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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

       “장비 꺼낼게요. 아, 불 피우는 건 부탁드려도 괜찮겠죠?”

        “여기서 노숙하게?”

        “네, 오늘은 이쯤하고 내일 아침 다시 출발하죠. 다음 포인트는 좀 멀어서요.”

        “흐응…….”

       

        산맥의 밤은 추웠다.

        모험가 생활을 하며 노숙에는 이골이 나 있는 몸이었기에 곧장 잠자리를 마련했다.

        메릴린은 텐트를 치는 나를 한 발짝 물러나 지켜보더니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두 번째 사탕을 찾은 이후 계속 미심쩍은 눈빛을 던지는 그녀였다.

       

        “너 그 이능은 어떻게 배운 거야?”

        “이능이 아니라 ‘기감’입니다. 은 등급 모험가쯤 되면 어설프게나마 익히는 기술이죠.”

        “여단의 잡기(雜伎)같은 거네.”

        “기감이라니까요.”

        “그게 그거잖아. 내가 살던 시대에도 비슷한 재주를 부리던 놈들이 있었어. 결국 마법의 위대함엔 비할 바가 못 됐지만, 대체로 길 찾는데는 쓸만했지.”

       

        누가 마법사 아니랄까봐. 시도때도 없이 제 자랑을 늘어놓는 메릴린을 보며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딸피, 아니 수백년 전 사람인 그녀에게 기감의 위대함을 납득시키기란 귀찮고 고루한 일일 테니까.

        텐트를 고정할 못 하나가 부족해 살살이를 대신 꽂아넣은 나는 마침내 훌륭한 보금자리를 완성했다.

        토비가 준비한 매트까지 안쪽에 깔고 나자 밖에서 작은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그년도 마법도 아니면서 짜증나는 기술을 많이 썼었지. 마치 너처럼.”

        “탑주도 기감을 사용했었나요?”

       

        고개를 들며 묻자 메릴린이 인상을 찌푸리며 사탕을 아그작 깨물었다.

        양갈래로 묶은 머리가 정전기에 의해 위로 치솟았다.

       

        “내가 어떻게 알아? 그딴 건 관심도 없었어.”

        “깨어난 이후부터 계속 그 사람 이야기만 하는 걸 보면 관심이 많아 보이시던데…….”

        “흥, 어차피 몇백년 전에 미련하게 등반하다 죽은 인간이야. 보아하니 지금은 이름도 알려져 있지 않던데?”

       

        일정한 경지에 오른 마법사들 중 일부는 인위적으로 수명을 늘릴 방법을 연구한다.

        진리를 찾기 위해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더없이 짧기 때문이었다.

        메릴린이 선택한 방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영향력이 막대한 학파를 창설한 후 후일을 도모하는 것.

        미래에서 깨어나 힘을 되찾았을 즈음에는 탑 공략이 훨씬 수월해져 있을 거라는 계산 하에서였다.

       

        “탑을 편하게 오르고 싶었으면 나처럼 똑똑했어야지.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바로 최상층을 뚫을 거야, 마탑의 꼭대기에서 살아있는 차기 탑주가 되는 거라구.”

        “그러니까 당시에 정면으로 승부하기에는 상대가 안 돼서 미래로 도망치셨다는 뜻이군요. 추잡하게 힘을 모조리 버리고 인간동상이 되어가면서까지…….”

        “너 아까부터 그따구로 이야기할래!?”

       

        흠, 이건 좀 논란이 있겠는걸.

        칠현자 호소인 베틀의 초회 우승자부터가 저런 인성을 가지고 있다면 흥행에 적신호가 켜질 수밖에 없다.

       

        정곡을 찔렸는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정전기를 뿌려대는 메릴린.

        그녀의 성화에 등떠밀린 나는 불침번을 위해 텐트 바깥으로 나왔다.

        어둠이 내려앉은 산맥에는 여전히 안개가 가득했지만 위치노트의 전파는 잡혔기에 홀로 앉아있는 일이 심심할 겨를은 없었다.

       

        나는 갤러리에 다시 접속하여 조금 더 본격적으로 밖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기 위해 글을 올렸다.

       

        ====

        시엔쟝복사뼈깨물고싶다

        [갤러리 여러분 반가워요~]

       

        오늘 처음 접속한 뉴비에요~

        혹시 여긴 주딱이 없나요?

       

        — ?

        — 유 입 쳐 내

        — 이 똥통에 왜 제 발로?

        — 주딱이 뭔데?

         ㄴ ㄹㅇ 진짜 모름

        — 저거 분명 개악질 분탕임…….

         ㄴ 왜?

         ㄴ 걍 내 감이 말하고 있음…… 무서움…….

         ㄴ ㄹㅇ 보통은 발바닥 핥고 싶다 하는데 저건 좀 광기임

         ㄴ 정보부장 닉 달고 설치는 거 보니 범상치 않은 건 확실하네

         ㄴ 조만간 정보부 끌려가서 안 보일 듯 ㅋㅋㅋ

        ====

       

        글을 쓰는 것은 가능하지만 게시글 관리는 되지 않는다.

        나는 대문 옆에 있는 완장 명단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나뿐만 아니라 부엉이나 뇌절이, 당축이같은 완장이 한 명도 없었다.

        대신 처음보는 유저들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주딱이 없는데 왜 파딱이 존재하는 거지?

        해답은 갤러리를 조금 눈팅하니 알 수 있었다.

        무법지대로 변해버린 갤러리는 매일 밤 정각을 기점으로 랜덤하게 관리자가 선출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기존에 내가 만들어놓은 기능들이 그대로 살아있어 그야말로 혼돈의 집합체나 다름없었다.

       

        ====

        [12시 넘었다!!]

       

        오늘은 파딱 달렸냐!!!

       

        — 응 아니었고~

         ㄴ ㄲㅂ 똥짤 뿌릴려 했는데

        — ㄴㅋ

        — ㄴㅋ

        — 저 비원의 층 유입인데 ㄴㅋ이 뭐임?

         ㄴ 닉 확인

        ====

        ====

        말벌단수장

        [파딱이 되었습니다]

       

        말벌 여러분들은 고개를 들어주세요

       

        — 부아아앙아아앙!!!!!

        — 피의 숙청을 시작한다

        — 아 ㅋㅋ 꿀벌단 딱 대라 ㅋㅋㅋㅋ

         ㄴ 응 소용 없어~ 운드라 가문 뒷배 든든해~

        ====

        ====

        [마탑조명을 껐다켰다껐다켰다껐다켰다껐다켰다껐다켰다껐다켰다]

       

        딸깍, 딸깍, 딸깍, 딸깍, 딸깍, 딸깍, 딸깍, 딸깍, 딸깍, 딸깍

       

        — 악! 내눈!

        — 여가 니 파티장이냐? 당장 꺼라

        — 오늘 다크모드 담당은 저 새끼임?

        — 하필 개악질한테 들어갔네 ㅋㅋㅋㅋ

        — 씨발 나 아직 기숙사 못 나왔는데 잠은 다 잤다

         ㄴ 어차피 밤에 안 자!

        ====

        ====

        천문대종말론자

        [세상이 멸망하는 버튼을 만들었어]

       

        (버튼) – 1,000,000,000P

       

        세상은 살 가치가 없는 것 같아

        포인트 남으면 아무나 눌러줘

       

        — ㄱㄱ혓!

        — 흠, 의외로 잘만 하면 누를 수 있겠는데?

        — 24시간동안 포인트 모으기 위한 무한도배 들어간다

        — 저 기능 처음 만든 새끼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ㄴ 구내식당 반찬이나 바꾸고 싶었겠지 뭐

         ㄴ 성신께서 내리신 축복이라고 하네요!

         ㄴ 지랄하네 적자생존 방식으로 갤러리가 수렴진화한 결과임

         ㄴ 자연적인 진화로는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하네요!

         ㄴ 성신이 진짜로 있었으면 여기가 지옥이야 ㅅㅂ

        ====

       

        개판이네.

       

        보는 것만으로 두통이 생긴 나는 이곳을 조금이나마 바꿔보기로 결심했다.

        ‘세상에 나쁜 분탕은 없다’는 지론에 의하면 흙탕물을 퍼뜨리는 유저들도 마음 한구석에는 선함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 처럼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 많이 활동할수록 모두가 클린한 갤질을 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6일 안에 이곳에서 나가면 다 없던 일이 될 테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싶은 게 주딱의 심정인 것이었다.

       

        ‘보아하니 시엔은 정보부장까지 올라간 것 같고, 비나는…… 있네?’

       

        먼저 내가 없는 세상에서 다른 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조사했다.

        시엔은 여전히 갤러리에 관심이 없었지만 비나는 아니었다.

       

        ====

        비나300

        [메테오가 얼음마법인 127가지 이유]

       

        이유 같은 건 없어요

        메테오는 얼음마법이에요

        ====

       

        “…….”

       

        분명 나와 만난 적이 없는데도 여기까지 기어들어와 소신을 내비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소름이 돋을 지경.

        비나가 올리는 꾸준한 게시글에는 대부분 댓글이 달려있지 않았다.

        고삐가 풀려버린 갤러리의 자극적인 글들에 비하면 너무 담백한 어그로이기 때문이겠지.

        타인의 반응을 신경 쓸 여인은 아니었지만, 갤러리의 자정작용을 위해 나는 곧장 이 떡밥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로 결심하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댓글을 작성하려던 내 양심에 찔리는 점은 오직 하나.

        이미 너무 많이 써먹은 레파토리라는 것이었다.

        여전히 효과는 좋겠지만 이절, 삼절을 넘어 이미 뇌절까지 와 버린 철 지난 드립인 만큼 굳이 공을 들이고 싶진 않았다.

       

        마탑의 주요 학파별로 준비한 가계정 스물 두개.

        그리고 비나 심리학에 기초해 선정한 그녀의 성질을 긁기 딱 좋은 문장들만 엄선해서 갤러리에 투하했다.

        평소라면 댓글을 달자마자 곧장 메시지가 쏟아졌을 텐데, 예상 외로 비나300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바쁜가?

        나와 만나지 않은 세계선에서는 극마법 수업 같은 건 하지 않았을 텐데.

       

        다행히 갤러리의 떡밥은 메테오로 넘어갔고, 혐짤들도 잠잠했기에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아침 일찍부터 등산을 해야 했기에 너무 오래 갤질에 몰두할 수는 없었다.

       

        “딱 네 시까지만 하고 자야지. 어디 다음은…… 응?”

       

        마리엘이나 다른 파딱들의 닉네임을 검색해보던 나는 익숙한 닉네임을 발견했다.

       

        ====

        프리나나

        [44층에 갇혔어 살……!]

        ====

       

        내가 사라지니 살살이와 비슷한 컨셉을 잡게 된 프리나였다.

       

       

       

        *

       

        “비나 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허나 상처가! 지금 당장 치료할 수 있는 자를 데려오겠습니다. 신성학파 출신으로…….”

        “지금 당신들의 수준으로는 고칠 수 없는 저주에요. 비키세요.”

       

        44층, 공역.

        비나는 마치 먹물을 푼 것처럼 검게 물들어 버린 트라팔가 호수의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중층에서 마탑을 공포로 몰아넣던 마족 하나를 수장시켰지만 그 대가가 생각보다 컸다.

        저주가 깃든 한쪽 무릎을 꿇자 극채색의 단원이 황급히 달려왔다.

       

        “빈센트에게 다음부터 이런 도움은 없을 거라 전하세요.”

        “예, 감사합니다.”

       

        단호한 태도에 누구도 그녀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비나는 바닥에 떨어진 부두인형을 버린 뒤 그대로 호수를 꽁꽁 얼려 버렸다.

        본디 마녀란 4대 재앙 중 하나인 대마녀의 심장을 터뜨리기 전까지는 절대 생명을 잃지 않는 존재.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이렇게 봉인해 놓는 게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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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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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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