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의 위에 앉으면 날아도 숨이 막히지 않는다.
바람의 정령답게 압박이 사라지는 것이다.
나와 세레나는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중이었다.
콰과광 –
밑에서 폭발음이 치고 올라왔다.
클로셀 영감이 시전한 마법이리라.
번쩍 –
눈부신 신성력도 뿜어져 나왔다.
교황 아저씨가 전투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신관들의 활약은 굉장했다.
내 눈에는 반짝이는 사람들이 똑똑히 보였다.
이곳저곳에 퍼져서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는 이들.
날아가는 중인 내 모습을 보았는지 알루어드가 고개를 드는 게 보였다.
“크리스, 저곳이 맞나요?”
사이한 기운들이 줄기줄기 뿜어지는 곳.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짙은 원념이었다.
악귀중의 악귀가 나타난다면 이런 느낌이 들 것이다.
“보통놈이 아니네.”
심지어 아직 그 모습을 드러내지조차 않았다.
웅크린 무언가가 기어나오려 하는 중이었다.
“저기로 내려갈 수 있겠어?”
내 물음에 세레나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또한 하이 엘프랍니다.”
세레나가 무언가를 중얼거리니 바로 밑에서 바람이 휘몰아쳤다.
쿠구구구구 –
강력한 돌풍이었다.
그리고 그사이로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아이린!”
휘이익 –
나를 태운 정령이 바닥으로 착지했다.
그리고 벼락 같이 나에게 다가오는 아이린.
“다친곳은 없나요?”
안부의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그건 나중에 해야 할듯했다.
주위에서 언데드들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아이린! 저거 좀 앞으로 끌고 와줘요!”
지금까지 성에서 봤던 언데드와는 다른 스켈레톤.
직접 네크로맨서의 통제를 받는 언데드였다.
부탁을 받은 아이린보다 다른 엘프가 먼저 움직였다.
휘리릭 –
낙엽이 떨어지듯 자유로운 움직임.
콰직 –
스거억 –
엘프의 손에 사지가 떨어져 나간 스켈레톤이 몸만 남은 체 내앞으로 굴러왔다.
“엘프의 은인이시여!”
내 팔이 허공을 가르며 방울이 움직였다.
퍼억 –
딸랑 –
스켈레톤의 머리를 부숴놓는 방울.
곧이어 주변에 있던 스켈레톤들이 후두둑 무너져 내렸다.
모두가 직접적인 통제를 받는 언데드였다.
“영감님들은요?”
말을 꺼내는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파라몬 영감이 말을 건네왔다.
“다친 곳 없이 멀쩡하니, 걱정 마시게나.”
“영감님!”
“마족의 소환이 진행되고 있네. 저곳으로 돌입하는 중이지.”
아까보다 부정한 기운들이 진해졌다.
“소환자를 죽이면 사라질 걸세.”
“아니요.”
마법은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저 소환이 힘을 받는 원천은 네크로맨서가 아니라 파란색의 불이다.
가까이 오니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영혼을 태워서 힘을 만들어 내는 불꽃.
정제를 한다고 해야 할까.
잡스러운 것들을 거르고 영혼의 원념만을 남겨 놓고 있었다.
“자체를 취소시켜야 해요.”
설명을 요구할 법도 한 말이었다.
하지만 영감에게서는 어떠한 물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빙그레 웃을 뿐.
“자네 하고싶은 데로 하시게나.”
“….?”
“그게 맞네.”
저게 무슨 뚱딴지 같은 반응일까.
“덕분에 많은 사람이 살았네. 길은 우리가 열지.”
딱 필요한 도움이기는 했다.
마음 같아서는 언데드들을 싸그리 쫓아내 주고 싶지만, 힘이 부족하다.
기우제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아부은 것이다.
“길은 이미 엘프들이 열고 있답니다.”
세레나와 아이린이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에 질세라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앵 –
“알루어드?”
“굿 하시는 거 아닙니까?”
“교황 후보로 키웠더니 도령의 종이 되어 버렸구나.”
“서…성하!”
먼저 달려 나간 것은 파라몬 영감이었다.
콰앙 –
날아오는 마법을 가르며, 오러 블레이드가 선명하게 돋아났다.
“도령, 네크로맨서들이 많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번쩍 –
신성력이 터져 나오며 몸주위를 감쌌다.
피곤이 조금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전투에 참전하기보다는 병사들을 살리러 가겠소.”
교황아저씨 다운 선택이었다.
콰과광 –
마법진으로 다가갈수록 전투가 거세졌다.
많아 보이는 네크로맨서들.
하지만 전황은 우리가 유리했다.
서거억 –
데구르르 –
이들이 주변을 휘저을 때마다 머리들이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그 중앙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하찮은 것들이 떼거리로 몰려왔구나!”
시커먼 기운을 한가득 내뿜고 있는 존재.
세레나와 알루어드가 내 앞을 막아섰다.
“굉장한 강자입니다.”
그런데 새삼 웃기는 일이 아닌가.
굉장한 강자는 우리 쪽이 더 많을 텐데.
번쩍 –
꽈과광!
번개 한줄기가 허공을 가르며 그곳에 떨어졌다.
“마법사는 마법사가 맡아야 하지 않겠는가?”
“로셀, 내 양보는 못하겠네. 클라인이 저놈들에게 당했으니.”
내가 봐도 압도적일 정도로 우리 쪽이 유리했다.
오히려 발악을 하는 네크로맨서가 불쌍해 보일지경이다.
등 뒤에서 루나가 바둥거렸다.
“빠!”
“응?”
“푸!”
작은 손이 가리키는 곳은 소환이 진행되고 있는 마법진.
제법 많은 네크로맨서들이 그곳을 보호하고 있었지만, 각자가 공격을 당하는 중이었다.
나를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저기다 꽂아야 하는 건가?”
사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성검으로 마족과 싸우는 것이었지만….
소환이 되는 것보다야 그 전에 막는 게 좋지 않겠는가.
“이건 잡귀정도가 아니고 악귀네.”
나오기도 전에 이런 기운들이라니.
코와 눈이 썩어버릴 것만 같았다.
마법진으로 다가 설 수록 불쾌함이 더 강해졌다.
투두둑 –
후두둑 –
어느새 제법 강해진 빗줄기가 몸을 두드렸다.
산불역시도 잠잠히 가라앉고 있는 와중이었지만, 여전히 활활타고 있는 푸른색의 불.
크기가 크지도 않았다.
작은 모닥불 정도의 크기.
요사스럽기 그지없었다.
딸랑 –
머릿속으로 온갖 장면들이 휘몰아쳤다.
푸른색의 불 앞에 선 수많은 오크들.
그들만의 의식을 치르는데 사용하는 것이지 싶었다.
“이상하게 바꿔놨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불길이 영혼을 태우고 있을 리가 없다.
“썩을 놈들이…”
마법진의 중앙에서 활활 타고 있는 불을 향해 성검을 박아 넣었다.
겨우 끝부분을 조금 박아넣는 것에 그쳤지만 말이다.
푸욱 –
순간 뿜어져 나오는 신성력들.
번쩍 –
마법진을 통해 기어나오던 기운들이 웅크러드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은 부족했다.
성검의 주인이 내가 아니기 때문이리라.
딸랑 –
“무당 앞에서 악귀를 불러들여?”
심지어 다 불러내지도 못한 악귀였다.
내가 배운 무속의 지식에 퇴마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혼내고 쫓아내며, 위로한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의 상황은 딱 내가 날뛰기 좋은 시기라는 것이다.
오기도 전에 쫓아내는 것이니까.
스윽 –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던진 나는 그대로 성검의 위에 올라탔다.
손잡이가 하늘을 향해 삐죽 솟아 있는 성검.
그 위로 내 발이 맞닿았다.
딸랑 –
후우욱 –
마치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성검에 발이 딱 붙어서 떨어지지도 않았다.
무언가가 다리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독하구나, 독해.”
억지로 발을 떼어내며 성검의 위에서 뛰어올랐다.
푸욱 –
번쩍 –
내 몸이 성검을 찍어누르자 마법진에서 올라오던 사념들이 몸을 움츠렸다.
움찔.
동시에 내 발목을 끌어당기는 힘도 강해졌다.
저항이 시작된 것이다.
있는 힘껏 팔을 휘두르며 소리를 냈다.
딸랑 –
딸랑 –
마치 방울과 마족의 기운이 사투를 벌이는 것만 같은 느낌.
방울을 흔들수록 기운이 약해졌고, 발이 가벼워졌다.
저항이 여전히 심했지만, 이럴 때 일수록 기세가 꺽여선 안 된다.
악귀를 상대하는 굿이란 기 싸움과 매한가지였으니까.
일부러 공수가 내려올 때를 흉내 내며 크게 호통을 쳤다.
“썩 물렀거라.”
딸랑 –
“악귀가 올 자리가 아니다.”
딸랑 –
있는 힘껏 몸을 띄워올려 성검을 내리 밟았다.
푸우욱 –
어느새 반절이나 파고든 성검.
그 밑으로 맥을 못추고 멈춰있는 기운들이 느껴졌다.
때에 맞춰서 종소리와 피리소리가 들려왔다.
딸랑 –
여전히 발목이 무거웠지만, 다시금 쫓아내면 될 일.
입으로 고함같은 호통을 뿜어내며 몸을 띄워 올렸다.
딸랑 –
딸랑 –
땅으로 박히던 성검이 어느 순간 꼿꼿이 선체로 움직이지를 않았다.
이놈 또한 마지막으로 힘을 쥐어 짜내고 있었다.
“땅의신 행차하시고, 성황신 노하신다.”
신의 이름이란 그 자체만으로 힘을 가진다.
내가 마지막으로 입에 담을 신은 바로.
“삼신…허억..!”
울컥 –
주르륵 –
입에서 피가 한움큼 토해지며 턱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그 순간.
성검이 땅끝까지 박혀 들었다.
푸우욱 –
땅에서 새파랗게 타오르던 불꽃마저 어느새 꺼져 있었다.
스멀스멀 기어 다니던 사념도, 요동치던 기운들도 말끔하게 사라졌다.
“하아…하아….”
이상하게 주변이 조용했다.
한창 전투가 치러지고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먼저 다가온 것은 알루어드와 세레나였다.
이들 역시 지친 듯 얼굴이 퀭해져 있었다.
“…끝나셨습니까?”
끄덕.
고개를 둘러 주위를 보니 무언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언데드는 온데간데없고, 사람들만 있지 않은가.
영감들도 전투 중인 것이 아니라 가만히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언데드 다 어디 갔어?”
“한참전에 도망갔습니다.”
“도망? 한참 전?”
이상한 일이다.
그들을 쫓아내려 한 적은 없었는데.
그리고 한참 전이라니?
세레나가 내 궁금증을 해소 시켜 주었다.
“교단에서처럼 시간이 많이 흘렀어요.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굿을 해버린 걸까.
그것과는 별개로 언데드는 왜 도망을 갔다는 말인가?
이번에는 알루어드가 헤괴한 얼굴을 하고선 말했다.
“저라도 도망갔을겁니다.”
“….?”
“성검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데 무서울 만도 하죠.”
왜 요즘 써놓고 보면 다 마음에 안들까요 ㅜㅜ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