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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

       유세하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치르기 약 10분 전.

         

       “…이상하군.”

         

       불안하다는 듯 게이트 주변을 서성이는 여성이 있었다.

         

       170 초반의 키.

       베이지색이 감도는 고운 포니테일.

       강직하면서도 이목구비가 뚜렷한 누가 봐도 미인이라는 말이 나올 여성.

         

       마지막으로 가슴팍의 단추가 불쌍하다고 여겨질 만큼 마음씨 큰 주머니…가 아니라.

       《고니스 헌터 아카데미》의 교수를 상징하는 배지까지.

         

       팽진아.

       이번 4주째 마지막 시험의 감독관으로 대기 중인 그녀는 불안하다는 듯 팔짱을 끼었다.

         

       ‘…지금쯤이면 소식이 나와야 할 텐데.’

         

       아직 주나용, 유세하팀이 들어간 지 4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팽진아는 명백히 이상하다고 여겼다.

         

       둘의 실력이라면 진작에 보스를 깨고, <폐쇄> 과정이 진행되어야 할 테니까.

         

       ‘…불안해.’

         

       불안하다.

         

       팽진아는 평소에는 하나도 맞추지 못하면서, 꼭 이럴 때만 귀신같이 알아채는 제 감이 두려웠다.

         

       그리고 이는……

         

       파지직-!

         

       “쿨럭…”

       “교, 교수님…!”

         

       “…류다래, 황…기쁨?”

       

       딱 봐도 심각하게 다친 두 사람의 모습에서 확신으로 변화였다.

         

         

       * * *

         

         

       “……”

         

       팽진아는 달렸다.

       팽배하게 당긴 활시위를 놓는 것처럼.

       거칠 것 없이 달려 나가는 그녀의 움직임은 그것 자체로 예술이었다.

         

       지상에 닿지 않는 것처럼.

       그 어떤 장애물도 대수롭지 않게 뛰어넘었다.

         

       만약, 이 장면을 유세하가 보았다면 경악하며 온갖 호들갑을 떨었을 거다.

         

       현재 팽진아의 다리에 감도는 능력은 총 세 가지.

         

       [거침없는 질주], [힘있는 민첩성].

       본가에서 내려오는 ‘무공 스킬’을 그녀 나름대로 어레인지한 [팽아환보]이다.

         

       B급 이상의 중견급 헌터도 하나 이상 가지기 어렵다는 이동 속도 보정 스킬을 무려 3개나 가지고 있었다.

         

       사실상 간단해 보이지만, 3개의 기술이 합쳐진 컴비네이션이었다.

         

       ‘…제길.’

         

       그러나 팽진아는 유독 오늘따라 제 다리가 느리다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안다.

         

       이 이상 속도를 올릴 수 없다는 것을.

         

       그저 조급함이라는 독이 자신을 좀 먹고 있다는 것을.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팽진아는 유독 냉정, 침착하기가 어려웠다.

         

       ‘제발.’

         

       제발 부탁이다.

       주나용.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따라다니던 여동생 같은 존재여.

         

       그리고…

         

       ‘…유세하.’

         

       드디어 발견한 벽을 넘어줄 인재이자, 보석.

         

       그리고 개인적으로 마음의 빚을 둔 사내여.

         

       ‘…두 사람 모두 어떻게든 목숨만 붙어있어 다오.’

         

       그렇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원래대로 회복 시켜줄 테니까.

         

       그때였다.

       멀지 않은 곳.

       꽤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두 사람의 모습에 팽진아의 얼굴이 밝아진다.

         

       주나용.

         

       방금까지 걱정하던 그녀가 부축되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다른 사실을 깨닫고 굳어졌다.

         

       생도 중 가장 강하다는 <염룡>이 이곳에 있다는 말은…

         

       ‘…설마?’

         

       “…! 팽진아 교수님.”

       “교, 교수님…”

         

       두 사람의 앞에 착지하는 팽진아.

       뭐라 말하려는 둘의 의견을, 손을 들어 제지한다.

         

       “문보라 생도. 미안하지만 10초 안에 필요한 것만 말해다오. 세세한 전후 사정은 추후 보고 받겠다.”

         

       가장 필수적인 것을 우선시하는 태도에 문보라 또한 눈빛을 달리하였다.

         

       “이곳의 최종보스. 스톤 트롤이 폭주. <존재 진화>를 이루었습니다.”

       “……이런 씨발.”

         

       욕설을 내뱉는 팽진아였지만, 둘 중 누구도 그것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정도로 위험한 사항이니까.

         

       <존재 진화>.

       여러 가지 예외 케이스가 존재하지만, 쉽게 말해서 기존 ‘보스’가 조건을 충족하여 변이, 진화를 이룩하는 이벤트를 칭한다.

         

       흔히 <브레이크 아웃>과 함께 가장 위험한 던전 내 위기 상황으로 손꼽혔다.

         

       ‘보스가 던전 안을 돌아다니기라도 한 건가?’

         

       보통 같은 던전의 괴수들은, 서로를 공격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중간보스.

         

       또는 [보스룸]에 있는 최종 보스가, 직접 내부를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었다.

         

       이것을 흔히, <방랑자> 현상이라고 칭한다.

         

       <방랑자> 상태에 돌입한 보스는 던전의 법칙을 무시하며.

       안에 있는 괴수를 잡아먹거나, 죽이고 다니는 일을 하는데.

       이 경우 보스 스스로 경험치를 쌓아 강화하는 일이 일어난다.

         

       <존재 진화>는 보통 이런 경우에 생겨난다.

         

       “아니요…”

         

       그러자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부정하는 주나용.

         

       그녀의 말이 이어질수록 팽진아의 얼굴이 점점 굳어간다.

         

       ‘…폐쇄 아티팩트에서…[악마석]이라고?’

         

       눈가가 파르르 떨려온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감돌며.

       과거 의문스러웠던 일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눈 한번 꾹 감는 것으로 털어낸다.

       지금은 이런 것에 신경 쓰는 것 자체가 사치다.

         

       “알았다. 두 사람 모두 고생했다. 나머지는 나에게 맡겨라.”

       “저도…갈게요!”

        “나용씨. 당신은 위험…어, 어라? 허리에 난 상처가?”

       “난 몸에 용의 피도 흐르고…끼고 있는 반지가 회복 효과가 있어서 시간만 있으면 전력을 복구할 수 있어.”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팽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나용. 따라오는 건 자유지만, 늦어지면 버리겠다.”

       “넵!”

         

         

       *

         

         

       부리나케 달려가는 두 사람.

         

       각자 자신들이 가진 이동 속도 스킬을 전력으로 발휘하며 [보스룸]으로 향하였다.

         

       그렇게 쉬지 않고 5분 정도 달렸을까.

         

       “……!”

         

       팽진아는 대기 중에 감도는 진한 마기에 눈살을 찌푸렸다.

         

       순도 높은 악마석이기에 나오는 잔향이었다.

         

       이윽고 그 뒤를 이으는 혈향에서, 사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한다.

         

       찰칵-!

         

       허리춤의 검을 붙잡는다.

       입장하자마자 바로 보스의 목을 날려버릴 준비를 한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팽진아는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무슨?”

         

       찬란한 빛.

         

       [보스룸]을 가득 채우며 퍼져나가는 광원에 홀린 듯이 멈추어 선다.

         

       이것은 한 발짝 늦게 도착한 주나용 또한 마찬가지였다.

         

       광원의 중심지는 바로 양손으로 검을 들어 올리는 유세하.

         

       [자라의 장검]을 타고 ‘백색의 불꽃’이 그 무엇보다 강렬한 빛을 내었다.

         

       부서진 틈을 매꾸듯 안을 가득 채운 백염.

         

       그것 자체만으로도 놀라울 지경이지만, 팽진아가 더욱 경악한건 지금 그가 펼치는 기술이었다.

         

       <트윈 헤드 트롤>의 일격을 검면으로 흘러내린다.

         

       그저 튕겨내는 것이 아닌, 상대의 힘까지 전부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전력을 다한 ‘카운터’가 작렬한다.

         

       “[팽아랑]!!!”

         

       결의에 찬 유세하의 외침과 동시에 거대한 백호의 형상을 취한 마력이 찬란한 형태를 드러낸다.

         

       팽진아, 그녀가 전력으로 사용하는 [팽아랑]의 진정한 모습의 발현이었다.

         

       형상을 취한 마력은 한줄기 섬광으로 변하며, 트윈 헤드의 몸체에 작렬한다.

         

       그대로 상반신을 통째로 증발시킨다.

         

       말 그대로 완벽한 카운터.

         

       팽진아는 유세하를 도와야 한다는 그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멍하니 이 장면을 바라보았다.

         

       “……아.”

         

       그녀는 다시 한번 확신하였다.

       온몸을 타고 전율이 감돈다.

         

       유세하야말로.

       그야말로…

       불순물 하나 없는 재능의 원석이며.

       절대로 꺾이지 않는 광휘라고.

         

       ‘그라면 분명…’

         

       자신을 뛰어넘을 거라고.

         

       그리고 이것은 지켜보던 주나용 또한 비슷한 감상이었다.

         

       그에게서 팽진아 교수님의 모습이 일렁거린다.

         

       “……”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는 주나용.

       그녀는 직감하였다.

       누가 뭐라고 하여도, 자신의 패배가 확실하다고.

         

       두 사람의 상념은 여기까지였다.

         

       털썩.

         

       산산이 부서지는 장검 사이로 모든 힘을 다한 유세하가 허무하게 쓰러진다.

         

       그제야 제정신을 차린 팽진아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놀랍게도 이 일격을 맞고도 아직도 살아있는 <트윈 헤드 트롤>을 향해 [패천검법]을 휘두른다.

         

       완전한 검붉은 빛의 검기가 늪지대를 날려버릴 기세로 휘몰아친다.

       유세하가 펼친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노도의 공격.

       조각조각 세포 단위로 찢어지고 나서야 트윈 헤드는 완전히 숨을 거뒀다.

         

       검을 납도한 팽진아는, 유세하에게 매달려 엉엉 우는 마하나를 바라보았다.

         

       “므아, 므아아, 세하야. 안돼, 안돼 제발…!”

         

       너무나도 서럽게 우는게 누가 보면 죽은 줄 알 거다.

       천만다행히 그의 숨은 붙어있었다.

         

       “마하나! 진정해! 그냥 기절이야!”

       “므아아…”

       “뭐, 무, 물론…내부 장기가 많이 상하고 뼈와 근육이 뒤틀러 있어서 당장이라도 죽을 위기지만…-”

       “므아아!!!”

       “지, 진정해…이정도면 치료만 받으면 아무런 후유증은 없을 거야.”

       “므아아…”

         

       침착하게 결론을 내리는 주나용.

       그녀의 말에 마하나는 물론이고, 팽진아 또한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정말로 기적 같군.’

         

       이만한 보스가 날뛰었는데, 아무런 사상자도 나오지 않았다니.

         

       이것이 가능한 건…

         

       ‘유세하.’

         

       모두 그의 덕분일 거다.

         

         

       * * *

         

         

       사건이 끝나고 약 이틀 뒤.

       《고니스 헌터 아카데미》의 병실 안.

         

       “…으음.”

         

       나는 잘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낯선 천장이다.”

         

       아니, 사실 낯설지는 않다.

       대련 시합이 끝나고 입원하였던 그때의 문양과 똑같으니까.

         

       “후우…”

         

       억지로 몸을 일으킨 나는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다, 입고 있는 환자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유.’

         

       그렇구나.

       나, 살았구나.

         

       “천만다행이네…”

         

       혹시라도 눈에 보이는 게 아버지나 동료였다면, 매우 좆같았을텐데 말이야.

         

       그렇게 살아있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은 직후였다.

         

       무언인가 내 옆에 꼬물거리는 감각이 느껴진다.

         

       “…?”

       

       시선을 내리자 하도 울어서 퉁퉁 눈이 부은 므냥이가 팔베개하고 자고 있었다.

         

       밤새도록 울면서 날 간호했는지, 정신없이 잠에 취한 모습이었다.

         

       이거, 참 미안하네.

         

       안쓰러움에 머리를 조심히 쓸어주었다.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최애캐의 마음을 저리 아프게 했다는 것에서 나는 ‘지도관’으로서 실격이겠지.

         

       ‘…그나저나…’

         

       도통 생각해도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지 않네.

         

       주마등 같은 기억 속에서, 다 죽어가는 아버지랑 대화한 것까지는 얼추 생각난다.

         

       하지만 그 이상은 도통 머릿속에 잡히지 않았다.

         

       그저 ‘죽으면 므냥이가 슬퍼한다.’이 사실에 모든 것을 집중하며 검을 휘둘렀을 뿐.

         

       아…

       검이라고 하니까 조금 생각난다.

         

       마지막에 부서지는 [자라의 장검]에서 발현한 터무니없는 위력의 검기.

         

       “…분명 [팽아랑]…이긴 했지?”

         

       팽진아 교수가 펼쳤던 수준 높은 ‘카운터’.

       [역천의 눈동자]로 가져온 그 기술을 펼친 것까지는 얼추 생각난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대충 어떻게 될 건지 퍼즐이 맞춰졌다.

         

       아마 그 일격으로 트윈 헤드에게 치명상을 주는 데 성공하였고.

       그 사이 팽진아 교수가 달려와 준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손을 쥐었다 폈다 걸렸다.

       욱신거리는 고통이 몰려오지만, 딱히 그거 말고는 이상은 없었다.

         

       ‘…이상하다?’

         

       그때의 몸 상태를 고려한다면.

       절대로 이리 멀쩡할 리가 없었다.

         

       ‘…비싼 약이라도 쓴 건가?’

         

       으음…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나는 잠시 산책이라도 할 생각에, 므냥이가 없는 쪽으로 손을 내렸다.

         

       그리고 그때였다.

         

       물컹-!

         

       “……?”

         

       손바닥을 타고 흐르는 부드러우면서, 탄력 있는, 동시에 사람을 매혹하는 따스한 감촉에 전신이 돌처럼 굳어진다.

         

       너무 놀랐기 때문일까.

       오만가지 상상이 머릿속을 감돌았다.

         

       아니지?

       씨발…

       아니지?

         

       ‘아닐 거야…’

         

       내가 무슨 러브코미디 주인공도 아니고…

       그렇고 그런 시츄에이션일 리가 없다.

         

       애써 속으로 진정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대체 왜…

         

       내 침대 구석에 있는지 모르겠는 주나용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저기 붕대를 감은 그녀는 환자복 상태로 바로 내 옆에서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여기에 그녀의 큼지막한 가슴 위로 올려진 내 손은 덤이었다.

       

       “오……”

       

       에라이 씨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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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사기급 먼치킨 5★ 캐릭터가 되었다
Score 6.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onis Archive Life》 ‘GAL’ for short. I found myself possessed into the world of this game. Not only that, but I became a 5★ character from the very start, The only male character with ridiculously OP abi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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