     

    찾을거라 예상했던 정보는 어디에도 없다.

     

    네르의 본심에 대한 이야기는 적혀있지 않았다.

     

     

    대신, 스탁핀. 즉 홍염단의 본거지에 대한 세세한 정보가 기록 되어있다.

     

    이건 남들이 알아서는 안될 정보였다.

     

    이를테면, 베르그를 해치려는 헤아 교단이라던지.

     

     

    아르윈은 눈을 깜빡였다.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네르의 본심이 무엇인지, 직접 듣는것보다 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네르의 종족이 무엇이었는지 또한, 더 없이 강하게 떠오른다.

     

     

    늑인족.

     

    한 사람만 무겁게 사랑하는 종족.

     

    그 운명의 상대를 만나고자, 이런걸 쓴 걸까.

     

    사랑 앞에서는 첫 친구도 의미가 없는걸까.

     

    조용히 네르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

     

     

    아르윈은 자신이 네르를 얕봤다는 생각했다.

     

    그녀의 순박함 속에 이러한 칼날이 숨어있었다.

     

     

    베르그 곁에서 항상 행복하게 웃길래 이럴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아르윈은 조용히 책을 덮었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일단 베르그에 대한 그 모든 말은 거짓이 아니었나보다.

     

    그를 사랑하는 건 절대 아닌 듯 했다.

     

     

    그 사실이 맞다면, 현재 베르그의 품에 안겨있는 네르도 어쩌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걸지도 모른다.

     

    아까 베르그와 같이 자겠다던 네르의 말도 자신을 향한 배려였을지도.

     

    그녀를 의심한 자신이 바보 같아진다.

     

     

    아르윈은 모든걸 원상태로 되돌려놓고, 방을 나섰다.

     

     

    거실 창가로 다가간다.

     

    충격적인 사실을 소화하며 그녀는 의자에 앉았다.

     

    -짹! 짹!

     

    새가 짹짹대며 그녀의 관심을 끈다.

     

    아르윈은 그 새를 쓰다듬다…네르의 방을 다시 바라보았다.

     

    …뭐가 됐든, 이제부터는 네르를 가만둘 순 없을 것 같았다.

     

     

    아르윈이 고개를 다시 숙였다.

     

    그리고는 제 새에게 다시금 부탁했다.

     

     

    “…앞으로 네르 좀 감시해줄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심약한소니아님! 1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ㅎㅎ 그걸 제게 주시다니 감사하네요!

    돌아와요참치캔님! 5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생각한적은 없었는데, 듣고 나니 흥미가 생기네요ㅎㅎ. 베르그와 아담의 표지도 한번 염두에 두겠습니다. 기대하지는 마세요!

    긘가님!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제 글을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저도 작가님의 글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우리 같이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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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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