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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2

        

       [ 반전시켰으니 그 전승 역시 반대로 하면 될 터! 이름을 일부러 틀리게 말하거라! ]

         

       이세린은 그레모리의 말을 듣고는 엘라에게 자신이 말하는 이름을 따라 말하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그녀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떼어주었고, 엘라는 손이 입을 막고 있는 바람에 고여있던 침을 질질 흘리며 소리쳤다.

         

       “하인츠!”

         

       엘라의 외침과 함께 문밖은 고요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평온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고요한 살의.

       섬뜩할 정도로 차갑고 고요한 정제된 분노가 문밖을 맴돌고 있었다.

       요정의 형태로, 사람을 흉내 내며 사람을 현혹하는 끔찍한 무언가의 형태로.

         

       그것은 광기를 숨기지 않고 소리쳤다.

         

       “그건 내 이름이 아니야! 내 이름을 말해!”

         

       엘라는 심령을 붙들고 뒤흔들려 하는 그 끔찍한 살의에 몸을 덜덜 떨었지만, 자신을 꼭 껴안은 채 체온으로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이아린 덕분에 간신히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쿤츠!”

       “아———아아아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내 이름은 그게 아니야! 틀렸어! 넌 틀렸어!”

         

       콰앙!

       쾅!

       콰아아앙!

         

       요정은 미치광이처럼 문을 두들겼다.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문은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흔들렸고, 방 안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진동에 사물들이 흔들렸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무너질 듯 흔들리는 와중에도 선반의 물건은 무엇 하나 떨어지지 않았고, 진동에 반드시 따르는 위에서 떨어지는 먼지 역시 찾아볼 수가 없었다.

         

       “멍청이! 멍청이! 멍청이 같으니! 게을러 빠지고 허풍은 잘 치는 주제에 멍청하기까지 한 년 같으니! 너는 틀렸어! 하-히이이——-하! 너는 이제 기회가 한 번 남았어! 마지막 기회! 마지막 질문! 마지막 대답! 마지막 다아아아압! 너는 어서 이름을 말해야 해! 이름! 나의 이름은!”

         

       콰아앙!

         

       “나의 이름은 무엇이지!”

         

       엘라는 꿈에라도 나올까 무서운 요정의 광기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세린이 귀에 속삭이는 말을 용기를 내어 소리쳤으니.

         

       “한스!”

         

       그것이 마지막 기회이자, 마지막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 대답이 나오자 문밖은 다시 고요해졌다.

       터져 나오는 활화산 같았던 분위기가 얼어붙은 바다 깊숙한 곳에 있는 심해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변했다.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고, 흔들리던 집은 얼어붙은 것처럼 싸늘해졌으며, 공기 자체가 확 변해서 왠지 모를 오한을 느끼게 했다.

         

       “멍청한 처녀! 너는 소원을 이룰 자격이 없어!”

         

       아까의 광기는 어디로 간 것일까?

         

       요정은 쾌활하게 소리치더니 문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즐거운 듯 콧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일이 있어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경쾌한 발소리를 내며 말이다.

         

       [ 물리쳤다. ]

         

       실을 자아라, 실을 자아라, 내 귀여운 딸아(Spinn, spinn, meine liebe Tochter),

       실을 자아라, 처녀야, 실을 자아라(Spinnt, ihr Mädchen, spinnt),

       그렇게 해서 연인을 차지해라(daß ihr einen Schatz gewinnt).

       최고의 남자를 얻는 여성(Die bekommt den besten Mann),

       그것은 최상의 실 잣는 처녀일지라(die am besten spinnen kann).

         

       실을 자아라, 처녀야, 실을 자아라(Spinnt, ihr Mädchen, spinnt),

       그렇게 해서 연인을 차지해라(daß ihr einen Schatz gewinnt).

         

       악마는 점점 멀어지는 룸펠슈틸츠헨의 콧노래 소리를 들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끄, 끝난 거야?’

       [ 그래. 적어도 룸펠슈틸츠헨은 물러갔다. ]

         

       악마는 혀를 내밀어 코를 핥았다.

         

       룸펠슈틸츠헨 모방체 생성 주술 의식.

         

       보통 줄여서 ‘룸펠슈틸츠헨 주술 의식’이라고 부르는 이 주술 의식은 이야기 속에 나오는 ‘룸펠슈틸츠헨’을 흉내 낸 것을 만들고 부리는 주술로서, 요정술사라고 불리는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이 주술로 만들어지는 것은 룸펠슈틸츠헨 본인이 아닌, 룸펠슈틸츠헨을 따라 한 것에 지나지 않는 주물(呪物). 그것도 온갖 소원을 이뤄줄 수 있었던 요정의 힘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사람을 현혹하는 요사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그렇기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만 하면 이렇게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는 있으나….

         

       [ 이것만 있을 리가 없다. ]

         

       습격자가 바보가 아닌 이상, 저것 하나만 준비했을 리가 없다.

         

       특히 주술사라는 족속들의 성질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들은 예상치 못한 수법을 사용하는 것을 즐긴다.

       무(武)를 이용해 싸우는 무인이나, 체스나 바둑을 두는 것처럼 싸우는 마법사와는 달리 주술사의 싸움은 규칙과 금기가 없는 전쟁이나 다름이 없었다.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해 싸우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주술의 대가를 지불하는데 익숙해진 그들은 무인보다도 제 몸을 아낄 줄 모르며.

       주술로 제 존재가 변질되는데 익숙해진 그들은 규칙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한다.

         

       다만 주술사 대부분은 도를 구하고 진리를 얻기 위해 수행하는 이들.

       이유가 없다면 딱히 싸우려 하지는 않지만….

         

       [ 마음의 준비를 해라. 또 공격이 올 것이다! ]

         

       안타깝게도 지금 그들의 방에 들어오길 원하는 불청객은 싸워야 하는 ‘이유’가 있는 듯했다. 눈이 돌아간 멧돼지가 이곳저곳에 들이박듯이, 제 몸을 횃불을 태우는 기름처럼 아낌없이 소모하며 싸워야 할, 그런 이유 말이다.

         

       톡-톡.

       후우우-

       삐—–이이이익.

         

       악마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위트룸에 설치된 스피커가 날카로운 소리를 발했다. 마이크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치는 소리와 숨을 불어서 먼지를 불어내는 소리와 함께 스피커에서는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벅, 저벅.

       드르르륵.

         

       그와 동시에 정적이 감돌았던 복도에서 다시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와 카트를 끄는 소리였다.

         

       그 발소리는 평범한 호텔 직원처럼 문 앞까지 다가오더니 노크를 했다.

         

       똑똑똑.

         

       그러더니 아까 요정이 그러했듯 평온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말을 거는 것이 아닌가.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긴급 상황에서의 행동 수칙에 대해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지지직거리던 스피커에서도 굵은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아-아-. 현재 호텔 안에 계신 고객분들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현재 정전으로 인해 호텔 내의 모든 전자제품의 가동이 중지된 상태이니, 고객분들께서는 되도록 방 밖으로 나가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현재 정전으로 인해 호텔 내의 모든 전자제품의 가동이 중지된 상태이니, 고객분들께서는 되도록 방 밖으로 나가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정전 상태에서 이동 중 다칠 수 있으니, 고객분들께서는 안전을 위해 방에서 나가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

         

       문밖의 가냘픈 여자의 목소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굵은 목소리.

         

       악마는 혀를 찼다.

         

       [ 사람을 현혹하고 미혹하는 주술을 쓰는 놈이로구나. ]

         

       현혹(眩惑).

       사람의 정신을 어지럽게 해 홀리게 하고.

         

       미혹(迷惑).

       사람의 마음을 흐려지도록 해 홀리게 만든다.

         

       [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

         

       악마는 이세린에게 그렇게 일갈했다. 그러자 이세린은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엘라와 이아린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똑같이 소리쳤다.

         

       “저,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이세린은 그렇게 소리치고는 엘라와 이아린을 꼬옥 안았다. 이아린이 엘라를 품어주듯 꼬옥 안고 있기에 둘을 껴안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 덕분에 중간에 낀 엘라는 샌드위치 사이에 낀 양상추처럼 양쪽에서 압박을 느끼는 신세가 되었지만, 오히려 이 두려운 상황에서 그들의 체온이 안심되는지 양팔을 뻗어 그들을 제 쪽으로 더 끌어들였다.

       그러고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자신의 왼쪽 손목에 걸린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투박한 달 모양의 금속 장식이 달린 투박한 디자인의 비즈 팔찌였다.

         

       똑똑똑.

         

       “고객님. 지금부터 긴급 상황에서의 행동 수칙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당 호텔은 고객분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이에 비상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훈련된 직원들이 직접 나서서 이렇게 설명을 하는 것이니만큼 의심하지 않고 이 행동 수칙을 따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아, 아. 당 호텔에서는 정전이 일어났을 시 비상전력을 가동하게 되어있으나, 안타깝게도 모종의 이유로 비상 발전기를 가동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현재 호텔의 모든 전자제품의 가동은 중지가 되었으며, 모든 직원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호텔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객분들께서는 잠시 불편하시더라도 방 밖으로 나서지 마시고 호텔이 정상화 될 때까지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

         

       직원과 방송.

       두 목소리가 방 안에 있는 이들을 현혹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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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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