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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

       [의상실에 ‘핏빛 판금 갑옷’이 추가되었습니다.]

         

       알림창이 떠오르면서 ‘New!’라는 말풍선이 붙은 갑옷이 의상실 카탈로그에 나타났다.

       이걸로 나는 언제든 이 갑옷을 꺼내 단원들에게 입힐 수 있었다.

         

       “우몬 군, 앞으로 나와보세요.”

         

       큰 뿔과 엄니를 가진 험악한 인상의 붉은 피부의 거인이 내 앞에 섰다.

       그는 어딘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헤헤 웃었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 녀석이 10살짜리 소년이라니 아무리 봐도 믿기지 않았다.

         

       그는 겁먹은 눈초리로-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사람을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나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프진 않죠?”

       “그런 걸 느낄 새도 없이 금방 끝날 겁니다.”

         

       단원들은 우리를 둘러싸고 둥글게 섰다.

         

       “그럼 갑니다.”

       “네.”

         

       나는 그를 목표로 지정하고 갑옷을 고른 뒤 손가락을 튕겼다.

         

       옅은 빛이 번쩍하며 그의 몸을 감쌌다.

       의상실의 효과는 찰나의 순간에 발동되었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에는 어느새 상자에 든 것과 똑같은 갑옷이 입혀져 있었다.

       그것도 크기와 비율이 그의 체형에 맞게 조절된 형태로.

         

       단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투구 사이로 솟은 뿔과 엄니만 없다면, 그는 한 명의 당당한 기사처럼 보였다.

       단원들은 그를 향해 다가가 갑옷을 만지며 연신 감탄사를 토해냈다.

         

       “우와아!”

       “이게 단장님의 새로운 마법?”

       “대단해! 멋지다, 우몬!”

         

       우몬이 투구의 가리개를 열고 씩 웃어 보였다.

       핏빛 갑옷에 그런 얼굴까지 하고 있으니 흡사 지옥의 대장군처럼 보였다.

         

       단원들은 차례로 나와서 각자의 역할에 맞는 옷을 받아갔다.

         

       그들 중 이 의상실의 능력을 가장 기뻐한 것은 유라크네와 세쌍둥이 트라이머리였다. 그들은 늘 기성품에 구멍을 뚫거나 누덕누덕 기우는 방식으로 옷을 만들어 입어야 했다. 그런데 의상실을 통해 나오는 옷은 마치 처음부터 그들을 위해 제작된 옷인 것처럼 딱 몸에 맞았다.

         

       스벤도 지금까지 옷 위로 몸의 형태가 잡히도록 솜을 군데군데 쑤셔 넣는 방식으로 옷을 입었는데, 의상실이 제공하는 옷은 해당 부위에 스펀지 같은 보형물이 알아서 채워져 있어 그럴 필요가 없었다.

         

       특이한 신체를 타고나 이들이라 그런지 ‘자신의 몸에 맞는 옷’이라는 상황 자체를 반가워했다.

       나는 그들의 기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단장님, 진짜 이 갑옷 망가뜨려도 되나요?”

         

       우몬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 몸에 걸친 갑옷을 둘러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언제든 제 마법으로 복구시킬 수 있어요.”

         

       의상실의 옷들이 좋은 점은 더럽혀지거나 망가진다 해도 세탁비와 수선비를 데볼루트로 지급하면 얼마든지 바로바로 새것처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몬은 지금까지 괴력으로 연습용 옷을 툭하면 걸레로 만들어 엘라가 밤을 새워서 수선하곤 했는데, 앞으로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주 좋은데.”

         

       엘라가 단원들을 둘러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대본 소화율이 크게 올랐다.

         

       단원들=25%.

       환상 배경, 소품, 특수효과=22%

       의상=9%

       합계=56%

         

       우리는 마침내 대본 소화율 50%를 넘길 수 있었다.

       엘라가 한 달 전에 계획했던 것보다 10% 이상 높았다.

         

       “이 정도면 참가자 중에서 상위권일까요?”

       “아직은 아니지.”

         

       그녀는 서커스 그랑프리에 참가하는 100여 개의 곡예단을 나름의 방식으로 조사했다.

       유명한 서커스단은 평소에도 많이 알아두고 있었고, 이번 대회를 맞아 잡지마다 대회 참가자들을 분석한 글이 많았기에 조사하는 건 쉬웠다.

         

       그녀는 현재 우리의 실력이 중간에서 조금 아래에 위치한다고 봤다.

         

       은막이나 판도라 같은 업계 최고들과 겨루지만 않는다면 한 번 붙어볼 만한 상대들인 것이다.

         

       거기다 우리의 56%라는 수치는 단원들의 평균을 계산한 것이다. 가장 성적이 높은 우몬의 분량을 늘이고, 가장 성적이 낮은 세쌍둥이나 요벨의 분량을 줄인다면, 실제로 공연에서는 60% 가까이 기량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어떻습니까, 샛별 서커스는?”

       “아마 우리랑 비슷할걸.”

         

       미노바의 서커스단은 이번 대회를 노리고 만든 ‘기획형 서커스단’이었다.

       후원자 측에서 나름 경력 있는 자들을 섭외해서 꾸린 조직이라는 것이다.

       그중에 엘라가 파악하고 있는 자들도 꽤 있었다.

       그녀는 그들의 명성과 평가를 조사하더니 그들의 실력을 우리와 비슷한 선에 두었다.

         

       “걱정하지 마.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장사잖아? 당신 아이디어 좋아. 분명 잘 먹힐 거야. 당신의 그 옷 갈아입히는 마법은 기대 이상이야. 이제 마야만 잘하면 돼.”

         

       내가 낸 아이디어.

       그건 나와 마야의 능력을 둘 다 필요로 했다.

         

       그것을 위해 마야는 1주일 전부터 환상뿐만 아니라 염동력 연습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뒤에 서서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흩날리는 흑색의 가루들을 지켜봤다.

       그녀의 마력 컨트롤은 또래에 따라올 자가 없을 정도로 정밀했지만, 그동안 환상 마법만 연습하느라 염동력은 그만큼 능숙하지 못했다.

       가루들이 원래 떨어져야 하는 위치에서 미묘하게 어긋났다.

         

       “마야 양, 괜찮겠어요?”

       “해낼 수 있어요.”

         

       그녀가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게도 그녀는 그녀에게 맡겨진 일을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수행의 한 종류로 생각하고 묵묵히 정진했다.

       기특한 아이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절차탁마하며 시간을 보냈다.

       2주 차는 금방 지나갔다.

         

         

       ***

         

         

       엘라가 눈을 뜬 것은 새벽 4시였다.

       잠든 게 새벽 2시 조금 넘어서였으니까, 2시간 조금 못 잤다.

         

       그녀는 온몸에 쇳덩어리를 매단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정신은 몸이 피로한 것에 비해 또렷한 편이었다.

         

       어떻게든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그녀는 아침저녁으로 꾸준히 카페인이 들어간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 곯아떨어질 때까지 몸을 움직일 수 있었고, 잠을 조금만 자도 금방 눈이 떠졌으며, 아무리 몸이 피로해도 정신은 말짱했기에 어떻게든 몸을 끌고 다닐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버티자. 이제 남은 건 1주일 정도. 딱 1주일만 더 고생하고 쉬자.’

         

       그녀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아 대본 수정 작업에 몰두했다.

         

       원더스타인이 준 대본은 이 시대의 형식에 맞지 않게 파격적인 부분이 많았다.

       엘라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지만, 흥행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고쳐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대사였다.

       공연계의 최신경향인 자연주의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대사를 선호하지만, 아직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것은 고풍스럽고 극적인 대사였다.

       단원들은 어파치 괴물이니까 귀족이나 시인처럼 대사를 읊을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의 격식은 갖추는 게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좋았다.

         

       그렇게 2시간 동안 그녀는 참고용으로 가져온 책들을 뒤적여가며 대본의 말투들 다듬었다.

         

       6시가 된 그녀는 커피를 한 잔 마시고는 정원으로 나가 단원들의 연습 도구를 정비했다.

       아무리 바빠도 이것만은 절대 빼먹지 않았다.

       단원 하나하나가 아쉬운 그들이었다.

       안전장치 하나 삐끗해서 연습 도중 다치기라도 한다면 큰 손해였다.

         

       아침 시간 동안 그녀는 단원들의 연습 상태를 점검했다.

       동작, 재주, 대사 작은 것 하나하나 그녀가 세심하게 검토하고 지적했다.

         

       아침 일정을 끝낸 그녀는 카바레로 향했다.

       2주 차의 대결을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이 순간만큼은 있던 피로도 싹 증발하는 느낌이었다.

       공연을 보는 일은 언제나 즐거웠다.

       

       파파엘 서커스의 곡예사들은 지도자 홉스의 명령에 따라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행동했다.

       검은색의 딱 맞는 타이즈를 입은 그들은 서로의 팔과 다리를 엮고 붙들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였다.

         

       대표작인 인간 탑 ‘모래시계’는 소문대로였다.

       88명의 곡예사가 12층의 인간 탑을 쌓았는데, 모래시계라는 이름답게 중간으로 갈수록 잘록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중간인 6층과 7층에 각각 한 명의 곡예사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두 팔을 뻗어 서로 손바닥을 마주 잡고 팔 힘만으로 그 하중을 견디고 있었다.

         

       그녀도 학교에서 ‘탑 쌓기’ 곡예를 익혔기에 그 원리를 알고는 있었다.

       지그재그로 교차한 인간 탑의 구조가 하중을 넓게 분산시키고, 하중을 직접 부담하는 위치의 사람들은 뼈를 지면과 수직인 각도로 만들어 ‘관절’이 아닌 ‘뼈 자체’의 강도로 그 무게를 견디는 것이다.

         

       이론은 그렇지만 저렇게 대단위의 인원이 그것을 정확하게 실행하기론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뒤이어 선보인 파파엘 서커스의 신작 ‘리바이어던’도 마찬가지였다.

       30명이 넘는 곡예사가 뭉쳐서 거대한 인간의 형상을 이루었다.

       그것도 단순히 형태만 흉내 내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의 움직임도 인간의 것을 그대로 모방했다.

         

       무릎 굽혔다가 일어서기, 옆돌기, 뒤로 재주넘기, 줄넘기, 훌라후프, 심지어 음악에 맞춰 춤까지 췄다.

         

       천장의 줄에 매달린 거대한 칼이 내려와 32명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허리를 양단하는 장면에서는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반 토막 난 리바이어던이 16명, 16명으로 이루어진 2명의 인간으로 벌떡 일어났을 때는 다들 함성과 함께 갈채를 보냈다.

         

       둘은 알렌과 조의 것과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재밌는 더블 코미디를 보여줬다.

       이윽고 2명은 개막식 때 보였던 8인 4조로 갈라졌고, 그렇게 반복하더니 마침내 32명의 곡예사가 일렬로 늘어서서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엘라는 두 곡예에 다음과 같은 점수를 매겼다.

         

       모래시계: 62%

       리바이어던: 68%

         

       은막이나 판도라의 것보다는 점수를 낮게 줬다.

       그 이유는 쇼가 너무 경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조금의 실수가 사고로 이어지는 위험천만한 곡예라고 해도, 그러한 긴장된 분위기를 객석에까지 전달하면 그 쇼는 즐기기 힘들었다.

         

       지도자인 홉스의 딱딱한 말투나, 연신 굳은 표정으로 곡예에 임하는 타이즈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관객들은 심적으로 쉽게 피로감을 느꼈다.

         

       관객들은 즐겁게 시간을 보내러 오는 사람들이지, ‘곡예기술’의 레벨을 측정하러 오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망고 극단의 공연은 파파엘 서커스의 정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들의 공연은 특별히 새로울 게 없었다.

       개막식 때 봤던 장미 풍차 카바레의 쇼의 열화판이었다.

       애초에 극단의 단주인 솔이 장미 풍차의 무용단장 출신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대신 그는 사람들을 즐겁게 할 줄 알았다.

       다소 대본이나 원래 흐름에 엇나가더라도 현장의 분위기에 맞춰 애드리브도 날리고 최대한 사람들이 땀을 흘리고 시원한 표정으로 나갈 수 있게 만드는 재주가 뛰어났다.

         

       더군다나 홉스보다 시험 과제에 대한 열의도 있었다.

       자신들의 위대한 곡예를 보고 가라고 우쭐하며 장사 그런 거 신경 안 쓴다고 턱에 힘준 홉스와 달리 그는 아예 노래와 춤부터 상품에 맞게 제작했다.

         

       서커스 그랑프리의 대회에 내건 무대치고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싸 보이는 내용의 가사였지만, 단순한 멜로디와 알기 쉬운 가사는 중독성이 좋았다. 신나게 함께 노래 부르고 춤추다 나온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노래를 반복해서 흥얼거리며 망고 극단의 매점의 물건을 구매했다.

         

       엘라는 그들의 공연을 54%로 매겼다.

       원래 그 정도도 줄 생각이 없었으나 관객들을 다루는 호흡이 워낙 뛰어나서 그나마 점수를 높게 준 것이었다.

       매점에 팝콘과 탄산음료만 갖다둔 파파엘 서커스보다 장사에 대한 의지도 보여서 대결에서 이길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토요일 날.

       승리의 왕관은 망고 극단 쪽으로 돌아갔다.

         

       “네놈은 자존심도 없나! 그런 저속한 노래와 춤으로 이기면 좋냐! 대중과 영합한 저질 댄서!”

         

       홉스가 분개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솔은 도발적인 조롱으로 응대했다.

       결국에는 두 서커스단 사이에 싸움판이 벌어졌다.

         

       엘라는 싸움의 결말을 보고 싶었지만, 일이 많았기에 서둘러 극장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저녁 시간에도 할 게 많았다.

         

       랫맨들의 역할 배분과 접객 동선을 점검하고, 원더스타인과 프로그램의 세부적인 내용을 다시 검토하고, 마야와 배경, 소품, 특수효과 환상에 대해서 수정할 점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코.

         

       “헉.”

         

       엘라는 눈을 번쩍 떴다.

       자신도 모르게 잠들 뻔했다.

         

       안 돼.

         

       얼마 남지 않았다.

       버텨야 했다.

       조금만 버티면 결실을 볼 수 있었다.

         

       오늘은 토요일.

       일주일만.

       다음 주까지 딱 1주일만 더 버티자.

         

       그녀는 이를 악물며 매점에서 챙겨온 커피를 연신 마셔대며, 호텔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오늘 입수한 아이디어를 노트에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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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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