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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

       피치블렌드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나는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돌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런 야밤에 등산을 하는 미친년은 아렌스 대륙을 다 뒤져봐도 주인님이 유일할 것 같네요.]

         

        그냥 등산도 아니고, 험준한 악산(惡山)을 오르는 일이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았다간 실족사하기 딱 좋다.

         

        지금 오르는 곳은 낙룡봉(落龍峰)이라고 부르는 산봉우리. 이곳에는 내 기준에서 기연이라고 부를 만한 물건이 존재한다.

         

        “후우.”

         

        마력초 한 개비를 피우는 것으로 휴식은 끝났다. 나는 다시 산을 올랐다.

         

        [현재 자연 방사선 농도는 2.14시버트입니다.]

         

        피치블렌드 산은 위로 올라갈수록 방사선 피폭량이 증가한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우라니나이트 괴상을 품고 있는 광상이기 때문이다.

         

        [현재 자연 방사선 농도는 3.29시버트입니다.]

         

        방사선 피폭의 위험을 모르는 현대인은 없다.

         

        1시버트만 돼도 구역감과 전신에서의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4시버트에 근접하는 양을 맞았다면 그때부터 50% 확률로 한 달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지금 농도는 인간의 몸으로 위험하다. 채굴 작업이 왕성하게 이뤄지는 아래쪽에 비해 이곳에 사람이 없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게 아니었다.

         

        “헉, 허억.”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자꾸만 헛구역질이 나오는 건 방사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저 아래에서부터 여기까지 축지법 쓰듯 달려오느라 입안에서 단맛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여긴 왜 온 건가요?]

         

        양장본의 물음에도 침묵을 지켰다. 그와의 염화도 끊어버리고, 대신 속으로 버멜과 했던 얘기를 되짚어봤다.

         

        ─ 기연 좀 찾아와 줘.

         

        “사람 짬처리나 하고 있어.”

         

        아니, 난 사람이 아니니까 짬처리를 시키는 건가?

         

        입맛이 쓴 생각을 하며 주변에 수상한 돌이 없나 살펴보았다. 머지않아 서로를 맞대고 있는 듯한 모양새의 기암괴석에서 사람 한 명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동굴을 발견했다.

         

        [우와, 이런 곳에 동굴이 있었네요.]

         

        틈새 사이에서 불길한 기운이 솟구쳐 나왔다. 이곳에 가이거 계수기를 가져가면 드드득 거리는 소리가 나겠지.

         

        이세계판 체르노빌이 눈앞에 있다. 

         

        틈새 사이로 몸을 비집고 들어가자 꽤 큰 내부가 나타났다. 아래쪽으로 쭉 길이 이어져 있는 모양이었다.

         

        [주변이 온통 피치블렌드로 가득하군요.]

         

        은광이 끊긴 장소부터 검은 광석들의 향연이 시작됐다. 앞으로 걸어갈수록 누르스름한 빛깔을 띠는 돌멩이들도 발에 챌 정도로 많이 보였다.

         

        나는 이들 중 적당한 크기의 돌덩이들을 주워 포켓에 넣었다. 얼마를 가져가든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는 부족한 양이겠지만, 상관없다.

         

        “답답해 죽겠네.”

         

        얼마간 걷자 숨을 쉬기 불편해졌다. 일반적인 라이터로는 불도 잘 붙지 않아 불빛을 내는 화계마도 스크롤을 횃불 대신 사용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는지를 모르겠다.

         

        -뚝뚝

         

        어디선가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숨을 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이상하군요. 폐쇄적인 동굴 공간의 특성상 이런 걸로 산소 농도가 변할 리는 없을 텐데….]

         

        “어디선가 산소를 공급하고 있단 소리겠지.”

         

        [그게 가능하기나 해요?]

         

        아주 못할 건 없다. 물이 있으면 기본적으로 산소는 포집할 수 있으니까.

         

        ─ 방사룡이 있는 동굴에 진입하면 점차 숨을 쉬기 어려워질 거야. 그때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옮기면 녀석을 만날 수 있어.

         

        실로 도움이 되는 조언이었다. 버멜의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는 최대한의 속도로 수평 동굴을 주파했다.

         

        숨을 몰아쉬며 시계를 보니 오전 1시 58분. 2시 정각에 딱 나타난다는 녀석을 만나려면 가능한 한 빠른 속력으로 신전이 있는 장소까지 도달해야 한다.

         

        [2시]

         

        “늦지 않았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몽환. 동화 속의 한 장면이라고 얘기해도 될 정도로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석순과 종유석은 트리튬으로 덧칠해 놨는지 어둠 속에서 형광으로 빛났다. 그런 종유석들의 발광하는 빛을 받으며 둥지를 틀고 있는 것은.

         

        [세상에. 야광 공룡이다!]

         

        아파트 한 채만한 드래곤이 잠들어 있다. 비늘은 강철로 되어 있고, 신체 곳곳은 종유석들과 마찬가지의 색으로 빛났다.

         

        야광 드래곤의 주변에는 아이언 드레이크 네 마리가 마찬가지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모두 금칠이 되어 있는 녀석들이었다. 입학식에서 본 드레이크와 정확히 같은 기종.

         

        “오랜만에 이곳에 손님이 왔네.”

         

        드래곤과 드레이크의 웅장한 자태에 잠시 넋을 놓고 있던 와중, 등 뒤를 밟혔다.

         

        “누구인지 얼굴을 좀 볼까?”

         

        느긋하고 장난기가 섞인 소녀의 음색이었다. 그 음색에는 묘한 잡음이 끼어있었다.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질질 끌고 오는 듯한 소리까지.

         

        뒤를 돌아보자 아무도 없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예의 소녀가 앞으로 이동했음을 알아챘다.

         

        “여기야, 여기.”

         

        잠든 드래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소녀가 배시시 미소 지었다.

         

        순백의 사제복을 입은 소녀였다. 소녀는 처음 봤을 때부터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그녀의 특징을 훑어봤다.

         

        양쪽 측두엽에서는 뿔 같은 게 튀어나와 있었는데, 양쪽 다 무언가에 깔끔하게 잘린 모양새였다. 또한 옆트임이 난 사제복으로는 꼬리가 살랑살랑 움직이며 바닥에 질질 끌렸다.

         

        잘린 뿔, 철퇴와도 같은 꼬리, 평상시에 감은 눈.

         

        버멜에게서 받은 세 가지 조건으로부터 그녀의 정체를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당신이 방사룡인가요.”

        “나를 알긴 아는구나?”

         

        창세신화에 그런 얘기가 있다.

         

        오래전, 여신의 권위에 대항해 전쟁을 일으켰다가 저주를 받아 이 피치블렌드 산에 발이 묶이게 된 가엾은 용이 있었다고.

         

        소녀는 조금 놀란 기색인지 입을 살짝 벌렸다.

         

        “엄밀히 말하자면 지금의 나는 볼품없는 반쪽짜리. 내 원래 육신은 바로 뒤에 있어.”

         

        과연.

         

        ─ 녀석은 인간과 엘프를 저주하여 여신을 상대로 싸움을 걸었어. 거기에서 패배한 대가로 본체를 빼앗기고 그토록 증오하던 인간의 몸에 갇히게 되었지.

         

        소녀의 진술은 버멜이 알려주었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아무래도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다.

         

        방사룡 요르문간드.

         

        세상 그 어떤 생명체보다도 대가를 중시하는 존재라고 들었다. 동등한 값어치를 주고받는 관계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최고의 거래 파트너였다.

         

        “그래서.”

         

        소녀가 눈을 뜨며 물어왔다.

         

        “동포는 무얼 원해서 여기 온 걸까나?”

         

         

        **

         

         

        에테르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어?”

         

        텅 비어버린 창가 쪽 침대를 보며 로테는 한동안 멍을 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그야 에테르가 갑자기 사라질 일이 없지 않은가.

         

        “어, 어디 갔지?”

         

        마치 잃어버린 장난감을 찾으려는 아이처럼 로테는 주변을 서성거리며 에테르의 행방을 쫓았다.

         

        복도와 방을 포함해 집안의 모든 장소를 샅샅이 찾아보았다. 안마당에서 산책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원을 한 바퀴 돌기도 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그녀가 있거나 있었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머리가 백지처럼 변했다.

         

        왜, 갑자기, 지금? 이렇게 뜬금없이?

         

        “알아서 돌아오겠지…?”

         

        로테는 방으로 돌아와서 기다리기로 했다. 째깍거리는 시곗바늘 소리가 오늘따라 더욱더 거슬렸다.

         

        잠 자기는 다 틀렸구나.

         

        안 그래도 복잡했던 머릿속이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복잡해졌다. 아버지에게 뜬금없이 차기 가주로 임명받은 것도 모자라, 가문에서 비밀스러운 마도를 개발하고 있으니 유지를 이어달라는 부탁까지 받았기 때문이었다.

         

        책임감이 강한 로테에게는 무거운 짐이었다. 가주 승계 문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화계마도의 개발에는 자신이 없었다.

         

        플레어를 개발할 때 에테르에게서 재능의 차이를 확실히 느꼈다. 그리고 이번에 아버지가 하고 계신 연구는 그깟 플레어 따위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라는 걸 로테는 직감하고 있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온종일 그런 생각을 하느라 머릿속이 잘 돌아가지 않던 참이었다. 로테는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에테르가 돌아올 때까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기로 했다.

         

        어느덧 한 시간이 넘어간다. 자기 친구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얘는 대체 어딜 간 거야?”

         

        안 되겠다. 잠도 안 오니 직접 찾으러 나서야겠다.

         

        살리에르 가문의 영지는 잘 정돈된 도시. 다른 지역에 비하면 야간 범죄율도 낮고 통금도 없지만, 그렇다고 에테르가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었다.

         

        바로 자연재해 때문이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적어도 내일이나 오늘 중으로 장마가 시작된다. 여름철만 되면 살리에르 영지를 급습해서 한 바탕 물난리를 일으키고 도주하는 불청객 중의 불청객이었다.

         

        그때마다 피치블렌드 산은 토사에 쓸려 조금씩 무너졌다. 평소에도 낙석지대라서 위험한 장소인데 장마철이 되면 더욱 답이 없어지는 것이다.

         

        “맞다, 피치블렌드 산.”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에테르가 응시하고 있던 산의 위치를 반추해낸 로테는 깨달음을 얻은 듯 손뼉을 마주쳤다.

         

        “분명 낙룡봉을 보고 있었지!”

         

        생각은 길지 않았다. 틀림없이 그 근처에 간 게 분명하다. 향수를 느끼는 눈빛과 오늘 저녁의 대화로부터 에테르의 행방을 대략 추측해낼 수 있었다.

         

        로브를 챙겨입은 로테는 가족이 걱정할 것을 대비하여 쪽지를 작성하고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뜬금없이 자신을 걱정시키다니.

         

        “찾으면 한 대 때려 버릴 거야.”

         

        로테는 호주머니에서 작은 스크롤을 하나 꺼냈다.

         

        공계마도를 담은 스크롤을 쓰면 한걸음에 수 미터를 도약하는 것도 가능하다. 비상용 축지 스크롤에 마력을 불어넣은 로테는 피치블렌드 산이 있는 곳까지 단숨에 튀어 나갔다.

         

        돌로 이루어진 산이라고는 하나, 저지대는 숲. 홍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로테의 아버지가 심어놓은 나무들이 흙을 단단하게 붙잡고 있다.

         

        ─ 거 더럽게 가파르네.

         

        “이 목소린….”

         

        말투와 음색, 악센트를 주는 부분까지 똑같다.

         

        틀림없다. 에테르였다.

         

        로테는 소리가 난 방향을 기억하여 최대한의 속력으로 달려갔다. 빼곡하게 들어찬 전나무 숲 사이로 인영 하나가 드리웠다.

         

        “야! 이런 곳에서 있으면…!”

         

        흐릿한 그림자를 보며 냅다 소리를 지른 로테는 얼마 안 가 재촉하던 발걸음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뭐, 뭐야.”

         

        자신에 말에 반응하여 완연한 어둠을 뚫고 다가오는 소녀.

         

        그녀의 머리칼은 새하얀 색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세요, AiBi입니다.

    오랜만에 작가후기로 독자 여러분들께 인사를 드립니다.
    최근 학업으로 인해 소설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어 휴재를 공지하고자 합니다.

    개인 공부를 위해 이틀 정도 연재를 쉬려고 합니다.
    부디 독자 여러분께서는 너른 마음으로 양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월요일에서 화요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만나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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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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